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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28화
PAYLUA ORIGINAL · 제28화

28화. 희생을 권하는 감사관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62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외투를 입은 남자는 자신을 북부 특별감사관 베르크라고 소개했다. 그의 어깨에는 왕실 구호위원회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 문장은 도현이 왕궁에서 보았던 금빛 왕관과 달랐다. 왕관 아래에 작은 식탁이 하나 더 그려져 있었고, 그 식탁에는 사람 수를 세는 듯한 검은 점들이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베르크가 말했다. “마차 비용은 저희가 정산해 드리죠. 식사도 준비했습니다.” “됐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북부에 오면 배고파지기 마련인데요.” “오는 길에 먹었습니다.” 감사관은 미소를 유지한 채 의자 사이를 걸었다. 그가 지나갈 때마다 빈 접시가 아주 작게 떨렸다. 오도의 의자 앞에서는 검은 수프가 한 방울 떨어졌고, 엘마의 의자 앞에서는 밀가루 냄새가 짙어졌다. “이 요리사들은 왕국을 위해 일한 영웅들입니다. 물론 모든 영웅에게는 명예로운 희생이 필요하지요.” 도현은 장부에 적힌 수를 떠올렸다. 만 이천 일이 넘는 반복 노동.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한 시간. 한 끼의 식사를 이유로 그것을 명예라고 부르는 말이 역겨웠다. “영웅이라고 부르고 싶으시면 임금부터 지급하십시오.” 베르크가 한 번 웃었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선왕께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는 계산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계산 방법을 바꾸면 사람 한 명의 인생이 공짜가 됩니까?” “왕국은 살아남았습니다. 그 사실보다 중요한 증거가 있나요?” 루카스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공주님의 명령으로 원본 장부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업무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베르크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루카스 경. 공주님께서도 왕국의 질서를 존중하시겠지요. 특히 왕실 내부의 문제를 외부 요리사에게 맡기는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공주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그럼 저 역시 공식 문서로 답하겠습니다.” 베르크는 검은 가방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냈다. 제목에는 ‘북부 구호 특별 조치’라고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은 간단하고 잔인했다. 다음 날 자정까지 식당의 임시 관리인이 북부의 미수금 17건을 인수하지 않으면 루덴 마을의 배급과 출입을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굶기겠다는 겁니까?” 노라가 외쳤다. “아니요. 올바른 관리자를 찾겠다는 것입니다.” 베르크는 부드럽게 말했다. “도현 씨가 열여덟 번째 요리사로 정식 등록되면 모든 일을 계속할 수 있어요. 전임자들은 하나씩 풀어드릴 수도 있고요.” 도현은 양피지를 받아 문장을 확인했다. 마지막 줄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다른 조건이 적혀 있었다. [전임자들의 채무 및 추가 이자 일체를 신임 조리사에게 이전한다.] “이건 구조 제안이 아닙니다. 빚 떠넘기기죠.” “표현만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더 정확하게 부르겠습니다.” 도현은 양피지를 탁자 위에 펼쳤다. 그리고 함께 온 동료들을 바라봤다.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였고, 루카스는 검을 집어넣었다. 누군가를 당장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급히 손부터 내미는 실수는 하지 않기로 이미 합의했다.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베르크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럼 마을 사람들이 굶게 될 텐데요.” “저에게 서명하라고 강요하려고 마을을 인질로 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공개하겠습니다.” 남자는 다시 웃었다. “공개하려면 증거가 필요할 겁니다. 이 방에서 본 것을 밖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요?”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빈 접시 위에 있던 신청서 사본들이 모두 흰 가루로 변했다. 도현은 깜짝 놀랐지만 가방에 넣어 둔 원본은 그대로였다. 마르타의 이름표와 루카스의 날짜 기록 역시 빛을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원본을 요구한 겁니다.” 도현이 말했다. “당신도 여기 기록이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는군요.” 베르크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베르크는 마지막으로 도현을 시험하듯 은색 열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채권자를 만나고 싶다면 저 문을 열면 됩니다. 지금 단둘이 들어가실 수 있어요. 동행하신 분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조건으로요.” 도현은 문을 바라봤다. 이세계에 온 뒤 처음으로 모든 문제를 자기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기회처럼 보였다. 하지만 희생은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찾아왔다. 다른 사람을 살리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선택과 책임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방식이었다. “원본을 혼자 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채권자는 동행인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만나지 않겠습니다. 열일곱 분의 기록을 확인하려고 왔는데 증인도 없이 계약을 맺을 생각은 없습니다.” 베르크는 열쇠를 집어넣었다. 잠깐 드러난 그의 손목에는 검은 시럽이 묻은 듯한 가는 선이 있었다. 도현은 그것을 보았지만 무턱대고 저주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베르크 역시 어떤 계약에 묶여 있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을 인질로 잡는 그의 선택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방에서 나왔다. 나오기 전 도현은 빈 의자들을 향해 낮게 말했다. “여러분의 일을 대신해 빚을 지겠다고 약속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실제로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받았는지 기록을 찾아보겠습니다. 그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마르타의 의자에서 보리빵 냄새가 아주 잠깐 풍겼다. 루덴으로 돌아왔을 때는 밤이었다. 마을 광장에는 검은 제복을 입은 감시병들이 서 있었다. 회관 앞에는 제분소 공문이 붙었고, 사람들이 몰려들어 내용을 읽고 있었다. [비인가 급식 및 외부 조사로 인한 식량 공급 중단 예정.] [공급 재개 조건: 임시 관리인 백도현의 채무 인수.] 분노는 예상대로 도현에게 쏠렸다. 어떤 사람은 식당 앞으로 돌을 던졌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무릎을 꿇어 달라고 애원했다. 도현은 돌이 발치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정말 마을 사람들이 굶어야 합니까?” 한 여자가 울며 물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그래서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한 사람을 묶어 놓으면 내년엔 또 다른 사람을 요구할 테니까요.” “그런 말 말고 당장 내일 먹을 밥을 주세요!” 도현은 대답을 멈췄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눈앞에 음식이 없는 사람에게 원칙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소리치는 동안 어린 핀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두 손으로 빈 배급표를 꼭 쥐고 있었다. 관리인이 다가와 종이를 빼앗으려 하자 아이는 뒤로 물러섰다. “우리 아버지 이름을 여기서 지우지 마세요.” 그 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핀은 목소리를 떨면서도 계속 말했다. “아빠는 제분소에서 일하다 사라졌어요. 배급표에 안 나온다고 없는 사람 아니에요. 저 사람들이 밥을 받게 하려고 사라진 것도 아니고요.” 도현은 핀의 곁에 섰다. 아이가 얼마나 두려운지 손에 쥔 종이에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른들의 싸움에서 아이를 앞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핀, 고맙다. 이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을 하자.” 그는 아이를 노라에게 맡기고 주민들을 향해 말했다. “저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을 의무는 없어요. 하지만 자신이 먹은 적 없는 빵값을 누군가 대신 청구한다면 확인할 권리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확인하는 동안 굶지 않을 방법도 만들어야 합니다.” 주민들 사이에서 말다툼이 일었다. 젊은 남자가 사흘 치 식량이 남았다고 외쳤고, 다른 사람은 아이가 열 명이나 사는 집에 사흘 치가 무슨 소용이냐고 반박했다. 도현은 서로의 목소리를 덮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결정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루카스가 광장 가장자리에 작은 보호선을 그렸다. 칼을 뽑지 않고, 주민들이 무장한 감시병과 충돌하지 않도록 통로를 나누었다. 에스텔은 식당 화덕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일으킬 수 있는 검은 시럽과 미확인 곡물을 섞지 말라고 알렸다. 브론은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큰 통에 채웠다. 그가 물통을 놓자 노라가 다가왔다. “당신들은 정말 돌아갈 수 있어요. 우리만 남아도요.” “그렇겠죠.” 브론이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주방장님은 끼니를 남겨 둔 채 돌아가면 밤새 잠을 못 자는 사람이거든요.” “그게 전부예요?” “아뇨. 저도 여기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짖어 대는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요.” 노라는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브론은 자신이 농담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귀를 붉혔다. 마을 원로가 도현에게 다가왔다. 전날 회관에서 그를 크게 꾸짖었던 사람이었다.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했네. 지금도 절반쯤은 그래. 하지만 내 손자에게 어떤 빵을 먹였는지 묻는 게 왜 죄인지 이해할 수 없군.” “그 질문을 같이 하셔야 합니다. 한 사람만 하면 계약이 그 사람을 노리니까요.” 원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 바퀴 소리가 광장 끝에서 들려왔다. 수레 두 대가 광장으로 들어왔다. 마부가 손을 흔들었다. 왕궁 총주방장 베네딕트가 보낸 수레였다. 수레에는 콩과 감자, 정상 밀가루와 소금이 실려 있었고, 두 번째 마차에서는 젊은 요리사 네린이 뛰어내렸다. “왕도에서도 소문이 퍼졌어요. 공주님이 직접 마련해 주신 건 아니고, 몇몇 식당이 곡식과 돈을 모았어요.” “고맙습니다.” “고맙긴요. 여기엔 제가 만든 조리법도 있어요. 어제 밤새 수정한 거예요.” 네린은 종이 묶음을 펼쳤다. 큰 솥 없이도 열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콩죽,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말린 채소 수프, 어린아이를 위한 부드러운 감자 요리. 모든 조리법에는 필요한 재료량과 누가 비용을 냈는지가 적혀 있었다. 브론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 내일 굶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적어도 며칠은요.” 네린이 대답했다. “그 뒤는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해요.” 도현은 주민들 앞에서 그 사실을 솔직하게 알렸다. 이 음식은 영원한 해결책이 아니고, 마을의 식량 문제를 그들이 함께 풀어야 한다고. 일부 주민은 여전히 그를 원망했지만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 무렵 네린이 주방에서 나와 도현에게 작은 쪽지를 건넸다. 베네딕트의 필체였다. [북부에서 원본 장부를 찾거든 왕실의 면제 조항을 다시 확인하게. 면제는 기적이 아니네. 누구인가 반드시 비용을 대신 냈을 걸세.] 그 아래에는 또 다른 글씨가 있었다. [왕궁에서는 검은 밀가루의 납품처를 조사 중이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북부의 곡물은 한번도 왕궁에 들어온 적이 없다고 적혀 있네.] 도현은 종이를 접었다. 왕국 전체를 먹여 살렸다던 곡물이 실제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밝혀야 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답은 검은 밀밭의 깊은 곳에 있을 터였다. 같은 시각 중앙 제분소의 높은 굴뚝에서 첫 번째 종이 울렸다.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종소리가 마을의 지붕을 흔들었다. 감시병들은 일제히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특별 정산 예정.] [채무 인수 불응 시 미지급 노동자 전원 회수.] 도현의 가슴 주머니에서 금속 이름표들이 한꺼번에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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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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