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덕의 종이 밤새 울렸다.
도현 일행은 그 소리를 아무 의미 없는 승리의 축포처럼 듣지 못했다. 이벨이 걸어 나온 뒤부터 열다섯 표식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며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나는 서쪽, 하나는 북부, 또 하나는 왕도 아래를 향했다. 남은 표식 중 일부는 방향조차 정하지 못했다.
“원위치 복귀라는 말은 좋은 뜻 아닌가요?” 브론이 물었다.
오르델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기록이 있던 위치로 되돌아간다는 뜻일 뿐입니다.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보장은 없어요.”
아일린은 각 화덕의 상황을 조사하도록 연락을 보냈다. 그러나 왕궁은 즉시 움직이지 않았다. 왕실 식량안정위원회가 긴급 경고를 발송한 것이다.
[잔여 증언의 자동 반송은 국가 식량 공급의 연속성을 위협함.] [제0식탁의 미완료 수령 기록을 재확정할 것.]
그 문장은 다음날 아침 왕도 거리에도 붙었다. 사람들은 왕실 창고가 다시 닫히는 게 아닌지 걱정했다. 북부에서 배급을 기다리던 가족들은 항구에서 식량을 더 가져오는 데 비용이 든다며 항의했다. 실제 식사를 못 받는 불안 앞에서 계약의 정의를 따지는 일은 사치처럼 보일 수 있었다.
도현은 마을 회관에서 아일린과 마주 앉았다. “저들이 겁주는 방법을 잘 아는군요.”
“겨울이 길어지면 실제로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아일린이 대답했다. “거짓말이라고만 하면 백성들이 왜 두려워하는지 놓치게 돼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벨의 자유를 지키는 일과 함께 식량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별도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는 당장 온실에 남은 감자와 콩의 재고를 계산했고, 하나는 겨울 저장고를 열어 필요한 마을에 일정량씩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빌려준다니 또 빚이 생기는 건 아닐까요?” 브론이 물었다.
“반환 의무를 강제로 넘기는 게 아니라, 각 마을이 합의한 교환입니다.” 하나가 대답했다. “거절해도 처벌은 없고요.”
“저도 고용계약을 그 정도로만 쓰면 좋겠습니다.”
브론의 말에 도현은 웃었다. 그러나 곧바로 의원이 도현의 왼손을 살폈다. 이미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차가움이 번져 있었다. 저주가 새로 하나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몸은 오래된 두 저주를 버티기 어려워하고 있었다.
“손을 쉬게 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의원이 말했다. “원래 저주를 옮긴 방법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도현은 무언가 대답하려다 멈췄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치료에 협조하겠다고 했다.
한편 이벨은 자신의 과거를 증명하는 절차를 스스로 선택했다. 일기에 남긴 옛 조리법을 확인하고, 에스텔과 당시 사용하던 작은 반죽 틀을 대조했다. 손의 화상과 필적도 확인하되 전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온실 관리인과 독립 문서관이 각각 목격자가 되었다.
오르델은 조심스럽게 발표했다. “이벨 씨가 실종된 요리사 기록 중 한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근거가 충분합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신분을 회복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합니다.”
“그럼 한 사람은 찾았네요.” 브론이 조용히 말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한 사람은 찾았습니다.”
다만 잔여 열다섯 명의 상태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이벨이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다른 이들도 같은 방법으로 살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을 말하면서 도현은 마르타가 북부에서 처음 의자에 앉았던 날을 떠올렸다. 살아 돌아온 사람의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동부 온실의 공동 창고에는 그날 아침부터 긴 줄이 생겼다. 감리관이 조사 중인 식량을 임시 보류한다는 소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창고 문이 닫힌 것은 아니었지만 관리인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자 곡식 자루를 다시 세기 시작했다. 배급을 기다리던 젊은 어머니가 물었다.
“저희는 오늘 먹을 빵이 필요한데,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는 창고 기록을 살펴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수확해 저장한 곡식은 왕실 조사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상분의 수량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풀면 겨울 끝자락에 아이들과 노인들이 더 힘들어질 수 있었다.
“오늘 필요한 만큼은 먼저 드리겠습니다.” 하나가 말했다. “나머지는 몇 명이 필요로 하는지 세어 보고 나누겠습니다.”
오르델은 창고에 있던 실제 자루 수와 명부의 숫자를 대조했다. 여덟 자루가 있다고 적혀 있었지만 눈앞에는 일곱 자루뿐이었다. 누군가 한 자루를 훔쳤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다른 마을로 보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잘못 기록되었을 수도 있었다.
“이런 작은 차이가 쌓여 왕국 전체의 거짓 기록이 된 겁니다.” 그가 말했다.
도현은 자루에 묻은 흙의 색을 살폈다. 하나는 최근에 움직인 흔적이 있었고 두 개는 보관 기간이 오래되어 바닥에 곡식 가루가 쌓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자루를 들지 않은 채, 일꾼들과 함께 사용 가능한 곡식부터 골랐다. 음식에 곰팡이가 피었는지도 확인했다. 사람을 살리려는 마음이 상한 곡식까지 먹일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공동 주방에서 보리죽을 끓였다. 하나는 보리를 충분히 씻었고, 브론은 잔불을 지켰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짧은 메모만 남겼다. 소금은 마지막에 넣고, 배급받는 사람에게 기호를 물어보라는 지시였다.
“혹시 소금을 싫어하면요?” 브론이 물었다.
“그릇에 담고 나서 따로 넣으면 되죠.”
“세상이 무너지는 일처럼 고민할 필요는 없었군요.”
“대부분의 요리가 그래요.”
한 노인은 따뜻한 죽을 받아들고도 선뜻 먹지 않았다. 예전에 같은 그릇을 받은 뒤 장부에 평생 갚아야 할 곡식값이 적힌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일린은 직접 그 장부를 받아 살폈다. 지금 제공하는 음식에는 그런 조건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까?”
“마을이 정한 구호 식사예요.” 하나가 말했다. “원하시면 나중에 함께 씨앗을 심어 주셔도 좋지만, 그것을 의무로 적진 않겠습니다.”
노인은 한참 그릇을 내려다보다 조용히 한 숟갈을 먹었다. 도현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한 사람의 배고픔이 끝나는 순간은 크고 화려한 마법이 아니라 어쩌면 그저 겁 없이 숟가락을 드는 순간일지도 몰랐다.
아일린은 왕도에 보낼 보고문에 적었다. [동부 온실 공동 창고, 실제 식량 재고 조사 중. 주민 자율 구호 배식 지속. 왕실 자동 정산 적용하지 않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발표할 수는 없었지만, 지금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는 말할 수 있었다.
창고를 나서는 길에 도현은 왼손이 둔해진 탓에 붕대를 만지작거렸다. 이벨은 그 손을 보더니 말했다.
“너도 언젠가 저걸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어질 거야.”
“이미 그런 적이 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쓰지 않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지.”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먼 길에서 베이른의 깃발을 단 마차가 나타났다. 식사하려고 줄 섰던 사람들은 서로를 돌아보았다. 누군가의 힘으로 겨우 마련한 오늘의 식탁을, 또 한 장의 명령서가 흔들려 하고 있었다.
그날 오후 베이른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인장과 병력 대신 공개 고지서를 가지고 왔다.
“위원회가 양보하겠습니다. 이벨의 기록은 분리하되, 나머지 열다섯 명의 증언을 제0식탁에 합산하십시오. 그러면 겨울 식량 공급은 안정될 것입니다.”
“분리된 사람 한 명을 인정해 주는 대신 다른 사람들을 영원히 묶겠다는 뜻이군요.” 도현이 말했다.
“사람들의 삶은 이상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베이른은 조용히 웃었다. “당신도 손이 굳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왕국이 최종 정산을 수행하면 당신에게 걸린 저주 두 개를 없앨 방법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도현의 숨이 잠깐 멎었다. 석화된 왼손, 사라진 기억. 그는 그것들을 버리고 싶었다. 어머니가 끓여 준 미역국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다시 칼을 잡고 요리하고 싶었다.
“정말 방법이 있습니까?”
“왕위가 모든 몫을 받아들이면 가능합니다.”
아일린이 그 말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그녀는 오래된 계약의 대리 수령자가 왕위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베이른은 공주가 스스로 왕위에 올라 모든 기록을 확정하면 도현까지 구해 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었다.
“그럼 열다섯 명은요?” 도현이 물었다.
“국가의 기록으로 남겠지요. 이름은 영구히 보존됩니다.”
“그 사람들의 의사는?”
“왕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도현은 베이른을 바라보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 제안은 받지 않겠습니다.”
베이른이 처음으로 웃음을 지웠다. “당신의 몸도 곧 한계에 도달할 텐데.”
“그래도 남의 인생을 먹었다고 써 주면서 치료받고 싶지는 않아요.”
아일린은 그 옆에 섰다. “제 대관을 또 강요하지 마세요. 제가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제가 결정합니다.”
위원회 감리관은 아무 대꾸 없이 떠났다. 하지만 그는 문밖에서 마지막으로 한 장의 공고를 붙였다.
[왕국 최종 식사 회계. 십육 일 후 자동 개시.]
“또 기한을 정했군요.” 오르델이 낮게 말했다.
“이번에는 누가 시작하든 멈추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브론이 물었다.
아일린은 종이에 찍힌 인장을 살폈다. 지금까지 본 위원회의 밀 이삭 문양이 아니었다. 둥근 접시 양쪽에 저울 두 개가 달린 오래된 표식이었다.
이벨이 다가와 공고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바뀌었다.
“저건 중앙 명부실의 인장이 아니야.”
“어디서 보셨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끌려갔던 곳. 왕궁 밑에 있던 부엌. 모든 음식을 저울에 달면서도, 사람 한 명의 배고픔은 세지 않던 곳.”
도현은 그 이름을 기다렸다.
이벨이 말했다.
“천칭 부엌.”
왕궁 바닥 깊숙한 곳에 잠겨 있던 마지막 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문 앞에는 두 개의 접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이미 차 있었고, 다른 하나는 처음부터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접시 아래에서 검은 글씨가 떠올랐다.
[잔여 대상: 183,442명.]
[정산 기한: 16일.]
[제7자리 대리인: 지정 시도 중.]
제18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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