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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21화
PAYLUA ORIGINAL · 제21화

21화. 허기를 신고하는 길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18자

오프라인 책장
북부로 떠나기로 한 날, 백도현은 장부보다 먼저 냉장고를 열었다. 정확히는 냉장고라고 부르기 민망한 돌상자였다. 에스텔이 새겨 놓은 냉각 문양 덕분에 안쪽의 온기가 빠져나갔지만, 문을 오래 열어 두면 벽에서 파란 성에 대신 불꽃이 피어나는 고약한 물건이었다. “고기는 두 덩어리, 당근 여섯 개, 감자 열둘. 말린 콩은 이틀 치.” “저는 감자 세 개만 먹으면 한 끼가 됩니다!” 브론이 주방 문에 머리를 내밀었다. 새벽인데도 그의 귀는 꼿꼿했다. 짐가방에는 여벌 옷보다 육포와 접시가 더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럼 네 끼면 열두 개가 끝나겠네요.” “계산을 너무 냉정하게 하십니다.” 도현은 감자를 자루에 옮겨 담았다. 여행에 필요한 것은 호기심만이 아니었다. 목적지에 가서 배가 고프다고 수상한 밀가루를 먹는다면 지금껏 조사한 모든 일이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왕도의 늦가을은 변덕스러웠다. 수로 쪽에는 아직 눅눅한 냄새가 남아 있었지만 북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손가락 마디를 얼얼하게 했다. 식당 ‘마지막 한 숟갈’의 작은 창으로는 생선 장수의 구호와 빵 굽는 소리가 번갈아 들어왔다. 도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칼을 갈았다. 왕궁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와 맞섰던 어제도, 오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계산대 위에는 레온의 쇠숟가락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의 일곱 홈 중 첫 번째는 완전히 검게 변해 있었다. 도현이 식당 장부를 펼치자 숟가락이 짧게 울렸다. [임시 관리인 전용 미수금 목록.] [보관소: 북부 검은 밀밭.] [관리 대상: 미귀환 요리사 17명.] [장부의 권리는 현장에서만 열람 가능.] “왜 서류 하나를 보려고 왕국 끝까지 가야 합니까?” “그 서류가 도망치거든.” 에스텔은 식탁 끝에 앉아 작은 보릿가루 병을 손에 굴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묶어 올린 모습은 늘 보던 느긋한 사장과 달랐다. 검은 외투 속에는 약병과 마법 봉인이 달린 실뭉치가 들어 있었다. “북부의 첫 곡물 창고는 대기근 이후 문을 닫았어. 그런데 폐쇄된 장부에서 매년 이자가 붙었지. 레온이 살아 있을 때 한 번 찾아갔지만 끝까지 들어가지 못했어.” “그때는 왜 못 들어갔습니까?” “돌아올 때 먹을 것이 없었거든.”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에스텔은 마른 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저주는 평범한 조건을 좋아해. 빚이 남아 있는 자는 통행료를 내라, 이름이 없는 자는 손님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배고픈 자에게는 우선 음식을 제공한다. 살아남고 싶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한 말로 시작하지.” 그 말에 도현은 여행용 식량 자루를 단단히 묶었다. 리아와 마리아는 주방 뒤쪽의 작은 방에서 나왔다. 마리아의 발목에는 제8창고에서 끊어지지 않은 검은 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지만 빵 반죽을 주무르는 손놀림만큼은 전날보다 안정적이었다. 리아는 손에 작은 종이뭉치를 들고 있었다. “아저씨. 여기에 엄마가 알려 준 빵 모양을 그렸어요.” “이걸로 뭐 하게?” “길 잃어도 빵집 찾으라고요.” 도현이 종이를 펼치자 동그란 빵 옆에 서툰 글씨로 ‘돌아와서 같이 먹기’가 적혀 있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그는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가 없는 동안 가게는 어떻게 하죠?” 브론이 물었다. “마리아 씨가 빵을 굽고 토마가 주문을 받기로 했어요. 미나에게 뜨거운 화덕은 만지지 말라고 전했고요. 베네딕트 씨 쪽에서 낮에 요리사 한 명을 보내 줄 겁니다.” “그럼 제 임금은….” “출발 전에 장부에 다 적었어요. 식당이 폐업하는 것도 아닌데 월급을 빼먹겠어요?” 브론은 안도하면서도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더 이상 직원 한 명으로만 취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에스텔이 마리아에게 작은 열쇠를 건넸다. “지하실 첫 번째 문 열쇠야. 두 번째 문은 절대 열지 말고.” 마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둘째 문에는 무엇이 있나요?” “여분의 빚 독촉장.” “그럼 첫째 문에는요?” “장작.” “순서가 잘못됐네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도현도 따라 웃었지만 가슴 주머니의 종이만은 몇 번이나 만져 보았다. 누군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이 여행을 시작할 때 가장 무거운 짐이 될 줄 몰랐다. 북문에는 공주의 봉인이 찍힌 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왕실 문장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마부 역시 제복을 입지 않았다. 마차 곁에는 루카스가 서 있었다. 갑옷 대신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 여행 외투를 걸쳤고, 허리의 검집 위로 낡은 조리용 주걱이 꽂혀 있었다. “공주님이 직접 오시지 못해 유감이라고 하셨습니다.” “손의 저주는 어떻습니까?” “어젯밤에도 왕관 표식이 번졌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 내게 내리신 명령은 분명합니다. 보관소에 있는 요리사들의 생사와 기록을 확인하고, 민간인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할 것.” 루카스는 말을 멈추고 봉투를 건넸다. 안에는 북부 통행증 세 장과 공주가 손수 쓴 짧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밥을 빚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을 증명해 주십시오. 아일린.] 도현은 편지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왕실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공주를 전부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광장에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던 사람들의 선택을 함께 지킨 동료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마차가 출발하자 왕도 성벽이 천천히 멀어졌다. 북부로 가는 길은 오래된 소금길이었다. 구불구불한 고개를 지나면 농가와 작은 마을이 나타났고, 길 양쪽에는 수확을 끝낸 밭이 갈색 이불처럼 펼쳐져 있었다. 가끔 피난민들이 짐수레를 끌고 반대편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낯선 마차를 보고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마차가 두 번째 고개를 넘을 때, 에스텔은 창밖에 지나가는 공동묘지를 가리켰다. 돌비석 사이에는 밀 이삭 모양의 목패가 박혀 있었다. 도현은 처음엔 북부에서 농부들의 무덤을 표시하는 방식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보니 비석마다 생몰년 대신 배급표 번호가 쓰여 있었다. “저 묘지는 사람이 아니라 식권을 묻는 곳이야.” 에스텔이 말했다. “죽은 사람의 기록을 보관하는 겁니까?” “아니. 계약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을 묻는 거지. 실제로 죽었는지와는 무관해.” 도현은 고개를 돌렸다. 비석 뒤의 길에서는 한 여자가 물을 긷고 있었고, 목패와 같은 번호가 새겨진 팔찌를 차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쳐다봤다가 급히 소매를 끌어내렸다. 식사 기록이 사람의 실제 생사보다 우선되는 세계. 그는 왕도 제8창고에서 마리아의 이름이 ‘소멸 처리’된 일을 다시 떠올렸다. “마르타나 엘마도 저렇게 기록됐을 수 있겠군요.” “그럴 거야. 누구도 실제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채 숫자만 옮겼겠지.” 도현은 마차 안쪽에 놓은 기록용 종이를 꺼냈다. 그가 첫 줄에 적은 것은 ‘실종자 열일곱 명’이 아니었다. ‘직접 만나지 못한 요리사 열일곱 명’. 둘은 비슷해 보였지만 의미가 달랐다. 한쪽은 이미 결론을 내린 말이고, 다른 쪽은 아직 찾는 중이라는 말이었다. 브론은 그 문구를 읽고 흐뭇하게 웃었다. “저도 실종된 게 아니라 잠깐 냄새를 못 맡는 거겠죠?” “브론 씨는 제 눈앞에 있잖아요.” “그래도 저를 한 번씩 찾으시는 것 같아서요.” 도현은 그를 향해 간식 주머니를 던졌다. 브론은 재빨리 받아 들고 웃었다. 한참 뒤 그는 봉지에서 말린 사과 한 조각을 꺼내 도현에게 먼저 건넸다. “주방장님도 드세요. 요리하는 사람이 굶으면 안 되잖습니까.”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 사과를 입에 넣었다. 단맛은 또렷했다. 다행이었다. 아직 그가 잃은 것은 어머니의 미역국 맛 하나였지, 모든 맛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조각의 맛과 식감을 작은 종이에 적었다. 자신이 잊더라도 누군가 읽어 줄 수 있도록. 한낮 무렵 첫 번째 휴게소에 도착했다. 마구간 옆에 작은 식당이 있었지만 창문에는 ‘현금 결제 불가’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도현은 팻말을 두 번 읽었다. “현금을 안 받는 식당도 있습니까?” 주인은 잿빛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그는 손님들의 외투를 훑어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북쪽에선 배급표가 돈보다 낫소. 곡물 창고가 한 끼 먹을 권리를 보증하거든. 돈이 있어도 곡물이 없으면 먹지 못하지 않겠소?” “배급표를 받으면 주인은 무엇을 받습니까?” “창고에서 밀가루를 준다고 하지. 아직 내 차례가 안 와서 그렇지.” 노인은 입구 벽의 작은 나무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날짜별로 받은 식권과 아직 정산되지 않은 곡물량이 적혀 있었다. 사흘치 식사는 이미 제공되었지만 실제로 받은 밀가루는 한 포대도 없었다. 도현은 지갑에서 동전을 꺼냈다. “그럼 저희가 가진 재료를 조금 쓰고 조리대를 빌려도 됩니까? 불값은 현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직접 만들어 먹겠다고?” “그렇습니다. 대신 주인장도 같이 드시죠.” 그는 마차에서 콩과 감자를 꺼내 작은 수프를 끓였다. 노인의 식당에는 육수도 변변한 향신료도 없었지만 냄비 바닥에 남은 양파를 천천히 볶아 단맛을 냈다. 콩을 오래 끓여 농도를 맞추고 마지막에 소금을 더했다. 브론은 당장 한 그릇을 더 달라고 졸랐지만 도현은 식기를 씻기 전에는 안 된다고 했다. 노인은 수프를 받아 들고 한동안 먹지 않았다. “배급표를 안 받을 거요?” “조리대와 장작값을 드리겠다고 했잖습니까. 빚으로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노인은 마침내 숟가락을 들었다. 거칠게 갈라진 손으로 그릇을 감싸 쥐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오래전에 북부에 있던 요리사들도 그렇게 말했소. 누군가의 밥값은 누군가가 정당하게 치러야 한다고.”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 요리사들을 아십니까?” 노인은 낡은 배급표 한 장을 가져왔다. 모서리는 닳았지만 잉크는 선명했다. [북부 곡물 정산소.] [정산 증인: 마르타, 셀비, 오도 외 열네 명.] [지급 완료: 0.] “그 사람들 말입니까?” 노인은 수프 그릇을 놓았다. “이름을 입에 올리지 마시오. 저녁이 되면 밭에서 대답이 돌아오니까.” 바로 그때 휴게소 뒤편에서 바람이 불었다. 거두어 놓은 밀짚더미가 한순간 똑같은 방향으로 기울었다. 아무도 종을 치지 않았는데 벽에 걸린 배급표가 가늘게 떨렸다. 도현은 오래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종이 뒷면의 빈자리에서 미세한 글씨가 솟아올랐다. [미지급 식사: 17건.] [채권 회수에 참여할 신규 조리사 확인.] [대상: 백도현.] 그 아래 문장은 이전에 본 어떤 계약보다도 간결했다. [북부에 입장한 자는 먼저 자신의 허기를 신고할 것.] 도현은 손목을 내려다봤다. 석화의 회색 자국이 유난히 차가웠다. “배고픈지 아닌지까지 신고해야 합니까?”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여기는 북부요. 배고프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누군가 당신의 밥값을 계산하기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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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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