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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42화
PAYLUA ORIGINAL · 제142화

142화. 서명하지 않은 사람의 필적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231자

오프라인 책장
청동판은 도현의 손이 닿기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식기 폐기장이라고 불리는 광장은 왕궁 서쪽 담장 바깥에 있었다. 가마솥 바닥과 깨진 항아리, 더 이상 쓰지 않는 은제 포크가 몇 세기 동안 쌓여 온 곳이었다. 관리들은 수시로 치운다고 했지만 구석마다 오래된 음식의 기름이 어두운 줄무늬를 남겼다. 도현은 코끝에 남은 산패한 버터 냄새를 맡았다. 그런 곳의 바닥에서 왕국 가장 중요한 장부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필적을 확인한다는 게 왜 손바닥을 대는 일이죠?” 오르델이 청동판의 작은 글씨를 읽었다. “상대의 현재 문양을 기존 기록의 문양과 겹치는 방식일 겁니다. 그런데 이걸 사용하면 조회한 사람이 직접 서명한 것으로 처리될 수도 있어요.” “확인과 동의를 하나로 묶어 놨군요.” “제가 대신 손을 올리면 어떨까요?” 아일린이 말했다. “공주님은 이미 왕실 계약의 대상자입니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누구 손도 올리지 맙시다.” 그는 행주를 꺼내 청동판 둘레를 닦았다. 손자국이 없는 테두리에는 금속을 이어 붙인 선이 있었다. 오래된 청동에 최근 납을 붓고 다듬은 흔적이었다. 에스텔은 손톱으로 그 부분을 눌렀다. “이것 봐. 마법 문양은 오래됐어도 이 금속은 새거야.” 오르델이 세워 놓은 유리등 빛을 비추자 납선 속에 아주 얇은 종이 하나가 드러났다. 종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왕실 최초 계약일이 아니라 불과 사흘 전이었다. 산속에서 도현 일행이 제2저장고의 증언을 건지던 날과 맞아떨어졌다. “옛날부터 이 이름이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 지금 덧씌운 겁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때 광장 바깥 경비들이 창을 교차시켰다. 검은 망토를 걸친 남자가 좁은 문으로 들어왔다. 발테르였다. 그는 평소처럼 장갑을 꼼꼼히 끼고 있었으나 팔목에는 새로 생긴 먹빛 문양이 번져 있었다. “왕실 보존 구역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아일린이 먼저 걸어 나섰다. “내 채무의 원본을 열람하러 왔습니다. 왕위 계승자의 요청을 묵살할 권한이 의전국에 있습니까?” 발테르는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열람은 가능하지만 증명에는 서명이 필요합니다.” “이미 이름이 적혀 있다면서요.” 도현이 끼어들었다. “당신이 접수했습니까?” “저는 규정에 따라 확인할 뿐입니다.” “그럼 사흘 전에 금속판을 고친 사람은 누구죠?” 발테르의 시선이 납선에 멈췄다. 찰나였지만 도현은 그 눈길을 보았다. 상대도 새로 바른 납을 알고 있었다. “왕궁의 시설은 언제든 보수할 수 있습니다. 외부인이 의심할 근거는 되지 않아요.” 도현은 기름 자국이 묻은 행주를 접었다. “보수한 기록을 보여 주세요. 누가 어떤 문구를 더했는지 확인할 수 있겠죠.” 발테르는 웃지 않았다. “그 기록은 중앙 명부실 안에 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여기에 손을 올리라 하고요.” “불편한 절차일 뿐입니다.” “그 절차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자기 이름을 빼낼 방법도 없네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근처에서 구경하던 세척 노동자 한 명이 고개를 들었다. 낡은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이 왕궁에서 십 년 동안 식기를 닦았지만 이곳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다. 또 사흘 전 새벽 종탑 쪽으로 쇠판을 운반하는 수레를 봤다고 했다. “확실합니까?” 오르델이 묻자 여자는 머뭇거렸다. “수레는 봤어요. 누가 탔는지는 몰라요.” 도현은 곧바로 수첩에 그 차이를 적었다. 그녀는 잠시 도현의 펜 끝을 바라보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봤다고 말하면, 제 이름으로도 빚이 잡힐까요?” “그럴 수 있으니까 이름은 적지 않겠습니다. 원하시면 나중에 직접 확인하셔도 되고요.” 노동자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발테르는 그녀를 힐끗 보더니 경비에게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나 그가 직접 세척장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도현은 발테르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기존 명부의 필적은 보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판이 아니라 종이를 보자는 겁니다.” “원본은 너무 오래되어 훼손 위험이 큽니다.” “그럼 당신은 그걸 본 적 있습니까?” 발테르는 눈을 돌렸다. “선대의 기록이지요.” 그가 물러나자 오르델은 광장 주변의 오래된 배수 지도를 펴 놓았다. 종탑 그림자가 정오에 닿는 우물 아래로 물길 세 개가 모였다가 하나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배수관 한쪽의 표기였다. [열람 수로. 음식을 내보내는 길 아님.] “왜 명부실에 열람 수로가 있죠?” 브론이 물었다. “처음엔 물로 서류를 옮겼을 수도 있죠.”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물은 잉크도 지웁니다. 누가 그런 방법을 썼을까요?” 오르델은 잠시 생각하더니 오래된 문헌에서 비슷한 시설을 읽은 적이 있다고 했다. 왕궁 종지기가 종의 울림을 검사할 때, 아래 기록실로 내려가는 통로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르델은 세척 노동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공식 진술로 제출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았다는 수레의 규격, 지나간 시간, 바퀴에 남은 기름의 종류를 따로 확인하기로 했다. 탑을 둘러싼 의전국의 감시가 심한 만큼 근거 없는 의혹 하나가 전체 조사까지 무너뜨릴 수 있었다. 도현은 노동자가 일하는 세척장에 허가를 받아 들어갔다. 왕궁의 부엌이라면 어디든 반짝이는 냄비와 값비싼 조미료가 있을 줄 알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뜨거운 물이 흐르는 좁은 공간에서 노동자 여섯 명이 깨진 그릇을 골라냈다. 손에 자잘한 물집이 생긴 사람들이 판을 씻다가 무심코 서로를 피해 다녔다. 바닥에는 미끄러짐을 막으려고 톱밥을 뿌려 두었다. “이쪽으로 지나간 수레는 소리가 달랐어요.” 아까의 여인이 말했다. “보통 수레는 바퀴가 두 개라 한 번씩 턱을 넘어가는데, 그 수레는 더 무거웠어요. 금속이 안에서 울렸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수레 안을 보지 못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도현도 그 부분을 확실하게 적었다. “제가 뭐라도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 그가 물었다. 여인은 한순간 말을 잃었다. “당신은 요리사라면서요.” “설거지도 요리사의 일입니다.” 그는 허락을 받고 그릇 열다섯 개를 씻었다. 왼손이 굳어 있어 오래 버티기는 어려웠지만, 그가 서 있는 동안 여자에게는 잠깐의 휴식이 생겼다. 그녀는 벽에 기대 물을 마셨다. 그 짧은 시간이 여인에게는 오늘 처음으로 허락된 쉬는 시간이었던 모양이었다. “왕실 식기는 하나라도 깨지면 저희가 값으로 물어야 해요.” “원래 깨져 있던 건요?” “그런 것도 가끔 저희 책임이 돼요. 도착할 때 확인서를 쓰지만 다음 주면 사라져 있거든요.” 도현은 깨진 그릇을 보고, 왕실이 사라진 증언을 취급하는 방식과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실제로 깨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끝내 떠넘길 이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날 세척장에서 발견한 것은 범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바퀴 자국 옆에 굳은 검은 납 조각이었다. 청동판의 금속 보수선에서 떨어져 나온 것과 비슷했다. 도현은 둘을 섣불리 같은 물질이라고 쓰지 않았다. 오르델은 왕실 대장장이에게 두 조각을 따로 맡겨 성분과 작업 흔적을 확인하기로 했다. “결과가 언제 나올까요?” “내일쯤이겠죠. 하지만 그 전에 종지기를 찾아야 합니다.” 세척 노동자는 도현에게 낡은 도마 하나를 가리켰다. 누군가 모서리에 일곱 개의 홈을 파 놓았다. 한쪽 홈은 더 깊었다. “탑에서 일하던 노인분이 가끔 여기서 점심을 드셨어요. 한 번은 도마를 고치다가 이렇게 파 놓고는, ‘내가 지키는 것은 종이 아니라 마지막 침묵이다’라고 했죠.” 도현이 손끝으로 홈을 세었다. 일곱 개의 흔적 중 마지막 하나에는 밀가루가 끼어 있었다. 오래된 흔적이든 최근 흔적이든, 그 노인이 종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지키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였다. 일행은 종지기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종탑 정문은 봉쇄되어 있었고 '점검 중'이라는 종이만 붙어 있었다. 경비는 종지기가 오전에 교체되었다고 말했다. “기존 종지기는 어디 있습니까?” “사직했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도 사직서를 보여 주지는 못했다. 브론이 길 건너 수레 바퀴 자국을 맡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까 청동판을 싣고 온 기름 냄새랑 같아요. 그런데 이 자국은 탑 뒤편으로 가네요.” 그들은 탑 뒤 조그만 빵집 앞에서 흔적을 놓쳤다. 문은 닫혀 있었고, 빵을 굽지 않은 화덕에는 재 대신 종이 조각이 들어 있었다. 도현이 장갑을 끼고 집어 들자 거기에는 엉성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명부실의 첫 장에는 수령인 이름이 없다. 읽을 것이라면 이름을 쓰지 말고 읽어라.] 그리고 종이 아래에는 오래된 구리 열쇠가 놓여 있었다. 손잡이에는 일곱 개가 아니라 여섯 개의 홈이 파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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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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