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식당 ‘마지막 한 숟갈’의 문은 평소보다 일찍 닫혔다.
브론은 계산대 위에 동전을 정리했고, 헥터가 왕궁에서 보내 준 감자를 삶았다. 도현은 왼손을 무리하지 않으려고 식탁에서 작은 조리법 수첩을 읽고 있었다. 젊은 요리사에게 쉬라는 말은 잔소리였지만, 지금은 그 잔소리를 따라야 했다.
에스텔은 손님용 식탁 한가운데에 흰 천을 펼쳤다. 세른의 세 갈래 매듭에서 잘려 나간 두 가닥이었다. 유리함에 있던 제3실은 아직 보존고에 남아 있었다.
“내가 먼저 말할게.”
도현이 수첩을 덮었다.
에스텔은 오래전 첫 겨울의 부엌을 떠올렸다. 겨울이 유난히 길어 곡식 자루가 바닥나던 해였다. 왕이 굶주린 마을에 곡식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도착하지 못한 마을이 있었다. 사람들은 굶었고 왕실은 약속을 이행했다고 말했다. 세른은 누가 받지 못했는지 적기 위해 화덕 옆에 장부를 만들었다.
“세른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었어. 대신 거짓말이 적힌 장부를 보면 하루 종일 아무 말도 안 했지.”
그녀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마녀라고 놀리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세른은 ‘그럼 감자를 더 빨리 익힐 수 있겠군’ 하고 말했어. 그 사람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보다 오늘 무얼 도울 수 있는지 먼저 물었어.”
“그러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왕실 사람들이 찾아왔어.”
그들은 첫 겨울의 부엌에서 마법 계약을 완성하려 했다. 왕이 미처 제공하지 못한 식사를 한 사람에게 대신 먹였다고 처리하면 왕실의 약속은 완료될 수 있었다. 세른은 거절했다.
“못 준 것은 못 줬다고 적어야 한다고 했지. 그 사람은 왕관과 마법 앞에서도 같은 말을 했어.”
에스텔은 실을 가만히 매만졌다. 검은 문양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잠깐 반짝였다.
“그런데 그날 밤 화덕이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어. 굶주린 아이의 목소리로 자신이 이미 먹었다고 했고, 세른의 목소리로도 왕실의 뜻을 따르겠다고 했지.”
“제3실 때문이군요.”
“그때는 몰랐어. 목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그래서 나는 세 갈래 매듭을 잘라 버렸어.”
도현은 에스텔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마녀답지 않게 지친 표정이 있었다.
“세 번째 실을 잘라서 화덕의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막았죠?”
“그래. 그게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어.”
“그리고요?”
에스텔은 대답하기 전에 삶은 감자 하나를 접시에 올렸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문을 잠갔어. 증언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못 들어가도록.”
“안에 남은 사람들은요?”
침묵이 길어졌다.
“전부 나왔는지 확인하지 못했어.”
브론은 종이에 숫자를 적던 손을 멈췄다. 도현은 에스텔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이 마침내 식탁 위에 올라왔다.
“세른은요?”
“나오지 않았어.”
에스텔은 고개를 숙였다.
“난 그 사람이 죽었다는 말도, 살았다는 말도 할 자격이 없어. 문을 닫는 동안 세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목소리가 진짜인지 알 수 없었어. 열면 밖의 사람들까지 그 장부에 묶일 것 같았고, 닫으면 안의 누군가를 버리는 것 같았지.”
도현은 즉시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위로가 에스텔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녀가 스스로 한 선택을 숨기지 않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들었다.
“그때 문을 닫은 이유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용서할 수는 없겠지?”
“용서는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안에 있던 사람의 말을 찾아야죠.”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텔은 감자를 반으로 잘랐다. 삶은 감자에서는 김이 피어올랐고, 껍질 사이로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 첫 겨울의 부엌에서 세른이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음식을 떠올렸다.
그날 식탁에는 감자와 거친 보리죽이 있었다. 이미 곡식이 떨어져 충분히 만들지 못한 날이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빈 통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렀고, 화덕에서는 새파란 불꽃이 타올랐다. 누군가는 굶주린 사람의 몫을 왕국의 미래로 미루자고 했다. 그러면 오늘 장부에는 부족함이 없고 내일 더 큰 식사를 준다고 약속할 수 있었다.
“세른은 내일의 음식을 미리 먹었다고 적을 수는 없다고 했어.” 에스텔이 말했다. “그때는 그 말이 너무 고집스럽게 들렸지. 애들이 오늘 울고 있는데 내일 줄 거라고 쓰는 게 뭐가 잘못이냐 싶었거든.”
“내일 준다고 약속하는 건 괜찮지 않습니까?” 도현이 말했다.
“그래. 그런데 왕실 사람들은 약속이라고 쓰지 않았어. 이미 지급했다고 썼어. 나중에 고칠 수 없게.”
그녀는 천천히 감자를 씹었다. 오래전 세른도 사람들에게 감자를 나눠 주다 마지막 한 개를 남겨 두었다. 식탁에 늦게 도착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오지 않으면 그 감자는 그냥 남겨 두면 됐다. 당시 에스텔은 그 단순한 일에 왜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세 번째 실을 잘라 낸 뒤 왕실 사람이 말했어. 이제 아무 목소리도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니 혼란이 끝날 거라고.”
“그래서 믿으셨어요?”
“믿고 싶었어. 내가 사람을 살렸다고 생각하고 싶었지.”
그러나 문을 잠그고 돌아서던 순간 안에서 숟가락 소리가 났다. 세 번, 두 번. 왕궁 세척실에서 헥터의 아버지가 남겼던 것과 비슷한 신호였다. 누군가 구조를 요청했던 것인지, 단지 오래된 장치가 움직였던 것인지 에스텔은 지금도 몰랐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도 돌아보지 않았어.”
도현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저주가 신체에서 신체로 옮겨 다니는 세계에서, 책임마저 그렇게 쉽게 옮길 수 있다면 편할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문을 닫은 사람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잘못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세른이 실제로 살아 있었다면 당신에게 화를 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거야.”
“그런데 아직 살아 있는지도 모르죠. 그래서 우선은 그 사실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무서워하던 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은 뒤 숨을 조금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들은 식탁에 남은 감자 한 조각을 치우지 않았다. 누군가 먹으러 올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직 치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브론이 갑자기 가방에서 작은 공책을 꺼냈다. “그럼 앞으로는 닫는 문마다 누가 안에 있는지 적으면 안 됩니까? 식당 문 닫을 때도 마지막에 화장실 확인하는 것처럼요.”
도현이 작게 웃었다. “그건 괜찮은 규칙이네요.”
“저는 매일 저녁 화장실까지 확인했는데요. 그릇값은 안 물어도 되는 거죠?”
에스텔은 감자를 들고 있던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 얘기를 꼭 지금 해야 해?”
“우리 식당의 개혁은 중요합니다.”
셋은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이 오래된 겨울의 책임을 덜어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마녀가 다시 말을 시작할 시간을 만들었다.
에스텔은 서랍에서 작고 낡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 매듭 모양 홈이 세 개 있었다.
“왕실이 가져간 제3실은 목소리를 전달하는 장치야. 그런데 실제로 문을 여는 열쇠는 여기 있어. 난 그걸 백 년 가까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어.”
“열쇠를 가지고 계셨군요.”
“도망칠 수 없는 이유도 가진 셈이지.”
에스텔은 열쇠를 도현 앞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도현은 곧장 집어 들지 않았다.
“이걸 쓰면 안에 갇힌 기록이 전부 나올 수도 있습니까?”
“그럴 수도 있고, 그 안에 있는 가짜 목소리가 바깥으로 쏟아질 수도 있어.”
“그럼 내일 문을 열기 전에 누가 바깥에서 기록을 대조할지 정해야 합니다.”
에스텔이 한숨을 내쉬었다. “또 준비부터 하는구나.”
“요리는 준비가 절반입니다.”
식당 밖에서는 늦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스텔은 처음으로 그 열쇠를 혼자 보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이 깊었을 때, 식당 창문에 성에가 끼었다. 누군가 안쪽에서 세 번, 잠시 쉬고 두 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브론이 귀를 세웠다.
“밖에 아무도 없는데요.”
유리창에는 손가락 자국 대신 한 줄의 글씨만 남았다.
[열면 모두가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답이 모두 사람의 것은 아닙니다.]
제16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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