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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30화
PAYLUA ORIGINAL · 제130화

130화. 돌 속에 남은 마지막 서명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540자

오프라인 책장
쇠상자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뚜껑 안쪽에는 열여섯 구멍과 오래된 문자 한 줄이 있었다. 도현은 그것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유르다에게 먼저 보여 주었다. 제1화덕에서 나온 물건이라면 이곳을 지켜 온 사람에게 확인할 권리가 있었다. “저는 이런 상자를 본 적 없어요.” 유르다가 말했다. “하지만 저 글씨는 조부가 말하던 옛 문자와 같아.” 도르센은 압수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다만 소유권 분쟁이 접수되었으므로 물품을 반출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도현은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상자 하나를 몰래 가져가는 일이 아니라, 누구든 원본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상자를 열어 둔 채 루카스에게 보내는 기록을 작성했다. 어떤 벽에서 나왔는지,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왕실 인장이 언제 멈췄는지. 도르센에게도 서명할 기회를 주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별도로 덧붙이겠다고 답했다. “괜찮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다른 의견도 적으세요. 대신 실제 보신 것과 추측은 구분해 주십시오.” 그 말이 도르센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날 오후 눈보라가 누그러졌다. 바깥쪽 길을 정리하던 브론이 돌아와 이제 하르벤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제1화덕을 떠나기 전에 확인할 것이 하나 남았다. 상자에 적힌 왕의 자필이었다. 유르다는 쇠상자를 가장 높은 화덕 가까이 가져가 보자고 제안했다. 왕궁에서 쓰는 마법 거울은 문서에 담긴 마력을 읽지만,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열로 글씨를 드러냈다는 전승이 있다고 했다. 도현은 곧장 상자를 불속에 넣지 않았다. 재질을 잘못 판단하면 귀중한 원본이 망가질 수 있었다. 그는 먼저 떨어져 나온 작은 금속 조각에 약한 열을 가하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표면의 글씨가 나타나는지 확인했다. 작은 조각에는 어두운 선 하나가 드러났다. 에스텔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세른이 사용하던 열감응 잉크와 같은 방식이었다. “직접 불에 넣는 건 위험합니다.” 도현이 말했다. “화덕에서 떨어진 열을 천천히 쬐죠.” 그들은 높은 화덕에 작은 불을 지피고 돌판을 한 겹 더 놓았다. 상자는 돌판 위에서 천천히 따뜻해졌다. 처음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러다 뚜껑의 검은 무늬가 붉은 빛을 띠더니, 아랫면에 희미한 글씨가 한 자씩 떠올랐다. [그날 공급한 밀가루는 왕실 곡물이 아니다.] 테온이 숨을 삼켰다. 그 아래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왕은 빵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백성의 먹을 몫을 왕의 은혜로 기록하라 명했다.] 아일린이 왕도에서 확인했던 계약 원본의 일부와 뜻이 맞아떨어졌다. 다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마지막 줄에 있었다. 그것은 왕의 서명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기록을 승인한다. 왕실 구호사업은 이 날부터 국가의 채무로 남는다.] 그 아래에는 왕의 필체로 보이는 글씨가 있었고, 그 옆에 다른 손으로 적힌 작은 문장이 붙었다. [단, 이 의무를 백성에게 전가하지 말 것.] 두 문장은 동시에 작성된 것 같지 않았다. 왕의 글씨가 먼저 쓰였고, 다른 문장은 더 아래에 덧붙여져 있었다. 도현은 그 순서와 잉크의 차이를 유르다에게 확인했다. “추가 문장을 쓴 사람이 세른일까요?” 브론이 물었다. “모릅니다.” 도현이 말했다. “필체를 비교해 봐야죠.” 에스텔은 오래된 숟가락을 상자 옆에 놓았다. 숟가락 흠집과 상자 모서리의 흠집이 맞물렸다. 부러진 부분이 자물쇠처럼 끼워지자 뚜껑 가장자리가 조금 벌어졌다. 그 속에는 아주 얇은 종이 한 장이 있었다. 불에 타지 않도록 밀랍으로 봉해 둔 종이였다. 에스텔은 종이를 보자 눈을 감았다. “세른이 떠나기 전에 나한테 하나 부탁했어.” 도현은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아져서 모두에게 빵을 줄 수 없게 되더라도,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못 준 것은 못 줬다고 말하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 함께 생각하라고.” “왜 그 말을 지금 떠올리셨어요?” “내가 한참 동안 반대로 살았으니까.” 에스텔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식당을 운영하며 손님의 저주가 도현에게 옮겨간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일. 옛 요리사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피하고 싶어 장부를 덮어 둔 일.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세른의 말과 나란히 놓고 있었다. “저는 예전 일을 되돌릴 수 없어요.” “저도 받은 저주를 지금 없앨 방법은 모르죠.” 도현이 대답했다. “하지만 다음에 누가 오면 숨기지 않을 수는 있겠네요.” 에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는 글씨보다 그림이 더 많았다. 제1화덕에서 시작해 북부와 서부, 동부의 여러 식탁을 잇는 길이 그려져 있었다. 가장 바깥에는 열여섯 개의 표시가 있었지만, 그것이 요리사 열여섯 명을 뜻하는지 증언 보관소 열여섯 곳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지도 중앙의 작은 점 하나에는 또렷한 글씨가 있었다. [세른의 마지막 방문지: 산맥 아래, 봉인된 제2저장고.] 도현은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 지도의 가장자리는 훼손되어 있었지만, 저장고의 위치는 남아 있었다. 하르벤 관문에서 멀지 않은 옛 폐광 아래였다. 밖에서는 눈이 녹은 물이 처마를 따라 떨어지고 있었다. 폭설이 멎자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제1화덕으로 올라왔다. 그들은 새로 확보한 저장곡물을 함께 확인하고 부상자를 데려갈 썰매를 준비했다. 유르다는 도현이 조리한 국물을 사람들에게 나누며 수령한 만큼만 간단히 기록했다. “그래도 빵값은 안 받나요?” 한 사람이 물었다. “당장 값이 필요한 재료는 값을 쓰고, 함께 모은 것은 함께 쓴다고 적겠어요.” 유르다가 말했다. “받지 않은 식사까지 받았다고 하지는 않을 거고요.” 그 말만으로 왕국의 저주가 풀리지는 않았다. 아일린의 손등에 찍힌 검은 왕관도, 도현의 두 저주도 여전했다. 하르벤 사람들의 사정 또한 하루 만에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제1화덕은 적어도 다시 사람이 불을 지피는 곳이 되었다. 하르벤에서 올라온 마을 사람들은 먼저 밀로와 아버지를 확인했다. 마을 의원과 함께 온 여자는 밀로의 어머니였다. 아이가 눈 속에서 자신에게 달려오려고 하자 그녀는 다리가 아직 아프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천천히 다가와 안았다. “다시는 혼자 산에 올라오지 마.” “혼자 아니었어. 아빠랑 같이 왔어.” “아빠도 혼자 오지 말라고.” 아버지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모두의 표정이 풀어졌지만 누구도 이번 폭설로 피해를 본 다른 가정이 없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길을 따라 집들을 하나씩 확인할 예정이었다. 테온은 먼저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관문의 관리자에게 실제 식량과 허위 배급 기록을 다시 구분해 보자고 말할 생각이었다. 도현은 소년에게 왕실 조사 명령서를 맡기지 않았다. 성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을 아이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적어 둔 사실 목록의 사본을 건네고, 루카스에게 보낼 편지에 테온이 직접 겪은 일만 표시하게 했다. “아저씨도 돌아올 거죠?” “북쪽에 남은 일을 확인하고 돌아가야지.” “돌아오면 수프값은 제가 낼게요.” “그럼 그때 새로 만든 수프값만 받아야겠네. 예전에 먹은 것까지 청구하진 않을 거야.” 테온은 웃으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 모습은 처음 관문에서 서류를 내밀던 어른 앞에서 몸을 움츠렸던 아이와 조금 달랐다. 유르다는 빈 그릇을 다시 선반에 얹었다. 열두 개 화덕 모두에 불을 지피지는 않았다. 실제로 필요한 만큼만 나무를 썼고, 사람들이 돌아와 쉴 수 있도록 낮은 화덕과 중앙 난로만 남겼다. 그 조용한 선택이 도현에게는 제1화덕이 되살아났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 같았다. “세른의 생사를 확인하면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에스텔이 말했다. 유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찾게 되면 말해 줘. 하지만 찾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같이 빵을 굽던 사람들의 이름은 남겨 줘.” 도현은 그 약속을 수첩 맨 뒷장에 적었다. 누군가를 구원했다는 거창한 문장보다 남겨 둘 수 있는 일이었다. 저녁 무렵 루카스에게 보내는 봉인 편지를 완성하고 나서, 도현은 맨 마지막으로 기록 하나를 덧붙였다. [확인된 사실: 왕실이 공급하지 않은 밀가루를 왕실 제공분으로 계상한 기록이 존재함.] [미확인: 왕의 자필 최종 원본 여부, 세른의 생사, 제2저장고의 용도.] 브론이 지도를 두드렸다. “이번에는 산 아래로 내려가는 거네요. 산 위로 더 올라가진 않아서 다행입니다.” “저장고가 폐광 아래라면 더 내려갈 수도 있겠죠.” 도현이 말했다. “제 말을 왜 그런 식으로 받아치십니까?” 에스텔이 짧게 웃었다. 한참 만에 자연스러운 웃음이었다. 그때 상자 바닥에 남아 있던 금속판 하나가 스스로 따뜻해졌다. 희미한 글씨가 나타났다. [제1화덕 원본 기록 열람 완료.] [제2저장고의 증언 보관자: 미확인.] [경고: 안쪽 문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요구한다.] 도현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들은 이제까지 이름을 함부로 적지 않는 법을 배워 왔다. 그런데 다음 문은 이름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체 누가 그 문을 만든 겁니까?” 브론이 중얼거렸다. 도현은 부러진 숟가락을 천에 싸며 대답했다. “열기 전에 그것부터 알아내야겠죠.” 제1화덕의 불길이 조용히 흔들렸다. 불 뒤쪽의 검은 돌벽에서, 누군가 발걸음을 떼는 듯한 낮은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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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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