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라는 이름은 에스텔도 기억하고 있었다.
식당 '마지막 한 숟갈'의 다락방에는 오래된 식기와 낡은 장부가 쌓여 있었다. 늦은 저녁 돌아온 도현이 제4재료실에서 가져온 세탁 기록을 보여 주자 에스텔은 바로 계단을 올라갔다. 먼지가 자욱한 상자를 헤집고 내려온 그녀의 손에는 작은 철제 거름망이 들려 있었다.
“이걸 만든 사람이 말라야.”
거름망 손잡이에는 서로 다른 크기의 홈이 세 개 파여 있었다. 에스텔은 그 홈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밀가루를 체칠 때 덩어리가 몇 번 남았는지 손끝으로 세던 사람이었어. 누구보다 정확했지. 그런데 왕궁에서는 그 사람을 오래전에 죽었다고 적었어.”
“실제로 죽었다는 걸 보셨습니까?”
에스텔은 고개를 저었다. “보지 못했어. 레온도 못 봤지. 기록을 확인하러 갔을 때는 이미 접근이 막혀 있었고.”
도현은 앞치마의 건조 흔적을 수첩에 옮겼다. 젖었다가 마른 자국은 최근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만으로 말라가 살아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죽은 사람의 옷을 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을 찾아야겠네요.”
“왜?” 에스텔의 질문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봐야죠. 자기 옷인지 남의 옷인지.”
브론은 거름망을 코끝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밀가루, 오래된 쇠, 그리고 라벤더. 왕궁 세탁실에서 나던 냄새하고 같습니다.”
“그럼 세탁실부터 가죠.”
다음 날 왕궁 동쪽의 세탁실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커다란 솥에서는 흰 천이 삶아지고 있었고, 마당에는 손으로 짠 물이 도랑을 따라 흘렀다. 하녀들은 허리를 구부리고 옷을 두드렸다. 양손의 살갗이 불어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바빴다. 왕궁에서는 접시 하나가 없어져도 소란이 났으나, 빨래하는 사람 하나가 아파 빠져도 쉽게 대체되곤 했다.
도현은 관리인과 허락을 받아 말라라는 이름을 묻기로 했다. 의전국과 연결된 사람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과장하지 않았다.
“최근에 오래된 앞치마를 맡긴 분이 계십니까?”
“매일 수십 벌이 옵니다. 이름도 모르고요.” 세탁 감독관이 대답했다.
“그럼 이 냄새가 나는 비누를 쓰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브론이 손수건에 감싼 섬유 조각을 내밀었다. 감독관은 냄새를 맡더니 놀란 눈으로 뒷문을 가리켰다.
“그건 우리 것이 아니에요. 궁 안에서는 금지된 옛날 비누입니다. 남쪽 별채의 물을 쓸 때만 나던 냄새지요.”
“누가 가져옵니까?”
“몰라요. 하지만 가끔 옷감 대신 완전히 마른 행주가 내려와요. 빨아 달라는 표시만 붙어 있고 사람은 없어요.”
마른 행주를 빨래로 처리한다. 도현은 미간을 좁혔다. 깨끗한 재료를 버리는 것과 비슷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지 않은 그릇을 깨끗하다고 기록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이 세계의 장부는 그런 말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들은 세탁실 뒤의 반환 창고로 갔다.
세탁실을 지나오는 동안 도현은 사람들의 손을 유심히 보았다. 뜨거운 물에 오래 담갔는지 손가락 마디가 붉고 갈라져 있었다. 옷을 빨기 위한 긴 나무 막대를 쥐는 방식도 서로 달랐다. 어떤 사람은 팔 힘으로 두드렸고, 어떤 사람은 손목을 짧게 튕겨 물을 털었다. 한 번도 일해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똑같은 빨래처럼 보일 움직임이었다.
젊은 세탁 노동자 한 명이 그들을 따라왔다. 이름은 세나였다. 그녀는 특별히 용감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감독관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자신들의 일감이 다음 날로 밀릴까 걱정되었을 뿐이었다.
“장부는 관리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한 일은 장부에 전부 안 나옵니다.”
“왜요?” 도현이 물었다.
“옷이 한 벌 더 찢어지면 수선해야 하고, 오물이 묻은 옷은 따로 삶아야 하니까요. 그런 건 대충 다른 일에 묶어서 적어요.”
“그럼 사람들이 일을 안 했는데 했다고 적는 경우도 있습니까?”
“관리들은 가끔 그래요. 하지만 저희는 안 해요. 안 했는데 했다고 적히면 다음 날 그만큼 더 시키거든요.”
도현은 수첩에 세나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서류에는 한 번 완료된 작업으로 표시된 것이 몸에는 두 번의 피로로 남았다. 그 차이를 아는 사람은 기록관이 아니라 일한 사람이었다.
세나는 창고 앞에서 멈췄다. “여기에는 가끔 이상한 행주가 들어옵니다. 젖지 않은 천인데도 세탁비가 비싸요. 저희가 손을 대려 하면 감독관이 다른 줄로 빼 버립니다.”
“누가 가져다줍니까?”
“알고 싶어서 따라가 봤어요. 그런데 복도 끝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멎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 건지 제가 길을 잃은 건지 모르겠어요.”
브론이 귀를 세웠다. “어느 복도였습니까?”
세나는 남쪽의 막힌 문을 가리켰다. 벽에 닿아 끝나는 통로였지만 지하 배수관은 그 벽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도현은 그 방향을 따로 표시했다. 훗날 제0보조조리실로 이어질 길이었다.
세나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죽은 사람한테 세탁비를 받는 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서류가 그런 거라서요.”
도현은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을 기록해도 될까요?”
“해도 돼요. 대신 제가 직접 본 것만 적어 주세요. 말라라는 사람은 아직 못 봤으니까요.”
루카스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확인된 사실과 소문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결코 기록관만이 아니었다.
도현은 세나에게 오늘의 조사가 그녀의 일자리에 불이익을 주지 않도록 신원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세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한테 필요한 건 영웅이 되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내일도 여기 와서 일할 수 있다는 확신이에요.”
그 말은 도현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는 일에 감탄하기는 쉽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용기를 내겠다고 선택한 순간에도 다른 사람에게 위험을 떠넘기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먼저였다.
브론은 세나가 다시 빨랫감 앞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뜨거운 수증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은 금방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그가 들은 말은 기록에 남았다. 사람마다 돌아가야 할 내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선반에는 마른 행주들이 쌓여 있었다. 검은 실로 묶인 묶음 하나에는 반납자가 없이 ‘말라’라고 적혀 있었다. 도현은 담당자 입회 아래 묶음을 펼쳤다. 천은 전혀 쓰지 않은 새것이었다. 그런데 각 행주에는 사용 완료 도장이 찍혀 있었다.
“작업하지 않은 일을 작업했다고 써 놓으면 대가가 어디로 가죠?” 루카스가 물었다.
관리인이 당황해 장부를 뒤졌다. 반납된 행주의 세탁비는 오래전에 사망 처리된 말라의 계정에서 지급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용은 왕실 구호식 예산으로 환급됐다.
“요리사 한 명의 이름이 돈을 내고, 왕궁은 다시 그 이름으로 돈을 받는군요.” 도현이 말했다.
그때 반환 창고의 뒤쪽 자물쇠가 열렸다. 낯선 노파가 들어왔다. 주름이 깊은 얼굴, 바싹 마른 팔목, 허리에 묶은 회색 앞치마. 그녀는 일행을 보고 곧장 돌아서려 했다.
“잠깐만요.” 도현이 불렀다. “말라라는 분을 아십니까?”
노파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손은 무심코 허리춤의 거름망을 만졌다. 손잡이에는 세 개의 홈이 있었다.
에스텔이 한 발 다가섰다. “말라?”
노파가 숨을 삼켰다. 손가락은 홈의 위치를 정확히 짚었다. 잠깐, 정말 잠깐 에스텔의 얼굴을 알아보는 기색이 지나갔다.
“그 이름은 이곳에서 부르면 안 돼요.”
“왜요?” 도현이 물었다.
“부르는 사람이 값을 내니까.”
노파는 계단 아래의 배수관을 가리켰다. “오늘도 세탁 끝난 행주 열여섯 장이 제 이름으로 올라왔어요. 아무도 쓰지 않은 걸요.”
“그게 누구의 일입니까?”
“죽은 사람의 일이죠. 그러니까 오래도록 끝나지 않아요.”
바로 그 순간 창고 벽의 나무패가 검게 변했다.
[사망 처리 계정 호출 감지.] [미지급 업무 누적분 추심 개시.]
노파가 고통스럽게 팔을 움켜쥐었다. 손목 위에 검은 줄이 하나씩 솟았다. 에스텔이 마법을 쓰려 했지만 그녀보다 빠르게 도현이 외쳤다.
“이름 부르지 마세요! 일부터 멈춥니다!”
그는 반환 장부를 펼쳐 방금 받은 새 행주들을 한쪽에 놓았다. 깨끗한 것과 사용한 것을 섞지 않고, 실물과 기록의 차이를 눈앞에 드러냈다. 루카스가 감독관의 확인을 받아 지급을 일시 정지하자 노파 손목의 검은 줄이 더 번지지 않았다.
말라는 벽에 기대 한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하지만 북부에서 실종된 열여섯 명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증거는 아니었다. 말라가 사라진 시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이었다.
“정확하게 적어 주세요.” 말라가 속삭였다. “저는 돌아온 게 아니에요. 한 번도 여기서 나간 적 없어요.”
그녀의 손이 세탁실 바닥의 쇠뚜껑을 가리켰다.
“일곱 번째 종이 울리면, 저 아래서 없는 부엌이 열려요. 거기에서 아직도 일을 시키고 있죠.”
제11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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