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검사일 아침, 아일린은 왕관을 쓰지 않았다.
왕궁 관리들은 대관식이 미뤄진 상황이라도 공적인 절차에는 왕위 계승권자의 예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녀는 단정한 평복 차림으로 나타나 자신의 이름을 적은 신분증만 내밀었다.
“저울이 제 옷의 무게를 재러 부른 것이 아니겠죠.”
발테르는 이미 천칭 부엌에 와 있었다. 그는 빈 접시 앞에 서서 작은 은 숟가락을 닦고 있었다. 의전국 최종 집행관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러 밤을 지새운 사람의 피로가 가득했다.
“전하께서는 왕실에 대한 의무를 거절할 자유가 없습니다.”
“왕실의 의무를 알아볼 권리는 있지요.”
“최종 정산이 시작되면 식량 유통이 자동으로 안정화됩니다. 빈 접시가 사라지면 시민들이 더는 불안해하지 않을 겁니다.”
아일린은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실제 공급이 끊기는 일이 두려웠고, 사람들이 기다리던 식량을 제때 보내지 못하는 일도 두려웠다. 그러나 기록에 적힌 제공량과 실제 창고에 있는 곡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장부에서 빈 접시가 사라지면 실제 굶는 사람이 사라집니까?”
발테르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침묵한 사이 베이른이 나타났다. 그의 장화에는 진흙 한 점 없었다. 왕궁 지하로 들어오기 전 마차에서 바로 갈아 신은 것 같았다.
“공주님, 현실은 도덕 시험이 아닙니다. 식량 공급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지면 상인은 곡식을 숨기고 노동자들은 배를 묶습니다.”
“그러니 거짓 장부에 동의하라는 말인가요?”
“국가가 한 끼를 제공한다고 선언하는 힘이 있어야 마차가 움직이는 법입니다.”
도현은 한 걸음 나섰다. “그 선언 때문에 마차가 멈춘 걸 저희가 봤습니다. 항구에서도, 북부에서도요.”
“당신은 요리사입니다.”
“그래서 음식이 어디에서 왔고 누가 먹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베이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도현을 대리인 후보로 지정하던 서류를 펼쳤다. 그 위에 얇은 푸른 불꽃이 어른거렸다.
“한 명의 손에 쌓인 저주가 두 개. 석화와 기억 소거. 최종 정산에 협조하면 그것을 처리할 수 있다는 제안은 유효합니다.”
도현은 순간 잊고 있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리려고 했다. 밥 먹으라는 평범한 말이었다. 단어는 생각났는데 음색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빈자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 제안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합니까?”
베이른이 대답했다. “왕위가 채무를 일괄 인수합니다.”
“제 저주를 공주님께 넘기는 겁니까?”
“국가가 처리하는 겁니다.”
“답이 다르네요.”
도현은 더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저주를 치료하고 싶은 욕망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일을 치료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검사일의 천칭 주변에는 평소보다 많은 경비병이 서 있었다. 아일린의 허리춤에 검을 찾았던 경비대장은 그녀가 빈 손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오히려 더 긴장했다. 왕실은 칼을 든 반역자보다 문서를 든 계승권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익숙하지 않았다.
발테르는 식사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려 했다. 아일린이 손을 들었다.
“아직은 아무도 식사를 받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종은 절차의 시작을 알릴 뿐입니다.”
“그럼 절차가 무엇인지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먼저 읽어 주세요.”
발테르는 서류를 펼쳤다. 조항은 길고 어려웠다. 이해되지 않는 말이 반복됐고, 몇 문장은 이미 폐지된 왕실 직책을 언급하고 있었다. 아일린은 그때마다 멈춰 세웠다.
“‘명부에 있는 모든 사람’은 누구를 말합니까?”
“왕국의 모든 제공 대상자입니다.”
“제 이름도 들어가나요?”
“계승권자는 별도로 취급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른 사람의 제공 여부까지 승인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발테르는 말이 막혔다. 베이른은 옆에서 서류를 빼앗으려 했지만 아일린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는 공주로서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서에 이름이 올라 있는 당사자로서 뜻을 물었다.
일부 경비병은 곁눈질로 도현을 바라봤다. 그는 왼손을 천으로 감싼 채 서 있었다. 전투할 능력도 없고 마법 주문도 외우지 못하는 평범한 요리사가 왕실 최대의 식량 기록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어색했다.
도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천칭 아래에 놓인 빵이 보였다. 어제와 똑같은 모양, 똑같은 갈색 껍질, 똑같은 검은 얼룩. 실제로 매일 구웠다면 이렇게까지 같을 수는 없었다.
그는 오르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 빵이 오늘 만들어졌다는 증거는 없어요.”
“그래서 전하가 모든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 빵을 만드는 누군가가 아직 어디엔가 있을 수도 있겠죠.”
도현은 기록을 뒤집어 보았다. 빵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제공했다고 선언하는 사람’의 이름만 보였다. 그 빈자리가 그에게 더 중요해졌다. 남은 열네 명 중 누군가가 아직 왕실 주방에서 일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지금 없었다.
그때 아일린이 문서 맨 아래의 수령인 항목을 찾아냈다. 거기에는 단 한 줄의 빈칸이 있었다. 그녀는 펜을 들지 않았다. 대신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물었다.
“제가 이곳에 서 있다고 해서 저 빈칸이 채워지지는 않겠지요?”
발테르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아일린은 천칭 부엌의 빈 접시 앞으로 걸어갔다. 오른쪽 저울에는 183,442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녀는 서류 한 장을 들었다. 왕실이 이미 인수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식사 기록 가운데, 실제로 확인한 부분과 확인하지 못한 부분을 구별해 적은 문서였다.
“제가 오늘 이 저울에 올릴 것은 제 권한이 아닙니다.”
베이른이 웃었다. “그럼 무엇을 올리시겠습니까?”
“제가 직접 확인한 것만 올리겠습니다.”
공주는 서류를 작은 보조 접시 위에 놓았다. 정확히 확인된 곡식 수량, 항구의 실제 선적분, 북부 주민들의 기록, 동부 공동 주방에서 먹은 사람과 거절한 사람의 선택. 서류 끝에는 분명하게 적었다.
[미확인 183,442건의 수령 여부를 왕위 계승권자가 대신 확인하지 않음.]
저울이 크게 흔들렸다. 베이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왕위 계승권자의 불완전 수령 선언 감지.] [제7자리 대리인 요청.]
아일린은 도현을 돌아보았다. 그는 고개를 젓지도,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는 저 사람의 대리인도 아닙니다.”
그녀가 말했다.
[대리 지정 실패.] [독립 이의 신청 접수.]
지하실 전체가 흔들렸다. 구리관에서 새하얀 수증기가 쏟아졌고, 몇몇 경비병이 출구로 뛰었다. 그러나 무거운 저울의 바늘은 아직 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왼쪽에 쌓인 검은 돌들이 벽으로 굴러떨어졌다.
발테르가 서둘러 자신의 은 숟가락을 거두었다. “더 밀어붙이면 공급 기록을 복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공급 기록을요?” 오르델이 물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음식까지 포함된 기록입니까?”
발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 숟가락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숟가락 안쪽에 작은 이빨 자국이 나 있었다. 사람의 입으로 물었던 자국이었다.
그가 아주 낮게 말했다. “처음 겨울에 왕이 먹지 않은 식사가 있었다는 이야기, 정말 들어 보셨습니까?”
도현이 돌아보았다. “기록으로 봤습니다.”
“그럼 왜 먹지 않았는지는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발테르는 숟가락을 품에 넣었다.
“그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지금 막으신 자동 지정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날 밤 에스텔은 도현에게 오래된 주방 문 하나를 보여 주었다. 처음 그가 이세계에 떨어질 때 통과했던 골동품 문과 모양이 같았다. 문 밑에서 희미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왜 이제야 보여 주십니까?”
“네가 돌아갈 길일 수도 있어서.”
에스텔은 손잡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열면 네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출구를 닫을지도 몰라.”
제18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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