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종이 울리는 날 아침, 왕도는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빵집의 굴뚝에서 연기가 올랐고, 생선 장수는 얼음 위에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물고기를 늘어놓았다. 아이들은 학교로 가며 웅덩이를 뛰어넘었다. 그러나 왕궁 가까운 거리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는 종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종이 울리지 않기를 바랐다.
'마지막 한 숟갈'의 식탁에는 아침부터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하나와 리벨, 말라, 오르델, 아일린, 토렘, 루카스 그리고 에스텔과 브론. 도현은 그들에게 종이 울릴 때 무엇을 할지 설명했다.
“저희가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제0식탁의 원본을 지키고, 의전국이 가져온 그릇과 음식의 실물을 확인하고, 실제로 참석한 사람의 선택을 따로 기록합니다.”
“마법으로 싸우지 않습니까?” 토렘이 물었다.
“필요하면 싸워야겠죠. 하지만 먼저 상대가 무엇을 하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말라는 팔을 문질렀다. 오래전부터 반복되던 조리실의 칼 소리가 밤새 잦아들었다고 했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이 쉬는 동안 하루치 작업이 완료됐다고 적히지 않는 것이 낯설다고 했다.
“그 작은 변화가 제게는 엄청난 일입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멈추는 것이 꼭 거대한 마법일 필요는 없었다. 누군가의 동의 없이 계속되던 일이 하루만이라도 멈추는 것. 그 하루가 쌓여야 다른 선택을 할 시간이 생겼다.
그들은 별채로 향했다.
별채에 도착하기 전 광장에서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의전국이 왕실의 이름으로 모든 시민을 궁문 밖으로 물리려 했다. 그 가운데에는 가족의 잘못된 식사 기록을 정정해 달라고 줄을 선 사람들이 있었다. 경비 하나가 거친 목소리로 물러서라 명령하자 나이 든 남자가 배급표를 높이 들었다.
“아무것도 달라는 게 아니오. 내가 먹은 것만 먹었다고 써 달라는 거요!”
도현은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저 말을 듣지 못한 척하고 지하실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는 아일린에게 주변 배식 접수소를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종이 곧 울립니다.” 토렘이 다급하게 말했다.
“압니다. 그래서 더 기록해야 합니다.”
아일린은 접수소를 임시로 열고 서기관들을 배치했다. 사람들은 줄을 나눠 섰다. 한쪽에는 실제로 먹은 식사의 증거가 있는 사람, 다른 쪽에는 먹지 않았는데 청구된 기록을 가진 사람, 나머지는 아직 확인 자료가 없는 사람들이 섰다. 아무도 재판을 당장 받는 것은 아니었다. 도현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을 '거짓'이라고 단정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문 앞에 서 있던 서기관은 떨리는 손으로 첫 기록을 받아 썼다. 처음에는 느렸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질문하자 줄은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어떤 이는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짜를 기억했고, 어떤 이는 배급소가 문을 닫았던 날 자신이 집에 있었음을 증명했다.
멀리 종탑의 종지기가 줄을 검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발테르 측의 관리가 옆에서 무엇인가 건네자 종지기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뒤 관리가 경비에게 귓속말을 했다. 토렘은 그쪽에 별도의 경비를 보내 시간을 조작하거나 종을 앞당기지 못하도록 했다. 마지막 종이 울리는 날일수록 누가 종을 울리는지도 확인해야 했다.
“시간을 버는 건 좋은데, 이러다가 정말 늦겠습니다.” 브론이 말했다.
도현은 골목 끝을 바라봤다. 하늘은 맑았지만 찬 바람이 사람들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밖의 기록은 남아야 합니다.”
“저는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브론이 말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도현이 손을 잘 쓰지 못하는 것을 본 뒤 그는 줄곧 마음이 불편했다. 만약 지하실에서 또 무언가가 움직이면 이번에는 자신이 대신 그릇을 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대신 먹는 건 안 됩니다.” 도현이 미리 말했다.
“그건 알겠습니다. 대신 씻고, 대신 들고, 대신 뛰는 건 되죠?”
“그건 부탁드립니다.”
둘은 짧게 고개를 맞댔다. 길고 어려운 약속보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졌고, 도현 일행은 남쪽 별채의 낮은 문 안으로 들어갔다. 궁문 앞에는 검은 장갑을 낀 의전국 집행인들이 줄지어 있었다. 발테르는 제0식탁 입구에 서 있었다. 어제와 같은 옷차림이었지만 눈빛은 더 날카로웠다.
“증인까지 데려왔군.”
“원본을 확인할 사람들입니다.” 도현이 대답했다.
“원본은 권한 있는 사람만 열람할 수 있네.”
“그 권한의 근거부터 보여 주십시오.” 루카스가 말했다.
발테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나라에서는 아무도 자기 일만 하려 하지 않는군.”
“그러게요.” 도현이 대답했다. “요리사가 음식만 만들게 해 주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발테르의 눈길이 말라에게 머물렀다. 노파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기록관에게 전달하되, 현재 살아 있음을 확인한 사실과 과거 사망 기록을 분리해서 적어 달라고 요청했다. 발테르는 그녀를 바라보며 짧게 웃었다.
“오랜만이군, 열세 번째 조리자.”
“그건 이름이 아니에요.” 말라가 대답했다. “내 이름은 말라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누군가 일을 시키는 건 거절합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발테르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단지 일행을 계단 아래로 들여보냈다. 지하실의 돌판에는 일곱 개의 빈 그릇이 놓여 있었다. 가장 앞의 그릇에는 왕실 문장이 있었고, 나머지 여섯 그릇에는 이름표만 붙어 있었다.
도현은 이름표를 살폈다. 첫째는 '왕위', 둘째는 '원제공자', 셋째는 '증언자'. 넷째부터 일곱째까지는 흐릿했다. 검은 잉크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
“명단이 완성되지 않았는데 의례를 시작합니까?”
“종이 울리면 완성될 걸세.”
“누가 정하죠?”
발테르는 답하지 않았다.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돌판 위에 얹었다. 손등에서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큰 손이 작은 손을 덮고 있는 표시였다.
“원본 인장.” 에스텔이 낮게 말했다.
“아닙니다.” 하나가 바로 대답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아이에게 쏠렸다. 리벨은 하나의 곁에 서 있었지만 대신 설명하지 않았다. 하나는 자신이 준비해 온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작은 손을 아래에서 받치는 큰 손이 그려져 있었다.
“엄마는 이걸 그렸어요. 저건 반대예요.”
발테르의 입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기억에 의존한 증언은 위험하지.”
“맞아요.” 하나가 말했다. “그래서 이게 기억이라고만 적어 주세요.”
그녀의 대답에 도현은 놀랐다. 어른들이 오랫동안 지키려 했던 태도를 아이가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이 본 것만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일.
오르델이 오래된 책을 펼쳤다. 왕실에 남아 있는 초기 인장 등록 그림이었다. 도현의 눈앞에서 두 그림이 나란히 놓였다. 세 개의 매듭, 손바닥의 방향, 손목을 감싸는 끈. 책 속 그림은 하나가 그린 것과 닮았다.
발테르는 그제야 장갑 낀 손을 내렸다. “저것은 보존 대상이 아니라 보호의 표시라네. 왕국은 보호를 위해 그 인장을 역전시켰지.”
“누구를 보호하려고요?” 아일린이 물었다.
“왕위를.”
“왕위를 위해 사람의 권리를 바꿔 적었다는 뜻이군요.”
그때 지하실을 감싸는 돌이 떨렸다. 종탑에서 쇠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직 종은 울리지 않았다. 종지기가 줄을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테르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문서를 꺼냈다.
[대리 수령인 미지정 시, 최후 조리자에게 자동 귀속.]
도현의 왼손에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석화 반점이 손끝으로 뻗고, 머릿속에서 어머니가 부르는 목소리 한 조각이 흐려졌다.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고개를 들었다.
“그건 제가 동의한 적 없는 문장입니다.”
발테르는 다가오며 말했다. “동의가 아니라 의무라네.”
“그러면 왜 거짓 인장이 필요했습니까?”
그 질문에 발테르가 멈췄다. 도현은 상대의 장갑을 가리켰다. 뒷면에는 가느다란 실이 세 가닥 붙어 있었다. 원래의 인장을 뒤집어 쓴 사람의 흔적이었다.
종탑에서 첫 쇳소리가 터졌다.
모두가 숨을 멈춘 순간, 아일린이 왕관 문양이 드러난 손을 식탁 위에 올렸다.
“저는 왕위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발테르가 웃었다. “그럼 전하께서 갚으시겠습니까?”
“아니요.”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왕위가 져야 할 책임의 원본을 공개할 겁니다. 하지만 제 몸이나 다른 사람의 몸을 담보로 삼겠다는 문서에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돌판 밑에서 한 장의 종이가 떨어졌다. 왕실 문서에는 없던 글씨가 그 위에 적혀 있었다.
[원본 대가 미지급. 최초 채무자의 자필 확인 절차 개시.]
발테르는 처음으로 얼굴이 굳었다. 일곱 번째 종이 울리기 직전, 그가 준비한 대리 서류가 아니라 오래전 왕의 진짜 글씨를 요구하는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제11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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