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종은 아주 길게 울렸다.
왕궁의 탑만이 아니라 왕도의 거리와 집들이 그 소리를 함께 받았다. 도현은 숨을 삼켰다. 종소리는 귀보다 먼저 손목으로 전해졌다. 석화 저주가 굳어 가는 부위가 열을 품었고, 기억 저주는 눈앞의 장면을 먼 과거처럼 흐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남쪽 별채 지하의 제0식탁. 자신 옆에는 에스텔이, 맞은편에는 아일린과 하나가 있었다.
돌판 위의 일곱 그릇에서 검은 물이 차올랐다.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도 물결이 일렁였다. 발테르는 문서철을 들어 올렸다.
“최후 조리자에게 대가를 귀속한다!”
검은 글자가 허공에 번졌다. 도현의 이름이 그 안에 나타났다. 그러나 마지막 획이 완성되기 전에 루카스가 문서를 펼쳤다.
“이의 신청 접수 기록이 있습니다. 당사자의 동의도 없고, 원본 인장도 대조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서류로 왕국의 의무를 거부할 수는 없다!”
발테르가 외쳤다. 벽이 흔들리며 조리실에서부터 검은 실이 쏟아졌다. 열여섯 개의 얇은 식권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종이마다 사람의 이름을 새길 빈칸이 있었다. 발테르가 손을 뻗자 빈칸이 도현을 향해 움직였다.
브론이 몸을 던졌다. 늑대인간의 손톱이 공중의 종이를 찢으려 했지만 검은 실은 종이를 다시 이어 붙였다.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지워지지 않는 글씨가 더 무서운 곳이었다.
“그렇게 하면 계속 생깁니다!” 도현이 소리쳤다. “원본과 대조해야 해요!”
에스텔은 부러진 주걱을 돌판의 가장 오래된 홈에 끼웠다. 금속이 맞닿자 낮은 울림이 났다. 그녀는 지친 얼굴로 발테르를 바라봤다.
“당신이 가져온 건 원제공자의 인장이 아니야.”
“이 왕국이 백 년 동안 승인한 인장이다!”
“백 년 동안 틀렸다고 해서 맞게 되는 건 아니지.”
말라가 제0식탁의 다른 끝으로 갔다. 그녀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기록과 오랫동안 대신 일했다고 쓰인 장부를 나란히 놓았다. 실제 노동과 만들어 낸 노동을 구분한 증거였다. 오르델은 초기 인장 등록책을 펼쳤고, 루카스는 하나가 자신의 기억으로 그린 그림임을 명시한 진술서를 옆에 놓았다.
어느 하나만으로 진실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기록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본 인장은 작은 손을 보호했고, 뒤집힌 인장은 작은 손을 붙잡았다.
도현은 오른손으로 자기 수첩을 펼쳤다. 제0식탁에서 처음 끓였던 보리 수프의 조리 기록이었다. 재료를 산 사람, 간을 본 사람, 불을 지핀 사람, 실제로 한 숟갈을 먹은 사람. 그리고 아직 먹지 않은 절반의 수프.
“왕이 먹지 않은 식사를 누군가 대신 먹었다고 적는 순간부터 이 일이 시작됐습니다.”
발테르가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 오늘 누가 그 식사를 완성할 것이냐?”
“아직 모릅니다.”
도현이 대답하자 돌판이 요동쳤다. 발테르는 기회를 잡은 듯 웃었다. 하지만 도현은 다음 말을 멈추지 않았다.
“모르면 모른다고 적겠습니다. 모르는 걸 채우려고 사람 이름을 집어넣지 않겠습니다.”
그는 남은 수프 그릇을 들어 올렸다. 시간이 지나 미지근해졌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실제로 만든 음식이 있었다. 도현은 별도의 새 그릇에 남은 수프를 옮기지 않았다. 자신이 한 숟갈 먹은 사적 식사에 왕위의 값을 덧씌우는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제 식사입니다. 왕이 먹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왕의 몫을 먹은 건 아닙니다.”
돌판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실제 식사: 확인.] [왕위의 미지급 의무: 별도.] [대리 수령 등록: 근거 부족.]
발테르의 검은 장갑에서 실 한 가닥이 끊어졌다. 그는 손을 움켜쥐었지만 글씨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검은 식권들은 공중에서 방향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중 한 장은 도현의 발끝에서 멈췄다. 번호 11이 두 번 찍혀 있었다.
아일린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왕국의 원본 책임을 인정합니다. 다만 누가 언제 어떤 대가를 지기로 했는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확인 전에는 백성의 이름으로 채무를 옮기지 못하도록 명령하겠습니다.”
그녀가 왕실 인장을 찍자 돌판에 긴 균열이 생겼다. 검은 물이 바닥에 떨어질 듯 흔들렸지만, 그릇은 깨지지 않았다.
[제0식탁 자동 대리 지정: 임시 정지.]
[정지 사유: 원본 인장과 현행 인장의 불일치.]
[재심사 조건: 최초 채무자의 자필과 원제공자 표시 확인.]
사람들이 숨을 내쉬었다. 루카스는 문장을 한 글자씩 베껴 적었다. 누구도 왕국 전체의 저주가 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실제로 아일린의 손등에서는 검은 왕관이 여전히 움직였고, 도현의 왼손도 굳어 있었다. 다만 발테르가 당장 누군가를 지목해 저주를 떠넘기는 길 하나는 막혔다.
발테르는 손등을 감싼 채 뒤로 물러섰다.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자네들은 시간을 벌었을 뿐이야.”
“시간도 필요합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그동안 사람이 밥을 먹어야 하니까요.”
그 말에 브론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는 아침도 못 먹었습니다.”
누군가 피식 웃었다. 긴장 속에서 나온 작은 웃음이었다.
일행이 제0식탁의 물품을 봉인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왕도에는 해가 기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이 울린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서로 묻고 있었다. 아일린은 즉시 임시 정지 명령을 공개하고, 피해자들의 개별 청구가 자동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함께 알렸다. 이겼다고 말하기에는 남은 일이 너무 많았다.
그날 밤 식당으로 돌아온 도현은 왼손을 찬물에 담갔다.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저녁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궁문 앞에서 기다리던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기록을 제출하기 위해 줄을 섰지만, 이전보다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사람도 있었다. 오늘 접수한 서류가 모두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일 다시 찾아와도 자신이 말한 내용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얼굴이었다.
아일린은 해가 지기 전에 왕실의 임시 명령서를 세 장으로 나누어 공개했다. 한 장은 제0식탁 대리 지정의 정지, 한 장은 개별 채무 기록의 보존, 마지막 한 장은 피해자의 이의 신청 절차였다. 그녀는 '사면', '완치', '완전한 면책' 같은 말을 쓰지 못하게 했다. 그 단어들은 지금의 성과보다 너무 컸다.
루카스는 밤늦게까지 서류를 대조했다. 183,442명의 명부 가운데 실제 현재 인원과 오래된 누적 기록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총수가 일치한다고 사건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지금 세고 있는 건 사람일 수도 있고 청구서일 수도 있습니다.”
도현이 물었다. “둘이 섞여 있으면요?”
“분리해야죠. 사람은 한 번만 살아 있고, 청구서는 얼마든지 중복될 수 있으니까요.”
브론이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식당 앞에 줄 서 있는 손님 수는 믿을 수 있죠?”
“손님들이 실제로 서 있으면요.” 도현이 대답했다.
“그건 제가 셀 수 있습니다.”
에스텔은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곧 조용해졌다. 그녀는 지하실에서 발테르의 장갑이 찢어졌을 때 보였던 자국을 생각하고 있었다. 손가락 안쪽에 새겨진 오래된 화덕 번호. 이름이 아니라 기능만 남긴 흔적이었다.
“발테르는 단순히 서류를 관리한 사람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 인장에 오랫동안 손을 대 온 사람의 흔적이 있었어.”
“그가 원본을 바꿨을까요?” 도현이 물었다.
“그 이전부터 인장이 바뀌고 있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 사람이 계속 유지해 온 것은 맞는 것 같아.”
도현은 새로운 수첩 첫 페이지에 '인장을 바꾼 사람'과 '인장을 계속 사용한 사람'을 구분해 적었다. 같은 사람일 수도,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그 차이가 다음 사건의 핵심일지 몰랐다.
그는 손가락을 한 번 더 움직여 보았다. 접히기는 했지만 매끄럽지 않았다. 오늘은 혼자 칼을 쥘 수 없을지도 몰랐다. 대신 다음 날 메뉴판을 적을 수는 있었다. 도현은 한 손으로 글씨를 썼다. '양파 수프, 감자구이, 따뜻한 빵.' 특별한 마법은 없는 메뉴였다.
“내일은 꼭 장사합시다.” 브론이 말했다.
“내일 아침까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봐야죠.”
“그런 말 하시면 꼭 일이 생기더라고요.”
도현은 입꼬리를 올렸다. 예상대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 직후였다. 누군가 밤이 깊은 골목에서 식당 문 앞에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있었다. 손가락 끝은 조금 움직였지만 통증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오른손으로 하루 동안 적은 기록을 정리했다. 말라의 생존은 확인됐으나, 북부에서 사라진 열여섯 요리사의 생사와 위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열여섯 식권은 증언을 보관하는 문서일 뿐 사람의 행방을 증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183,442명과 연결된 저주도 그대로였다. 자동 대리 지정이 멈춘 것과 그들이 자유로워진 것은 다른 문제였다.
에스텔이 문을 닫으려 할 때 누군가 식당 앞에 작은 나무 상자를 놓고 갔다. 상자에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도현은 안전을 확인한 뒤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부러진 숟가락 하나와 오래된 빵 조각이 담겨 있었다. 빵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멀쩡했고, 포장지에는 그 시대의 문자가 쓰여 있었다.
[왕이 거절한 첫 식사. 원제공자의 마지막 기록은 서쪽이 아니라 북쪽에 있다.]
뒤집힌 포장지에는 항구와 온실, 왕궁을 연결한 거친 지도가 있었다. 그 끝에는 눈 덮인 산맥 안쪽의 한 점이 찍혀 있었다. 점 옆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제1화덕. 최초 제공자에게 돌아가지 못한 빵을 보관함.]
도현은 지도를 테이블에 펼쳤다. 에스텔은 아무 말 없이 숟가락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래전에 본 물건을 다시 마주한 사람의 표정이 나타났다.
“이걸 알아요?” 도현이 물었다.
에스텔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숟가락을 마지막으로 들고 있던 사람을 알아.”
“누군데요?”
그녀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브론이 문밖을 살피고, 아일린은 지도를 가까이 당겼다. 북쪽 산맥의 지명은 오래전에 지워져 있었다.
에스텔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를 이 식당으로 처음 데려온 사람.”
식당의 화덕에서는 다음 날 아침에 사용할 콩이 조용히 불고 있었다. 한 번 멈춘 종이 다시 울리기 전에, 그들은 왕국의 가장 오래된 빵이 어디서 구워졌는지 찾아야 했다.
제12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