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은 저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식당 문에 작은 종이를 붙였다.
[오늘의 특별 메뉴: 묽은 보리죽. 환자는 의원의 안내에 따라 드십시오.]
브론이 어리둥절해했다. “구조한 분들께 거창한 식사를 준비하실 줄 알았는데요.”
“오랫동안 제대로 못 드신 분에게 갑자기 진한 스튜를 내놓으면 위험합니다. 며칠에 걸쳐 상태를 살펴야 해요.”
니아는 작은 숟가락을 가져왔고, 헥터는 국물을 너무 뜨겁게 내지 않도록 그릇을 미리 식혔다. 베노와 세 사람이 차례로 앉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음식을 받았지만, 접시가 빈 뒤에 무엇을 서명해야 할지 물었다.
“아무 서명도 안 하셔도 됩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럼 누가 먹었는지 어떻게 알아?” 베노가 물었다.
“필요한 의료 기록은 원하시는 방식으로 남기겠습니다. 치료와 배급이 누구의 빚이 되는 건 아니에요.”
베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빵의 무게를 틀리게 잰 꿈을 꿉니다.”
“오늘은 무게를 잴 필요 없습니다. 원하시는 만큼만 드세요.”
그때 식당 문이 열리고 아일린이 들어왔다. 그녀는 급하게 달려왔는지 젖은 외투를 벗을 틈도 없었다. 손에는 철문에서 발견한 표시와 비슷한 문양이 그려진 지도를 들고 있었다.
“남은 열 명의 등록처가 세 곳으로 나뉘어 있어요. 한 곳은 도시 지하 배수로, 한 곳은 구왕궁 냉각실, 마지막은 천칭 부엌 바로 아래입니다.”
“분산 수용이군요.” 오르델이 말했다. “그렇게 등록했다고 실제 그곳에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노는 지도 한쪽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배수로에는 감시용 빵을 굽던 공방이 있어요. 불이 꺼진 뒤에도 냄새가 남는 곳. 거기에 누군가 있었던 건 기억합니다.”
점심 무렵 도현은 식당 뒤쪽에서 베노와 이야기를 나눴다. 베노는 빵 굽던 시절의 레시피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모자란 곡식 때문에 매일 같은 빵을 만들었지만, 정작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 새로 배우면 됩니다.” 도현이 말했다.
베노가 씁쓸하게 웃었다. “늙은 사람이 새로 배우는 게 쉽겠소?”
“저도 이세계에 와서 처음부터 다시 배운 게 많습니다. 이상한 밀가루, 마음대로 말을 거는 솥, 구슬처럼 굳는 달걀까지요.”
브론이 옆에서 항의했다. “제가 만든 달걀은 구슬이 아니었습니다!”
“바닥에 떨어뜨렸더니 굴러갔잖아요.”
오랜만에 베노가 웃었다. 작은 웃음이었다. 그러나 웃는 동안 자신의 이름이 수용소 장부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은 듯했다. 도현은 그 순간을 기록하지 않았다. 누군가 편안하게 웃는 일까지 공로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아일린은 자신도 그 자리에 앉아 다음 구조에 함께할 사람을 구했다. 베노는 자신의 몸 상태가 아직 온전하지 않다고 말하며 현장까지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지도를 보고 기억나는 부분만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선택을 받아들인 뒤에야 일행은 출발할 수 있었다.
그날 오후 구조팀은 배수로 공방으로 향했다. 하수 냄새가 강했고, 바닥에는 기름기 섞인 물이 얕게 흘렀다. 성벽 아래로 보이는 공방은 오래된 빵 굽는 집과 흡사했지만 굴뚝이 없었다. 천장에 열을 가두어 식사 흔적을 오래 보존하는 장치만 있었다.
도현은 누군가 두고 간 반죽판을 보았다. 그의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가장자리의 홈을 짚었다. 칼로 빵을 세는 대신 매번 한 덩이를 떼어낸 흔적이 있었다.
“이건 배식 횟수가 아니에요.” 도현이 말했다. “누군가 빵을 직접 몇 번 반죽했는지 세려 한 거죠.”
가장 안쪽의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힘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첫 겨울의 부엌에서 들었던 노래와 비슷했지만 끝부분의 가사가 달랐다. 세른이 남겼던 '마지막 그릇은 기다리자'라는 구절 대신, '기다리다 죽지는 말자'라고 노래했다.
에스텔이 한 발 물러섰다. “그 노래를 누가 알려 줬지?”
방문 안에서 여자가 답했다. “아무도. 내가 새로 붙인 말이야.”
일행은 문을 강제로 열지 않았다. 여자는 문턱 아래로 두 가지 조건을 적은 종이를 밀어 보냈다. '이름을 묻지 말 것. 동료 한 사람의 위치를 알아내려 이 방을 다시 쓰지 말 것.' 아일린이 먼저 동의했고, 도현은 문이 열리면 음식을 줄 수 있지만 먹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문이 열리자 깡마른 여성과 부상당한 남자가 나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같은 공방에서 일했다고 했고, 밖으로 나갈 때 서로를 부축했다. 의원이 바로 상태를 살폈다. 여성의 이름은 나린, 남성은 도프였다. 옛 등록증과 생존자들의 증언이 두 사람의 신원과 맞아떨어졌다.
“그럼 지금 여섯 명이군요.” 브론이 속삭였다.
“이번 수색에서 여섯 생존자가 확인됐습니다.” 오르델이 다시 적었다. “원래 실종 열네 명 가운데요.”
그날 밤 구왕궁 냉각실에서는 두 구의 유해와 유품이 발견됐다. 함께 있던 낡은 기록에는 사망 경위가 적혀 있었지만 글씨가 일부 지워져 있었다. 의원과 독립 기록원은 무리하게 날짜와 신원을 확정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했다.
아일린은 냉각실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이 일을 왕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누군가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전할 책임이 먼저라고 느꼈다.
에스텔은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전에 자신이 첫 계약을 읽고 서명할 때, 그 종이들이 사람의 몸을 냉각실로 보내는 길이 될 줄 몰랐다는 변명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변명만으로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도현은 아일린에게 물었다. “왕위에 오른다면 무엇부터 하실 생각입니까?”
“왕실의 실제 재고를 공개하겠습니다. 첫 겨울 부채도요.”
“그럼 반발이 클 텐데요.”
“그럴 거예요. 어쩌면 저는 왕이 되지 못할 수도 있죠.”
도현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그래도 오늘 사람들에게 저녁을 줄 방법부터 찾으면 됩니다.”
한편 왕궁 종탑 아래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졌다. 베이른은 최종 정산 목록을 열고 남은 사람들의 이름 옆에 검은 도장을 찍었다. 목록 아래에 새로운 항목이 생겼다.
[남은 대체 노동 등록: 여덟 건.] [제공자 통합 정산 가능.] [대리 대상: 제7자리 조리자.]
베이른은 도장을 오래 바라봤다. 자신도 이 일을 끝내면 나라가 안전해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첫 겨울의 서약을 본 뒤부터, 그가 지키려는 것이 국가인지 거짓 문서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도현의 이름을 확인했다.
“당신만 서명하면, 이번 겨울은 넘어갈 수 있어.”
빈 줄이 붉게 빛났다. 정산까지 남은 날은 셋이었다.
제19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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