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밖에 나왔을 때는 해가 거의 저물어 있었다.
카르노는 돌 위에 앉아 오래 숨을 골랐다. 브론은 팔에 새 붕대를 두르고도 노인의 짐을 옮기려 했다. 도현은 단호하게 말렸다. 상처를 입고 나서도 괜찮다고 우기는 사람을 말리는 일이 남의 저주를 옮겨 받는 것보다 쉽지 않았다.
“이제는 제 말도 좀 들으십시오.” 브론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오늘은 쉬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일을 꼭 다 하실 필요 없어요.”
에스텔은 유르다에게 보낼 전령을 마련했다. 눈은 멈췄지만 해가 떨어진 뒤 산길은 위험했다. 도르센은 갱도 관리 초소의 오래된 난로를 켰다. 그들은 수레가 오기를 기다리며 의자에 앉았다.
그때 카르노가 품에서 납판을 꺼냈다. 제2저장고에 넣었던 것은 사본이었다. 원본은 그의 주머니에 남아 있었다. 그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펴 보이며 말했다.
“나는 광산을 떠난 날부터 열두 그릇의 빚을 졌다고 들었소. 그 돈 때문에 배급도 줄었고,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아내가 빚쟁이 소리를 들었지.”
“지금 가진 기록만으로 전부 바로잡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알고 있소. 그래도 오늘처럼 내 말이 종이에 들어간 건 처음이야.”
도르센은 초소의 책상에서 문서철을 폈다. 그는 왕실 임시 집행관으로서 제1화덕의 사용 중지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그가 이곳의 명부를 정정할 권한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확인한 출입 기록을 보고할 의무는 있었다.
“왕실 관청에 이의 신청을 올리겠습니다.”
카르노가 웃었다. “관청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겠소?”
도르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도현이 말했다. “우리가 가져온 건 그날 식사 자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출입 날짜와 실제로 먹지 않았다는 증언, 기록을 덮어쓴 흔적이 한 묶음에 있습니다. 이전처럼 한 장의 영수증만 있는 상태는 아니죠.”
초소 난로 위에는 유르다가 보내 준 말린 버섯과 보리 가루가 있었다. 도현은 서류를 잠깐 덮고 작은 수프를 만들었다. 버섯을 따뜻한 물에 불린 뒤 건더기를 볶아 향을 냈고, 보리 가루를 조금씩 풀어 뭉치지 않게 저었다. 브론은 짠맛이 충분한지 확인해 주었고, 카르노는 집에서 먹던 버섯을 조금 더 넣어 달라고 했다.
“예전 우리 마을 수프는 이거보다 묽었소.” 노인이 말했다.
“재료가 적었나요?”
“그렇기도 했지. 그런데 우리 아내는 물을 많이 넣어도 맛이 나게 하려고 말린 버섯을 손으로 비벼 넣곤 했어.”
도현은 버섯 가루를 한 꼬집 더 넣었다. 국물이 진해졌다. 그는 스스로는 그 향을 예전만큼 분명히 느끼지 못했지만 카르노의 얼굴이 달라지는 것은 볼 수 있었다.
“그 맛이구먼.”
“비슷합니까?”
“똑같지는 않소. 하지만 닮았어. 그래서 좋네.”
그 말은 도현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누군가의 기억을 억지로 원본이라 선언하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식사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카르노가 느끼는 따뜻함을 어제 받았다고 거짓 기록할 필요도 없었다.
카르노는 한 숟갈을 입에 넣을 때마다 서두르지 않았다. 바쁜 광산 작업에서 그는 늘 빨리 먹어야 했다. 종을 치면 숟가락을 내려놓고 작업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남은 음식도 모두 받았다고 처리되었기에, 그릇 바닥에 남은 국물을 보는 것은 억울한 일이었다.
“오늘은 천천히 먹어도 되는 거요?”
도현은 약간 놀랐다. “원하시는 만큼 천천히 드세요. 다른 사람도 드셔야 하니까 국물이 식을 수는 있겠지만요.”
“그게 좋겠네.”
카르노는 수프를 반쯤 남기고 손을 멈췄다. 그는 어린 시절 딸이 처음 음식을 만들던 날을 이야기했다. 빵을 굽겠다고 밀가루를 잔뜩 쏟아 놓고는 절반을 태웠다. 그래도 자신은 맛있다고 먹었다. 그때 딸이 아버지의 입술에 묻은 검댕을 보고 크게 웃었다고 했다.
“지금은 어디 계십니까?” 에스텔이 물었다.
“남쪽 작은 마을에 살고 있소. 만나자고 할 때마다 내가 핑계를 댔지. 이제 와서 손녀까지 보자고 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빚을 다 갚으신 뒤 만나려던 겁니까?” 도현이 물었다.
카르노는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내 대신 빚을 물려받을까 봐 겁났소.”
도현은 카르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음식을 만들다 거칠어진 손이었다. 광산을 떠난 뒤에도 농사와 잡일을 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는 노인에게 딸을 만나러 가라고 강권하지 않았다. 다만 오늘 확인한 사실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점을 설명했다.
“편지를 보내실 생각이 있으시면, 이의 신청 사본을 같이 넣을 수는 있습니다.”
카르노는 수프를 한 숟갈 더 먹었다. “그렇게 하겠소. 답이 오지 않아도 이번엔 내 말로 쓰겠소.”
브론은 빈 그릇을 치우려다 멈췄다. 카르노가 아직 남은 수프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같았으면 종이 울리는 순간 치웠을 것이다. 그는 그릇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천천히 드십시오. 오늘은 종소리가 식사 시간을 정하지 않습니다.”
카르노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오래된 명부와 별개로, 오늘 이 한 끼에는 그가 직접 결정한 시간이 있었다.
일행이 실제로 받은 그릇 수를 적으려는 순간 도르센의 서류철에서 낮은 소리가 났다. 왕실의 낡은 수령 명부가 그들을 알아본 듯 글자를 바꾸기 시작했다.
[카르노. 미수령 식사 열두 그릇. 대체 수령 지정 가능.]
카르노는 납판을 손바닥에 꼭 쥐었다. 손등이 떨렸다. 도현이 대신 말하려 하자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내가 말할 거요.”
그는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
“나는 그 열두 그릇을 받지 않았소. 오늘 여기서 보리 수프 한 그릇을 먹었고, 그건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만든 거요. 이 두 일을 한 장에 섞지 마시오.”
도르센은 노인이 말한 문장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리고 그의 납판 출입 기록과 제2저장고에서 가져온 겹쳐진 글씨의 사본을 첨부했다. 그의 공문에는 결론 대신 분명한 요구가 들어갔다.
[열두 그릇 채무의 원수령 여부 재조사 및 징수 정지 신청.]
명부의 검은 문장이 잠시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이의 신청 증빙 접수. 해당 채무 징수 임시 보류.]
열두 그릇이 영원히 삭제된 것은 아니었다. 왕궁이 재조사를 받아들일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카르노의 이름으로 새로운 빚을 만들려던 움직임은 그 순간 멈췄다.
카르노는 종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평생 저 숫자를 없애기만 바랐는데, 지금은 내가 안 받았다는 말이 거기 적혀 있는 게 더 좋소.”
도현은 그에게 사본 한 장을 건넸다. “원본은 관청에 제출하되, 우리가 확인한 사실은 서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도르센은 문서에 도장을 찍으려다 손을 멈췄다. 오래된 버릇처럼 명령이 아닌 사실을 증명하는 데 인장을 쓰는 일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제가 이 보고서를 올리면 더는 왕궁 일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도현이 말했다.
“어째서 말리지 않습니까?”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니니까요. 위험을 아신다면 결정은 당신이 해야죠.”
도르센은 조용히 인장을 눌렀다. 붉은 잉크가 마르는 동안 그의 손등 상처가 오래된 돌처럼 희게 보였다.
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멀리 제1화덕에서 보내는 전령의 불빛이 산길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카르노는 그 불빛을 보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내가 걸어서 내려가겠소. 다리에 아직 힘이 남아 있는 걸 확인하고 싶어.”
그가 두 걸음을 옮기자 수프를 담았던 그릇에서 희미한 금빛이 일었다. 에스텔이 고개를 돌렸다.
[실제 식사 제공 확인. 해당 식사의 대가: 현장에서 합의된 분담.]
도현은 그 문장을 보고 안도했지만 환호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확인된 것은 고작 한 끼의 기록이었다. 왕국 전체의 저주는 여전히 너무 크고 복잡했다.
도르센이 제출할 보고서의 첫 문장은 그가 직접 정했다.
[본인은 왕실 명부 기록이 실제 수령을 입증한다고 가정한 채 압수 명령을 집행한 사실이 있음.]
그는 잠시 멈추었다. 스스로에게 불리한 문장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문장이 더 중요했다.
[제1화덕 현장에서 식량 생산자 및 미수령자의 직접 증언과 다른 기록을 확인하였으므로, 기존 집행 판단에 대한 재조사를 요청함.]
“이런 내용을 쓰면 감찰이 나올 겁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럴 겁니다.”
“보고서가 도중에 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본을 세 개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관청, 하나는 제1화덕, 하나는 당신들께 드리겠습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르센은 어느새 자신들이 배운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보고서 한 장으로 오래된 명령 체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누가 무엇을 확인했는지는 남는다.
카르노는 보고서의 사본 옆에 딸에게 쓸 편지를 놓았다. 첫 문장은 고작 '나는 잘 지낸다'였다. 그 말이 사실인지 스스로 생각한 뒤, 그는 '오랫동안 숨겨 온 일을 이야기하려 한다'고 이어 적었다. 도현은 편지를 읽지 않았다. 딸에게 어떤 말을 할지는 노인이 직접 정할 일이었다.
밤이 깊어지자 초소의 난로가 서서히 식었다. 사람들은 장작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아침까지 필요한 만큼만 불을 유지했다. 빈 냄비가 하나 있었지만 아무도 미래의 수프를 만들었다고 적지 않았다.
그날 밤 제2저장고 안에 남겨 둔 미라의 노래가, 바람 사이에서 단 한 번 들려왔다.
그리고 초소 책상 위의 열여섯 칸 목록 중 아홉 번째 칸에서 낡은 글씨가 새로 나타났다.
[이름 대체 원본: 왕궁 종탑 아래 중앙 명부실.]
제13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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