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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6화
PAYLUA ORIGINAL · 제16화

16화. 요리사는 혼자 남지 않는다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446자

오프라인 책장
식당에서는 가끔 가장 중요한 대화가 설거지하면서 시작됐다. 백도현은 물이 가득 찬 큰 대야 앞에 서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평소라면 브론이 맡는 일이었지만, 오늘은 사람 수가 많아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대야 옆에 나란히 선 브론은 접시를 닦는 대신 냄새를 맡아 봤다. “이건 어제 누가 먹은 건지 알겠어요. 감자 수프 한 그릇, 빵 두 조각. 아, 그리고 저분은 고기를 남겼습니다.” “접시가 다 씻겨도 알아요?” “물기가 마르기 전까지는요.” “그럼 가게에서 향신료 검사도 할 수 있겠네요.” “월급을 올려 주시면요.” “먼저 그릇값부터…” “주방장님! 언제까지 그 얘기를 하실 겁니까?” 도현은 웃으면서 마지막 접시를 헹궜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말라 있었다. 수프를 끓이고 사람들과 웃는 날에도 저주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는 왼손을 들어 보였다. 손가락 두 개가 전보다 뻣뻣했다. 기억을 먹는 저주 때문에 오래된 일뿐 아니라 방금 한 조리 순서도 가끔 잊었다. “브론. 내가 나중에 음식을 못 만들게 되면?” 늑대인간의 손이 멈췄다. “제가 만들죠.” “그릇도 자주 깨뜨리는데요.” “계속 그 얘기하시면 저도 진지한 대답 안 하겠습니다.” 도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요.” “우선 주방장님이 제게 조리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누가 아파도 다른 사람이 밥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 말은 뜻밖에 도현의 마음에 남았다. 레온의 기록에 따르면 전임 요리사들은 자신만이 저주를 떠안을 수 있다고 믿고 마지막 한 숟갈을 먹었다. 그런데 그렇게 버티는 동안 다음 요리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똑같은 선택을 반복해야 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도현이 말했다. “비법을 숨기면 중요한 순간에 사람이 굶겠네요.” 이튿날 아침 도현은 브론에게 칼을 쥐여 주었다. 무거운 식칼이 아니라 채소를 다질 때 쓰는 작은 칼이었다. 브론은 앞치마 끈을 여러 번 묶고 작업대 앞에 섰다. 그의 털 사이로 밀가루가 묻자 마치 온몸에 눈이 내린 것처럼 보였다. “손가락을 안쪽으로 말아 주세요.” 도현이 말했다. “발톱도요?” “가능하면요. 재료가 아니라 손톱까지 다지면 곤란합니다.” 브론은 천천히 양파를 잘랐다. 처음 몇 조각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도현이 어느 쪽으로 칼끝을 움직일지 보여 주자 조금씩 일정해졌다. 그 모습을 본 토마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저도 할 수 있어요?” “너는 오늘 글자 연습부터. 자르는 일은 어른이 지켜볼 때만 배우자.” “그럼 글자부터 배울게요.” 도현은 ‘물’, ‘소금’, ‘감자’라는 글자를 종이에 적었다. 토마는 그중 가장 먼저 ‘소금’을 외웠다. 나중에 손님에게 소금을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알려 주겠다는 이유였다. 점심에는 브론이 만든 수프가 첫 손님에게 나갔다. 노인은 국물을 한 숟갈 뜨더니 한참 생각했다. “오늘은 조금 더 달군.” 브론이 도현의 얼굴을 쳐다봤다. “제가 망쳤나요?” “양파를 천천히 볶았으니 단맛이 난 겁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럼 성공입니까?” “네. 다음에는 소금 양을 조금 조절해 봐요.” 손님은 그릇을 비우고 계산대 앞에 섰다. 노인은 음식값을 내려놓은 뒤 브론에게 말했다. “자네가 만든 것이라니 다음에도 부탁하고 싶구먼.” 브론은 대답 대신 꼬리를 크게 흔들었다. 잠시 뒤 도현이 쳐다보자 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제가 그렇게 신나 보였습니까?” “네. 주방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어요.” “그럼 앞으로도 더 잘 만들겠습니다.” 도현은 장부에 오늘 식사 값을 적었다. 작은 매출 하나와 새로운 요리사 한 사람의 첫 성공. 숫자는 작았지만 가게를 다시 세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론은 식당으로 돌아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봤다. 그릇을 깨뜨리던 늑대인간이 이제는 누군가의 점심을 책임지는 사람이 됐다. 도현은 그런 변화가 거창한 마법보다 믿음직하게 느껴졌다. 그날부터 그는 식당 벽의 검은 칠판을 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하나에는 오늘 팔 음식을, 다른 하나에는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는 기본 조리법을 적었다. 양파를 오래 볶으면 단맛이 난다는 사실, 콩은 충분히 익혀야 한다는 사실, 남은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까지. 토마와 미나가 글씨를 배우고 싶다고 하자 도현은 그림도 함께 그렸다. 작은 냄비, 물컵, 감자 세 개.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익힌 재료에 동그라미를 쳤다. 이것이 왕국을 구할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도현은 조리법을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야말로 이 식당의 오래된 문제라고 느꼈다. 에스텔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물었다. “넌 왜 매번 남한테 가르쳐 주려고 해? 요리사에게 비법은 무기나 다름없잖아.” “비법은 있어도 됩니다. 하지만 밥을 만드는 기초까지 비밀로 하면 다른 사람이 다칠 때 아무도 도울 수 없잖아요.” 그녀는 칠판의 조리 그림에 한참 시선을 두었다. “레온도 처음엔 너처럼 생각했어. 나중엔 반대로 변했지만.” “왜요?” “자기가 아니면 왕국 사람들이 죽는다고 믿게 됐거든.” 도현은 그 말을 깊이 생각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몫까지 모두 빼앗는 것과 다르다. 좋은 요리사는 혼자 모든 그릇을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요리사와 함께 식탁을 준비할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저녁 무렵 벨리온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위생국 가방이 아니라 작은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안에는 동전과 영수증 여러 장이 있었다. “제분소 노동자들이 보낸 거요. 당신이 아이들에게 밥을 줬다는 소문이 퍼졌소. 조금씩 나눠 낸 값이라더군.” “그 돈은 받지 않겠습니다. 이미 무료 식사라고 했으니까요.” 벨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소. 그래서 기부금으로 받으라더군. 앞으로 끼니가 없는 사람들에게 쓰라고.” 도현은 영수증에 적힌 이름들을 보았다. 구두 수선공, 마차 수리공, 생선 장수, 작게는 동화 한 닢을 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식당을 찾아온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을 위한 식재료 비용을 보태고 있었다. “그럼 별도의 장부로 관리하겠습니다.” 그는 새 장부 표지에 ‘공동 식사 기금’이라고 적었다. 에스텔은 그 이름을 읽더니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함부로 돈을 모으면 식탁이 또 계약으로 묶을 수 있어.” “그래서 사용 목적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누가 내고 어디에 썼는지 모두 확인할 수 있게요.” 도현은 기부금과 식재료 구매 항목을 기록했다. 어떤 기부도 나중의 치료나 복종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덧붙였다. 그러자 장부 위에 아주 작은 은빛 점들이 생겨났다. 도현은 놀라 펜을 멈췄다. [서로 독립된 거래 12건 확인.] [식탁 연결 강제 적용 불가.] 레온의 숟가락이 가볍게 울렸다. 브론이 흥분해서 말했다. “이건 좋은 소리죠? 종소리랑 좀 달라요!” 도현은 숟가락을 손바닥에서 굴렸다. 검은 홈 두 개 사이로 하얀 줄이 뻗고 있었다. 두 시험의 판정은 여전히 보류였지만, 식탁이 강제 계약을 만들지 못하는 거래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때 문 앞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색 망토를 입은 낯선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손등에 붉은 반점이 있었다. “여기서 저주를 치료해 준다고 들었어요.” 도현은 즉시 그녀의 손을 살폈다. 손가락 끝의 붉은 반점은 피부 위에서 작은 가시처럼 움직였다. 그녀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등불이 낮아졌다. “무슨 증상이 있습니까?” “먹을 때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빼앗아 가요. 아침에는 남편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도현의 목 뒤가 서늘해졌다. 에스텔이 재빨리 다가왔다. “오늘은 진료하지 않아.” 여인이 애원했다. “제발 한 끼만요. 어린아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도현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손목에 감긴 두 저주를 보았다. 여인의 저주를 옮겨 받는다면 자신도, 그녀도, 식당에 의지하는 사람들도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어떤 음식을 먹으면 편해지는지 함께 찾아볼게요.” 그는 그녀에게 먼저 자신의 이름을 종이에 적어 달라고 했다. 여인은 손을 떨며 글자를 적었다. 도현은 그 종이를 여인 앞에 놓아 두고, 뜨겁지 않은 채소죽을 아주 조금씩 내왔다. 음식은 저주를 옮기지 않았다. 그녀가 자기 이름을 읽고 천천히 씹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다. 여인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도현은 치료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잠시 안정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이후의 변화를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인이 떠나기 전 도현은 그녀의 요청으로 남편에게 보낼 짧은 쪽지를 적어 주었다. 쪽지에는 여인의 이름과 오늘 먹은 음식, 대화를 나눈 시간만 적었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같은 사람이 여러 번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니 음식보다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이 필요했다. “이 종이를 보여 주면 남편이 믿어 줄까요?” 여인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것은 분명히 적었습니다. 원하시면 식당 장부에도 같은 내용을 남겨 두겠습니다.”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웃으려다가 실패했고, 도현도 억지로 안심시키지 않았다. 아직 해결된 저주가 아니었다. 부엌의 따뜻한 공기에서 벗어나면 다시 불안해질 수 있었다. 도현은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장부에 적었다. [증상 완화 시도: 기록 유지, 소량의 식사, 반복 확인.] [저주 자체의 해제 여부: 확인되지 않음.] [추가 저주 이전: 없음.] 예전 같았으면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마음을 조금 덜어 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기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다. 언젠가 저주를 옮기지 않고 풀 방법을 찾게 되더라도 이런 기록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가 떠난 뒤 에스텔이 말했다. “넌 분명 저주를 빼앗을 수 있었어.” “그랬겠죠.” “그런데 안 했구나.” “이기지 못할 싸움에서 한 사람을 안심시키려고 제 목숨을 쓸 순 없어요. 다른 방법을 찾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에스텔은 손끝으로 조리대의 오래된 칼자국을 만졌다. 그 아래에 수십 년간 고쳐 쓴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요리사가 남아 있어야 한다.] “그 말을 레온도 알고 있었어.” 그녀가 중얼거렸다.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왜 그는 지하에 갇혔습니까?” 에스텔은 잠시 침묵하다가 정면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일 말해 줄게.” “내일도 비밀을 하나 더 만드실 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일은 내가 처음으로 이 식당에 들어온 날부터 이야기할 거야.” 그날 밤, 식당의 낡은 벽시계가 멈췄다. 바늘 사이에서 검은 실이 뻗어 나와 부엌 문을 가리켰다. [주인 심사 최종 문항: 준비 상태 확인.] [증언자 에스텔의 진술 대기.] 도현은 오래전에 봉인된 식당의 진실이 마침내 드러날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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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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