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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14화
PAYLUA ORIGINAL · 제114화

114화. 없는 부엌의 조리대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277자

오프라인 책장
세탁실 바닥의 쇠뚜껑은 밖에서 보기에 배수구 덮개였다. 그 안쪽에는 작은 사다리가 달려 있었다. 도현은 아래로 손전등 대신 유리등을 내렸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 세 계단, 다섯 계단, 열 계단. 사다리 아래에는 축축한 돌바닥과 긴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도, 사람의 숨소리도 없었다. 다만 어디선가 일정한 간격으로 칼이 도마를 두드렸다. “저 소리 들리세요?” 도현이 물었다. 브론이 귀를 세웠다. “칼질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해요. 같은 간격, 같은 힘으로 계속 두드려요. 사람이 하면 한 번쯤은 느려지거든요.” 말라는 사다리 맨 아래에 내려오지 않았다. 그녀는 위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렸다. “저 밑에서는 사람 이름을 부르지 마세요. 번호로 불러요. 이름이 나오면 장부가 알아듣거든.”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스텔은 노파를 쳐다보다가 간신히 물었다. “정말 말라야?” “그 말을 내가 확인해 주면 또 열세 번째 하루가 시작돼요.” 노파가 대답했다. “대신 내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 주세요.” 일행은 기록관 두 명과 경비를 데리고 내려갔다. 기록관 중 한 명은 젊은 사내였다. 이름은 테른이었고, 궁정에서 업무를 시작한 지 채 석 달이 되지 않았다. 그는 왕실 의전국의 인장을 보고 몹시 긴장했다. 가슴에 품은 서류가방을 몇 번이나 다시 여몄다. “제가 여기에 내려온 사실이 기록되면 어떻게 됩니까?” 루카스가 되물었다. “내려오지 않았다고 적히는 편이 낫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아직 계약직이라서….” 도현은 자신이 한국에서 일하던 때를 떠올렸다. 신입 요리사가 주방장의 잘못된 지시를 보고도 입을 다물던 순간들. 아무도 소리 높여 부당한 일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다음 달 근무표를 생각했다. 이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건 여기에 왔다는 기록보다 무슨 일을 했는지겠죠. 당신에게 원본을 혼자 책임지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토렘도 고개를 끄덕였다. “출입 책임은 나에게 있다. 기록관이 아니라 내가 문을 열겠다고 명령했네.” 테른은 그제야 손을 조금 풀었다. 그러나 그는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복도 바닥의 돌마다 아주 작은 눈금이 새겨져 있었다. 열두 번째 돌부터는 숫자가 뒤로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는 같은 길을 두 번 걷는 구조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브론이 물었다. “옛 왕궁의 지하 통로는 식재료 수량을 확인하려고 돌에 번호를 새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도는 열일곱 번째에서 다시 열여섯 번째로 돌아가요.” 도현이 뒤를 돌아보니 분명히 지나온 돌이었다. 그런데 사다리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브론은 바닥을 맡더니 왼쪽 벽을 가리켰다. “저쪽에는 사람 냄새가 납니다. 방금 우리가 지나온 냄새예요.” 에스텔은 벽에 손바닥을 댔다. 원 안을 도는 저주의 기운이 느껴졌다. 이 공간은 길을 막는 대신 같은 일을 다시 하게 만드는 구조였다. 목적지에 닿기 전에 걸은 거리를 다시 청구하는 셈이었다. “마법을 부수면 될까요?” 토렘이 물었다. “서두르지 마세요.” 도현이 말했다. “우리가 몇 걸음 걸었는지부터 세죠.” 그들은 지나온 돌에 지워지는 분필 표시를 남겼다. 도현이 열다섯 번째 돌에서 멈춰 서자 테른이 다음 숫자를 소리 내어 읽었다. 숫자는 열여섯을 지나 열일곱로 갔다가 다시 열여섯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바닥의 분필은 첫 번째 열여섯에만 남아 있었다. “돌이 움직인 건 아닙니다.” 테른이 말했다. “글자만 바뀌는 겁니다.” 루카스가 걷는 거리를 이름 없이 기록했다. ‘실제 전진 열여덟 걸음, 장부 표시는 반복.’ 순간 벽의 글자가 멈췄다. 그들은 비로소 문턱에 도달했다. 테른은 작게 신음했다. “길도 청구할 수 있군요.” 도현은 그에게 물었다. “이런 게 익숙해지면 사람은 자기가 제자리에 있다는 것도 모르겠죠?” 테른은 대답 대신 뒤로 남은 분필 자국을 바라봤다. 지하 복도는 왕궁에서 버린 온갖 냄새를 품고 있었다. 눅눅한 밀가루, 오래된 물, 불에 탄 양파, 그리고 입에 들어가지 못한 음식이 쉬어 가는 냄새. 안쪽의 철문에는 흰 글씨로 '제0보조조리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틈에는 빛이 새어 나왔다. 도현이 가까이 가자 칼질 소리가 한 번 멎었다. 이어서 다시 같은 박자가 시작됐다. 그는 손잡이를 잡지 않고 문의 틈을 살폈다. 한쪽 경첩에 검은 실이 연결돼 있었다. 무작정 열면 누군가의 이름으로 작업이 시작될 수도 있었다. “손을 대지 않고 열 수 있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먼저 저 실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확인해야죠.” 브론이 바닥에 코를 가까이 댔다. 검은 실에서는 짠 쇠 냄새가 났다. 실은 문 위를 돌아 도마에 연결돼 있었다. 도마 위에는 낡은 칼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사람은 없었다. 마법이 칼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동안 빈 장부 한 장에 자동으로 선이 그어졌다. [야간 조리 업무 수행: 1회.] [노동자 지급 대상: 말라.] [실제 음식: 없음.] 도현은 잠깐 말을 잃었다. 요리사가 칼을 쥐지 않았는데도 노동한 것으로 적혔고, 아무런 음식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지급 의무가 발생했다. 이곳의 저주는 단순히 사람을 속이는 장부가 아니었다. 없는 노동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그 대가를 오래전 붙잡은 사람에게서 빼앗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돌린 겁니까?” 루카스가 벽의 눈금을 읽었다. 백 년 동안 한 번도 빠진 날이 없었다. 다만 최근 며칠 사이 숫자가 빠르게 늘어 있었다. 제0식탁의 종이 울리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에스텔이 벽에 기대 선 채 중얼거렸다. “레온은 이런 걸 알고 있었어.” “왜 말을 안 했을까요?” “알아냈을 때는 이미 자기 이름으로 화덕이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도현은 그녀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에스텔이 숨긴 과거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비난해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는 칼을 멈출 방법을 찾았다. 검은 실은 마법으로 건드리면 반응했지만, 도마 아래에는 평범한 나무받침이 끼워져 있었다. 무겁고 닳아 있어서 오래 움직인 흔적이 있었다. “도마를 빼면 칼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토렘이 말했다. “그 전에 종이부터 치웁시다.” 루카스가 기록관 입회로 장부를 도마 아래에서 꺼냈다. 그러자 칼이 허공을 세 번 내리쳤다. 작업 완료 도장이 찍힐 종이가 없으니 검은 실이 계속 칼을 움직일 뿐이었다. 도현은 준비한 나무판을 끼워 칼날이 손에 닿지 않도록 고정했다. 무리하게 실을 끊지 않았다. 그때 문 너머에서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해도 아침이면 다시 돌아와요.” 말라였다. 그녀가 사다리를 내려와 문턱에 서 있었다. “저도 해 봤어요. 칼을 부수고, 도마를 태우고, 장부를 찢었죠. 다음 날이면 다른 칼이 생겨요.” “왜요?” 도현이 물었다. “그 일을 해야 할 사람을 장부에 남겨 뒀으니까.” 도현은 장부 뒷장을 살폈다. 거기에 비로소 다른 문장이 있었다. [미지급 노동 대가의 최종 청구처: 왕위.] [현 단계 대리 결제처: 부재 요리사 명부.] 실종된 요리사들의 이름이 여기로 흘러들어 왔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만 이번 장부에는 열여섯 명의 실명이 없었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문서 한 장을 펼쳤다. 맨 위에 검은 도장으로 찍힌 그림은 작은 손을 큰 손이 덮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표시가 원래부터 있었나요?” 말라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여기 왔을 때는 달랐어. 큰 손이 작은 손을 받쳤지. 바뀐 건 왕이 식사를 거절한 뒤였어.” 도현의 손목이 싸늘해졌다. 석화 반점이 팔 안쪽으로 한 마디쯤 더 굳는 느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장부를 놓았다. “원본은 누가 바꿨습니까?” “사람의 이름으로는 말 못 해.” 말라가 속삭였다. “대신 그날 차려졌어야 할 음식을 기억해.” “무슨 음식이었죠?” “아이에게 나눠 주기로 했던 첫 빵.” 말라는 빈 화덕을 바라봤다. “그런데 왕은 끝내 먹지 않았어. 그래서 모두가 대신 먹었다고 적힌 거야.” 도현은 비어 있는 조리대 앞에서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최초의 배신은 빵을 만들지 않은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누군가 실제로 구운 빵을 눈앞에 두고, 먹지 않았다는 선택을 지운 일이었다. 그는 장부에 새 칸을 만들었다. [작업 정지 시각: 실제 기록.] [작업자: 없음.] [완성된 음식: 없음.] 그 순간 무인 칼의 소리가 끊겼다.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 밤의 작업 한 건은 완성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벽의 글씨가 천천히 바뀌었다. [정지 사유 접수.] [원수령자의 이의 제기 대기.] 말라는 손을 입에 가져갔다. 백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문구라고 했다. 위에서 일곱 번째 종을 준비하는 종지기의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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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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