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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25화
PAYLUA ORIGINAL · 제25화

25화. 열여덟 번째 자리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041자

오프라인 책장
‘열여덟 번째’라는 문구는 낮에도 지워지지 않았다. 도현은 마르타의 방에서 가지고 나온 밀알을 투명한 유리병에 넣고 뚜껑을 봉인했다. 밀알 하나 때문에 누군가가 갑자기 늙거나 기억을 잃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저주받은 음식이 가끔 곧장 몸을 해치지 않고 장부에 먼저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루덴의 숙소는 오래된 마구간을 개조한 여관이었다. 창밖으로 회색 구릉과 물레방아가 보였고, 부엌 안쪽에는 세 사람이 겨우 둘러앉을 만한 나무 식탁이 있었다. 저녁이면 마을 사람들이 난롯가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검은 밀밭에서 돌아온 사람을 만났다는 말을 들은 뒤로는 모두 그들 곁을 피했다. “여기 사람들이 우릴 무서워하는 것 같습니다.” 브론이 말했다. “저라면 그럴 겁니다.” 도현은 병을 살폈다. “누군가 이 마을의 비밀을 건드리는 순간 배급표가 끊길 수도 있으니까요.” 노라가 밀가루 포대를 내려놓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요. 중앙 제분소 장부에 항의한 집은 며칠 동안 빵을 못 받았죠. 그런데 사람들은 항의한 이웃을 탓해요. 규칙을 지켰으면 다 같이 먹을 수 있었다고.” 도현은 포대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값을 계산했다. 노라는 한사코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는 다음 조리에 쓸 밀가루라면 거래를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짜라는 말에 가려지는 대가를 누구보다 많이 본 탓이었다. 마르타가 건네준 이름표는 열일곱 개였다. 온전한 글씨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여섯 개뿐이었다. 마르타, 셀비, 오도, 엘마, 요나, 데릭. 나머지는 녹과 검은 가루에 가려 있었다. 에스텔은 손끝의 마법을 이용해 글씨를 되살려 보려 했지만, 억지로 문양을 건드릴 때마다 그녀의 손바닥에 작은 화상 자국이 생겼다. “그만하세요.” 도현이 말했다. “조금만 더 하면….” “사람 이름을 읽으려고 또 누군가 다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가 손을 거두었다. 도현은 이름표들을 천 위에 나란히 놓았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일과 삶을 증명하는 물건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람의 사연을 열일곱 개의 숫자로만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노라가 엘마의 이름표를 만지려다 손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글씨예요. 어머니는 이름 끝의 획을 꼭 둥글게 써요.” “직접 확인하기 전엔 상태를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네. 그런데 적어도 이름이 남아 있네요.” 그것만으로도 노라는 오랫동안 울지 못했던 사람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에스텔은 이름표의 뒷면을 살폈다. 각각에는 다른 수가 새겨져 있었다. 12,481. 9,200. 5,744. 숫자는 서로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사람이 일을 한 날을 기록한 숫자였다. “기근 때 왕실이 제공한 식사는 한 끼였잖아요.” 도현이 말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만 일 넘게 일했어요. 그럼 정상적인 채권 관계라면 벌써 끝났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상적인 거래라면 그렇겠지. 여기서는 애초에 채권자가 자신의 몫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에스텔이 대답했다. 루카스는 마을 기록보관소에서 얻어 온 조각 문서를 식탁 위에 펼쳤다. 구호위원회가 북부에 곡물을 제공하는 대신 제분소의 모든 생산물과 인력을 통제한다는 오래된 명령이었다. 인장 부분은 잘려 있었고, 결재자는 왕실 구호위원회로만 적혀 있었다. “문서는 매년 갱신됐습니다. 갱신 때마다 제분소와 배급소의 모든 거래가 새로 시작된 것으로 처리됐어요.” “그럼 만 이천 일이 일한 기록이 아니라, 만 이천 번 지워진 기록이군요.” 도현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주방에서 요리를 해 봤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오늘 얼마나 많은 음식을 만들어도 어제의 주문과 계산이 전부 사라진다면 장부는 끝내 흑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식탁에 놓인 엘마의 이름표를 노라가 바라보는 동안, 루카스는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했다. 마을에는 종소리보다 발소리가 많아지고 있었다. 검은 외투를 입은 관리들이 집집마다 배급표를 확인하며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밤은 조사를 멈추는 게 어떻겠습니까?” 루카스가 제안했다. “왜죠?” “조사 내용이 공개되면 저분들이 먼저 위험해질 겁니다. 지금은 보호할 병력도 적습니다.” 도현은 한참 생각했다. 루카스의 말은 옳았다. 기록을 밝혀내기만 하면 사람이 안전해지는 건 아니었다. 누군가 그 기록을 빌미로 더 큰 보복을 한다면, 지금까지 지켜 온 원칙이 의미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럼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선택할 권리를 주죠. 우리가 알아낸 걸 어느 정도 공개하고 싶은지, 어떤 도움을 받아야 안전한지 여쭙겠습니다.” 노라가 손을 들었다. “저는 어머니 이름은 숨기고 싶지 않아요. 다만 제분소 사람들이 우리 집을 태우려 하면 피할 곳이 필요해요.” 에스텔이 대답했다. “여관 주인에게 빈 창고가 있는지 물어볼게. 그리고 지붕에 감시 봉인을 둘 수 있어. 대신 며칠만 버티는 임시방편이라는 걸 알아 줬으면 해.” 그들은 보호 조치를 장부에 적었다. 누구에게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위험을 떠넘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노라는 처음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점차 질문을 더했다. 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온다면 어디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지, 기억을 잃어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도현은 답을 모르는 항목에 ‘확인 필요’라고 적었다. “참 이상하네요.” 노라가 말했다. “모른다고 적으니까 오히려 뭘 해야 할지 보이는 것 같아요.” 도현은 잠시 웃었다. “부엌도 비슷합니다. 없는 재료를 있는 척하면 요리는 더 위험해지거든요.” 그날 밤 도현은 루덴의 급식소를 찾아갔다. 입구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말없이 배급표를 내밀었다. 투명한 유리벽 너머에서 검은 빵이 잘려 나왔다. 작은 아이 하나가 배를 움켜쥐고 줄 밖에 서 있었다. 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현은 아이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주려다가 잠시 멈췄다. 아이가 받아도 괜찮은지, 보호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아이는 아버지가 교대근무를 하고 있어 곧 돌아올 거라고 말했다. 도현은 급식소 바깥의 공용 탁자에 앉아 아이와 함께 간단한 감자전을 만들었다. 이미 익혀 온 감자를 으깨 밀가루와 소금을 조금 섞고 얇게 부쳤다. “왜 이렇게 얇아요?” 아이가 물었다. “작은 불로도 속까지 잘 익게 하려고.” “다섯 장 만들면 두꺼운 거 하나보다 많이 먹을 수 있어요?” “많아 보이긴 하겠지만 양은 똑같지. 대신 서로 나눠 먹기 편해.” 아이는 감자전 두 장을 남겨 아버지에게 주겠다고 했다. 도현은 남은 것을 작은 종이에 싸 주었다. 그 종이 위에 자신의 서명을 적으려는데 아이가 손을 막았다. “아저씨, 이름 쓰지 마세요.” “왜?”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만든 밥을 계속 받으라는 뜻이래요. 우리 아빠도 그래서 장부에 이름 쓰는 걸 싫어해요.” 도현은 펜을 내려놓았다. 일상적인 영수증 한 장에도 숨겨진 계약이 묻어 있었다. 급식소 책임자가 다가오자 아이는 도망치듯 일어났다. 책임자는 검은 조끼에 은빛 단추를 달고 있었고, 목에는 제분소 관리패가 걸려 있었다. “외지인들이 이곳에서 음식을 나눠 준다고 들었습니다.” “정상 밀가루로 만든 걸 확인하고 같이 먹었습니다.” “이곳에는 배급 체계가 있습니다. 무단 급식은 질서를 해칩니다.” “그럼 배급표 없는 아이는 어떤 질서로 밥을 먹습니까?” 남자는 잠깐 말이 막혔다. 그는 안경을 고쳐 쓰고 낮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규칙을 좋아해서 지키는 게 아닙니다. 규칙이 없으면 아예 아무것도 못 받으니까요.” 도현은 남자의 눈에 피로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을 굶기려고 즐거워하는 악당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오히려 이곳의 구조를 더 무섭게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테오. 기록 담당입니다.” 테오는 도현의 가슴에 달린 왕실 통행증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북부 채권 보관소에 가셨군요.” “마르타라는 요리사를 만났습니다.” 그 이름이 나오자 남자는 주위부터 살폈다. “여기서는 그 이름을 말하지 마십시오. 저녁 종이 울리면 주변의 장부가 듣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빵을 굽고 있습니다. 일을 마칠 수 없어서 갇혔고요.” “알고 있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기록을 관리하는 사람이 그들의 생사를 알면서도 해마다 장부를 갱신했던 것이다. 테오는 눈을 감았다. “저도 처음엔 이곳에 들어오면 식권을 발행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숫자가 줄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하지만 제가 기록을 멈추면 식권이 끊깁니다. 아이들이 굶습니다.” “아이들이 굶는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평생 일하게 해도 된다는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럼 그 고리를 끊을 방법을 같이 찾아야죠.” 테오는 한참 도현을 바라보다가 작은 종이를 건넸다. 거기에는 중앙 제분소의 하역 시간과 지하 창고 출입구가 적혀 있었다. “여기에는 같은 식사 한 끼를 스무 번 제공했다고 적힌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끼를 만든 사람에게는 아무런 임금도 지급하지 않았어요.” “어디서 볼 수 있습니까?” “보관소의 원본 장부입니다. 복사본은 모두 날짜가 바뀔 때 지워집니다.” 도현이 종이를 접자 테오가 팔을 붙잡았다. “한 가지 더. 그 장부에 없는 이름은 절대로 쓰지 마십시오.” “왜죠?” 테오의 손이 떨렸다. “제가 열여덟 번째 이름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장부에는 열일곱 명의 실제 이름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새 요리사가 온다는 뜻이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빚을 떠안게 할 다음 사람의 자리였습니다.” 도현은 병 속 밀알을 떠올렸다. 마르타가 준 이름표는 열일곱 개였고 자신의 이름은 그 안에 없었다. 그런데 계약은 벌써 빈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 도현은 쇠숟가락을 손바닥에 놓았다. “제가 대리인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채무자라고 동의한 적은 없습니다.” 쇠숟가락이 조용히 빛났다. [증언 대리인 자격 인정.] [새로운 채무 인수: 미동의.] [이의 신청 가능 기간: 자정까지.] 이번에는 기한이 적혀 있었다. 도현은 마을 시계탑을 올려다봤다. 시곗바늘은 자정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배고픈 사람들을 계속 묶어 놓기 위해 만들어진 장부가 이번에는 그에게 시간제한을 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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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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