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조리대에는 도마 대신 검은 돌판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칼집이 하나도 없었다. 요리사가 재료를 손질한 흔적이 없는 조리대라니. 도현은 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매끄러운 돌 한구석에 작은 홈이 있었고, 홈마다 '발언', '확인', '정정'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걸 조리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섞어서 다른 말로 만들 수 있으니까. 오래전 관리들은 그것을 조리라고 불렀어.”
“거 참, 요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쁜 비유네요.”
“나도 처음엔 그랬어.”
냄비는 바닥이 평평했고 불을 올리는 화덕도 없었다. 손잡이 양끝에는 가는 쇠줄이 연결되어 벽 뒤로 이어졌다. 에스텔이 마력을 살피자 쇠줄 너머에서 아주 약한 왕실 인장 반응이 돌아왔다. 요리된 음식에 마법을 걸던 방식과는 다른 종류였다.
도현이 말했다. “재료를 넣어서 끓이는 게 아니라, 목소리를 넣으면 기록을 만드는 장치인 모양이군요.”
“그래. 첫째 사람이 말한 것, 둘째 사람이 듣고 적은 것, 마지막 사람이 승인한 것을 한꺼번에 끓여.”
“그럼 사람 하나가 '배가 고프다'고 말했는데 다른 사람이 '배급을 받았다'고 쓰면?”
“최종 기록은 배급을 받았다고 남아.”
브론이 얼굴을 구겼다. “그럼 도대체 누가 진실을 확인합니까?”
“처음에는 첫째 사람이 확인했어. 하지만 나중에는 그 절차를 없앴지.”
도현은 증언 조리대 아래에 놓인 집게를 살폈다. 집게의 끝은 사람의 혀처럼 둥글었다. 주방에서 쓰기에는 불편한 모양이었다. 한쪽 집게에는 '동의', 다른 한쪽에는 '간주'가 새겨져 있었다.
“이 둘은 무슨 차이입니까?”
미라가 대답했다. “동의는 직접 입을 열어 말한 거야. 간주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다른 사람이 적은 거지.”
“요리로 치면 손님이 소금 빼 달라고 했는데 짜게 먹고 싶었을 거라고 추측한 뒤, 먹지도 않은 소금값을 받는 셈이군요.”
“그런 비유가 가장 가까울지도 모르겠어.”
브론이 집게를 들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실제로 뭘 주문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이곳에서는 원래 주문을 묻지 않았나 봐요. 대신 식판에 빈칸을 만들어 놓고, 나중에 채우는 방식이죠.”
미라는 조리대의 홈을 손끝으로 따라갔다. 예전에는 음식 주문을 적은 판을 넣고 확인하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빵을 받으면 무릎 높이의 선반에 서명을 남겼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손바닥 도장을 찍거나 직접 옆에 있는 사람을 지목했다. 그런데 왕실 담당자들이 들어온 뒤 '본인 확인은 인력 낭비'라며 그 과정을 없앴다고 했다.
도현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떠올렸다. 식당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리사가 알아서 좋은 것을 낸다고 생각하는 순간, 손님이 싫어하는 식재료가 접시에 올라갈 수 있었다. 자신이 요리를 잘 안다는 이유만으로 먹는 사람의 의사를 지울 수는 없었다.
“처음 이 식당에 왔을 때 손님의 저주를 재료처럼 다룰 뻔했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그때는 누군가 낫기만 하면 됐죠.”
에스텔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런데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설명도 안 하고 음식을 내면, 낫더라도 다른 사람이 대가를 치릅니다. 저도 그 대가를 제대로 듣지 못했고요.”
미라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이제라도 하니 다행이구나.”
도현은 집게를 내려놓았다. 쇠붙이가 돌에 닿으며 작은 소리가 났다.
도현은 목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록은 요리가 아니라 사기입니다.”
도현은 검은 조리대 가까이에서 한 가지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 숯 냄새도 아니고 음식 냄새도 아니었다. 오래된 종이를 젖은 손으로 문지를 때 나는 냄새였다. 그는 이곳의 '조리'가 음식을 익히는 일과 얼마나 다른지 실감했다.
“세른도 이 장치를 사용했습니까?”
미라는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처음에는 기록을 더 정확하게 남길 수 있다고 믿었어. 여러 사람이 한 일을 하나의 조리법처럼 순서대로 적을 수 있었거든. 반죽을 누가 했는지, 불을 누가 살폈는지, 빵을 누가 받았는지.”
“그럼 처음부터 나쁜 도구는 아니었네요.”
“도구가 나쁜 말을 스스로 만들지는 않아. 하지만 틀린 말이 들어가면 누구도 틀렸다는 걸 보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지.”
에스텔은 그 말에 시선을 떨구었다. 자신도 저주받은 식당의 마법을 믿고 도현을 데려왔다. 먹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넘어갈 저주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선택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른은 마지막에 이 장치를 봉인하려 했어.” 미라가 말했다. “그런데 원래 기록까지 없애면 사람들이 먹었다는 사실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도 사라진다고 했지. 그래서 여기 묶어 두고 나간 거야.”
도현은 미라를 바라보았다. “그럼 세른은 파괴하지 못한 게 아니라, 파괴하지 않기로 결정한 거군요.”
“내가 아는 건 그날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뿐이야.”
그가 수첩에 문장을 남겼다. 확실한 의도와 누군가의 회상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 거리를 없애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이 방에서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규칙처럼 느껴졌다.
그는 냄비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식량 자루에서 마른 콩 한 줌을 꺼내었다. 폐광에서 돌아갈 때까지 쓸 비상식량이었다. 브론이 한숨을 쉬었다.
“주방장님. 여기서까지 요리를 하실 겁니까?”
“배가 고프니까요. 그리고 이 냄비가 말하는 조리와 실제 조리를 구분해 보고 싶습니다.”
도현은 다른 작은 솥을 꺼내 물을 붓고 마른 콩을 불렸다. 그 사이 에스텔에게 갱도에서 물을 퍼 왔을 때의 냄새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지하수에는 약한 쇠맛이 있었기에 오래된 저장고의 수조에서 깨끗한 물을 따로 확인했다. 콩을 깨끗이 씻는 데 먼저 물을 썼다.
미라는 도현의 손놀림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오래전 요리사들의 손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들은 저주를 없앨 재료를 먼저 물었고 도현은 먹을 사람이 누군지를 먼저 물었다.
“미라 씨는 먹을 수 있습니까?”
“나는 지금 먹을 몸이 없어.”
“그럼 억지로 권하지 않겠습니다. 식사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건 괜찮으세요?”
미라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건 괜찮겠어.”
마른 콩이 부드러워지자 도현은 남은 양파를 잘게 썰고 팬에 볶았다. 팬 바닥에서 달큰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왼손의 감각이 둔해진 탓에 그는 칼질을 느리게 했고, 브론은 도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젖은 천을 밑에 깔아 주었다. 에스텔은 도현이 가끔 물건을 쥔 손을 잊는 듯 멈추는 순간마다 옆에서 조용히 손잡이를 잡아 주었다.
“요즘 왼손이 더 안 좋아졌지?”
“괜찮다고 말하면 혼날 것 같네요.”
“정확하게 말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걸 구분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온도는 다른 사람에게 확인받고 있어요.”
“그럼 괜찮지 않은 게 맞네.”
도현은 대꾸 대신 부드러워진 콩을 나무주걱으로 으깼다. 완성된 국물은 화려하지 않았다. 콩의 고소함과 양파의 단맛이 전부였다. 브론이 맛을 보고 소금을 조금 더 넣자고 했고, 에스텔은 마지막에 뜨거운 물을 보태 농도를 맞추었다.
“이렇게 세 사람이 맛보면 누구 요리입니까?” 브론이 물었다.
“셋이 만든 수프죠.”
그 말에 미라의 몸이 희미하게 떨렸다. 그녀의 뒤쪽 선반에서 작은 병 하나가 빛났다. 뚜껑에는 오래된 글씨로 '겨울 배급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날도 셋이 만들었어.” 미라가 말했다. “세른이 반죽하고, 에스텔이 화덕을 지키고, 나는 식판을 닦았지.”
에스텔은 얼어붙은 듯 섰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던 날이었다. 어쩌면 어린 에스텔에게는 사소한 하루였지만 미라에게는 마지막으로 함께 일했던 날이었을지 몰랐다.
미라가 병을 손에 들자 공중에 당시의 대화가 비쳤다.
“여덟 그릇을 내놓았습니다.”
“남은 건 열두 그릇이라고 적으시오.”
“열두 그릇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세른과 왕실 관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에 이르자 영상이 흔들렸다.
“그러므로 미수령 열두 그릇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부과합니다.”
미라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 마지막 말은 세른이 하지 않았어.”
“듣고 계셨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바로 옆에 있었지. 하지만 증명할 물건이 남아 있는지는 몰라.”
도현은 증언 조리대의 냄비를 살폈다. 그가 직접 끓인 수프에서 나는 김과 달리 검은 냄비 위에는 차갑고 희미한 글씨만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 조리법에는 결정적인 재료가 빠졌군요.”
“무슨 재료?” 브론이 물었다.
“먹는 사람의 의사요. 말한 사람의 확인도 없고요.”
그는 세른이 남긴 계량 그릇을 실제 수프에 담갔다 꺼냈다. 그릇이 따뜻해지자 바닥의 세 갈래 홈이 붉게 빛났다.
[원발언 검증 도구 확인.]
검은 냄비의 표면에 처음으로 작은 금이 갔다.
그러나 곧 그 아래에서 다른 글씨가 솟아올랐다.
[검증 개시 시, 보관 중인 증언의 일부가 손실될 수 있음.]
미라의 얼굴에서 색이 사라졌다. 그 병 안에는 거짓뿐 아니라 오래전 사람들이 남긴 진짜 마지막 말도 들어 있었다.
도현은 계량 그릇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함부로 끓이지 않겠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분리하죠.”
제1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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