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로 가는 길은 큰 지도에서 보면 한 줄이었다.
실제로는 수십 개의 굽이와 돌무더기, 바람이 파낸 골짜기를 지나야 했다. 수레를 모는 노인 펠그는 하루에 두 번씩 바퀴를 세웠다. 말에게 숨을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산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절반은 너무 빨리 가려던 사람들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도현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 왼손을 살폈다. 손가락 끝이 차가운 쇠처럼 무뎌질 때면 억지로 움직이지 않고 손난로를 품었다. 저주가 새로 늘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래된 석화가 추위와 함께 심해지는 듯했다.
둘째 날 해질녘, 길가에 쓰러진 이정표가 나타났다.
[하르벤 관문. 통행객 식량 배급 완결.]
표지 아래에는 창고 지붕이 내려앉은 작은 마을이 있었다. 집들은 눈이 쌓인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곳은 몇 채뿐이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는 밥 냄새가 아닌 잉크 냄새가 풍겼다. 창고 앞에서 공무원 둘이 장부를 펼쳐 놓고 있었다.
“통행인은 배급 완료 확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관리 하나가 말했다. “여기 들어오는 순간 왕국에서 정한 산악식량을 수령한 것으로 처리됩니다.”
브론이 입을 벌렸다. “저희는 아직 아무것도 못 먹었는데요?”
“관문 이용료에는 식량 제공 비용이 포함됩니다.”
“그럼 식량을 주십시오.”
“본 시설은 지난해부터 재고가 없습니다.”
도현은 놀라지도 않았다. 루덴의 검은 밀밭과 벨로스의 창고에서 이미 여러 번 들었던 말이었다. 여전히 낯설지 않은 것이 더 속상했다.
“수령 확인에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통행 허가는 통행 허가대로, 식량은 식량대로 처리하시죠.”
관리는 미간을 구겼다. “그렇게 하면 관문 장부에 결손이 생깁니다.”
“빈 창고에서 결손이 생긴 건 저희가 오기 전입니다.”
에스텔이 통행증을 보여 주었다. 왕실 조사 권한을 본 관리들은 잠시 망설였지만 길을 막지는 않았다. 대신 도현 일행의 뒤에 서 있던 산꾼 세 명의 이름을 한 장부에 적었다. 그중 가장 어린 소년은 손에 새파란 동상 자국이 있었다.
“왜 저 아이들에게 배급 완료를 기록하죠?” 도현이 물었다.
“그들은 이 관문을 매일 오갑니다. 그렇게 적지 않으면 다음 달 식량을 신청할 수 없습니다.”
식량을 받았다고 거짓말해야 다음 식량을 신청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도현은 관문 옆의 쓰지 않는 작은 쉼터를 빌렸다. 문이 삐걱거리고 벽에는 틈이 있었지만 바람을 막기엔 충분했다. 그는 물을 끓이고 말린 콩을 한 줌 넣었다. 콩이 익는 동안 당근을 잘게 썰어 볶았다. 오른손만으로 작업하니 평소보다 두 배는 걸렸다. 브론은 이번에는 칼 대신 작은 집게로 당근을 팬에 옮겼다.
“지난번보다 손가락이 안전하죠?”
“네. 지금은 음식만 위험해 보입니다.”
“어째서요?”
“당근이 팬 밖으로 도망갑니다.”
몇 번의 실수 끝에 수프가 완성됐다. 도현은 산꾼 세 명에게 먼저 가격을 말했다. 동화 한 닢씩. 돈이 부족한 소년에게는 수프를 만드는 동안 부엌을 정리해 준 일을 대가로 인정해도 되는지 물었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것을 기록했다. 공짜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내일을 묶고 싶지 않았다.
소년의 이름은 테온이었다. 그는 뜨거운 그릇을 들고도 한참 먹지 않았다.
“왜 그러니?” 에스텔이 물었다.
“다 먹으면 내일 아침 몫이 없어져서요.”
“내일 아침은 내일 정하면 돼.”
“그렇게 말하면 산에서는 굶어요.”
테온은 진지했다. 도현은 그 말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오래 익힌 생존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여분의 빵 두 개를 보여 주었다.
“이건 오늘 수프와 별개다. 네가 원하면 내일 아침에 네 돈으로 살 수 있어. 지금 먹으라고 강요하지 않겠다.”
소년은 한참 생각하다 한 숟갈을 먹었다. 추위로 갈라졌던 입술 사이에 김이 서렸다.
수프를 먹은 뒤 도현은 관문 관리자에게 보관 방식부터 물었다. 관리가 처음에는 면담을 거절했지만 왕실 조사 명령서의 정확한 범위가 적힌 면을 보여 주자 장부 표지만은 공개했다. 도현은 사적 손님 정보를 요구하지 않았고, 실제 창고의 재고표와 제공 기록만 대조했다.
창고에는 오래된 보리 자루 하나가 있었다. 자루 입구에는 봉인이 찍혀 있었으나 밑부분이 뜯겨 있었다. 관리에 따르면 흉년 때 누군가 훔쳐 가서 지금까지 재고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매일 채워 넣는 장부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방어 수단이라고 여겼다.
“수령했다고 적지 않으면 위에서 배급 실적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러면 다음 달에는 아예 식량을 내려보내지 않아요.”
관리의 두 눈에는 피로가 엉겨 있었다. 도현은 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왕도에서 내려온 지시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몰아붙였는지 알 수 있었다.
“거짓 수령 처리한 숫자와 실제로 비어 있는 창고를 구분해 적을 수 있습니까?”
“그러면 저한테 빚을 물을 겁니다.”
“당장 해결해 드린다고 약속하진 못하겠습니다. 다만 임시 정지 명령은 왕도에서 내려왔고, 이렇게 적는 일이 왜 필요했는지 설명할 자료가 됩니다.”
관리의 손끝이 떨렸다. 그는 잠시 문밖을 본 뒤 별도의 작은 쪽지에 오늘 실제 방문자 수와 수프를 먹은 사람 수를 적어 주었다. 그것은 장부를 바로잡은 기록이 아니라 고칠 수 있는 기록의 출발점이었다.
테온은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평소 그 관리에게 혼난 일이 많았지만, 오늘은 오랜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쉼터로 돌아오는 길에 소년이 물었다.
“어른들도 무서워서 거짓말을 하나요?”
“그럴 때가 많아. 하지만 무섭다고 해서 거짓말이 맞는 건 아니겠지.”
“그럼 관리 아저씨는 나쁜 사람이에요?”
“나도 아직 모르겠어. 다만 누가 시켰는지와 실제 무엇을 했는지는 나눠서 봐야겠지.”
테온은 그 말을 곱씹으며 자신의 동상 난 손을 호호 불었다. 잠시 뒤 그는 도현에게 뜨거운 물이 담긴 손그릇을 건네 주었다. 도현도 왼손에 감각이 줄어 있다는 걸 알아챘던 것이다. 그 작은 배려가 뜻밖에 따뜻했다.
관문 부근에서 사람들의 신발을 고치는 노파가 쉼터 문을 두드린 것은 수프 냄새가 골목을 채울 때였다. 그녀는 음식을 얻어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밤중에 눈길로 나가지 않도록 알려 주러 왔다. 산에서는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바로 옆의 등불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도현이 따뜻한 물을 내자 노파는 벽난로 곁에 앉아 테온의 신발을 살폈다. 발뒤꿈치가 거의 떨어져 있었지만 아이는 새 신발을 살 돈이 없어 천으로 감아 신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산을 오를 수 없다.” 노파가 말했다.
테온은 고개를 숙였다. 도현은 곧장 돈을 내는 대신 노파에게 수선 비용을 물었다. 노파는 금속 못 세 개와 가죽 한 조각만 있으면 고칠 수 있다고 했다. 브론이 가방에서 못을 찾아냈고, 펠그가 버린 낡은 고삐의 가죽이 쓰였다.
테온은 수선이 끝날 때까지 신발을 벗고 있었다. 노파는 돈을 받으면서도 가죽은 원래 버릴 물건이었다며 가격에서 제외했다. 도현은 그 구분을 기록했다. 누군가의 호의는 빚이 되지 않아야 했다.
수선한 신발을 신어 본 소년은 쉼터 안을 두 바퀴 걸었다. 무릎에 닿던 찬바람이 조금 덜 들어왔다. 도현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반드시 수령했다고 적어야 하는 식량보다, 이런 실제 도움이 더 절실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자 마을의 낡은 종이 울렸다. 지붕 위로 눈이 미끄러져 떨어졌고, 관문 장부가 혼자서 펄럭였다. 도현은 쉼터 창문으로 관리를 지켜보았다. 그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한밤중에도 '배급 완료' 표시를 계속 찍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누구에게 식사를 준다는 거죠?”
테온은 낮게 대답했다. “발자국에도요.”
“발자국?”
“제1화덕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눈 위에 사람 발자국이 찍혀요.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보여요. 관문은 발자국 숫자만큼 식량을 지급했다고 적어요.”
브론의 귀가 쫑긋 섰다.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막 내린 눈 위로 곧장 이어지는 발자국 줄이 있었다. 사람 하나가 지나간 크기였지만, 자국마다 똑같은 깊이로 찍혀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든 사람도, 다리를 저는 사람도 모두 같은 걸음을 걸을 수는 없었다.
에스텔은 서둘러 낡은 숟가락을 꺼냈다. 손잡이 흠집 안쪽에 옅은 불빛이 돌았다. 눈 위의 발자국이 관문 문턱에서 사라졌다.
“저 길,” 그녀가 말했다. “예전에는 빵을 나르던 길이었어.”
“지금은 누가 나르고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대답은 눈 아래서 돌아왔다.
[하르벤 관문 미수령 식량: 412인분.] [운송 중으로 간주.]
숫자는 발자국 개수와 일치하지 않았다. 도현은 곧바로 한 가지를 수첩에 적었다. 눈은 발자국을 보여 주었지만, 장부가 세고 있는 것은 사람도 발자국도 아닐 수 있었다.
먼 산 위에서 작은 붉은 불 하나가 켜졌다. 테온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1화덕입니다. 몇십 년 동안 꺼져 있었는데.”
제1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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