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명부실의 돌벽에 난 금이 천천히 벌어졌다.
벌어진 틈 사이로 찬바람이 밀려들었다. 그 바람에는 잉크와 기름, 오래된 양파 냄새가 섞여 있었다. 제0식탁에서 스며 나온 냄새였다. 발테르는 손에 든 인장을 금 위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기록이 통과하면 왕국은 안정됩니다. 굶주림 때문에 서로 싸울 필요도 없어지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는 대신 밥을 받았다고 적어서요?” 도현이 되물었다.
“백성들은 배식이 중단되는 걸 더 두려워합니다.”
도현은 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북부 루덴의 검은 밀밭, 벨로스 항구의 짠맛을 잃은 노동자들, 동부 온실에서 백 년 동안 첫 수확을 기다린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 가운데 실제로 배식을 받은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왕실 식량이 겨울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까지 지워 버리면 또 다른 거짓말이 된다.
“실제로 받은 건 받았다고 적겠습니다. 못 받은 건 못 받았다고 적고요. 그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게 왜 왕국을 무너뜨리는 일입니까?”
발테르가 인장을 내리쳤다. 일곱 번째 의자 그림자가 벽을 타고 올라갔다. 원형 탁자 위의 열여섯 표식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서로 다른 소리였지만 어느 순간 하나의 문장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왕실이 제공하였다. 왕실이 제공하였다.”
“증언 원본이 아니에요!” 오르델이 외쳤다. “강제 결론이 목소리보다 먼저 재생되고 있습니다!”
에스텔은 표식들을 보호막 안에 넣었다. 미확인 증언이 섞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마법으로 모두 지워 버릴 수 없었다. 브론은 한 손으로 탁자를 붙잡고 도현에게 외쳤다.
“주방장님, 출구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도현은 빈 의자의 그림자가 자신의 발끝에 닿는 것을 보았다. 도망가면 자발적으로 자리에 앉은 것으로 처리된다는 하엘의 경고가 떠올랐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이 본래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기억하는 것이었다.
“하엘 씨, 원래 중앙 명부실에서 실제 식사를 하던 곳이 있었습니까?”
“있었지. 옛날에는 탑을 지키던 사람들에게 죽을 끓여 주던 작은 화덕이 있었다고 들었어.”
“어디죠?”
하엘이 벽 구석을 가리켰다. 서류 선반 뒤에 검게 그을린 벽돌 세 장이 있었다. 도현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예전에는 화덕이었으나 지금은 봉인용 인장과 문서통이 차지한 자리였다. 먼지 아래에는 작은 솥을 걸던 쇠고리가 남아 있었다.
“요리를 한다고 장부가 진실을 말할까요?” 아일린이 물었다.
“요리로 모든 걸 풀 순 없습니다. 다만 실제 식사가 없었다면 여기서 하나를 만들 수는 있겠죠.”
도현은 좁은 돌방에서 불을 피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부터 확인했다. 화덕의 연도가 막혀 있다면 조리가 아니라 질식 사고가 될 수 있었다. 하엘은 오래된 통풍구의 위치를 가리켰고, 에스텔은 마법으로 연기의 흐름을 살폈다. 막혀 있던 돌 하나를 옆으로 밀자 바깥으로 찬 공기가 들어왔다.
“이런 것까지 확인해야 합니까?” 브론이 물었다.
“왕국을 구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고 나면 더 억울하잖아요.”
도현은 화덕에 남은 재를 긁어 냈다. 재 안에는 오래된 씨앗 껍질이 섞여 있었다. 언젠가 이곳에서도 실제로 음식이 만들어졌다는 흔적이었다. 쇠고리에는 냄비 손잡이가 닿아 닳은 자국이 있었다. 이곳을 설계한 사람은 기록이 아니라 배고픈 종지기에게 식사를 주기 위해 화덕을 만들었을 것이다.
“세른이 이곳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에스텔이 물었다.
“모르죠. 하지만 조리대에 먼지가 쌓여 있다고 혼냈을 것 같습니다.”
에스텔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벽돌을 두드렸다. “맞아. 세른은 음식이 없어도 부엌은 청결하게 두라고 했지.”
그들은 어둠 속에서 짧게 일을 나눴다. 브론은 물을 다뤘고, 하엘은 통풍구를 지켰다. 아일린은 왕실 기록과 자신의 동의 여부를 확인했고, 오르델은 조리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지났는지 적었다. 도현만 모든 일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몫을 맡았다.
발테르는 그런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누군가 한 사람의 이름으로 정산되지 않는 일이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그는 인장을 움켜쥐며 말했다.
“책임을 나누면 최종 책임자가 없어집니다.”
도현은 냄비를 걸 준비를 하며 대답했다. “책임을 지우는 것과 남에게 떠넘기는 건 다릅니다. 지금 이 물을 가져온 사람은 하엘 씨고, 음식을 만들 사람은 접니다. 그 차이를 알면 누가 무엇을 했는지 오히려 더 분명해지죠.”
그는 자신의 앞치마에 남은 낡은 기름 얼룩을 내려다보았다. 처음 이세계에 왔을 때 설거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주방이 떠올랐다. 그때는 우연히 잡은 일 하나가 왕국 전체의 비밀로 이어질 줄 몰랐다. 그러나 지금도 해야 할 일의 첫 번째는 다르지 않았다. 손님에게 안전한 음식을 내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붙잡자 어지럽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는 브론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말없이 조리를 시작했다.
브론은 배낭을 뒤져 보리 한 줌과 말린 사과를 꺼냈다. 도현은 냄비 대신 휴대용 작은 철그릇을 걸었다. 하엘은 수로에서 물을 떠 왔다. 오르델은 그 물이 깨끗한지 확인했고, 에스텔이 정화 주문으로 안전성을 살폈다. 발테르가 소리쳤다.
“명부실 안에서 허가되지 않은 조리를 금지합니다!”
도현은 그를 돌아봤다. “그럼 당신은 왕실이 먹지도 않은 걸 먹었다고 기록하는 건 허가했습니까?”
발테르의 대답이 늦었다. 그사이 브론이 불씨를 일으켰다. 작은 화덕에 숨이 붙었다. 도현은 보리를 조금씩 넣고 천천히 저었다. 사과에서 나온 단맛이 보리의 구수함과 섞였다. 뜨겁게 달아오른 냄비 손잡이를 브론이 대신 잡았다. 도현은 부어 오른 왼손에 힘을 주지 않았다.
“몇 그릇이나 만들죠?” 브론이 물었다.
“지금 먹을 사람만큼요.”
하엘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배가 부르다. 내가 먹지 않은 걸 먹었다고 적지 말게.”
“알겠습니다.”
아일린도 방금 저녁을 먹었다며 거절했다. 에스텔은 도현이 먹어야 한다고 했다. 브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먹겠다고 했다. 도현은 두 사람의 몫만 철그릇 두 개에 덜었다. 그러고는 원형 탁자 위의 여섯 자리 가운데 두 곳에만 그릇을 올렸다. 나머지 자리에는 아무것도 놓지 않았다.
[현재 식사 기록 감지.] [배식 대상: 6.] [수령 완료: 6.]
“아니죠.” 도현이 말했다. “수령하려는 사람이 둘입니다.”
그는 하엘과 오르델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한 숟갈 먹었다. 따뜻한 보리가 목구멍을 지나갔다. 특별한 마법 효과는 없었다. 석화 반점이 사라지지도 않았고, 기억 저주가 풀리지도 않았다. 그저 몸이 조금 따뜻해졌다.
브론도 자기 그릇을 들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한 숟갈을 먹고 말했다. “이걸 두고 왕국이 무너진다고 하면, 적어도 맛 때문에 무너지진 않겠군요.”
“칭찬을 꼭 그렇게 해야 합니까?” 도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 순간 탁자 표면에서 실제 음식의 온도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실물 식사 확인: 2건.] [수령 의사 확인: 2건.] [공석 대리 기록과 충돌.]
의자 그림자가 한 번 크게 뒤틀렸다. 중앙 명부실의 봉인 장치는 진짜로 먹은 사람의 존재를 처리할 수 있었지만, 먹지 않은 사람을 포함해 여섯 명이 먹었다는 기록과 양립하지 못했다.
발테르는 인장을 다시 내려찍었다. 그러나 하엘이 자신의 구리 열쇠를 돌 틈에 끼웠다.
“일곱 번째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소.” 노인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면 울렸다고 기록할 수 없지.”
위쪽에서 여섯 번째 종이 울렸다. 도현의 왼손이 뻣뻣해졌다. 냄비를 더 붙잡고 있을 수 없어 브론이 그릇을 받았다. 에스텔이 보호막으로 도현의 팔을 감쌌다. 발테르가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다.
“열람 절차를 중단하겠습니다!” 그가 소리쳤다.
“증언을 지우는 건 중단이 아니에요.” 도현이 말했다. “이의 신청과 원본을 남긴 채 대리 지정을 멈추십시오.”
아일린은 자신이 가진 왕실 열람권으로 원형 탁자의 정정을 요청했다. 오르델은 여섯 증언을 원문·강제 결론·미해독으로 구분해 표기했다. 하엘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제7응답은 아직 없다.”
왕궁 위에서 일곱 번째 소리가 시작되는 듯하더니, 절반만 울리고 끊겼다. 벽의 먹물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제7수령자 자동 지정 임시 정지.] [원본 기록 대조가 끝날 때까지 대체명 등록 금지.]
명부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겼다는 감각보다 오래 숨을 참았다가 겨우 풀어낸 안도감이 먼저 왔다.
그러나 곧 새 문장이 떠올랐다.
[중앙 명부실 교차 대조 결과: 최초 제공 약속의 상대방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수령자 확인을 위해 제0봉인 열람이 필요합니다.]
도현은 그 문장을 읽고 눈을 감았다. 왕이 먹지 않은 첫 빵을 받을 사람은 여전히 이름이 없었다. 누군가가 그 자리를 빼앗은 뒤, 그 빈칸을 왕국 전체의 채무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제14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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