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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112화
PAYLUA ORIGINAL · 제112화

112화. 열여섯 장의 빈 식권

저주받은 식당의 요리사가 되었다 · 4,269자

오프라인 책장
남쪽 별채 제4재료실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다. 복도의 창문은 오래전에 벽돌로 막혔고, 문짝은 습기를 먹어 아래쪽이 부풀어 있었다. 벽에는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밀가루 자국이 남았다. 도현은 그런 흔적을 볼 때마다 이 건물이 처음부터 저주를 보관하려던 장소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한때는 여기서 진짜 빵을 구웠고, 진짜 식사를 나눴을 것이다. 경비대장 토렘이 봉인을 확인했다. 의전국 인장은 분명했지만 봉인한 시각은 수상했다. 도현이 제0식탁에서 수프를 끓이기 전날로 적혀 있었다. 그런데 끈 아래쪽은 방금 붙인 듯 끈적였다. “문을 강제로 열어도 됩니까?” 토렘이 물었다. “증거 보존 절차를 남긴 다음에요.” 루카스가 대답했다. “나중에 우리가 바꿨다고 말할 구실을 주면 안 됩니다.” 브론은 문 옆을 킁킁거렸다. “문 안에서 소금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비누?” “재료실에 비누도 보관할 수 있죠.” “아뇨, 빨래비누요. 누군가 옷을 빨고 들어온 냄새예요.” 도현은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브론의 후각은 강했지만 언제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냄새는 바람과 시간에 따라 바뀐다. 그래도 무엇을 확인해야 할지는 알려 주었다. 봉인을 풀자 안에는 높다란 선반 여섯 줄이 있었다. 밀가루 통과 빈 술병, 먼지 앉은 포대가 서로 엉켜 있었다. 가운데에는 서류를 담은 청동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뚜껑에 적힌 이름은 '하얀 식탁 운송 보충 문서'. 벨로스의 창고에서 보았던 글씨체와 같았다. “이게 왜 왕궁에 있죠?” 브론이 물었다. “운송 명목으로 사라진 서류가 결국 돌아온 모양입니다.” 루카스가 말했다. 상자 안에는 종이가 열여섯 장 들어 있었다. 상자 바닥에는 해초를 말린 것 같은 냄새가 엷게 남아 있었다. 서쪽 벨로스 항구의 하얀 식탁 창고에서 맡았던 냄새와 비슷했다. 종이 끝에는 파란 섬유가 붙어 있었고, 어떤 것은 소금 결정 때문에 하얗게 변했다. 북부 밀밭의 건조한 종이와는 달랐다. 도현은 식권들이 어떤 순서로 쌓여 있는지 먼저 표시했다. 증거를 얻겠다고 서둘러 순서를 바꾸면 누군가 다시 묶어 놓았을 때 구분할 수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얇은 실을 꺼내 상자 가장자리의 틈에 넣고 손으로 매듭을 지었다. “원래 매듭하고 헷갈리지 않겠습니까?” 루카스가 물었다. “그래서 색을 달리 썼습니다. 이건 제가 방금 묶은 겁니다.” “그걸 증명할 사람은요?” 브론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그는 증인이 되는 일이 무척 중요한 임무라도 받은 듯 가슴을 폈다. 도현은 그에게 농담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그릇값만 걱정하던 늑대인간이 이제는 자신이 본 사실을 남기려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태도가 바뀌는 데에는 왕실의 명령보다 함께 보낸 시간이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었다. “그럼 상자에 손댄 순서도 기억해 주세요.” “당연하죠. 주방장님이 매듭을 묶고, 루카스 씨가 종이를 확인하고, 저는….” “냄새를 맡았죠.” “그렇습니다. 제 역할도 제법 중요한데요.” “그리고 저도 기록했습니다.” 토렘이 말했다. 그들에게는 마법 장부보다 평범한 확인 절차가 필요했다. 어느 쪽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확인자가 서로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었다. 루카스는 식권에 적힌 숫자를 보고 작은 표를 만들었다. 원본 번호, 덧씌운 번호, 보이는 도장, 종이의 손상 상태. 도현은 국적도 이름도 없는 요리사들이 이 문서의 이름 칸을 대신 차지할 가능성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숫자는 사람을 정리하는 데 편리했지만, 숫자만 남으면 사람의 얼굴을 잃어버리기 쉬웠다. “주방장님, 표정이 안 좋습니다.” 브론이 말했다. “이걸 한 장씩 사람한테 보여 주면서 누구 것인지 묻고 싶네요.” “그럼 정말 오래 걸릴 텐데요.” “그러니까 쉽게 없애겠다는 약속도 못 하죠.” 선반 위의 먼지 아래에는 낯익은 붉은 실이 깔려 있었다. 벨로스에서 백연호의 운송 상자를 봉인하던 끈과 같은 재질이었다. 도현은 한 가닥만 떼어 보관하려다 멈췄다. 붉은 실 아래로 희미한 글씨가 나타났다. [증언은 물건과 함께 운송하되, 사람의 도착으로 간주하지 말 것.] 그 문장은 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것 가운데 드물게 정직한 문장이었다. 누가 썼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들을 구조했다고 쉽게 말해 버리는 실수를 경고하고 있었다. 도현은 그 글을 베끼고 나서야 실을 원위치했다. 각각 얇은 식권 모양으로 접혀 있었고, 접힌 안쪽에는 번호만 찍혀 있었다. 요리사 이름은 없었다. 대신 같은 문장이 반복됐다. [원제공자의 증언 임시 위탁.] [실제 사람의 이송 여부: 기록 없음.] 도현이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종이 그 자체가 사라진 사람들의 위치를 알려 주지는 않았다. 누군가 그들이 살아 있다는 기대를 미끼로 쓸 수도 있었다. 도현은 한 장씩 펼쳐 빈칸의 모양과 종이 끝의 잘린 방향을 비교했다. “번호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한 장 빠졌습니까?” “아뇨. 3번 다음에 5번이 있고, 11번이 두 장입니다.” 루카스가 돋보기를 꺼냈다. 숫자 하나는 나중에 덧쓴 것이었다. 겉으로는 같은 잉크였지만 번짐이 달랐다. 도현은 주방에서 재료가 들어올 때 도장이 한 번 빠지면 어떻게 되는지 떠올렸다. 그 차이를 모른 척하면 없는 물건이 장부에 생겨난다. “식권을 몇 장 보내 달라고 했는데 왜 같은 번호를 두 장 만들었을까요?” 토렘이 어깨를 폈다. “돈을 두 번 청구하려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번호가 비어 있는 곳에는 뭔가 기록이 더 있었을 겁니다.” 그때 제4재료실 바깥에서 낮은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지키던 경비가 누군가와 언쟁하는 목소리였다. “의전국 특별 점검입니다. 즉시 내부를 비우십시오.” “왕녀 전하의 보존 명령이 있습니다.” “그 명령은 해제됐습니다.” 토렘이 고개를 들었다. “전하께서 아직 해제한 적 없습니다.” 브론이 선반 사이로 몸을 낮췄다. 도현은 식권을 제자리에 놓고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증거를 들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도망치다 한 장이라도 잃으면 상대가 원본을 바꿔치기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여기서 요리를 합시다.” 세 사람이 동시에 도현을 돌아봤다. “재료실에서요?” 루카스가 물었다. “장부의 재료가 진짜 있는지 보려면, 먹을 수 있는 걸 확인해야죠.” “그럼 뒤에서 수색하는 사람이 오는데도?” “식품 관리 점검이라고 말하면 됩니다.” 브론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시식 담당으로 임명해 주십시오.” 도현은 선반 아래에서 수상하지 않은 밀가루 한 봉투와 소금 항아리, 마른 콩을 찾았다.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재료는 쓰지 않았다. 직접 가져온 보리와 양파도 있었다. 그는 재료실 옆의 오래된 화덕을 확인했다. 굴뚝은 막히지 않았고, 재 속에는 아주 오래된 숯이 남아 있었다. 화덕에 불을 붙이자 달려오던 의전국 관리들이 문 앞에서 멈췄다. 왕실 재료실에서 허가되지 않은 불을 피운 사실을 문제 삼을 준비를 했겠지만, 도현은 그 전에 물었다. “방금 보존 명령을 해제했다고 하셨죠. 어느 시각에 누가 서명했습니까?” 관리 하나가 양피지를 펼쳤다. 서명은 아일린의 이름이었다. 도현은 도장을 자세히 살폈다. 최근 공주가 쓴 문서와 달리 세 글자의 획이 지나치게 곧았다. 더 중요한 차이는 아래쪽이었다. 공주의 공식 서류에는 저주로 인해 잉크가 살짝 번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 문서는 지나치게 매끈했다. “원본을 보여 주십시오.” 루카스가 말했다. “이게 원본이다.” “그렇다면 서명에 사용한 펜과 참석자를 기록해 주시지요.” 관리의 턱이 굳었다. 그때 화덕에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도현이 볶은 양파에 물을 붓고 보리를 넣었다. 손으로 오래 저어 끓인 그릇 하나가 어떤 장부보다 확실한 시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의전국 관리가 소리쳤다. “이 장소에서 요리하는 일은 금지다!” “그럼 왜 재료실 옆에 화덕이 있습니까?” 도현이 물었다. 관리의 대답이 늦어지는 동안 브론이 벽 뒤의 좁은 통로를 발견했다. 빨래비누 냄새가 그쪽에서 짙어졌다. 그곳에는 최근에 빨린 앞치마 한 벌이 말려 있었다. 앞치마 안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이 나왔다. [제4재료실 열람자는 한 명.] [서명자: 말라.] [사망 처리: 97년 전.] 브론이 앞치마를 들고 눈을 찌푸렸다. 천에서는 갓 말린 비누 냄새가 났다. “주방장님, 이 옷은 백 년 동안 보관한 냄새가 아닙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미 죽은 요리사의 앞치마가 오늘 아침 누군가의 손으로 세탁된 것이다. 도현은 무심코 손목을 문질렀다. 기억을 갉아먹는 저주가 조금 뜨거워졌다. 사람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 그 이름으로 아직 일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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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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