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는 잠들어 있었다.
리벨은 아이가 춥지 않도록 무릎에 담요를 덮어 놓았다. 창밖에는 새벽 전의 어둠이 깔려 있었다. 시장 상인들이 첫 수레를 끌고 나올 시간이었지만, '마지막 한 숟갈'의 주방은 조용했다. 도현은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지하실에서 들었던 칼 소리가 귀에 남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무도 일하지 않는데 일을 했다고 적던 그 박자.
“쉬어야 해.” 에스텔이 말했다.
“쉬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확인할 게 있어요.”
그는 가방에서 말라의 증언을 적은 수첩을 꺼냈다. '첫 빵을 아이에게 나누기로 했다.' 그 한 문장이 다른 모든 기록보다 신경 쓰였다. 온실에서 하나는 첫 수확을 거절한 아이였다. 제0식탁 밑의 세 매듭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건이 같은 날 벌어졌다는 증거는 없었다.
“하나가 알 만한 내용이긴 합니다.” 도현이 중얼거렸다.
리벨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이를 깨워서 묻지는 마세요. 오늘은 아주 피곤했어요.”
“그럴 생각 없습니다.”
그는 대신 직접 빵을 구웠다. 조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저녁을 챙기느라 자신은 아직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가게에 남아 있던 밀가루와 지난번 루덴에서 산 약간의 검은 밀을 꺼냈다. 검은 밀은 별도로 봉인된 표본이 아니라 안전성을 확인한 식용 곡물이었다. 저주가 묻은 물건과 먹을 재료를 구분하는 습관은 도현에게 이제 당연한 일이었다.
반죽은 천천히 부풀었다. 따뜻한 물에 소금을 녹이고 효모를 풀었다. 그 위로 손바닥을 올리자 온기가 전해졌다. 도현은 왼손목의 석화가 힘을 줄 때마다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반죽을 접을 때는 오른손에 힘을 더 실었다.
“대신 해 줄까?” 브론이 물었다.
“반죽 접는 건 해 주세요. 힘이 고르게 들어가야 하거든요.”
브론은 의욕적으로 손을 뻗었다. 처음에는 반죽을 너무 세게 눌러 공기를 다 빼 버렸지만, 몇 번이나 도현의 손을 따라 하더니 금세 익숙해졌다.
“저도 요리사가 되는 겁니까?”
“아직은 반죽 담당입니다.”
“월급은 오르나요?”
“그릇값부터 갚으세요.”
리벨이 작게 웃었다. 정해진 저주와 왕실의 추격 속에서도 저런 농담이 가능한 게 신기했다. 도현은 더 이상 혼자서 요리를 완성하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반죽은 브론이 접고, 불은 에스텔이 살피고, 리벨은 시간과 온도를 기록했다.
빵이 오븐에 들어갈 무렵 하나가 깨어났다.
오븐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어느 주방에서나 길었다. 온도를 높이면 겉이 먼저 타고 안쪽은 덜 익는다. 그렇다고 불을 너무 줄이면 반죽이 무거워진다. 도현은 어릴 때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빵을 여러 번 망쳤다. 한국에서 일하던 레스토랑의 선배는 실패한 빵을 바로 버리지 말고 반으로 갈라 보라고 했다. 어디가 익었고 어디가 익지 않았는지 눈으로 보면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고.
그 기억은 아직 선명했다. 미역국의 맛은 흐려졌지만, 오래된 주방에서 보냈던 수많은 밤과 친구들의 말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도현은 그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에스텔은 빵을 지켜보면서 오래전에 말라에게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말라는 빵이 너무 커서 아이들이 나눠 먹기 어려우면 작은 둥근 빵을 따로 구웠다고 했다. 왕궁 관리들은 식사 한 건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것에 불평했다. 조각 수가 늘면 장부에 적을 이름도 늘어난다는 이유였다.
“레온은 뭐라고 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그는 그릇 수를 늘려 줬지. 아이들이 손으로 찢다가 서로 다투지 않게.”
“그게 답이네요.”
“하지만 모든 문제는 그렇게 풀리지 않았어. 나중에는 왕궁이 그릇 하나를 채무 하나로 계산하기 시작했거든.”
도현은 오븐 창을 들여다봤다. 반죽은 천천히 부풀고 있었고 겉면이 갈색으로 변했다. 레온도 이런 빵을 구웠을까. 그가 남긴 세 번째 조리 원칙은 과정을 확인하라는 말이었지만, 그 원칙의 끝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브론은 식당 뒤뜰에서 나무 장작을 정리해 들어왔다. 그는 말라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누구의 빵인지 적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누가 먹었는지 모르면 어렵죠.”
“그냥 먹은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한 번 적힌 명부를 고치는 게 금지됐다면요?”
브론이 한참 생각하더니 도현의 말을 받아쳤다. “그러면 명부가 사람보다 대단하다는 뜻이군요.”
“이 왕국은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나 봅니다.”
리벨은 대화 내용을 들으며 반죽이 부푸는 정도를 측정했다. 온실에서는 백 년간 꽃이 시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빵 반죽을 기다리는 일조차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기 어려웠다. 지금 그녀는 반죽이 부풀고 나서 조금 가라앉는 변화가 좋았다. 모든 것이 영원히 제자리에 있는 곳보다, 실패할 수도 있는 시간이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나도 언젠가는 그런 시간을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리벨이 말했다.
도현은 빵이 익는 냄새를 맡으며 대답했다. “아이에게는 오늘 아침이 먼저겠죠. 백 년 전의 비밀은 우리가 찾으면 됩니다.” 작은 코끝이 냄새를 따라 움직였다.
“그거 무슨 빵이야?”
“그냥 아침빵이야. 조금 기다리면 먹을 수 있어.”
“누가 먼저 먹어?”
도현은 말문이 막혔다. 평범한 아이였다면 '네가 먹고 싶으면 먼저 먹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에게는 그 질문이 달랐다. 앞에서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자신의 몫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을지도 몰랐다.
“각자 먹고 싶은 만큼 잘라 먹을 거야. 남으면 내일 먹어도 되고.”
하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안 먹어도 돼?”
“물론.”
그녀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븐 문을 열자 따뜻한 빵 냄새가 방 안으로 퍼졌다. 도현은 아직 뜨거운 빵을 무턱대고 자르지 않았다. 겉껍질에서 나던 작은 파열음이 사그라들 때까지 식혔다. 하나는 그동안 옛날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엄마가 예전에 빵을 구웠어. 하지만 그날은 나한테 먼저 주지 않았어.”
모두의 손이 잠시 멈췄다.
“엄마가 나눠 줄 거라고 했는데, 입구에서 왕관을 쓴 사람이 들어왔어.”
에스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이 빵을 먹었니?”
하나는 고개를 저었다. “먹을 수 없다고 했어. 그러더니 다른 사람들이 먹었다고 적으라고 했어.”
“왜?”
“모르겠어. 엄마가 울었거든.”
하나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도현은 빵을 작게 잘라 그녀 앞에 놓았다. 먼저 먹으라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한참 들여다보다가 손을 뻗었다. 한입을 베어 물고 오래 씹더니 웃었다.
“옛날 그 빵하고 다르네.”
“그래?”
“응. 그때는 달았어. 아주 달았는데, 먹으면 목이 말랐어.”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기억나?”
“밀하고 꿀. 그리고 엄마가 마지막에 하얀 가루를 뿌렸어.”
브론이 먼저 말했다. “소금?”
“아니야. 소금은 짰어. 그 가루는 따뜻한 냄새였어.”
도현은 기억을 억지로 더 끌어내지 않았다. 아이가 지금 말한 것과 추측을 나누어 적게 했다. 그때 리벨이 종이 봉투 하나를 꺼냈다. 동부 온실에서 가져온 보존 꽃가루의 샘플이었다. 검은 시럽과 무관한지 확인하기 위해 봉인해 두었던 것이었다.
하나는 봉투를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그거 아니야. 그런 건 아냐.”
그녀는 뒤로 물러섰다. 도현은 바로 봉투를 닫게 했다. 아이가 싫다고 했는데 실험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다. 대신 하나가 스스로 기억한 모양을 그림으로 남기기로 했다.
아이는 종이 위에 작은 네모 빵을 그렸다. 그 위에는 하얀 점들이 있었다. 빵 옆에는 손이 두 개였다. 작은 손을 아래에서 받친 큰 손. 그리고 큰 손목에는 끈 세 가닥이 묶여 있었다.
“이게 엄마 손이야.”
에스텔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도현은 그림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제0식탁에 찍힌 원본 표시와 같았다. 다만 아직 이것이 그날의 원본 인장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문득 도현은 더 중요한 것을 알아차렸다.
“하나, 빵을 먹으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기억나?”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말했다.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해.”
“뭐라고?”
“배고프면 먹어도 돼. 하지만 네가 먹었다고 다른 사람 배가 부른 건 아니야.”
도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왕국 전체의 계약에 빠진 한 문장이 그 말 속에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식당 바깥에서 작은 종이 울렸다. 왕궁의 마지막 종은 아니었다. 왕녀 아일린의 전령이 보내온 경고 종이었다.
[의전국 통보: 제0식탁 봉인 재설정은 정오에 집행.]
마지막 종보다 먼저 모든 증거를 잠가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제1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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