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은 밤새 화덕의 지붕을 두드렸다.
제1화덕은 산허리의 바위를 깎아 만든 건물이었다. 바람이 직접 들지는 않았지만 입구 틈으로 흰 가루 같은 눈이 쏟아졌고, 창고 문에는 얼음이 두껍게 붙었다. 테온은 새벽에 세 번 깼다. 어릴 때부터 눈이 많이 오는 밤이면 관문의 배급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괜찮아.” 브론이 아이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 주었다. “여긴 종이 없어.”
“종은 없어도 장부는 있어요.”
테온의 말대로였다. 중앙 돌상에는 밤새 같은 문장이 남아 있었다.
[미래 공급분 선차용 제안.] [승인 시 현재 허기 자동 정산.]
도현은 그 문구를 보자마자 거절 의사를 적었다. 빌릴 식량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정상적인 거래를 하면 됐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내일의 음식을 오늘 먹은 것으로 기록한다면, 하르벤에서 벌어지는 일이 반복될 뿐이었다.
“오늘은 뭘 먹죠?” 브론이 물었다.
“실제로 있는 걸 세어야죠.”
식재료를 작업대에 펼쳤다. 말린 콩 한 봉지, 밀가루 반 자루, 작은 양파 네 개, 당근 두 개, 소금, 리아가 준 빵 한 개. 버섯도 조금 남았다. 유르다의 창고에는 먹을 수 있는 보존식이 전혀 없었다. 마법으로 보관한 오래된 항아리는 조사 대상이었지 식사가 아니었다.
“제 몫을 줄이겠습니다.” 테온이 말했다.
“왜 네 몫을 먼저 줄여?” 도현이 물었다.
“저는 아직 작으니까요.”
“작을수록 필요한 음식도 있어. 허기만큼은 몸집으로 단정하면 안 돼.”
도현은 각자 몸 상태와 일할 양을 물었다. 산길을 치워야 하는 브론은 열량이 더 필요했고, 테온도 성장기였다. 에스텔과 유르다는 추위 속에서 충분히 먹지 못하면 마법이나 노동을 할 힘이 없었다. 도현은 자신의 몫을 적게 잡았다가 에스텔에게 들켰다.
“주방장이 쓰러지면 누가 밥하니?”
“당신도 할 줄 알잖아요.”
“양파를 태우는 법을 포함해서?”
“그럼 저도 충분히 먹겠습니다.”
오전에는 창고 벽에 붙은 오래된 화덕 사용표를 확인했다. 유르다는 눈이 쌓이면 작은 동굴로 이어지는 공기 통로가 막힌다고 했다. 통로가 막히면 화덕이 따뜻해도 연기가 빠지지 않았다. 브론과 테온이 바깥쪽 눈을 치우는 동안 도현은 긴 국물을 준비했다.
콩을 물에 충분히 불렸다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모자랐다. 그는 잘게 썬 당근과 양파를 먼저 볶아 풍미를 만들고, 남은 콩은 따로 압력 없는 무쇠솥에서 오래 끓이기로 했다. 국물이 모자라지 않도록 물을 더 넣되, 마지막에는 소금으로만 맛을 세우지 않고 구운 밀가루를 조금 풀어 고소함을 보탰다.
“이러면 그냥 묽은 국 아니에요?” 브론이 물었다.
“그렇죠. 먹지 않은 고기를 넣었다고 적지는 않을 겁니다.”
브론이 입을 다물었다. 세 번째 숟갈을 뜬 뒤에는 국물 맛이 괜찮다고 인정했다.
점심 전에 제1화덕 사람들은 굴뚝을 다시 점검했다. 바람이 반대로 불어 연기가 안쪽으로 밀려오면 산에서 고립된 사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테온은 작은 나뭇가지를 길게 묶어 통로를 살피고, 브론은 높은 굴뚝의 눈더미를 조심히 긁어 냈다. 유르다는 돌벽에 귀를 대어 안쪽 공기 흐름을 확인했다.
도현은 자신이 이 일에 가장 서툰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식당 주방의 환기 시설이라면 익숙했지만, 산속 공동 화덕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순서와 위험한 지점을 물어보고 적었다.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고 해서 불이 무조건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불이 아니라 사람이 있는 곳부터 따뜻하게 해야 해.” 유르다가 말했다. “벽 전체를 달구는 건 곡식이 충분할 때나 할 일이야.”
그들은 사용하지 않는 화덕의 입구를 막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업대 주변만 데웠다. 바깥에서 쌓은 눈을 녹이는 데 귀한 장작을 낭비하지 않도록 눈 녹이는 그릇은 난로 가까이에 놓았다.
테온은 이런 작업에 익숙했다. 언제부터 배웠느냐고 도현이 물으니 소년은 아버지가 겨울마다 가르쳤다고 했다. 아버지는 네 해 전에 산을 넘다 돌아오지 못했다. 관문 기록에는 그가 아직도 매년 같은 식량을 받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잖아요.” 테온이 말했다. “그런데 기록은 다 안다고 해요. 그래서 저는 그 장부가 싫어요.”
도현은 슬픔을 덮는 위로를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직접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날과, 문서에서 본 날짜가 같았는지 물었다. 테온은 모른다고 답했다. 도현은 모르는 칸을 비워 두고 소년에게 바뀐 것이 있으면 나중에 적자고 말했다.
불을 유지하기 위해선 장작도 아껴야 했다. 브론이 처음에는 큰 장작부터 넣으려 했지만 유르다가 말렸다. 굵은 장작은 타오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은 작은 불씨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얇은 나뭇가지가 더 중요했다.
도현은 그 원리가 요리에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뜨거운 불을 한 번 세게 넣는다고 훌륭한 육수가 나오지 않는다. 재료가 가진 맛을 끌어내려면 온도와 시간이 맞아야 한다. 그는 화덕의 불길을 지켜보다 오래전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배운 첫 수프를 떠올렸다.
그 수프는 너무 짜서 손님이 돌려보냈다. 당시 선배는 그릇을 버리며 한마디 했다. 이미 짠 국에 물만 더 부으면 양이 늘어나는 것이지, 손님에게 낼 수 있는 음식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 도현은 그날 밤 십여 번이나 다시 만들었다.
기억 저주가 지우려는 것 중에 이런 장면도 있었을까. 그는 옛 식당의 이름과 선배의 목소리를 되뇌었다. 이름은 아직 생각났지만 얼굴의 윤곽이 잠시 흐려졌다. 도현은 수첩에 떠오르는 대로 적었다.
“왜 그렇게 적으세요?” 테온이 물었다.
“나중에 잊으면 여기서 다시 읽으려고.”
“기억을 다 적을 수 있나요?”
“다 적을 순 없어. 그래도 남기고 싶은 건 남겨 둬야겠지.”
테온은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한 줄 더 적었다. 아버지는 눈이 오면 반드시 장갑을 말린 다음 잤다고. 특별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소년에게는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소년은 긴 끈을 다시 묶었다. 어른이 되면 배급 관리가 아니라 산길 안내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숫자로 세는 대신 사람을 집으로 데려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유였다.
브론이 멀리서 웃으며 외쳤다. “그럼 제가 첫 번째 손님입니다. 길을 잃는 데는 자신 있거든요.”
테온이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그 웃음이 그치기도 전에 밖에서 낯선 비명이 들렸다.
정오가 되자 화덕 바깥에서 비명이 났다. 테온의 것이 아니었다. 유르다가 입구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눈보라 속에서 작은 그림자 둘이 기어오고 있었다. 나무 썰매를 끌던 남자와 아이였다. 남자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아이는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하르벤 동쪽 오두막에서 왔습니다.” 남자가 가쁜 숨으로 말했다. “눈이 지붕을 눌러 무너졌어요. 아이가 다쳤습니다.”
그들을 들여오자 식사 인원은 일곱 명이 되었다. 이미 겨우 이틀 몫을 계산한 식량이었다. 도현은 솥을 보았다. 수프가 아직 절반쯤 남아 있었다.
“이 사람들이 먹으면 저희 내일이 부족해집니다.” 브론이 낮게 말했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먹이지 말자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방법을 알아야 해서요.”
“알아요.” 도현이 대답했다.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에스텔은 아이의 발목을 살폈다. 심한 타박상이었지만 뼈가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임시 부목을 대고 따뜻하게 감싼 뒤 열을 확인했다. 마법만으로 즉시 치료하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았다.
아이 이름은 밀로였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밀로는 눈을 뜨자 첫마디로 물었다.
“여기서 밥 먹으면 내 동생 것까지 빼앗아요?”
아버지가 급히 말렸다. “그런 말을 왜 해.”
“관문에서는 한 집이 받으면 집 전체가 받았다고 적잖아요.”
도현은 작은 그릇에 수프를 담으며 아이에게 설명했다. “네가 먹는 건 네 몫이야. 동생이 안 먹었다면 안 먹었다고 적으면 돼.”
아이의 표정이 풀렸다. 그러나 숟가락을 들자 중앙 돌상이 검게 빛났다.
[추가 손님 2명 확인.] [부족 식량 해결 조건: 제1화덕 원본 식사 수령 동의.]
유르다가 고개를 저었다. “저 문구에 동의하면 저 사람들은 백 년 전의 식사를 받은 것으로 처리될 거야.”
도현은 솥뚜껑을 열어 남아 있는 수프를 확인했다. 그는 손님의 이름을 문서가 아니라 식탁의 빈 자리에서 먼저 확인했다.
“실제로 만든 음식이 여기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 먹일 필요는 없어요.”
그때 중앙의 낮은 화덕 안에서 오래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하면 내일 누군가 굶을지도 모르지.”
도현이 대답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은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죠.”
돌상 위의 문구가 잠시 흔들렸다. 대신 새로운 질문이 나타났다.
[미래 공급분 없이 현재 식사 제공. 부족분의 책임을 누가 지는가?]
도현은 누구의 이름도 적지 않았다. 그는 일곱 그릇을 가지런히 놓고, 지금 구한 사람들부터 음식을 나누었다.
제12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