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문틈으로 들어온 북풍은 콩을 불리던 그릇의 표면에 잔물결을 만들었다.
밤새 내린 비가 마른 왕도에는 아직 가을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나무 상자를 놓고 간 사람의 발자국 주변에만 희끗한 서리가 끼어 있었다. 브론은 현관을 세 번이나 드나들며 코를 킁킁거렸다.
“이상합니다. 사람이 왔다 간 냄새는 있는데, 돌아간 발자국이 없어요.”
“마법 배달이겠죠.” 도현이 말했다.
“마법으로 배달하면 배달료도 마법으로 냅니까?”
“사장님께 물어보세요. 우리 식당 장부에 배달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에스텔은 농담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무 상자 속의 부러진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만지던 손이 멈춰 있었다. 숟가락 손잡이에는 깊은 흠집 두 개가 있었고, 끝부분은 뜨거운 금속을 억지로 구부린 듯 비틀려 있었다.
“세른이야.”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 사람 이름입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를 이 식당으로 데려온 사람이야. 마법을 쓸 줄도 모르던 시절이었지. 세른은 화덕을 고치는 사람이었어. 빵을 만들기보다 빵이 제대로 구워질 자리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에스텔은 상자 속 빵 조각을 가리켰다. 반쪽으로 잘려 나간 검은 빵이었다. 겉껍질에 찍힌 세 갈래의 선은 하나가 그려 보인 보호의 매듭과 닮았다.
“세른은 내게 말했어. 굶는 사람 앞에서 계약서를 먼저 내미는 사람을 믿지 말라고.”
“그런 사람이 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마지막으로 본 날, 제1화덕이 무너졌다고 들었어.”
말을 마치자 에스텔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살아 있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백 년 가까이 입에 올리지 않은 탓이었다.
다음 날 아침, 왕궁의 연락관 루카스가 찾아왔다. 왕실의 자동 대리 지정은 임시로 정지됐지만, 피해 접수와 개별 기록 대조는 계속해야 했다. 아일린 공주는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북쪽으로 떠날 수 없었다. 왕위에 남아 책임을 밝히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면, 당장 왕도에서 할 일이 많았다.
“전하께서 떠나기 전 이걸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루카스가 내민 것은 왕실의 인장이 찍힌 통행증 세 장과 빈칸이 많은 조사 명령서였다.
“왜 빈칸이 이렇게 많죠?” 브론이 물었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사실은 적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도현이 웃었다. “그건 마음에 드네요.”
하지만 통행증만으로 추위를 견딜 수는 없었다. 북부 산맥은 루덴보다도 훨씬 멀고 높았다. 왕도에서 산기슭까지 수레로 사흘, 그 뒤에는 염소도 버거워한다는 계단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은 여행용 식재료를 정리했다. 말린 콩, 밀가루, 당근, 양파, 소금. 이전 같으면 빠르게 칼질했겠지만 왼손 손가락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는 도마를 젖은 천으로 고정하고 오른손으로 천천히 당근을 잘랐다. 모양이 고르지 않은 것을 보던 브론이 조심스럽게 칼을 달라고 했다.
“제가 대신 자르겠습니다.”
“배워야 합니다. 손님이 없을 때 조금씩이라도.”
“그럼 제가 배워도 됩니까?”
“당근을 말하는 거죠?”
“칼 쓰는 법부터요. 매번 설거지만 하면 제 경력이 늑대인간 설거지 전문가로 굳을 겁니다.”
도현은 칼을 건넸다. 브론이 첫 당근을 두 동강 내자 도마 아래에서 칼끝이 삐져나왔다. 도현은 즉시 그의 손을 멈추게 했다.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일은 용기보다 먼저 손가락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했다.
여행 준비에는 돈도 들었다. 도현은 식당 금고를 열어 은화와 동화를 세어 보았다. 왕실 조사가 시작된 뒤 손님이 늘기는 했지만 외상값을 내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은 저주를 안고 찾아온 사람들이었고, 음식값을 받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게의 장작과 소금값은 계속 나갔다.
“그냥 왕궁에 청구하면 되잖아요.” 브론이 말했다. “공주님도 우리가 일하는 걸 아시니까요.”
“왕실 조사에 필요한 통행과 기록 복사 비용은 청구할 수 있겠죠. 그런데 여행 중 우리가 먹을 빵까지 왕실에 청구하면 실제 누가 먹었는지 복잡해집니다.”
“그럼 제 먹는 양이 문제입니까?”
“그건 원래 문제죠.”
브론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식당 금고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도현은 하루 식사량을 넉넉하게 잡고, 다른 지출과 분리해 적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손님에게 음식값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메뉴판에 자세히 적을 생각이었다.
그 무렵 에스텔은 주방 구석의 낡은 천을 꺼내고 있었다. 검은 얼룩이 남은 장갑 한 짝과 어린아이 손목만 한 가죽끈이 들어 있었다. 도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오래전 산에서 도망치던 날 세른이 묶어 준 물건이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마녀라는 이유로 마을에서 쫓겨났어. 사실 마법을 제대로 쓸 줄도 몰랐는데 사람들이 겁을 먹었지. 눈이 많이 와서 길까지 막혔고.”
“세른이 구해 줬습니까?”
“따뜻한 물을 주고, 내게 먹을지 말지 물었어. 그리고 내가 아무 말도 못 하니까 그냥 앉아서 기다렸지.”
에스텔은 가죽끈의 한쪽 끝을 폈다. 세 갈래의 매듭 가운데 가운데 줄이 헐거웠다.
“나는 그때부터 누가 굶으면 무조건 먹이면 되는 줄 알았어. 그래서 저주받은 식당에서도 손님을 고쳐 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지. 나중에 요리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면서도.”
도현은 잠시 손을 멈췄다. 그녀를 용서한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었다. 왼손의 통증과 사라진 어머니의 미역국 맛이 그 사실을 매번 떠올리게 했다.
“세른을 만나면 말하세요.”
“뭐라고?”
“배운 걸 잘못 썼다고요. 그리고 이번에는 고치려고 왔다고요.”
에스텔은 천을 다시 접었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장갑은 여행 가방 맨 위에 넣었다.
정오 무렵 아일린이 직접 식당을 찾아왔다. 왕관 문양은 아직 손등에서 꿈틀거렸고, 얼굴에는 잠을 설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북부에 관해 왕실 기록에서 찾은 한 줄을 읽어 주었다.
[제1화덕에 보관된 최초 빵은 제공 완료로 처리하지 않는다. 보관 이유: 수령자 거절.]
“보관했다면 누군가 먹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도현이 말했다.
“그렇지만 누가 거절했는지는 두 장부에 다르게 적혀 있어요. 한쪽은 왕, 다른 한쪽은 어린아이입니다.”
에스텔이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배가 고팠어. 거절한 것은 빵이 아니라 조건이었지.”
“직접 보셨습니까?” 아일린이 물었다.
에스텔은 곧장 답하지 못했다. “전부 보지는 못했어. 세른에게 들은 이야기와 내가 본 장면이 섞여 있어.”
도현은 그 차이를 기록했다. 사라진 세월을 복원하려면 애틋한 기억조차 증거인 척하지 않아야 했다.
오후에는 문단속을 맡을 사람을 정했다. 식당을 완전히 닫으면 곤란했다. 왕도에는 여전히 따뜻한 식사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었고, 가게 이름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마르타가 며칠씩 주방을 돌보기로 하고, 리벨은 장보기와 장부 정리를 돕겠다고 했다. 둘 모두 자신의 생활이 있었기에 도현은 근무 날짜와 대가부터 협의했다.
“안 계시는 동안 저주받은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하죠?” 마르타가 물었다.
“억지로 치료 음식을 만들지 마세요. 따뜻한 식사와 안전한 곳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저주를 옮기는 조리법은 아직 위험합니다.”
도현은 손목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다른 요리사에게 아무 설명 없이 위험을 넘길 생각은 없었다.
에스텔이 뒤늦게 작은 안내문을 작성했다. '저주 해제는 효과와 위험을 확인한 뒤 진행합니다.' 아주 짧은 문장이었다. 그녀는 그 문장을 문 위에 붙이는 동안 오래 머뭇거렸다.
“이 말을 백 년 전에 썼어야 했는데.”
“지금부터라도 써 두죠.”
도현이 말했다. 식당 문을 닫는 마지막 순간, 에스텔은 불이 완전히 꺼졌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것은 세른에게 배운 오래된 습관이었다.
출발 직전, 소녀 리아가 식당에 와서 얇은 천 주머니를 건넸다. 어머니와 다시 만난 뒤 조금씩 배워 만든 빵이었다. 작은 빵 다섯 개는 모양이 저마다 달랐고, 겉에는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산에 가시면 따뜻하게 드세요. 빵에는 저주가 안 들어갔어요. 그냥 제가 만든 거예요.”
도현이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그게 가장 좋은 빵이야.”
수레가 북문을 떠날 때 아일린은 끝까지 손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든 루카스와 돌아서서 접수 창구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왕도가 할 일을 멈추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북문을 벗어나자 평지의 햇빛이 누그러지고 멀리 회색 산등성이가 보였다. 에스텔은 품속의 숟가락을 꺼내어 곧게 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세른이 살아 있다면,” 그녀가 말했다. “나를 보면 반가워할까?”
도현은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대신 식량 자루 맨 위에 빈 접시 하나를 얹었다. 누가 오든 그 사람의 몫을 먼저 묻기 위한 접시였다.
해가 저물 무렵 빈 접시 가장자리에 작은 서리가 피었다. 그 위에 글씨가 나타났다.
[제1화덕 방문 자격 확인.] [원제공자의 식사는 아직 식지 않았다.]
브론이 접시를 뒤집었다. 뒤쪽에는 누구도 새기지 않은 세 갈래의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제121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