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데아는 자신의 고백을 믿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은 숟가락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증인 둘을 불러 달라고 했다. 왕실 의전국에서 근무하던 날짜, 종탑 아래 작은 방의 관리 교대표, 목소리를 기록으로 바꾸는 장치를 가동할 때 자신이 맡았던 역할을 한 장씩 보여 주었다.
“그 방에서는 누군가의 마지막 대답을 받아 보관합니다. 기록이 비어 있으면 다른 목소리를 붙여 넣지요.”
아일린의 손이 떨렸다. “사람이 직접 거절한 내용도요?”
“그렇게 해 왔습니다.” 리데아는 목을 축였다. “저는 처음엔 왕실이 식량 공급을 유지하려고 만든 비상 절차라고 배웠어요. 혼란이 생기면 승인한 기록이 있어야 마차가 움직인다고요.”
“그걸 믿었습니까?” 이벨이 물었다.
“믿었죠.”
“지금도?”
“아닙니다.”
이벨은 그녀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럼 믿지 않는다는 말보다, 그 방에서 빼앗은 내 대답부터 돌려줘.”
리데아는 고개를 숙였다. “그 일을 하겠습니다. 다만 제가 돌아가서 장치를 끄면 기록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원본을 확보할 시간이 필요해요.”
도현은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선언 대신, 먼저 어떤 기록을 복사해야 하는지 물었다. 리데아가 문을 열겠다고 해서 그녀에게 모든 증언을 맡길 수는 없었다. 오르델과 이벨, 의전국 외부의 증인들이 각자 확인한 내용을 나누어 맡기로 했다.
왕궁 종탑 아래 작은 방은 계단을 일곱 번 꺾어 내려간 곳에 있었다. 바닥에는 수백 개의 주방용 숟가락이 매달려 있었고, 천장에서는 은실이 늘어져 있었다. 실 끝마다 작고 얇은 가죽 조각이 달렸다. 누군가 입술을 흉내 낸 모양이었다.
브론이 이를 드러냈다. “여기서는 냄새가 없어요. 그런데 목소리는 사람 같군요.”
리데아는 문 앞에서 손잡이를 놓았다. “안으로 들어갈지 결정해 주세요. 돌아가기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벨이 먼저 대답했다. “들어가겠어. 다만 네가 내 앞에서 또 내 말을 대신한다면 바로 나올 거야.”
“그러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마르타가 북부에서 했던 말, 타린이 작은 방에서 했던 말, 에스텔이 옛날에 세른에게 했던 사과. 모두 실제 목소리와 비슷했지만 조금씩 억양이 달랐다.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군요.” 오르델이 말했다.
리데아는 벽에 달린 구리판을 열었다. 그 안에는 확인되지 않은 발언들을 대신 승인하는 규칙이 적혀 있었다.
[불분명한 대답은 국가 공급 유지에 필요한 것으로 해석한다.] [거절은 절차 지연으로 간주한다.] [기한 경과 시 자동 동의.]
아일린은 이를 읽자마자 고개를 들었다. “이건 국가 공급을 위해 만든 규칙이 아니라 사람의 거절을 없애려고 만든 규칙이에요.”
도현은 그 말이 바로 기록될까 두려워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그들이 들어온 뒤에도 바닥의 숟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리데아가 임시로 메인 소리 전달 장치를 끊어 놓은 것이다.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방 안의 기계는 조용한데도 누군가 귀 옆에서 계속 속삭이는 것 같았다. 브론이 몸을 흔들어 귀에 낀 물기를 털었다. 이곳에는 실제 물이 없었다. 오래된 음성 기록이 후각과 청각까지 뒤섞어 놓는 마법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주방장님, 저쪽에서는 제가 설거지를 안 했다고 혼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건 어제 제가 실제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 저는 설거지를 했는데요.”
“절반만 했죠.”
잠깐 웃음이 흘렀다. 긴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 사람이 아직 서로의 말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오르델은 음성 장치의 작은 바늘을 보았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말이 같은 관을 통과하고 있었다. 바늘은 말이 길어질수록 올라갔고, 마지막 글자가 잘릴 때마다 붉게 빛났다. 누군가의 표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답의 틀에 맞춰 잘라 내고 있었다.
“이건 말을 듣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정해진 문장을 완성하는 장치죠.”
아일린은 벽 한쪽에 붙은 운영 지침을 읽었다. '국민의 의사를 신속히 반영한다'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내용은 전부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었다. 현장 확인을 생략하는 방법, 부정확한 진술을 보정하는 방법, 당사자가 없을 때 대표자가 대신 답하는 방법. 어디에도 당사자가 실제로 무엇을 원했는지 물어보라는 문장은 없었다.
“속도가 필요하다는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아일린이 말했다. “기근이 오면 하루가 생사를 가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속도를 위해 한 사람의 거절까지 바꿨다면 누구를 위해 빠르게 움직인 걸까요?”
리데아는 작은 소리로 답했다. “당시엔 왕궁을 안정시키는 게 백성을 구하는 일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는지 이제 알았으면 됐습니다.” 이벨이 말했다. “다만 당신이 알았다는 사실만으로 제 손의 흉터가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리데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이제 잘못을 바로잡는 일과 용서를 받는 일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은 음성을 공개하지 않고도 조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을 찾았다. 원본 길이, 삭제된 음절의 위치, 변조가 일어난 시각, 결과로 작성된 문장의 차이만 따로 기록했다. 그 방법이라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광장에 틀어 놓지 않고도 장치가 거짓으로 동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다.
오르델은 증거 봉투를 세 개 만들었다. 하나는 의회, 하나는 독립 기록원, 하나는 실제 피해자들이 원하면 열람할 수 있는 보관소에 두기로 했다. 누구도 혼자서 세 개의 봉투를 모두 바꿀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들은 우선 현재 존재하는 목소리를 복사하지 않았다. 누구의 동의도 받지 못한 음성을 또 다른 장소로 옮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원본의 위치, 장치의 동작 방식, 그리고 실제 확인되지 않은 동의를 만들어 내는 규칙을 외부 증거로 남겼다. 이벨이 자신의 증언 일부를 확인해도 좋다고 허락한 뒤에만 해당 목소리의 원본과 복제본을 대조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벨이 “문을 열지 마”라고 말한 기록의 마지막 단어가 잘려 있었고, 복제본에는 “열어”라는 단어만 남아 있었다. 타린이 “그 빵은 제공되지 않았어”라고 말한 부분은 “제공됐어”로 기록돼 있었다.
이벨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오래 갇힌 거구나.”
타린은 상태가 좋지 않아 방에 오지 못했다. 도현은 그녀 대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밖에서 타린이 직접 동의해 보낸 서면 증언을 가져왔다. 장치에 넣지 않고 증인에게만 보여 주었다.
그때 구리판 뒤편에서 종소리가 시작됐다. 은실 수백 개가 한꺼번에 흔들렸다.
[원본 응답 불충분. 대리 승인 소환.] [후보: 백도현.]
도현의 손목에 검은 실이 뻗었다. 그가 숨을 들이키기도 전에 왼팔의 석화가 조금 더 번졌다. 그는 저항하려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식사를 승인하지 않습니다.”
그 말조차 이용당할 수 있었다. 리데아가 급히 은 숟가락을 뒤집어 소리 전달 구멍에 끼웠다. 딸깍. 실의 울림이 끊겼다. 은 숟가락이 절반쯤 부러졌다.
“영구히 멈춘 건 아닙니다.” 리데아가 말했다. “이 방은 또 다른 목소리를 찾을 거예요.”
도현은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끝낼 수 있습니까?”
“최초 계약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확인해야 해요. 공급을 유지하겠다는 첫 약속이 진짜였다면, 지금 같은 거짓 동의를 요구할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아일린이 말했다. “제0식탁의 원본이군요.”
리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원본은 왕위가 받지 않은 첫 번째 식사 아래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도현은 빈 접시를 떠올렸다. 이제 그들이 찾아야 할 것은 누가 먹었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최초에 누구에게 무엇을 주기로 했는지, 그 약속이 어디에서 잘못 바뀌었는지를 증명할 원문이었다.
복도로 돌아오자 도현은 왼손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에스텔이 그의 팔을 받쳤다. 이벨은 몇 걸음 떨어져 걷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네가 못 먹는다면, 우리도 마지막 식사를 만들 수 있을까?”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애초에 혼자 만들 수 있는 요리가 아니었으니까요.”
제18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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