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보낸 초청장에는 날짜보다 작은 글씨가 더 많았다.
도현은 식당의 아침 준비를 마치고 창가에 앉았다. 시장으로 향하는 수레가 젖은 돌길을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왕도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시작했다. 제빵사는 오븐에서 첫 빵을 꺼냈고, 채소 장수는 얼어붙은 당근 끝을 잘라 냈다. 그런데 왕궁 종탑의 일곱 번째 종이 반쯤 울린 사건 이후, 사람들은 종이 들리지 않는 시간에도 탑을 올려다보곤 했다.
“대관 전야 만찬이라.” 도현이 봉투 뒷면을 뒤집었다.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 놨군요.”
브론은 빵을 반으로 가르다 말고 귀를 쫑긋 세웠다. “좋은 말이면 좋은 곳 아닙니까? 만찬이면 고기가 나오고, 왕궁이면 접시도 안 깨질 테고.”
“그런 편견 때문에 사장님이 매번 그릇값을 월급에서 빼는 겁니다.”
“그건 왕궁이 아니라 이 식당 문제잖아요!”
에스텔은 두 사람의 농담을 듣지 않는 척했다. 그녀는 밀랍에 떠오르는 옛 문장을 살피고 있었다. 초청장 겉에는 ‘최초 제공 약속 심의’라고 적혔지만, 빛에 비추면 문장의 뒷면에서 다른 문장이 겹쳐 보였다.
[최종 제공 기록 확정 시 기존 이의 신청은 통합 보존한다.]
“통합 보존.” 에스텔이 입술을 깨물었다. “없애겠다는 말을 아름답게 한 거네.”
“기록을 보존한다면서 없애나요?” 브론이 물었다.
“여러 사람이 말한 걸 하나의 결론으로 덮는 거야. 제2저장고에서 본 것처럼.”
도현은 초청장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열여섯 요리사의 목소리가 원문과 가공된 결론 사이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기록이 만찬의 결과 하나로 덮여 버리면, 누가 아직 살아 있는지 확인할 길은 더 멀어진다.
“안 가면 빈 의자가 봉인되고, 가면 증언이 묻힐 수 있다.”
“가지 말자는 얘기야?” 에스텔이 물었다.
“아니요. 참석 조건을 다시 정하자는 겁니다. 우리가 요리를 하러 초대받았지, 남의 대답을 대신하러 간 건 아니니까요.”
도현은 종이 네 장을 꺼냈다. 첫 장에는 참석자 명단을, 둘째 장에는 조리실의 책임 범위를, 셋째 장에는 음식의 실제 수령을 확인하는 방법을 적었다. 마지막 장은 비워 두었다.
“마지막 건 뭡니까?” 브론이 물었다.
“아직 못 들은 사람들의 이의 신청을 적을 자리요.”
아일린 공주는 오전 늦게 도착했다. 호위는 둘뿐이었다. 그녀는 검은 왕관 모양 저주가 보이지 않게 장갑을 꼈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손가락이 어색하게 구부러졌다. 도현은 의자를 내밀면서도 상태가 괜찮냐고만 묻지 않았다. 언제부터 손이 아팠는지, 전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왕궁 의원이 무슨 진단을 내렸는지 물었다.
“왕위가 가까워질수록 오래된 표식이 뜨거워져요.” 아일린이 대답했다. “의원들은 공주의 몸이 대관을 기다린다고 하더군요.”
“그걸 건강 진단이라고 부르면 곤란하겠는데요.”
아일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공주가 전한 만찬 규칙은 예상보다 까다로웠다. 모든 음식은 왕실 재료로 조리해야 했고, 왕실의 숟가락으로 첫입을 떠야 했다. 초청된 조리자는 지정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으며, 마지막 접시에는 왕위 계승자가 서명해야 했다.
“재료의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면 조리도 못 합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리고 서명은 음식을 먹는 사람의 선택이어야 합니다.”
“왕실 대신들이 거절할 거예요.”
“그럼 무엇을 거절했는지 공개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아일린은 그 말에 눈을 들었다. “당신은 늘 승리보다 기록을 먼저 생각하는군요.”
“저는 실패한 요리도 기록합니다. 안 그러면 다음 손님에게 같은 실수를 하니까요.”
오르델은 세 사람 앞에서 초청장의 기원과 발급 시각을 확인했다. 발테르의 인장이 아니라 대관식 준비위원회의 공동 봉인이었다. 마지막 서명권자는 국왕이 아니라 ‘왕위 보존관’이라는 이름 없는 직책이었다.
“새 인물인가요?” 도현이 물었다.
“실제 사람이 맡은 자리입니다. 그런데 현직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델이 답했다. “의전국과 별도로 대관의 형식을 관리하는 직책이라고 합니다.”
아일린은 오래 망설이다 말했다. “대관식이 사흘 뒤에 시작돼요. 지금까지는 그날 왕관을 쓰는 것이 모든 문제를 풀어 줄 거라 믿었죠. 그런데 그 왕관이 저주를 이어받는 고리라면, 저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에스텔이 대답하려 했지만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왕위도 생명도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공주님이 왕위에 오를지 말지는 제가 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먼저 확인할 게 있죠. 빈 의자에 앉으라는 요구를 누가 했는지, 그리고 왜 그 의자가 필요한지.”
그들은 참석 조건을 공증된 이의 신청으로 제출했다. 왕궁에서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음식의 실물 검증과 시민 참관 일부 허가. 개인별 수령 동의 절차에 관한 항목 심의 보류. 지정 조리자는 만찬 종료 전 퇴장 불가.]
브론이 종이를 읽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럼 일부러 마지막 음식을 내지 않으면 못 나오는 거네요?”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문장이죠.” 오르델이 말했다.
도현은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에 서로 다른 표시를 했다. 왕궁이 일부 허가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의 목적이 선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민 참관석이 생긴 것은 중요한 변화였다.
그날 오후 식당 앞에는 작은 소란도 있었다.
왕실 종이 멈춘 뒤부터 일부 상인들이 내일 배급이 끊긴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밀가루를 두 배 가격에 팔려는 사람도 있었다. 도현은 시장에서 돌아온 브론에게 실제로 재료를 얼마에 샀는지 물었다. 브론은 양파 값이 올랐고, 밀가루는 사려는 사람만 많을 뿐 창고에는 아직 재고가 있다는 말을 전했다.
“누군가는 왕이 못 먹었다는 빵을 찾아야 하니 당장 빵을 사 모으라고 떠들더군요.” 브론이 말했다.
“왕이 못 먹었다고 우리가 빵을 사재기할 이유는 없죠.”
도현은 메뉴판에 남아 있던 밀가루의 양을 적었다. 오늘 구울 수 있는 빵은 열두 개. 식당 앞에 선 사람은 열다섯 명이었다. 전부에게 한 개씩 팔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리자 불평이 나왔다.
도현은 사람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부는 반 개씩 나누겠냐고 물었다. 다섯 사람은 괜찮다고 했고, 두 사람은 내일 다시 오겠다고 했다. 어떤 노인은 손녀의 몫이라며 온전한 한 개를 원했다. 도현은 그가 돈을 낸 만큼 내주었다. 다른 손님이 항의하자 브론은 선착순과 예약분을 구분해 적어 놓았던 종이를 보여 주었다.
“꼭 장부를 이렇게까지 만들어야 합니까?” 노인이 물었다.
“나중에 제가 누구에게 뭘 줬는지 잊지 않으려는 겁니다.”
노인은 한참 있다가 웃었다. “그럼 내일 손녀가 맛있었다고 하면 그것도 적어 주겠소?”
“그건 방명록에 적겠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간 뒤 도현은 비로소 숨을 돌렸다. 왕궁의 식탁을 바꾸겠다는 일이 거창한 연설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남은 빵을 열두 개라고 말하는 일, 열다섯 개라고 속이지 않는 일부터 필요했다. 하지만 그 당연한 말 때문에 왕궁의 어떤 사람이 저주를 잃고 어떤 사람이 권한을 잃는다면, 밤의 초청장은 결코 간단한 자리가 아니었다.
에스텔이 도현의 팔 위에 약초 찜질을 올렸다. “너는 손목이 돌로 변하는데도 빵값을 세고 있구나.”
“손을 못 쓰게 되면 계산할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그 말은 네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뜻처럼 들려.”
도현은 찜질이 너무 뜨겁지 않은지 확인하고 대답했다. “그래서 브론에게 장부를 가르치고 있잖아요.”
문밖에서는 직원 브론이 손님에게 받은 동전을 한 닢씩 세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인데도 에스텔은 오래 바라보았다.
식당 문을 닫기 직전, 파란 망토를 두른 소년이 작은 통을 전하고 달아났다. 통 안에는 마른 소금 세 알과 접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만찬을 먹으면 왕위를 얻게 됩니다. 만찬을 끝내면 빈자리는 없어집니다. 둘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종이에는 이름 대신 일곱 번째 종과 닮은 금이 그어져 있었다. 하엘의 글씨는 아니었다.
브론이 혀끝으로 소금의 냄새를 확인하더니 털이 곤두섰다.
“주방장님. 이건 소금인데…… 바다 냄새가 하나도 안 납니다.”
도현은 그 소금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금조차 맛이 아니라 서명으로 쓰려는 곳에서, 대관 전야 만찬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제15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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