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하다는 뜻으로 세 번을 두드린 직후, 낡은 명부에 ‘수령 동의’가 떠올랐다.
도현은 화덕 문을 향해 달려들지 않았다. 먼저 오르델에게 명부와 두드림의 시각을 따로 기록하게 했다. 하나가 제안한 신호의 뜻도 그녀 자신의 말로 적게 했다.
“우리는 안전 여부를 물었고, 상대는 위험하다고 답했습니다. 식사를 주겠다고 말한 적도, 받겠다고 한 적도 없습니다.”
아일린이 이의 신청서를 작성했다. 왕실 문장으로 절차를 정지하자 명부의 글씨는 흐릿해졌지만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잠시 뒤 다른 문구가 올라왔다.
[응답 자료 확보. 수령인 배정 대기.]
“저 장치는 소리 자체를 가져가는군요.” 오르델이 말했다.
“그럼 침묵하면 살 수 있습니까?” 하나가 물었다.
아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위험한 사람이 구조를 요청하는 순간 채무자가 된다면, 이곳은 스스로 도움을 청할 자유조차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브론은 관 안쪽에서 바람이 약해지고 있다고 알렸다. 통로를 열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면 더 위험해질지 몰랐다. 그들은 구조를 위한 통로와 마법 장부에 응답을 넘기는 관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찾아야 했다.
에스텔이 납 도장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얇은 구리 실 하나가 화덕 아래까지 이어졌다. 사람이 두드리는 진동을 기록실로 보내는 장치였다. 옛 부엌에서는 연통의 막힘을 알리는 경보였겠지만, 지금은 모든 신호를 수령 의사로 바꾸는 통로가 되어 있었다.
“이 선을 자르면 끝나나요?” 브론이 물었다.
“누군가 내부의 상태를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길일 수도 있어.” 에스텔이 대답했다.
도현은 전신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손목이 욱신거렸다. 그를 도울 때마다 지켜 온 원칙이 있었다. 나쁜 기록을 없앤다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까지 없애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면 둘로 나눕시다. 상대의 신호를 듣는 길과 왕실 명부로 보내는 길.”
오르델은 옛 도면과 현재 도면을 겹쳤다. 이송관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 조그만 구리 상자가 있었다. 왕실 식량안정위원회의 이름이 새겨진 새 부품이었다. 상자를 열자 내부에 얇은 금속판 세 개가 나타났다. 첫 판은 진동을 받아 적고, 둘째 판은 뜻을 지우고, 셋째 판은 이를 수령 동의로 번역하는 장치였다.
“기계가 사람의 말을 거짓말로 만들고 있군요.” 브론이 낮게 말했다.
“정확하게는 말의 뜻을 묻지 않고 다른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르델이 대답했다.
금속판 세 개를 분리하는 동안 오르델은 구리 상자의 제작자를 찾았다. 상자 안쪽에는 날짜와 작은 서명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가장 오래된 기록은 왕실이 마을에서 흉년을 조사하던 때였고, 최근의 것은 겨우 석 달 전이었다.
“이 장치가 백 년 동안 스스로 작동했다고 하기에는 최근에 손본 흔적이 많습니다.”
“누가 고쳤을까요?” 하나가 물었다.
“기록에는 보수 기술자 이름이 없어요. 대신 ‘거절 음성 처리 속도 개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누군가 거절의 뜻을 이해해서 더 빨리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거절이 들어올 때마다 더 빨리 동의로 바꾸도록 기계를 정비했다는 뜻이었다.
도현은 구리판 가장자리에 남은 얼룩을 관찰했다. 금속의 표면에서 탄 시럽 같은 냄새가 났다. 얼마 전 왕실 공개 조리 검증에 등장했던 검은 시럽과 비슷한 냄새였다. 에스텔에게 확인하자 그녀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저 냄새는 기억을 끌어낼 때 쓰는 촉매였어.”
“그럼 사람의 말을 빼앗을 때도 사용했을 수 있겠네요.”
“어쩌면.”
도현은 혀끝에 올라오는 오래된 맛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아무 맛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 저주가 그의 안에서 천천히 빈 공간을 넓히고 있었다. 그가 눈을 감자 에스텔이 손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석화된 손목이 닿으면 아플 수 있다는 걸 기억한 것이다.
“괜찮아?”
“기억이 없어도 기록은 남길 수 있죠.” 도현이 말했다. “저 냄새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다른 사람에게도 확인받읍시다.”
하나는 금속판 표면을 만지지 않은 채 당시 저장실에서 발견된 두 병의 위치를 떠올렸다. 온실에 검은 시럽을 가져온 상인의 이름은 장부에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상인이 실제로 그것을 넘겼다는 영수증은 없었다.
“물건이 없는데도 거래가 완료된 것처럼 적힌 거군요.”
오르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전체를 가로지르는 문제는 아주 다양한 곳에서 같은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없던 식사, 없던 목소리, 없던 거래. 그리고 반드시 어딘가에는 그 대가를 대신 치러야 할 사람의 빈칸이 남았다.
그들이 셋째 금속판의 연결을 느슨하게 풀자 명부의 글씨가 흔들렸다. 하지만 내부에서 온 세 번의 신호는 작은 구리 종을 통해 여전히 들렸다. 기록과 사람을 분리하는 일이 처음으로 눈앞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때 누군가 밖에서 호통을 쳤다.
“그 장치를 만질 권한은 누가 주었습니까?”
제복을 입은 관리 셋이 과수원 입구에 서 있었다. 가장 앞선 남자의 검은 외투에는 은빛 밀 이삭이 붙어 있었다. 그는 왕실 의전국 직원도, 온실 관리인도 아니었다.
“왕국 식량안정위원회 파견 감리관 베이른입니다.”
아일린이 눈썹을 찌푸렸다. “존재하지 않는 부서에서 파견하셨다고요?”
“이 기관은 왕실 법령에 의해 영속합니다. 간판이 내려갔다고 권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베이른은 서류를 내밀었다. 발행 시각이 지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명자는 구왕력 117년에 사망한 관리였다. 그는 위임 권한이 세대를 넘어 자동 연장된다고 주장했다.
도현이 물었다. “그러면 그 서명자의 현재 의사는 누가 확인합니까?”
“불필요합니다. 법령이 그를 대신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조사하는 문제인데요.”
베이른의 눈이 차가워졌다. “조리사가 행정의 적법성을 판단합니까?”
“아니요. 다만 안에 있는 사람에게 위험하냐고 물었더니 동의했다고 적히는 게 맞느냐고 묻는 겁니다.”
감리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고 온실 관리인들에게 현장을 비우라고 명령했다. 하나는 주저했지만 자신의 땅과 물길에 관한 동의 없이 임의로 작업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기다리십시오.” 아일린이 왕실 신분증을 내밀었다. “제가 현장 기록 보존을 요청했습니다. 반론은 접수하겠지만 자료를 가져가지는 못합니다.”
베이른은 공주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전하께서는 대관을 미루셨습니다. 아직 제0식탁의 최종 결정권을 가지지 않으셨지요.”
“그렇다면 더욱 누구도 결정하지 말아야겠네요.”
잠깐의 침묵 속에서 관 안쪽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정해 놓은 신호와 달랐다. 브론은 귀를 가까이 댔다.
“무언가 새로운 말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에스텔은 지금까지 들은 두드림을 적었다. 첫날 세 번, 다음 날 두 번과 한 번, 그리고 오늘 한 번, 두 번, 세 번. 규칙을 가진 신호처럼 보이지만 그 뜻을 아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베이른은 구리 상자에서 손을 떼라고 했다. “저것은 수령인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본인 이름을 안 밝혔잖습니까.” 도현이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으면 이름 없는 수령인으로 자동 배정됩니다.”
도현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름을 말해도 빚이고 말하지 않아도 빚이라는 뜻이었다. 최초 계약의 빈 의자가 어떻게 왕국 전체의 채무가 되었는지, 그 방식이 눈앞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하나는 잠시 화덕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대답할게요. 저는 저 통로에 있는 사람이 위험하다는 신호를 들었습니다. 식사를 받았다는 뜻은 듣지 못했습니다.”
관리인 두 명도 같은 말을 했다. 모두가 자신이 본 일에만 동의했다. 베이른은 목격자들이 많아지는 것을 불편해했다.
그때 구리 상자 속의 셋째 판이 혼자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법이 재가동되며 기록장을 향해 검은 빛을 보냈다.
[대체 수령인 할당 개시.]
도현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우리 중 누구에게도 대신 받았다고 적지 마십시오.”
그러나 명부의 빈 칸에는 이미 새로운 글자가 쓰이고 있었다.
[대체명 후보: 백도현.]
제17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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