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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27화
PAYLUA ORIGINAL · 제27화

27화. 열일곱 개의 빈 의자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118자

오프라인 책장
보관소 안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해 질 무렵의 빛이 바닥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다. 백도현은 개울 아래에서 열린 통로를 지나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입구가 가까울 때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몇 걸음 더 들어오자 그 소리가 아주 오래전 빗소리로 바뀌었다. 에스텔은 그 차이를 알아차리고 한쪽 벽에 보랏빛 실을 묶었다. 루카스는 바닥의 물기를 살피며 일행이 돌아갈 길을 확인했다. 통로 끝의 큰 방에는 의자가 열일곱 개 놓여 있었다. 모두 다른 모양이었다. 어떤 것은 왕궁의 연회장에나 어울리는 높은 등받이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것은 시골 식당의 낮은 나무 의자였다. 그러나 의자 앞의 접시는 하나같이 비어 있었다. 브론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움직임을 멈췄다. “사람 냄새가 납니다.” “어디에요?” 도현이 물었다. “의자마다 달라요. 어떤 곳에는 밀가루 냄새가, 어떤 곳에는 약초 냄새가 남았어요. 여기 없는 사람들인데도요.” 후각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던 브론은 자신도 놀란 듯 코끝을 문질렀다. 도현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단순히 저주가 주는 감각이 아니라, 누군가를 찾으려는 친구의 집중력이 냄새를 되찾게 하는 듯했다. 하지만 무엇이 나아지고 있는지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았다. 의자에는 작은 이름표가 박혀 있었다. 앞쪽부터 마르타, 셀비, 오도, 엘마. 도현은 가져온 금속 이름표와 하나씩 맞추었다. 같은 이름을 접시에 놓자 의자 뒤의 공기가 물결처럼 떨렸다. 아주 흐린 사람의 윤곽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본인이 여기 있다는 뜻입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남아 있는 기억일 수도 있죠.” 도현은 첫 번째 의자 앞에 섰다. 마르타의 이름표가 짧게 울리자 판자 아래에서 들었던 목소리가 나타났다. “오늘은 보리빵을 아흔아홉 개 구웠습니다.” 도현은 무릎을 굽혀 빈 의자를 바라봤다. “마르타 씨, 저희는 외부 시간으로 오늘을 기록했습니다. 누구에게 몇 개를 제공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목소리는 잠시 멎었다. 그리고 마치 오래된 원고를 읽는 사람처럼 천천히 대답했다. “받아 간 사람이 없어요. 종이 울릴 때마다 다시 구웠으니까.” [증언 1건 접수.] 의자의 그림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번째 의자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세 번째에는 큰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는 오도입니다. 열두 사람에게 수프를 줬어요. 매일 같은 열두 사람. 그 사람들이 돈을 내겠다고 했지만 받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어요.” “왜 받지 말라고 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계약이 끝나면 그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거든요.” “누가 그랬습니까?” “왕실 구호위원회 사람이요. 목에 은색 열쇠를 걸고 있던 남자였어요.” [증언 2건 접수.] 도현은 가슴이 조여 왔다. 요리사들이 누군가에게 음식을 제공했다고 해서 죄를 지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선의를 이용해 실제 거래를 성립시키지 않은 자가 분명히 있었다. 네 번째 의자에서는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마리아가 리아에게 가르쳤던 ‘마지막 한 숟갈은 기다리는 사람의 것’이라는 노래와 같은 선율이었다. 노라는 엘마의 이름표를 들고 울음을 삼켰다. “엄마?” 노랫소리가 흔들렸다. “노라. 너 아직도 반죽을 왼손으로 접니?” 노라의 두 손이 떨렸다. 도현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환영의 목소리가 살아 있는 사람인지, 이미 남겨진 기억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어머니를 데리러 갈 수 있다고 말한다면 노라에게 다시 견딜 수 없는 기대를 안길지도 몰랐다. “저는 어머니의 행방을 확인하러 온 사람입니다.” 도현이 말했다. “노라 씨에게 기억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도 몰라요. 문이 열리면 바람 소리가 났고, 끝나면 다시 밀가루가 쌓였어요. 그런데 가끔 서쪽에서 아침 종이 울렸어요.” “서쪽이라면 왕도 방향인가요?” “아니요. 바다가 있는 쪽. 소금 냄새가 나는 곳이었어요.” [증언 3건 접수.] 그 말은 중요한 실마리였다. 엘마가 이곳에 갇혀 있으면서도 서쪽 바닷가의 소리를 들었다면, 보관소의 통로가 왕국 여러 곳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머지 의자에서는 서로 다른 반응이 나왔다. 다섯 번째는 음식을 만드는 소리만, 여섯 번째는 누군가의 흐느낌만 들렸다. 일곱 번째 의자에는 어린 글씨로 만든 메뉴판이 붙어 있었고, 그 뒤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도현은 반응이 없다고 해서 죽었다고 적지 않았다. 마리아 역시 장부에는 ‘소멸 처리’되었지만 살아 돌아왔으니까. 아홉 번째 의자에는 술 냄새 대신 익힌 사과 향이 남아 있었다. 브론이 코를 들이밀자 그 냄새는 곧 사라졌지만 도현은 냄비 바닥에 붙은 과일 조각을 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기서 사과를 끓이던 분이 계셨습니까?” 의자 위에 소년처럼 가느다란 그림자가 나타났다. 다만 그것은 대답 대신 낡은 조리법 한 장을 반복해서 펼쳐 보였다. 글씨는 희미했지만 가장 아래에 ‘먹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 다른 것을 만든다’는 문장만은 선명했다. “저 사람은 왜 말을 하지 않죠?” 브론이 물었다. “말을 잃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목소리는 남기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그는 의자에 적힌 이름을 장부에 옮겼다. ‘요나. 응답 없음. 조리법 흔적 확인.’ 이것으로 요나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는 주석도 달았다. 열한 번째 의자에서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이 들렸고, 열두 번째에서는 기도문 같은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들 사이에 어떤 여자의 분노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나는 사흘만 돕겠다고 했어. 사흘이면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다고 했잖아!” 도현은 걸음을 멈췄다. 세상에 수많은 약속이 있지만, 사흘을 약속한 사람에게 삼십 년을 요구하는 말처럼 잔인한 것도 없을 것이다. 그는 기록지에 날짜를 적었다. 소리가 현재의 말인지 과거의 외침인지 모른다는 표시를 함께 남겼다. 루카스는 이름표를 세는 일을 도왔다. 그는 왕실 군인의 습관대로 사람마다 관등과 번호를 적으려다가 펜을 멈췄다. “군대에서는 부대와 번호가 먼저입니다. 다친 사람을 찾을 때도 그렇게 하는 편이 빠르니까요.” “그 방식이 필요한 때도 있겠죠.” 도현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는 그런 번호 때문에 사람이 사라진 곳 같습니다.” 루카스는 종이에 적은 번호를 지우고 이름을 앞에 썼다. 그런 작은 순서의 차이도 그에게는 낯선 일처럼 보였다. 노라는 의자마다 작은 빵 조각을 놓으려다가 도현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해도 되나요?” “마음은 알지만 아직은 두죠. 여기서 식사 제공으로 인정되면 새로운 대가를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아무것도 못 하는 건가요?” “그분들 이야기를 적어 둘 수 있습니다. 이름표를 집으로 가져가 가족에게 보여 줄 수도 있고요. 몸을 구하는 일만이 누군가를 찾는 유일한 방식은 아니니까요.” 노라는 잠시 생각한 뒤 빈 접시를 한 번씩 손수건으로 닦았다. 도현은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계약을 수락하는 것도 아닌 행동이었다. 먼지를 닦아 주는 마음까지 빚으로 계산할 수는 없기를 바랐다. 방의 끝에는 커다란 벽화가 있었다. 지금껏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림이었다. 커다란 솥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왕실 관리들과 어린아이들, 앞치마를 두른 요리사들이 모두 같은 높이로 그려져 있었다. 그림 한가운데의 솥만 비어 있었다. 에스텔이 벽화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근 이전의 그림이야.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누군가를 속이려고 모인 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럴 수도 있겠죠.” 도현이 대답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누군가가 선을 넘었습니다. 그 뒤의 일까지 그림 하나가 변명해 주진 못해요.” 그는 벽화 아래에 작게 적힌 글씨를 발견했다. [솥을 채우는 자는 밥값을 알아야 한다.] 이상하게도 그 문장은 마르타와 레온이 남긴 기록의 정신과 닮아 있었다. 최초의 식탁에는 사람을 지키려는 약속이 있었는데, 나중에 누군가 그 약속을 뒤집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들은 의자마다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을 정리했다. 현재 생존 확인은 마르타 한 사람, 직접 증언이 남은 사람은 마르타와 오도와 엘마 셋. 나머지 열네 명의 상태는 불명. 직접 대화한 것인지 기억의 재생인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도현이 여덟 번째 이름표를 내려놓는 순간 의자 밑에서 검은 실이 튀어나왔다. 실은 도현의 손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루카스가 검집으로 실을 쳤지만 잘리지 않았다. “물러서세요!” 에스텔이 봉인 마법을 펼쳤다. 보랏빛 빛줄기가 실을 벽 쪽으로 묶었다. 도현은 그 틈에 이름표를 내려놓고 한 발 물러났다. 실은 곧장 빈 접시로 돌아갔다. [증언을 청취한 자에게 식사 대가 청구.] [대상: 백도현.] “아니요.” 도현이 말했다. 글씨가 번쩍거렸다. “저는 여기서 식사를 받은 적도,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빚을 떠안을 수는 없습니다.” [기존 조리실 규약에 이의 없음.] “이의 있습니다.” 그는 가방에서 준비해 온 신청서 사본을 꺼내 빈 접시 위에 놓았다. 사본에는 본인의 이름 대신 임시 관리인의 자격과 동의 범위가 적혀 있었다. 그 문장을 본 검은 실은 잠시 떨리더니 접시 아래로 스며들었다. [증언 대가의 직접 청구: 보류.] 브론이 큰 숨을 내쉬었다. “휴. 여긴 말 한마디 듣는 것도 돈을 받는군요.” “돈도 아니에요. 사람의 시간을 가져가는 거죠.” 도현은 대답했다. 방의 한가운데에 마지막 의자가 있었다. 유난히 크고 흰 식탁보가 깔려 있었지만 이름표는 없었다. 도현이 다가가자 의자 등받이에 글씨가 떠올랐다. [원본 장부 열람을 위한 채권자 참석 필요.] [채권자 대리인 입장 예정: 북부 특별감사관.] 루카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에스텔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구두가 돌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낯선 남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잘 다린 검은 외투, 먼지 하나 없는 장갑, 목에 걸린 은색 열쇠. 그는 빈 의자들을 훑어보다 도현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백도현 주방장님이시군요. 열여덟 번째 자리에 앉으실 분.” 도현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앉을 생각 없습니다.” 남자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서서 계약하시겠습니까? 의자 높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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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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