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검게 변하자 만찬장에 앉은 귀족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사람들은 검은 불꽃을 재앙의 징조라고 불렀지만, 도현이 먼저 본 것은 천장에 매달린 유리등의 흔들림이었다. 환기구를 타고 찬 공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잔잔하던 수프의 표면이 잔물결을 그렸다. 이곳에서 마법이 움직일 때마다 실제 사물에도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것을 놓치면 허공에 떠오르는 글씨만 보게 된다.
“불꽃을 보지 말고 출구부터 확보하세요.” 도현이 말했다.
토렘은 문을 지키던 경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문고리는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참석자가 마지막 접시를 보기 전에는 떠나지 못한다는 규칙이 문을 봉인한 것이다. 토렘이 검집으로 손잡이를 두드렸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도 식당 문이 안 열리는군요.” 브론이 중얼거렸다.
“다행히 이번엔 설거지 때문이 아니네요.”
농담이 끝나기도 전에 은제 숟가락이 위로 떠올랐다. 숟가락의 움푹 파인 부분에는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숟가락 아래의 식탁에서 누군가 식사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숟가락과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 빵을 뜯는 소리, 배부르게 한숨 쉬는 소리. 그 소리에 맞춰 유리판의 숫자가 늘어났다.
[대리 수령 처리: 1,204.] [대리 수령 처리: 3,970.]
아일린이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손등의 검은 왕관이 눈처럼 갈라졌다. 고통 때문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에스텔이 공주의 손목에 보호막을 둘렀다.
“저주를 풀어도 될까요?” 에스텔이 물었다.
아일린은 고개를 저었다. “풀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마법에 제 몸을 맡길 수 없어요. 우선 숫자가 늘어나는 걸 막아야 해요.”
도현은 왕실 숟가락을 쳐다보았다. 숟가락 끝에 검은 소금이 묻어 있었다. 이틀 전 초청장에 들어 있던 바다 냄새 없는 소금이었다. 도현은 브론에게 그날 받은 소금 표본을 요청했다. 브론은 밀봉한 통을 내밀었고, 헥터가 조리실에서 가져온 일반 소금과 나란히 놓았다.
“냄새가 같습니까?”
“같아요. 그런데 저건 소금이라기보다 소금이라고 부르기로 한 뭔가 같습니다.”
에스텔이 말했다. “맹세를 봉인할 때 쓰는 잔류물이야. 손님의 입이 아니라 계약자의 이름에 반응하지.”
“공주가 숟가락을 들었다는 사실을 동의로 바꿔 놓았군요.”
도현은 홀을 가로질러 주방에 돌아갔다. 첫 번째 수프는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냄비 뚜껑을 열었다. 아무도 받지 않은 열 그릇이 더 있었다. 그릇을 보며 도현은 속이 쓰렸다. 왕실은 실물 한 그릇도 내지 않은 사람에게 이미 수천 끼를 제공했다고 적고 있었다.
“수프를 버릴까요?” 브론이 물었다.
“아니요. 필요한 사람에게 실제로 내면 됩니다. 하지만 나르기 전에 숫자를 확인하세요.”
그는 냄비 앞에 선 사람들에게 차례로 물었다. 누구는 수프를 원했고, 누구는 소금을 덜어 달라고 했다. 니아는 이제 더 먹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선택 하나하나를 적는 동안, 왕실 숟가락은 더 빨리 진동했다.
리데아가 단상으로 올라왔다. “왕위 계승자 한 사람이 왕국의 식사를 책임지는 것은 오래된 의무입니다. 도현 씨, 책임을 부정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책임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공주 한 사람이 안 먹은 수프까지 대신 먹었다는 기록을 부정하는 겁니다.”
“백성들은 오랫동안 그런 기록으로 겨울을 넘겼습니다.”
“그 기록으로 굶주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귀족들의 얼굴이 굳었다. 리데아는 당황하지 않고 손짓했다. 왕궁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과 피리 소리가 숟가락 소리를 덮었다. 순식간에 만찬장은 축하연 분위기로 돌아갔다. 웃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그 무렵 홀 한쪽에서는 기묘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까 수프를 거절했던 귀족 한 사람이 갑자기 배를 감싸 안았다. 그는 누군가 억지로 먹인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다고 소리쳤다. 옆자리 여성도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실제로는 마신 물 한 잔이 전부였는데, 몸은 이미 여러 접시를 비운 사람처럼 반응했다.
“마법의 착각일 수도 있어요.” 에스텔이 말했다.
“그러면 치료는요?” 브론이 물었다.
“원인이 뭔지 아직 몰라. 무턱대고 저주를 옮기면 더 큰일이 날 수 있어.”
도현은 즉시 왕궁 의원을 불렀다. 의원은 두 사람의 맥박과 호흡을 확인하고, 실제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했다. 그중 한 사람은 숨이 가빠졌으므로 소파에 눕혀 안정을 취하게 했다. 식사 기록을 확인하는 문제와 몸 상태를 돌보는 문제를 하나로 섞어서는 안 됐다.
그사이 은제 숟가락이 울렸고 수령인 숫자가 또 늘어났다. 의원은 고개를 흔들었다. “실제 음식이 없는데 이런 증상이 일어나다니.”
도현은 초조하게 손목을 문질렀다. 자신이 저주를 받아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183,442명과 연결된 저주를 모두 받아들이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것이다. 그가 아까보다 더 단호하게 말한 이유였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먼저 하세요. 그와 별개로 저 기록을 멈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에스텔은 그의 말을 듣고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늘 한 사람의 몸에 모든 대가를 떠안게 하는 방식으로 끝나서는 안 됐다.
타니아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마침내 손을 들었다.
타니아가 참관석에서 손을 들었다.
“제 이름으로 기록된 오늘 아침 세 접시도 저 숫자에 들어 있습니까?”
리데아는 그 여자를 보지도 않았다. “개별 이의 신청은 만찬 후 접수합니다.”
“만찬이 끝나면 기록이 통합된다면서요.” 타니아가 외쳤다. “그럼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너무 늦지 않습니까?”
그 말에 회랑에서 여러 사람이 술렁였다. 얼마 전 왕실의 공개 조리 검증을 봤던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숫자와 실제 음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의 충격을.
도현은 연주를 멈추라는 손짓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를 꺼냈다. 오늘 실제로 조리한 수량, 지금까지 나간 그릇 수, 아직 주방에 남은 분량이 적혀 있었다. 헥터가 서명했고 브론이 나르는 일을 확인했다. 니아도 자신이 먹은 양을 직접 적었다.
“수령인 숫자는 불어날 수 있겠죠. 하지만 여기 수프 냄비는 하나뿐입니다.”
오르델은 증언을 유리판 옆에 붙였다. 마법 장부는 잠깐 흔들리더니 새 문장을 띄웠다.
[실물 수량과 대리 수령 수량 불일치.] [정합성 검사 생략 권한 요청.]
“누구에게 요청하는 겁니까?” 아일린이 물었다.
은제 숟가락이 리데아 쪽으로 돌아갔다. 왕위 보존관은 그 짧은 순간 처음으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누구도 대답하지 않은 채 숟가락이 그녀의 손에 내려앉았다.
“여기에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있군요.” 도현이 말했다.
리데아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판에 붉은 글씨가 떴다.
[정합성 검사 생략 권한 보유자: 왕위 보존관 리데아.]
아일린이 한 걸음 나아갔다. “제 이름으로 왕국 전체가 먹었다고 쓰기 전에, 그 생략을 승인해 온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밝히세요.”
음악이 뚝 끊겼다. 리데아는 도현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왕국을 지탱해 온 방법을 모르는군요.”
“그래서 묻고 있잖습니까.”
도현은 리데아의 손에 붙어 버린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저주를 옮기는 일이 쉽다고 해도 그녀의 몸으로 대신 옮기자는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이유와 새로운 저주를 씌워도 된다는 허가를 혼동하고 싶지 않았다.
리데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숟가락을 높이 들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분들이 말하는 최초의 식사부터 보여 드리지요.”
단상의 빈 의자 뒤 벽이 갈라졌다. 여덟 번째 주방의 문이 만찬장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숟가락 소리 다섯 번이 음악 대신 울렸다.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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