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배가 고프냐고 물어보라니요.”
도현은 낮은 화덕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문의 안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사람의 것처럼 거칠었다. 그런데 브론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불붙은 나무 냄새도, 살아 있는 사람이 내쉬는 숨결도 없었다.
“배가 고픕니까?” 도현이 물었다.
“나한테 묻지 말고 네 옆에 있는 아이에게 물으라는 거다.”
테온이 움찔했다. 그는 아침부터 말린 빵 한 조각만 먹었다. 산을 오른 뒤에는 배고프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도현이 돌아보자 소년은 괜히 짐꾸러미를 정리했다.
“먹고 싶니?”
“먹어도 빚이 안 생겨요?”
도현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 물음은 여기서 만들어질 음식의 맛보다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우리가 가져온 재료로 만들 거야. 원하지 않는 일을 시키거나 내일 몫까지 계산하지 않겠어. 네가 받는다고 선택했을 때 오늘 한 끼로 끝나는 거지.”
테온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화덕 문이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짚으로 만든 빵받침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아래 검은 돌에 작은 홈이 파여 있었다. 홈에서는 오래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식사 전 질문: 배가 고픈가?] [선택: 먹는다 / 먹지 않는다 / 나중에 먹는다.]
목소리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화덕의 돌이 과거의 질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치게 정교한 마법을 걸어 두었거나, 그 질문을 사라지지 않을 만큼 여러 번 반복했던 모양이었다.
“세른이 만든 장치야.” 에스텔이 말했다. “내가 어릴 때 저 화덕은 말을 하지 않았어. 다만 빵삽을 놓으면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손에 닿을 만큼 문이 내려왔지.”
“그럼 목소리를 입힌 건 나중 일이겠군요.”
“아니, 아마 내가 떠난 뒤일 거야.”
유르다가 나타나기 전에 도현은 화덕 앞의 대기 공간에서 오래된 식권 상자를 발견했다. 나무 상자는 뚜껑이 떨어져 있었고 안에는 사용하지 않은 검은 종이 대신 작은 나무패가 들어 있었다. 나무패에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세 종류의 그림만 그려져 있었다. 뜨거운 그릇, 손을 내미는 사람, 비어 있는 접시.
“이건 식권이 아니라 선택표 같은데요.” 브론이 말했다.
에스텔은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아주 어린 시절 세른은 사람들에게 글자를 읽으라고 하지 않았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으면 그릇 그림을 보여 주고, 나중에 먹고 싶으면 빈 접시 그림을 내밀었다. 아예 원하지 않는 사람은 나무패를 돌려놓았다.
“왕궁에선 이걸 전부 '배급 수령 기록'이라고 불렀지.” 에스텔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원래는 받기 전의 선택이었어.”
도현은 나무패를 테이블에 줄지어 놓았다. 한 장만 남아 있는 것도 있고, 가장자리가 너무 닳아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었다. 나무패가 어떤 시기에 사용됐는지, 왕궁의 장부와 정확하게 연결되는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하지만 최소한 식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손님의 의사를 먼저 확인하려 했다는 흔적이었다.
“이 방식은 우리가 쓸 수 있겠네요.” 도현이 말했다.
“우리 가게 손님들한테요?”
“네. 메뉴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으니까. 꼭 이 방식 그대로는 아니어도요.”
브론은 뜨거운 그릇 그림을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저는 이걸 여러 장 들고 있어야겠습니다. 배가 자주 고프거든요.”
“한 사람에게 한 장으로 충분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한정 주문하라는 표도 아니에요.”
브론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도현은 조금 웃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식권이라는 단어가 빚이 아닌 선택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중앙 주방의 뒤쪽에는 마른 장작과 곡식 자루를 넣는 창고가 있었다. 그들은 창고의 자물쇠를 함부로 뜯지 않고 바깥에 놓인 빈 화덕을 쓰기로 했다. 도현은 자기 자루에서 밀가루를 꺼내었다. 소금과 따뜻한 물, 전날부터 담가 둔 발효종 한 병. 왕도를 떠나며 준비한 것이었다.
“빵을 여기서 굽습니까?” 브론이 물었다.
“식빵처럼 폭신하게 만들기는 어려워요. 산에서는 수분을 조금 줄인 납작한 빵이 낫겠어요. 쉽게 나누고 나중에 데워 먹을 수도 있으니까.”
도현이 양손을 쓰려다 왼손이 굳자 에스텔이 반죽 그릇을 붙들었다. 브론은 오른손만으로 반죽을 뒤집는 방법을 배우며 몇 번이고 밀가루를 팔에 묻혔다. 테온에게는 작은 덩어리 하나를 주어 직접 둥글게 밀어 보게 했다.
“모양이 못생겼어요.” 테온이 말했다.
“다 같은 모양일 필요는 없어. 가운데 두께만 비슷하게 맞추자.”
그들은 돌 위에 놓인 둥근 팬을 먼저 덥히고 빵을 한 장씩 구웠다. 첫 장은 겉만 타고 속이 덜 익었다. 도현은 불을 약하게 하고 팬과 숯 사이에 철판 한 장을 끼웠다. 두 번째부터는 윗면에 작은 기포가 올라오고, 뒤집으면 갈색 반점이 고르게 생겼다.
따뜻한 빵 냄새가 퍼지자 제1화덕의 다른 문에서도 작은 소리가 났다. 열두 개 화덕 가운데 셋이 동시에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사람 대신 식기들이 있었다. 나무그릇, 벗겨진 놋잔, 닳은 숟가락. 각각에 서로 다른 높이로 눈금이 그어져 있었다.
“이건 뭐죠?” 브론이 물었다.
도현은 그릇 안쪽을 보았다. 가장 작은 것에는 한 끼 분량의 표시가 없었다. 대신 아이 손바닥 크기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먹는 사람의 필요에 따라 그릇 크기를 바꿨나 봅니다.”
테온은 자기 빵을 반으로 갈라 한쪽을 주머니에 넣었다. 도현은 모른 척했다. 아이가 남기는 이유를 추궁하면 식사가 또 하나의 시험이 될 터였다.
도현은 다른 화덕 하나도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손대기 전에 안전을 살폈다. 낮은 화덕에는 수십 년 동안 사람이 들어가지 않았을 작은 통로가 있었고, 그 위에 무너진 돌 한 장이 걸려 있었다. 무작정 열었다면 돌이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들은 바닥에 있는 부서진 빵삽을 치우고,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냉기를 확인했다. 브론의 후각에는 재 냄새보다 비누 냄새가 더 진했다. 에스텔은 그 냄새를 듣자 말라가 입었던 깨끗한 앞치마를 떠올렸다.
“왕궁의 없는 부엌하고 닮았어.”
“하지만 여기에는 무인 조리 소리가 없습니다.” 도현이 말했다. “냄새만으로 같은 장치라고 볼 수는 없겠죠.”
브론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코를 찡그렸다. “아직도 오래된 행주를 삶은 냄새가 나요. 누군가 관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도현은 바닥의 발자국과 최근 청소한 흔적을 따로 기록했다. 문을 열기 위한 장치와 누군가 안에서 움직였다는 단서는 서로 다른 이야기였다.
에스텔은 오래된 화덕 벽에 손을 댔다. 그녀는 이곳을 기억했지만, 시간이 멈춘 공간은 아니었다. 누군가 찾아왔고, 누군가는 장작을 치웠을 것이다. 세른이 죽었다는 소문도 어쩌면 누군가 자신들에게 믿게 만든 기록이었을지 몰랐다.
그 생각에 그녀는 작은 화덕 문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만나기를 바라면서도 만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살아 있다면 왜 찾으러 오지 않았는지 묻고 싶고, 살아 있지 않다면 그 질문을 영원히 할 수 없게 될 터였다.
식사를 마칠 무렵 뒤쪽 문이 삐걱거렸다. 긴 망토를 걸친 여자가 서 있었다. 얼굴 절반은 털모자로 가렸고, 한 손에는 작고 날카로운 얼음도끼를 쥐고 있었다.
“불을 누가 피웠지?”
“저희가요.” 도현이 대답했다.
“제1화덕은 꺼진 지 오래야. 아무나 불을 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에스텔이 일어났다. “우리는 원본 기록을 조사하러 왔어요.”
여자가 에스텔의 손에 들린 부러진 숟가락을 보았다. 도끼 끝이 바닥을 긁었다.
“그 물건을 어디서 구했지?”
“왕도에서요.”
여자는 한참 침묵하다 털모자를 벗었다. 오른쪽 귀에 오래된 화상 흉터가 있었다.
“나는 유르다. 이곳의 마지막 화덕지기야.”
그녀는 가장 낮은 화덕의 열린 문을 바라봤다. “저 문이 열렸다면 이미 들었겠군. 배고픔을 먼저 묻는 목소리.”
“그 질문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도현이 물었다.
유르다는 빵 한 조각을 집어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왕궁 사람들이 제일 먼저 지워 버린 말이니까.”
제12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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