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은 빈자리를 위한 메뉴를 요구했다.
이의 신청에 대한 공식 회신은 다음 날 아침, 은쟁반에 실려 여관으로 도착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도현이 대관 전야 만찬에서 세 가지 요리를 만들되, 마지막 접시는 ‘원수령자 미확인’인 제7의자를 위한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완성된 음식의 품질을 왕실이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접시가 비어 있으면 만찬은 종료된 것으로 인정한다고 적혀 있었다.
브론은 문서를 세 번 읽고도 이해하지 못했다.
“먹지 않은 접시를 빈 접시로 만들면 된다는 겁니까?”
“그러면 누군가가 먹었다고 기록할 명분이 생기겠죠.” 도현이 말했다.
“그럼 차라리 아무것도 만들지 맙시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았다는 걸 왕궁이 제멋대로 다른 뜻으로 바꿀 수도 있어요.”
도현은 양피지 뒷면에 처음으로 자신이 만들고 싶은 메뉴를 썼다. 첫 번째는 실제로 모인 사람을 위한 따뜻한 보리수프, 두 번째는 소량의 허브와 기름으로 구운 채소, 마지막은 빵 한 조각이었다. 마지막 빵은 아예 굽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준비하되 누가 받아 먹을지 결정될 때까지 덮어 두는 음식이었다.
“굶은 사람에게 빵을 주고 싶어서 남겨 뒀다면, 마지막엔 그 사람이 와야죠.” 도현이 말했다.
에스텔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저주가 사람을 데려와 줄 거라 믿는 건 아니지?”
“아뇨. 그런 걸 기대했다면 제가 이 식당에 처음 왔을 때부터 틀렸겠죠. 다만 아무도 먹지 않았는데 먹었다고 적지 않는 방법을 택하겠다는 겁니다.”
도현은 메뉴를 정한 뒤에도 오래된 조리 노트를 펼쳤다.
한국에서 일하던 식당의 주방장은 새 요리를 올리기 전에 반드시 세 번 먹어 보라고 했었다. 따뜻할 때 한 번, 식어 갈 때 한 번, 손님이 실제로 먹는 속도에 맞춰 한 번. 소스가 식으면 기름이 분리되거나 향이 죽어 버릴 수 있었다. 왕궁 만찬에서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뜨거울 때 한 그릇을 받지 못한 사람까지 이미 먹었다고 적히는 일이었다.
도현은 보리수프를 냄비 세 개에 나눴다. 하나는 평소처럼 끓였고, 하나는 소금을 절반만 넣었다. 마지막에는 사과를 볶아 단맛을 조금 보탰다. 재료가 같아도 먹는 사람의 몸과 입맛에 맞춰 달라져야 했다.
브론은 세 가지를 모두 맛봤다. 그는 두 번째 냄비 앞에서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맛이 없는데요.”
“짜지 않은 걸 찾는 사람에게는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저는 짠 게 좋습니다.”
“그럼 당신은 첫 번째를 드세요.”
브론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 선택이 이렇게 단순한 문제였는지 새삼 깨닫는 얼굴이었다. 아일린은 세 번째 냄비를 고르지 않았다. 손의 저주가 심해진 날에는 달콤한 향이 오히려 메스꺼웠다고 설명했다.
그 말에 도현은 냄비 손잡이에 작은 나무패를 걸었다. [소금 조절 가능.] [먹을 사람 확인.] [먹지 않은 분량 별도 보관.] 단순한 문장이지만 주방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헥터의 젊은 보조 조리사가 나무패를 읽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전부 똑같이 끓이면 안 됩니까? 왕궁 손님들은 보통 먹고 싶지 않아도 주어진 걸 먹습니다.”
“손님이 다르면 요리도 달라질 수 있죠. 맛있는 음식을 억지로 먹이는 건 그다지 훌륭한 접대가 아니니까요.”
도현은 보조에게 첫 번째 냄비의 온도를 확인하는 법을 가르쳤다. 어린 조리사는 나무 숟가락을 익숙하지 않게 잡아 두 번이나 손을 데일 뻔했다. 브론이 얼른 헝겊을 가져왔다. 그렇게 세 사람이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왕궁의 거대한 기록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식사를 자동으로 완료 처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니아를 증언자로만 남겨 두기로 했다. 소녀가 원하면 만찬의 참관석에 앉을 수 있지만, 증거를 만들기 위해 위험한 조리에 끌어들이지는 않기로 했다. 헥터는 주방의 채소를 직접 검수할 권한을 주겠다고 했다. 스스로도 여덟 번째 주방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후로 왕실 명령을 맹신할 수 없었다.
점심 무렵 도현은 헥터의 조리실에서 새로운 시험을 했다. 같은 밀가루로 작은 빵 두 개를 만들고 한쪽에는 왕실 배식용 도장을 찍지 않았다. 재료의 양과 반죽의 시간은 같았다. 발효 정도를 맞추기 위해 물 온도도 동일하게 했다. 식사 기록을 확인하러 온 오르델은 자기가 빵을 먹지 않아도 비교 결과를 기록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맛을 비교하려면 드셔야죠.” 도현이 말했다. “다만 드시고 싶지 않다면 냄새나 겉모습만 관찰하셔도 돼요.”
오르델은 도장이 찍히지 않은 빵 한 조각을 선택했다. 겉은 바삭했고 안은 부드러웠다. 구운 곡물 향이 주방을 메웠다. 도현도 조금 맛을 보았다. 기억 저주가 낡은 미역국의 맛을 지웠어도 지금 구운 빵의 질감을 구분하는 감각까지 앗아 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왕실 도장을 찍은 빵은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기록판에 문장이 떠올랐다.
[왕실 제공 완료. 수령자 확인 대기.]
“먹지도 않았는데 제공이 끝났다고요?” 헥터가 물었다.
“보통은 여기서 기록을 멈춰야죠.” 도현이 대답했다.
도현은 왕실 빵을 옆으로 옮기고, 누구도 먹지 않았다는 표식을 놓았다. 그러자 기록판에 다른 문장이 나타났다.
[미수령 확정 시 왕위 보존고로 귀속.]
에스텔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곧 알아챘다. 먹지 않은 몫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왕실 권리로 쌓이는 구조였다. 언젠가 백성에게 준 것으로 기록된 식사는 그 자체로 왕위의 힘이 된다. 재료비와 조리 노동의 대가는 다른 사람이 치르는데도 말이다.
“빵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마저 왕궁의 재산이 되는군.” 헥터가 말했다.
“지금은 그런 정황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기록이 실제로 어떻게 힘으로 바뀌는지는 만찬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도현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헥터에게 조리실 바깥에서 일하는 세척 노동자들에게도 빵을 나눌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헥터는 평소였다면 인원 외 배식이 금지라며 거절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직접 명부를 확인했다. 빵을 가져갈 사람이 아홉 명이었고, 지금 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헥터는 실제로 받을 일곱 명분만 잘라 담았다.
브론은 감탄했다. “왕실 주방에서 빵 일곱 조각을 만드는 일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아홉 명이 다 먹은 걸로 적는 것보다는 낫죠.”
그때 첫 번째 주방의 문이 열렸다. 말끔한 회색 예복을 입은 여인이 들어왔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지지 않았고, 손목에는 왕실의 오래된 열쇠가 걸려 있었다.
“백도현 씨.”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대관식 준비위원회 총괄관 리데아입니다.”
아일린에게서 들은 이름 없는 ‘왕위 보존관’이 처음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리데아는 도현이 만든 빵 두 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빵의 모양보다 먹지 않은 빵 아래의 표식에 오래 머물렀다.
“참으로 번거로운 일을 하시는군요. 손님이 먹고 싶으면 먹고, 아니면 남기게 두면 되는 것을.”
“그러니까 남긴 걸 먹었다고 적지 말자는 겁니다.”
리데아가 미소 지었다. “그 한 가지 사실 때문에 대관식이 멈추면, 그 손실은 누가 책임질까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확인하면 되죠. 보리 한 숟갈의 값과 왕관의 값을 같은 장부에 묶지 말고요.”
“식탁에서는 아주 간단한 말씀만 하시는군요.”
리데아는 가까이 다가와 그의 손목을 보았다. 석화의 흔적이 장갑 끝에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당신에게도 쉬운 길이 있습니다. 만찬의 마지막 접시를 완성해 주세요. 그러면 그 손의 저주를 다른 보존고에 옮겨 드릴 수 있지요.”
도현이 눈을 들었다. “누구의 보존고입니까?”
그 질문에 리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한쪽 벽에 걸린 왕궁 대관식 그림을 가리켰다. 그림 속에는 대대로 왕이 한 손으로 왕관을 받고 다른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어차피 왕은 모두의 식사를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왜 누가 받아야 하느냐는 사소한 문제로 왕위를 위태롭게 하시나요?”
도현은 빵 한 조각을 접시에 올렸다.
“누군가의 배고픔이 사소하다면, 왕관은 너무 큰 모자가 아닐까요?”
리데아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가 돌아서려는 순간 도현은 한 가지를 물었다.
“세척실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일도 알고 계십니까?”
여인의 걸음이 멈췄다.
“그날 밤 누가 숟가락을 다섯 번 두드렸는지부터 물으셔야겠군요.”
문이 닫힌 뒤 헥터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그 여자야.”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불려 갔던 날도 저 얼굴을 봤소.”
그는 곧 말을 고쳤다. “아니, 얼굴이 닮았던 것인지도 몰라. 그때 나는 어린애였으니까.”
도현은 그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확신과 기억은 다른 것이었다. 다만 리데아가 알고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졌다.
제15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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