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항구에서 출항한 배 세 척이 왕도에 도착하기 전에 멈췄다.
위원회는 선적 목록을 재확인해야 한다며 운송 허가를 보류했다. 그 배들은 값비싼 향신료가 아니라 콩, 말린 생선, 소금과 밀가루를 싣고 있었다. 하루만 늦어도 해변 마을의 공동 주방에서는 국물에 넣을 단백질이 모자랐다.
브론이 긴 식자재 목록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냥 왕궁에서 빵을 구워서 마을마다 보내면 안 될까요?”
“될 수 있으면 좋죠.” 도현이 말했다. “하지만 왕궁에서 만든 빵을 보냈다고 장부에 적는 순간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누가 먹고 싶은지, 어디에 얼마가 필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제 질문은 항상 어려운 대답을 불러오는군요.”
그날 아침 도현은 왕궁 대신 ‘마지막 한 숟갈’의 낡은 주방에 섰다. 왼손을 감싼 보호대를 벗으려다 에스텔에게 혼났다.
“칼을 오래 잡으면 손가락이 굳어 버릴 수도 있다고 의원이 말했지?”
“채소 써는 순서는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 설명만 해. 주방장이 쓰러지면 너 대신 기록에 서명할 사람도 없는데.”
“왜 결론이 서명입니까.”
“농담이야. 나도 배운다고.”
브론은 먼저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마르타가 북부에서 보낸 보리, 항구 노동자들이 합의한 교환 방식으로 확보한 마른 생선, 온실에서 온 늙은 당근이 조리대에 놓였다. 도현은 품질을 확인하고 상한 부분을 버리라고 했다. 손님에게 무상으로 음식을 준다 해도 상한 재료를 써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오늘 메뉴는 뭡니까?” 브론이 물었다.
“보리와 생선으로 끓인 걸쭉한 수프. 소금은 마지막에 조금만. 항구에서 짠맛을 잃은 분들도 있으니 그분들은 직접 맛을 조절하게 해야죠.”
브론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어제 보리빵을 태운 것에 대한 사과처럼 자신이 먼저 당근을 씻겠다고 자청했다.
첫 번째 냄비에서는 곡물이 바닥에 눌어붙었다. 브론이 너무 일찍 불을 세게 키운 탓이었다. 도현은 기어이 자신이 움직이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벨이 먼저 국자를 받았다.
“내가 해 볼게.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바닥을 박박 긁지는 마세요. 탄 냄새가 전부 퍼지거든요.”
이벨은 다른 냄비로 윗부분만 조심스럽게 옮겼다. 끝부분에 남은 건 버렸다. 남기는 것이 아깝다고 생각해도 탄 맛이 스민 음식을 손님에게 줄 수는 없었다. 그녀는 한동안 냄비를 바라보다 작게 말했다.
“예전에는 버리면 도둑이라고 했어.”
“손님을 위해 버려야 하는 것도 있어요. 상한 음식이나 검증되지 않은 재료 같은 건요.”
“그걸 버린 값을 누구에게 청구하죠?”
“그건 식당에서 감수할 손실이죠. 손님에게 몰래 더 얹어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이벨은 고개를 들었다. 마치 처음 배우는 조리법을 들은 사람처럼 진지했다.
그때 마르타에게서 보내온 짧은 편지가 도착했다. 북부 마을의 공동 주방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주민들이 직접 구운 빵을 왕실의 새 보증서에 등록하지 않으면 판매할 수 없다는 명령이 내려온 것이다.
아일린은 편지를 읽고 즉시 답신을 보냈다. 기존 마을 규약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식량 교환까지 왕실이 일괄 중단할 권한이 있는지 법률가에게 확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답이 나오기 전까지 병력으로 창고를 열라는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우리가 왕궁을 상대로 싸우는 동안 이 사람들은 일할 방법부터 잃어 가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큰 마법 하나만 찾겠다고 기다릴 수 없는 거죠.” 도현이 대답했다.
식당에는 식사 자리를 늘리기 위해 낡은 나무 상자가 들어왔다. 브론은 그 위에 천을 깔고 의자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쪽 상자는 다리가 짧아 자꾸 흔들렸다.
“기울어진 의자는 싫어요.” 어린 손님이 말했다.
“그럼 이쪽 의자에 앉으세요.” 브론이 대답했다. “기울어진 건 제가 고치겠습니다.”
아이의 작은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이벨이 흐뭇해했다. 과거의 부엌에서는 음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큰 은혜라서 아무도 의자가 기울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점심이 가까워지자 식당 앞에 줄이 생겼다. 그중에는 뒷골목의 빚쟁이도 있었고, 에스텔에게 세금 독촉장을 보냈던 관리도 있었다. 이벨이 창문 너머로 그들을 보고 물었다.
“저 사람들에게도 줄 거야?”
“먹고 싶은지 물어봐야죠.”
“우리에게 나쁜 일을 했던 사람인데?”
“그렇다고 지금 굶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다만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은 따로 물어야죠.”
이벨은 한참 생각하더니 컵을 옮기는 일을 도왔다. 자신을 묶어 둔 것과 비슷한 장부를 만들지 않으려고, 그녀는 손님에게 이름을 쓰게 하지 않았다. 필요한 양을 물어 작은 그릇과 큰 그릇을 구분했을 뿐이었다. 손님이 줄을 서다 돌아서도 붙잡지 않았다.
한 남자가 아무것도 먹지 않고 떠나려 하자 브론이 따라나섰다.
“왜 그냥 가세요? 무료인데요.”
“무료라고 했다가 나중에 손자에게 빚을 물린 적이 있어.”
브론은 말문이 막혔다. 도현이 다가가 그릇을 땅에 내려놓았다.
“식당 앞에 두겠습니다. 원하시면 가져가시고, 싫으시면 두고 가셔도 됩니다. 어떤 이름도 적지 않습니다.”
남자는 긴 시간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의자에 앉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를 보던 이벨의 눈가가 붉어졌다.
오후에는 항구에서 통신편이 왔다. 게른과 부두 노동자들이 백연호의 임시 창고를 직접 열고 실제 남은 식재료를 확인했다는 소식이었다. 왕실 소유라고 적힌 물량 중 일부는 노동자들이 수년 동안 모아 둔 공동 비축분이었다. 다만 선적을 강제로 움직이려 하면 경비병과 충돌할 우려가 있었다.
아일린은 도시별 공동 주방 관리자들과 긴급 회의를 열었다. 왕실 자동 정산을 적용하지 않는 별도의 배식망을 시험하기로 했다. 모든 물량은 원산지와 실제 전달 수량을 확인하고, 거절할 권리를 명시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굶주림의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장거리 운송에는 마차와 마부, 식량 보관 시간이 필요했다.
도현은 낡은 빵집들과 마을 주방을 연결해 조리법을 공유하자고 했다.
“이 레시피는 아무 식당이나 써도 됩니다. 보리와 콩이 없으면 지역에 있는 재료로 바꾸세요. 먹을 사람의 몸 상태는 그곳 요리사가 제일 잘 알 겁니다.”
“왕궁의 비밀 조리법을 공개해도 되겠습니까?” 관리가 물었다.
“왕궁 레시피가 아니라 제가 만든 겁니다.”
“그럼 허가료는?”
“안 받습니다.”
관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왕국에서는 오랜 세월 아무 대가도 없다는 말을 가장 의심해야 했다. 도현은 그들의 불신을 탓하지 않았다. 대신 누구나 살펴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겼다. 재료의 출처와 실제 만드는 방법, 누가 직접 참여했는지, 언제 바꾸었는지. 사람의 허기를 저당 잡을 조항은 없었다.
저녁 늦게 이벨은 식당 뒤편으로 그를 불렀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세 번째 표식이 옅어지고 있었다. 아주 작게, 마치 타던 숯이 숨을 쉬는 것처럼.
“누군가 기록을 고쳤어.” 그녀가 말했다. “이 표식은 항구에 연결되어 있었는데, 오늘만큼은 내가 대신 읽지 않아도 됐어.”
도현은 기뻤지만 눈을 감았다가 떴다. 표식이 옅어졌다고 누군가 살아 돌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강제로 한 사람의 말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만드는 회로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식당 앞에서 텅 빈 그릇을 치웠다. 오늘 제공한 수프는 정확히 몇 그릇인지 셀 수 있었다. 하지만 누가 행복해졌는지, 누가 아직 두려운지는 셀 수 없었다.
그때 오르델이 달려왔다. 손에는 제2비교실의 서류 사본이 들려 있었다.
“주방장님, 타린의 세 번째 구리추가 항구 배급 기록 속에서 발견됐습니다.”
도현은 손에서 행주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진짜로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겠군요.”
제18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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