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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2화
PAYLUA ORIGINAL · 제12화

12화. 돌아갈 수 없는 주방 문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5,306자

오프라인 책장
왕궁에서 돌아오는 길, 브론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말했다. 제7조리실의 벽이 어땠는지, 레온에게서 무슨 냄새가 났는지, 호위병들의 갑옷 속에 왜 밀가루가 들어 있었는지. 덕분에 백도현은 자신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주방장님.” “네.” “그 시험 아이가 진짜로 배고팠다면 어떡하죠?” 도현의 걸음이 느려졌다. 왕도 북쪽의 큰 시계탑에서는 출근 종이 울리고 있었다. 장사를 시작하려는 상인들이 천막을 펴고, 빵집 앞에는 갓 구운 밀빵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세계가 아직 평범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랬을 수도 있죠.” 도현이 말했다. “가짜였다고 생각하면 편하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건 없으니까요.” “그러면 밥을 준 게 잘한 일이겠네요.” “대신 밥 한 그릇에 아이의 가족까지 묶으려는 건 잘못된 일이었고요.” 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발짝 더 걷다가 이번에는 진지하게 물었다. “전 월급을 받으면서 가족까지 계약한 건 아니죠?” “당신 월급 장부에 그릇 세 개가 적혀 있는 건 확실합니다.” “아니, 왜 그런 건 정확하게 기억하십니까?” 도현은 웃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웃음소리가 낯설게 들렸다. 한국에서는 동료들과 별것 아닌 농담을 하며 마감 청소를 하곤 했다. 야근 뒤 편의점에 들러 뜨거운 국물을 먹고 돌아갔던 기억도 있었다. 그런데 그 편의점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젯밤까지 분명 기억하던 것이었다. 골목으로 접어들자 익숙한 양철 간판이 보였다. 햇빛에 바랜 글씨 아래로 ‘마지막 한 숟갈’이라는 이름이 삐뚤게 매달려 있었다. 도현은 처음 그 간판을 봤을 때 불길한 이름이라며 농담했다. 지금은 그 이름을 볼 때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식사를 떠올렸다. 건너편 꽃집 주인은 아침 물을 뿌리다가 두 사람을 알아봤다. “어제 왕궁에 다녀왔다는 소문이 돌던데, 귀족들에게 뭘 해 줬어요?” “보리 수프요.” 도현이 말했다. “그 넓은 왕궁에서?” “왕궁이라고 매끼 금가루를 먹는 건 아니더군요.” 주인은 웃다가 문득 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오늘 시장에선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 왕실 무료 배급이 다시 시작된대요. 이름과 가족 관계를 미리 적어 두면 좋은 자리를 준다는데, 우리 옆집 아주머니가 신청하러 갔어요.” 도현은 미소를 거뒀다. 기근 당시의 배급 명부와 같은 방식이었다. 누구나 무료 식사라는 말을 반길 테지만, 그 뒤에 어떤 조건이 붙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혹시 신청한 분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알려 주세요. 음식에는 먼저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어서요.” 꽃집 주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도현은 더 겁을 주지 않았다.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겁부터 퍼뜨리면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경고까지 믿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는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지부터 장부에 적기로 했다. 그들이 식당 입구에 도착하자 천장 아래 매달린 작은 풍경이 한 번 울렸다. 왕궁에서 들었던 종과 비슷한 소리였지만 도현의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자기에게만 위험한 신호로 가득한 날이 되었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식당 ‘마지막 한 숟갈’에는 에스텔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못했는지 은빛 머리카락이 평소보다 엉켜 있었다. 도현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팔짱을 꼈다. “왕궁에서 귀한 음식을 많이 배워 왔겠지?” “네. 빚까지 대물림하는 수프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건 요리라고 부르지 마.” “저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에스텔은 브론의 등에 붙은 검은 가루를 손가락으로 떼어 냈다. 그녀는 코앞에서 냄새를 맡자마자 손끝에 파란 불꽃을 피워 가루를 태웠다. “종의 부스러기야. 왕궁 지하에서 누군가 여전히 그걸 만들고 있다는 뜻이지.” “레온을 만났습니다.” 에스텔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도현이 잘못 말한 것처럼 눈을 깜빡였다. “그 이름을 어떻게….” “직접 봤어요. 본인이 첫 주인이라고 하더군요.” 그녀는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한참 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살아 있었구나.” “정말 몰랐습니까?” “살아 있기를 바랐어. 알고 있던 건 아니야.” 도현은 그 말의 진위를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에스텔의 표정을 보니 적어도 지금만큼은 억지로 웃고 있지 않았다. 그는 대신 레온의 숟가락을 꺼내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다음 심사는 여기에서 열린답니다. 음식값을 누가 내는지 정하래요.” 에스텔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다면 식당을 닫아.” “닫으면 심사가 취소됩니까?” “아니. 손님 없는 식당으로 판정돼. 다음 주인은 손님이 없어도 값을 내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해도 불리한 거군요.” 에스텔은 대꾸하지 않았다. 도현은 장부를 펼쳤다. 첫 번째 장에는 오늘의 식재료 재고가 적혀 있었고, 뒤쪽에는 저주 해체 실험 기록이 있었다. 그는 그 두 장을 나란히 놓았다. “왕궁에서는 제가 음식을 나눠 주니까 아이와 가족을 한꺼번에 등록하려 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똑같이 하면 안 됩니다. 손님이 실제로 먹은 것과, 그 사람에게 빚을 지우는 건 다르니까요.” “식탁은 그렇게 구분하지 못해.” “그러면 구분하게 만들어야죠.” 도현은 창고에서 쓰지 않는 나무판을 가져왔다. 거기에 메뉴 가격을 쓰기 시작했다. 감자 수프 동화 두 닢. 채소 스튜 동화 세 닢. 빵 한 조각 동화 하나. 그리고 맨 아래에 작은 글씨를 덧붙였다. [돈이 없는 손님은 사전에 이야기할 것. 어떤 음식도 가족·기억·미래를 담보로 요구하지 않음.] 브론이 감탄했다. “멋있는데요! 손님이 돈을 안 내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는 제가 무료 식사를 제공할지 결정합니다. 그 비용은 가게 손실로 적고요.” “가게 손실이면 사장님이 화내실 텐데요.” 에스텔은 나무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화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 도현은 그녀를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목을 감싼 천을 풀었다. 석화 저주의 회색 무늬는 손등에서 팔목 위까지 길어져 있었고, 검은 실금은 희미하게 맥박을 뛰었다. 브론의 귀가 축 처졌다. “아프세요?” “참을 만해요.” “그 말은 보통 참기 힘들 때 하는 거잖아요.” 도현은 대답 대신 찬물 한 그릇에 손을 넣었다. 물이 닿은 피부는 아무 감각이 없었다. 오른손은 차가움을 느꼈지만 왼손은 느끼지 못했다. 석화 저주가 단순한 반점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에스텔은 손목을 살피고는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환부는 차갑고 단단했지만 돌의 두께가 깊어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전날 밤 이후 급격하게 진행한 흔적은 없었다. “저주는 단순한 병처럼 하루치 증상으로 결론 낼 수 없어.” 그녀가 말했다. “기억 저주는 더 까다로워. 잊은 내용을 다시 채워 넣으면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름을 기억했다는 사실만 남을 수도 있으니까.” 도현은 신기하게도 처음에는 불평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병원에서 일하던 친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픈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무조건 괜찮을 거라는 위로보다, 오늘 무엇이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작은 표를 만들었다. 날짜, 왼손의 움직임, 기억이 흐려진 부분, 냄새와 맛을 구별할 수 있는지. 브론에게는 하루에 한 번 같은 질문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의 추천 메뉴는 무엇입니까?” 브론이 물었다. “감자 수프.” “좋습니다. 내일 틀리면 제가 기억을 도와드리죠. 단, 제가 월급을 받기로 했다는 사실도 같이 적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건 기억 저주가 없어도 안 잊겠습니다.” 둘은 가볍게 웃었다. 웃을 이유가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당분간 왼손으로 뜨거운 냄비를 들면 안 되겠네요.” “제가 들겠습니다.” 브론이 바로 말했다. “당신은 그릇부터 안 깨뜨리는 연습을 하세요.” “이럴 때도 그 얘기입니까?” 두 사람의 말에 에스텔이 처음으로 짧게 웃었다. 그녀는 창고에서 하얀 잉크병을 가져왔다. 병 옆에는 오래된 글씨로 '회복을 위한 기록'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억을 먹는 저주는 맛만 지우지 않아. 지워졌다는 사실도 나중엔 잊어버려.” “그래서요?” “기억해야 하는 걸 적어.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야.” 도현은 장부의 새 페이지에 날짜를 적었다. 이곳에 온 첫날, 처음 만든 수프, 마리아를 찾겠다고 약속한 일, 어머니가 끓여 주던 미역국에 대한 기억이 흐려졌다는 사실. 마지막에는 한 문장을 적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잊어도, 누구를 위해 밥을 만들었는지는 잊지 않기로 한다.] 기록은 분명했고 잉크는 쉽게 번지지 않았다. 손끝의 떨림도 조금 가라앉았다. 그날 오후, 에스텔은 도현을 창고 뒤의 좁은 복도로 데려갔다. 예전에는 장작을 쌓아 두던 곳이었지만 안쪽 벽에는 나무문 하나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낡은 황동 손잡이와 거미줄 같은 유리 조각이 붙어 있는 문이었다. 도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거….” “네가 들어온 문과 같은 문이야.” “같은 문이 아니라 진짜 그 문 아닙니까?” “양쪽에서 보면 달라. 문이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해.” 도현은 손잡이를 잡았다. 쇳덩이가 따뜻했다. 그의 머릿속에 비가 내리던 한국의 좁은 골목이 떠올랐다. 상자들 사이에 비스듬히 놓여 있던 골동품 문. 그리고 유리에 비친 누군가의 손. 자신의 손보다 훨씬 가늘고 손가락 끝에 하얀 밀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날…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기억나?” 에스텔이 다급하게 물었다. “손만요. 문을 잡고 있었던 누군가의 손.” 그는 손잡이를 돌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쇠사슬이 걸린 것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숟가락의 검은 홈 하나가 가늘게 빛났다. [귀환 문 접근 거부.] [사유: 주인 심사 미완료.] 도현은 문을 놓았다. 돌아갈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위안이면서 동시에 올가미였다. 자신이 원할 때 떠날 수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왜 저한테 이런 문을 보여 주셨습니까?” 에스텔은 벽에 기대 선 채 한참 입술을 깨물었다. “네가 떠날 이유가 충분하다는 걸 잊지 않게 하려고.” 그때 앞가게에서 브론이 다급하게 외쳤다. “주방장님! 밖에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도현이 식당 앞으로 달려가자 낡은 처마 아래 아이 다섯과 어른 둘이 서 있었다. 모두 흙먼지가 묻은 옷을 입고 있었고 가장 작은 아이는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줄의 끝에는 녹슨 나무 팻말이 들려 있었다. [왕실 배급소 폐쇄. 식사 제공 업소로 이동하라.] 아이들 중 하나가 작은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일곱 명이 나눠 먹을 수 있나요?” 도현이 입을 열려는 순간 가게 안쪽의 쇠숟가락에서 종소리가 났다. [두 번째 주인 심사 대상자 입장.] [청구할 음식값을 결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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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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