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조리실의 돌솥에서 끓어오르던 검은 증기가 천장까지 닿았다. 그 증기에는 국 냄새가 없었다. 오래된 장부를 태울 때 나는 종이 냄새와, 젖은 돌을 긁을 때 나는 쇳소리만이 주방을 채웠다.
백도현은 손목을 움켜쥐었다. 노인의 석화 저주가 깃든 왼팔은 차갑게 굳었고, 소녀에게서 옮겨온 기억 저주는 머릿속의 작은 부분을 조용히 갉아 먹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떠올릴 수 있었던 한국의 골목 이름이 입술 끝에서 흩어졌다.
[식당의 다음 주인 심사 개시.]
[심사 대상: 백도현.]
[불합격 시: 귀환 불가.]
“제 허락도 없이 무슨 심사입니까?”
도현의 목소리가 돌벽을 울렸다. 검은 갑옷의 호위병 여섯은 문을 막은 채 움직이지 않았고, 왕실 고문관은 당황한 얼굴로 돌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낡은 조리복 차림의 남자, 레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무례한 식당이지. 주인을 뽑으면서 당사자의 의사는 묻지 않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첫 주인이라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된 거다.”
레온은 자신의 손등을 내밀었다. 구리 냄비 모양의 표식 주변에 가느다란 금이 여러 개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금 사이에서 보릿가루 같은 빛이 새어 나왔다. 도현은 그가 살아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브론은 그의 곁을 지나가려다가 코를 찡그렸다.
“사람 냄새가 나기는 나는데… 아주 오래된 냄새예요. 저희 할머니가 쓰던 밀가루 통 같아요.”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전해라.” 레온이 말했다. “내가 들은 평가 중에는 그나마 나은 편이구나.”
고문관이 앞으로 나섰다.
“레온. 네게는 심사에 개입할 권한이 없다. 계약상 넌 이미 지난 주인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인은 누구지?”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 짧은 침묵을 도현은 놓치지 않았다.
레온이 손가락으로 솥 가장자리를 두드렸다. 숟가락 소리가 한 번 울렸다. 돌벽에 희미한 세 개의 문구가 떠올랐다.
[첫째, 배고픈 자에게 음식을 내어라.]
[둘째, 음식의 값을 밝혀라.]
[셋째, 마지막 숟갈의 주인을 정하라.]
“세 가지 모두 답해야 주인의 자격을 얻는다.” 레온이 말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이 원하는 답과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답은 다를 거야.”
“시험을 통과하면 돌아갈 수 있습니까?”
“아니다. 돌아갈 자격을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문을 열어 주는 것과, 문까지 걸어가는 건 다른 일이지.”
도현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났다. 낯선 세계에서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억울한데, 이제는 퇴사하려면 사장 자격 시험부터 치르란다.
“이 동네 노동법은 대체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레온이 답했다. “나도 만나면 따지고 싶군.”
도현은 조리실을 한 바퀴 둘러봤다. 방의 네 귀퉁이에는 검은 점액이 말라붙은 바닥 배수구가 있었고, 천장에 매단 국자들에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한때 여러 요리사가 함께 일하던 주방이었다면 이 공간은 지나치게 고요했다. 누군가의 움직임이 멈춘 자리만 남아 있었다.
“저 갑옷 안에는 누가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고문관은 싫증 난 표정으로 답했다.
“오래전 구호 활동에 참여했던 충직한 일꾼들이네. 더 이상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자지 않아. 왕국에 도움이 되지.”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걸 원했습니까?”
“자네는 질문이 많군.”
도현은 브론을 돌아봤다. 늑대인간은 투구 안을 보려 애쓰다가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에 사람의 체취가 없어요. 그런데 젖은 밀가루와 기름 냄새가 납니다. 제분소에서 봤던 인형과 비슷해요.”
도현의 뱃속이 차가워졌다. 살아 있는 인부를 대신해 저주가 움직이는 몸을 만들어 낸 것일까. 그렇다면 왕궁과 붉은 돛 배에서 보았던 이상한 호위병들도 전부 같은 방식으로 만든 존재일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지금 싸우면 이길 가능성은 낮았다.
그는 마음속에서 대답을 정리했다. 첫 번째 질문은 누구를 먹일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배고픈 사람이다. 그런데 이 방에서는 한 숟갈을 건네는 일이 그 사람의 후손까지 묶는 계약이 된다. 답을 서두를수록 위험했다.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도현이 말했다. “저희 주방에서는 주문받지 않은 음식부터 내놓지 않습니다.”
“굶어 죽는 자에게 그런 예의를 따질 셈인가?” 고문관이 물었다.
“상대가 뭘 필요로 하는지 확인하는 일이 예의라면, 그렇습니다. 죽을 만큼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수 없는 음식을 강요하는 게 더 이상하니까요.”
레온은 입꼬리를 움직였다. 그의 표식에서 흘러나온 보릿가루 같은 빛이 잠깐 도현의 어깨에 내려앉았다가 사라졌다.
첫 번째 문구가 붉게 밝아졌다. 돌솥 뒤의 작은 문이 열리더니 한 아이가 걸어 나왔다.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옷자락에는 재가 묻어 있고 맨발에는 상처가 났다. 아이는 배를 움켜쥐고 도현을 쳐다보았다.
“배고파요.”
브론이 달려가려 하자 레온이 팔을 뻗어 막았다.
“시험이 만든 손님이다. 무엇이 진짜인지 먼저 확인해.”
도현은 쪼그려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이의 볼은 꺼져 있었지만 입술에는 수분이 남아 있었다. 그는 아이의 손등을 보고, 다시 눈을 보았다. 아이의 시선은 음식을 찾고 있었지만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는 모르는 듯했다.
“이름이 뭐니?”
“몰라요.”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어?”
“종이 울리기 전이요.”
“어디에서?”
아이는 돌솥을 가리켰다. 도현은 조리대 위의 재료를 살폈다. 보리, 감자, 굳어 버린 빵 한 조각, 검은 시럽이 담긴 유리병. 물은 있었지만 비린내가 났다. 주방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시험하려는 의도라면 선택지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이 재료로 먹이라고?”
고문관이 미소 지었다.
“왕국을 구한 수프 그대로다. 한 숟갈이면 아이의 허기가 가실 걸세.”
도현은 검은 시럽병을 집어 들었다. 끈적한 액체가 병 벽에서 미끄러질 때 손목의 저주가 따끔거렸다. 그는 병을 다시 내려놓았다.
“수프가 배를 채우는 건지, 배고픔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건지부터 확인해야겠네요.”
도현은 손질대의 깨끗한 쪽에 감자를 잘랐다. 단면은 황금빛이었고 상처가 없었다. 보리는 맑은 물에 두 차례 헹궜다. 끓이는 동안 아이에게 작은 물잔을 건넸지만 아이는 잔을 받지 않았다.
“물이 싫어?”
“밥을 주세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도현은 멈춰 서서 아이를 보았다. 진짜 배고픈 아이라면 물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아이는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똑같았다.
그는 수프 냄비에 불을 낮추고 자신의 숟가락으로 작은 한입을 맛보았다. 검은 시럽을 넣지 않았으니 저주를 옮기는 마법은 발동하지 않았다. 감자의 부드러운 단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 처음으로 아주 평범한 조리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먹어. 뜨겁거든.”
아이는 그릇을 받았다. 첫입을 떠먹는 순간 얼굴이 잠깐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릇 아래에 희미한 글씨가 떠올랐다.
[허기 해소 실패. 원인: 소속 미등록.]
[정상 구호 처리를 위해 수혜자 본인 및 혈족의 이름을 기재하라.]
도현은 그릇을 낚아채지 않았다. 아이가 계속 먹도록 두면서 고문관을 돌아봤다.
“소속이 없으면 밥도 소용없다는 겁니까?”
“정식 배급을 받으려면 기록에 이름이 있어야지. 그래야 더 많이 나눠 줄 수 있으니.”
“배급 기록과 먹는 건 별개입니다.”
“문구를 따르지 않으면 시험에서 떨어질 걸세.”
도현은 잠깐 숨을 골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플 때 끓여 주던 음식의 기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밥값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떠올리는 데에도 이제는 힘이 들었다.
그때 오른쪽 호위병 하나가 뻣뻣하게 앞으로 나섰다. 갑옷 속에서 마른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레온이 급히 손을 들자 병사는 멈췄지만, 투구 아래에서 어린 목소리 하나가 새어 나왔다.
“기록해 줘. 이름이 없으면 우린….”
그 뒤는 이어지지 않았다. 고문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투구의 틈이 검은 가루로 봉해졌다.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릇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은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저주가 사람을 복제해 낸다고 해도, 그 목소리가 표현한 허기만큼은 실제일 수 있었다. 잘못된 판단으로 누군가의 간절함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
그는 국자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이곳에서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건 음식을 만드는 방식과 거래의 조건뿐이었다. 적어도 그 두 가지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이름이 없어도 배가 고플 수는 있죠.”
그가 그릇 아래의 문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눠 주는 기록에 등록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제 몫을 나눈 겁니다.”
“네 몫이라고?” 고문관이 비웃었다. “저 보리는 왕궁의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나중에 값을 치르죠. 식재료 비용은 장부에 적겠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필요 없습니다.”
고문관은 비웃음을 거뒀다. 조리실 벽이 가볍게 흔들렸다. 아이는 수프를 모두 먹고 빈 그릇을 내려놓았다. 처음으로 목소리가 달라졌다.
“맛있어요.”
몸이 빛처럼 흐려지기 시작했다. 사라지기 직전 아이가 도현에게 한마디를 더 했다.
“아무도 그렇게 해 준 적 없었어요.”
[첫째 문항: 처리 보류.]
[기록 없는 식사 1건 발생.]
“불합격이 아니네요.” 브론이 속삭였다.
레온은 웃지 않았다. 오히려 벽에 나타난 글씨를 깊이 들여다봤다.
“보류라… 저 식탁이 처음으로 대답을 못 하는군.”
갑자기 조리실 천장이 삐걱거렸다. 호위병 여섯의 갑옷 틈에서 검은 밀가루가 쏟아졌고, 한 명이 무릎을 꿇었다. 레온은 곧장 솥 뚜껑을 닫았다.
“시험이 중단되면 놈들이 강제로 정산을 시작할 거다. 지금 나가.”
“당신은요?”
“나는 이 솥이 식지 않게 해야 해.”
도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모처럼 살아 있는 전임자를 만났는데 또다시 남겨 두고 가야 했다. 레온은 그의 표정을 읽었는지 낡은 쇠숟가락 하나를 던져 주었다. 손잡이에는 작게 일곱 개의 홈이 있었다.
“이걸 가져가. 다음에는 어떤 손님에게도 서명을 받지 마라. 대답은 요리사가 정하는 거야.”
브론이 비상 계단 쪽의 냄새를 맡았다.
“길이 열렸어요! 장작 냄새가 납니다!”
두 사람은 연기 속을 뚫고 달렸다. 등 뒤에서 고문관이 고함을 질렀다.
“백도현! 두 번째 시험은 식당에서 치르게 될 것이다. 값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좁은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나오자 새벽 햇빛이 장작 창고의 먼지를 비추고 있었다. 도현은 한동안 허리를 굽혀 숨을 골랐다. 브론은 귀를 쫑긋 세웠다가 주머니를 가리켰다.
“주방장님. 그 숟가락, 지금 소리가 나요.”
레온에게 받은 쇠숟가락의 일곱 홈 사이에서 희미한 종소리가 났다. 도현은 손잡이를 돌려 보았다. 홈 하나가 서서히 검게 변하고 있었다.
[첫 번째 주인 심사: 기록 없는 손님에게 식사 제공.]
[두 번째 심사 예정: 음식값을 청구할 자 결정.]
[심사 장소: 마지막 한 숟갈.]
도현은 왕궁 뒤편에 떠오르는 연기를 바라봤다.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남이 차린 시험장으로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기 주방에서, 자기 방식으로 맞이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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