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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55화
PAYLUA ORIGINAL · 제155화

155화. 다섯 번 두드린 숟가락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275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에 밤이 내리면 밝아지는 곳이 있었다. 대관식을 앞둔 정원에는 불꽃 모양의 마법등이 줄지어 켜졌고, 귀족들이 머무는 별궁에서는 음악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세척실이 있는 서쪽 회랑은 불빛이 드물었다. 낮 동안 수천 개의 접시를 닦아 낸 노동자들이 잠든 뒤에도 큰 수조에서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도현은 왕궁 출입 허가증의 사용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오늘 안에 세척실 물품의 목록을 확인할 권한을 어렵게 받아 냈다. 그러나 여덟 번째 주방에 들어갈 권한은 없었다. 경비대는 창고에 쌓인 접시를 조사할 수는 있어도 ‘없는 문’을 통과하는 것은 허가할 수 없다고 했다. “없는 문을 허가해 달라고 하니까 좀 우습긴 하군요.” 브론이 말했다. “그러니 이미 존재하는 물품부터 확인하자는 겁니다.” 헥터는 서른두 해 전 아버지가 남긴 낡은 수첩을 가지고 나왔다. 수첩의 앞부분에는 접시의 세척법과 물 온도, 깨진 도자기를 분류하는 표시가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숫자 다섯 개와 함께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세 번은 일을 마쳤다는 소리. 두 번은 집에 가겠다는 소리. 다섯 번은 아직 사람이 남았다는 소리.] “어렸을 땐 아버지가 숟가락으로 문틀을 두드리면 집에 가는 줄 알았습니다.” 헥터가 말했다. “그게 어떤 사람을 위한 신호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오르델은 수첩을 비추어 필적과 종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은 '베넌'. 과거 왕실 접시 세척 책임자였고, 퇴직일이 적힌 명부에는 퇴직 사유가 ‘식사 완료’로 되어 있었다. 사람의 퇴직을 식사 완료라 적은 문장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헥터가 노파를 만나기 전, 잠시 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제게 가르친 첫 일은 칼 쓰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그릇을 어떻게 씻는지였죠. 접시 밑바닥부터 닦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윗면은 누구나 닦지만, 바닥에 남은 이물질이 다음 음식을 오염시킨다고요.” 헥터는 잠시 웃었다. “어릴 때 나는 아버지가 좀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왕궁에서 접시 닦는 일을 평생 하는 게 자랑이냐고 묻기도 했어요.” 도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헥터가 수첩의 낡은 모서리를 만지작거렸다. “왕실에서 요리사가 되고 나서도 가끔 아버지의 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덟 번째 주방의 일을 봤을 때는 바닥을 확인할 생각을 못 했어요. 기록이 훌륭하게 정리돼 있으니 윗면만 보면 된다고 믿었던 거죠.” “그걸 모르셨다는 사실과 오늘부터 어떻게 하실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를 위로하는 겁니까?” “아니요. 지금은 다음 접시의 바닥을 함께 보자는 말입니다.” 헥터는 눈을 감았다가 열었다. 밖에서는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은 밤 돌아오면 검은 빵에 따뜻한 우유를 적셔 주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피곤해도 늘 먼저 손을 씻었다는 사실도. “그날 밤 집에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일까 봐 두렵소.” “그럴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죠.” “확인하면 아예 잃어버릴 수도 있겠구먼.”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대답은 사람을 구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그 사람을 찾았다고 꾸며 내는 대답보다는 정직해야 한다. 헥터는 수첩을 접어 품에 넣었다. 서쪽 세척실에서 일하던 노파가 그 이름을 듣더니 냄비를 떨어뜨렸다. 노파의 이름은 타니아였다. 니아에게 찬 빵을 주었던 사람도 그녀였다. “베넌 씨를 아십니까?” 도현이 물었다. 타니아는 주위를 살폈다. “서른두 해 전 일입니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하던 날, 마지막 물통을 치우고도 한 사람이 안 나왔다고 소리치던 분이 있었어요. 관리들은 모든 사람이 퇴근했다고 말했죠.” “누가 남았습니까?” “그분은 이름을 끝내 못 들었다고 했어요. 다만 한 여자가 그릇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고.” 니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전날 잊어버린 하녀도 여자였다. 도현은 둘의 사건이 같은지 섣불리 연결하지 않았다. 서른두 해 전과 어제의 시간을 하나로 묶는 건 너무 쉬운 함정일 수 있었다. 타니아는 노인이 남긴 수조 뒤편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수조 벽돌에는 칼끝으로 그은 다섯 개의 흠집이 있었다. 헥터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흠집 사이로 손가락을 넣자 작은 공간이 열리며 얇은 은 숟가락이 나왔다. 손잡이는 닳았지만 끝에는 베넌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브론이 숟가락을 받으려다 멈췄다. “만져도 되는 겁니까?” “기록부터 남기죠.” 오르델이 말했다. 그들은 숟가락이 발견된 위치와 주변 물품을 모두 적었다. 헥터가 직접 꺼내기를 원했고, 도현은 오염된 은을 다룰 장갑을 건넸다. 숟가락에는 식사의 대가를 기록하는 마법이 남아 있었다. 에스텔이 보호막을 씌운 뒤에야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퇴근을 확인하지 않은 노동자 1명.] [마지막 식사 제공 실패.] [해당 미완료 기록 보관 중.] 헥터는 한참 숟가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누군가를 데리고 나가려고 했던 거구나.” 그때 여덟 번째 주방으로 통하는 배수로가 울렸다. 둔탁한 소리가 다섯 번. 곧 수조의 물이 역류했다. 검은 물이 바닥으로 넘치며 사용하지 않은 새 접시들을 밀어냈다. 접시마다 흐릿한 이름이 올라왔다가 물에 씻겨 사라졌다. “물이 아니라 잉크예요!” 오르델이 외쳤다. “모두 문에서 떨어지세요!” 도현이 말했다. 브론이 수조의 밸브를 잠갔지만 물은 멈추지 않았다. 에스텔은 보호막을 넓혀 이름이 적힌 접시 몇 장을 건져 냈다. 손가락으로 직접 글씨를 지우면 그 이름을 대신 맡는다는 경고가 보호막 위에 나타났다. 헥터가 은 숟가락을 들어 수조를 두드렸다. 탕, 탕, 탕. 잠깐의 침묵 뒤 탕, 탕. 물소리가 한 번 꺾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조 안쪽에서 다른 소리가 돌아왔다. 탕, 탕, 탕, 탕, 탕. 다섯 번이었다. “아직 사람이 남아 있다는 뜻이군요.” 브론이 말했다. 도현은 흘러내리는 접시를 하나씩 보았다. 접시 가장자리에는 각기 다른 해의 배식 기록이 붙어 있었다. 과거의 이름과 최근의 이름이 뒤섞여 있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식사를 제공했다고 기록됐는데 그릇에 음식 흔적이 없었다. 그 순간 헥터가 기침을 하며 주저앉았다. 그는 이른 아침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얼굴을 기억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 눈이 어떤 색이었지?” 그가 울먹였다.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니었는데…….” 도현은 자신의 기억을 먹는 저주가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손목의 저주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세척실의 마법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증언할 힘을 빼앗는 것 같았다. “헥터 씨, 이제 그만하세요. 숟가락 내려놓으십시오.” “하지만 안에 누가 남았어요!” “그러니까 밖에 있는 사람까지 잃지 맙시다.” 니아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어제 썼던 자신의 문장을 읽었다. “저는 세 접시를 먹지 않았어요. 어머니도 오늘 식사하지 않았어요. 기록을 고치려면 먼저 우리 말을 들어야 해요.” 검은 물이 잠깐 멈췄다. 에스텔이 그 틈에 원본 기록 세 장을 봉인했다. 타니아는 수조 아래의 오래된 배수문을 열어 물을 빈 웅덩이로 흘려보냈다. 진짜로 사람을 지키는 일은 마법만이 아니라 수십 년 일한 노동자의 손에도 달려 있었다. 물이 빠지자 벽 아래에서 좁은 봉투가 드러났다. 니아는 혼자 열지 않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오르델에게 전달했다. 봉투에는 해마다 같은 문장을 반복한 목록이 들어 있었다. [식사 완료에 따른 기록 정리 예정: 대관 전야 만찬.] [잔여 미수령 기록: 왕위 보존고로 일괄 이전.] “대관식이 끝나면 세척실 기록도 옮기는 거군요.” 도현이 말했다. 헥터는 은 숟가락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아버지가 남긴 신호를 이제야 알겠소. 마지막 사람을 확인하지 않고 주방 불을 끄지 말라는 뜻이었군.” 밖에서 급히 발걸음이 들렸다. 경비대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들 뒤에 리데아가 있었다. 여인은 흘러나온 검은 물과 증언을 담은 봉투를 눈으로 훑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왕궁의 물길을 망가뜨리는 실험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검증 중입니다.” 오르델이 대답했다. “좋아요. 그럼 검증할 기회를 공식적으로 드리죠.” 리데아가 봉투에서 작은 열쇠 하나를 꺼냈다. 모양은 은 숟가락 끝과 같았다. “내일 저녁 만찬에서, 여덟 번째 주방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다만 그곳에서 나온 기록을 보고도 마지막 접시를 내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그녀는 웃지 않았다. 은 숟가락이 헥터 손에서 희미하게 울렸다. 사라진 사람을 확인하려는 신호가 이제 만찬 전체를 겨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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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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