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정산까지 남은 시간은 일곱 날이었다.
왕도의 광장에는 커다란 시간표가 세워졌다. 위원회는 마지막 날 자정에 왕실의 식량 계약을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고에는 모든 시민이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문장이 포함돼 있었다. 사람들이 항의하자 관리들은 고개를 저었다. '동의'가 아니라 '행정상 확인'이라는 설명이었다.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집니까?” 마르타가 말했다.
그녀는 북부에서 왕도로 내려온 참이었다. 마르타는 이벨과 타린을 마주 보고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세 사람은 과거 함께 일했던 기억을 나누었지만 서로가 기억하는 날과 순서는 달랐다. 마르타는 자신이 갇힌 곳의 시간을 겨우 헤아렸고, 타린은 어느 해에 눈이 왔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서로의 빈 기억을 억지로 메우지 않았다.
“아직 열네 명이 남았군.” 마르타가 말했다.
“남은 사람이 살아 있다는 뜻으로 말하지는 마.” 이벨이 답했다. “우리가 확인하지 못한 열네 명이야.”
“그래. 그렇게 적자.”
오르델은 그들의 요청대로 기록했다. [실종자의 현재 상태 미확인: 14명.] 숫자 아래에는 '생존자 수'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다. 누가 살아 있는지 찾아가는 일과 마음속에서 모두 살아 있다고 믿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었다.
아일린은 왕궁 의회에 긴급 회의를 요청했다. 위원회는 시간표를 근거로 왕위를 빨리 확정하라고 요구했다. 공주가 거절한 채 대관식을 미루면 왕국의 식량 유통이 불안정해진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의회에 증거들을 차례대로 제출했다. 북부 마을의 실제 배급량, 벨로스 항구의 선적 서류, 동부 온실의 수확 기록, 실제 제공한 음식과 제공하지 않은 음식을 구별한 증언. 마지막으로 종탑 아래 장치가 거절을 동의로 바꾸는 규칙을 공개했다.
의회장은 한참 침묵하다 물었다. “그렇다면 공주께서는 왕실의 모든 계약을 무효로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실제 받은 빚은 실제 받은 사람이 책임져야죠. 왕실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빚이라면 왕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없는 식사를 백성들에게 청구한 기록은 따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국가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위험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실제 창고를 열고 민간 주방과 함께 공급 계획을 세우자는 겁니다.”
그녀는 왕관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왕관을 핑계로 다른 사람의 대답을 빼앗는 일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의원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공주가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허기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편 식당의 주방에서는 브론과 하나, 마르타, 이벨이 보리와 콩을 끓이고 있었다. 도현의 왼손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는 손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고 조리 순서를 알려 주었다. 매운 것을 못 먹는 아이에게는 따로 끓인 국물을, 씹기 힘든 노인에게는 오래 익힌 죽을 주었다.
“이게 정말 왕국을 구할 요리입니까?” 브론이 물었다.
도현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아니요. 오늘 이곳에 온 사람들의 저녁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만찬을 준비한다면서요?”
“마지막 만찬이 한 사람의 저녁을 지우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냄비를 휘젓다가 콩 한 알이 얼굴에 튀자 깜짝 놀랐다. 모두가 웃었다. 오래 지친 날들 뒤에 찾아온 웃음이었다.
그날 저녁 리데아가 부서진 은 숟가락을 가져왔다. 숟가락 속에 숨겨 둔 얇은 종이를 찾았다고 했다. 발테르가 일부러 보존한 것이었다. 종이에는 최초 왕의 짧은 선언과 서명 자리가 있었다.
[첫 겨울의 제공 약속. 왕위는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먼저 내놓는다.]
그 다음 문장은 왕실 명부에 남아 있는 내용과 달랐다.
[받지 못한 몫은 왕실 창고의 책임으로 남는다. 빈 접시를 사람으로 대체하지 않는다.]
아일린은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이제야 왕이 왜 첫 빵을 먹지 않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그 빵은 왕에게 내놓은 식사가 아니었다. 왕이 자신보다 먼저 배고픈 사람에게 내놓기로 한 몫이었다. 왕은 그것을 먹을 권리가 없었고,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왕실의 빚 대신 백성의 빚으로 바꿔 놓았다.
“그럼 최초 계약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우는 문서가 아니었네요.” 브론이 말했다.
“적어도 이 원문이 진짜라면 그렇습니다.” 오르델이 대답했다. “필적과 보존 기록을 더 확인해야겠지만, 지금까지 찾은 여러 조각과 맞아떨어집니다.”
그들은 발테르의 보존 기록과 첫 겨울의 부엌에 남아 있던 문장을 대조했다. 두 문서 모두 비슷한 뜻이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서명 부분은 훼손되어 있었다. 최초 약속에 손댄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바꾸었는지는 여전히 밝혀야 했다.
도현은 조용히 말했다. “저울의 오른쪽 접시가 무거운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받지 못한 몫이 남아 있어서?” 아일린이 물었다.
“네. 그걸 누군가에게 억지로 먹였다고 하면 저울이 균형을 잡는 게 아니라, 거짓말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거죠.”
시험 준비에는 온종일 걸렸다. 누군가의 이름을 거창한 제단 위에 올리는 대신, 도현 일행은 식당에서 실제로 몇 그릇을 만들었는지부터 확인했다. 보리 한 자루에서 나온 양과 손질하면서 버린 부분, 국물이 끓어 졸아든 양까지 기록했다.
브론은 장부가 너무 길다고 투덜댔다. 하지만 식당에 온 노인이 작은 그릇을 부탁하자 그는 기록을 멈추고 그릇을 바꿔 주었다. 도현은 그 장면을 보며 말했다.
“사람을 위해 만든 장부인데 사람을 기다리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마르타는 동의한 손님들의 기록을 모았다.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별도의 수량에 포함하되, 누구의 몫인지 임의로 추정하지 않았다. 이벨은 자신이 식사한 부분만 확인했다. 타린은 의원의 지시에 따라 조금씩 먹었고, 아직 오랫동안 서 있을 수 없었으므로 지하 시험에는 가지 않았다.
아일린은 시민 공동 주방들이 보낸 서류를 함께 가져왔다. 식당의 작은 실험이 전국의 공급량을 바꿔 놓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보여 줄 수 있었다. 북부와 동부, 서쪽 항구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원칙을 적용하고 있었다.
도현은 그 문서들을 받아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펼쳤다. 사람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들이 각자 만든 식사는 작아 보였다. 하지만 그 작은 그릇을 모은다고 해도 자동으로 누군가의 허기를 대신 청구할 수는 없었다. 각 장소에서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그는 브론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시험이 성공하더라도 오늘 먹은 사람이 모두 구원받았다고 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압니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또 먹였다고 쓰는 건 이상한 일이죠.”
“그리고 성공하지 못하면요?”
“다시 확인해야겠죠.” 브론이 씩 웃었다. “이 식당은 원래 한 번에 요리를 잘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도현도 웃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는 첫 손님에게 수프를 대접하던 날부터 자꾸 실수했다. 그릇을 깨뜨리고, 저주를 옮겨 받고, 기억을 잃고, 다른 사람이 만든 조리법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왕궁의 돌계단에 들어서기 전 아일린이 말했다. “제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이 기록을 단순히 이겼다는 증거로 남기고 싶지 않아요.”
“그럼 무엇으로 남기고 싶습니까?”
“다음에 누군가 음식을 주겠다고 약속할 때 실제로 주었는지 확인하는 방법으로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날까지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몰랐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저울로 향했다.
그날 밤 일행은 천칭 부엌의 작은 비교 저울 앞에서 마지막 시험을 진행했다. 왕실에서 훔친 음식도, 누군가에게 떠넘긴 저주도 없었다. 식당에서 실제로 만든 죽 한 그릇과 그것을 먹은 사람이 직접 동의해 남긴 기록, 서로 다른 두 증인의 확인만 있었다.
구리추가 움직였다.
거대한 저울의 오른쪽 접시에서 쌀알만 한 검은 돌 하나가 떨어졌다. 누구의 저주도 사라졌다고 선언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변화였다. 그러나 그 돌은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실제 제공 기록 1건. 대리 수령 불필요.] [기존 자동 수령 방식에 대한 이의 신청 근거 확인.]
일행은 한참 그 글씨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로 검증 가능한 균열이었다. 장치의 바깥에서 만든 음식과 실제 동의가, 거짓 장부 안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것이다.
그 순간 위원회가 닫아 두었던 본관 문이 열렸다. 베이른이 들어왔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검은 돌을 내려다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당신들이 한 일이 뭔지 압니까? 공급 보증에 균열을 냈어요.”
도현이 대답했다. “거짓 보증에요.”
“그 보증 덕분에 살아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니 살아온 사람들을 굶기지 않을 공급망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온 사람들이 누군가의 빚이었다는 거짓말은 끝내야 합니다.”
베이른은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는 처음으로 도현보다 거대한 천칭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직 수없이 많은 검은 돌이 남아 있었고, 최종 정산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일곱 날입니다.” 베이른이 낮게 말했다. “그 안에 이 모든 기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까?”
도현은 움직이지 않는 왼손을 바라봤다. 혼자서는 냄비 하나를 들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왕도 밖에는 수많은 공동 주방이 있고, 거짓 영수증을 거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벨과 타린, 마르타도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기록 역시 함부로 지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있었다.
“혼자서 할 생각은 없습니다.”
도현은 대답했다.
그때 왕궁 저편에서 여섯 번째 종이 울렸다. 일곱 번째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종탑의 그림자 아래에는 또 다른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위에는 낡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원계약 정정 권한: 최초 제공자에게 있음.]
아일린이 문을 바라보았다. 최초 제공자는 오래전에 죽은 왕일까, 아니면 지금까지 왕위에 묶여 있던 누군가일까.
도현은 정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확인해야 할 사람이 아직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먹을 수 있는 저녁을 만드는 일도 끝나지 않았다.
제19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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