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왕도로 왔다는 소식은 다음 날 아침에야 도현에게 전해졌다.
동부 온실의 리벨이 보낸 짧은 편지였다. 하나가 며칠 동안 바깥 장터를 둘러본 뒤 왕도로 가겠다는 뜻을 스스로 정했고, 리벨이 동행했으며, 동부 관리 기록에는 보호를 위한 임시 이동 사실만 남겼다고 했다. 아이를 왕실의 증인이나 저주 해제 도구로 지정하는 서명은 하지 않았다는 문장이 특히 굵었다.
도현은 편지를 두 번 읽었다. 제0식탁의 밑면에서 발견한 세 매듭이 하나의 과거와 연결될 가능성은 커졌다. 그러나 아이가 도착했다고 곧장 지하실에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 아이에게 또 무엇을 증명하라고 시키면 안 돼.” 에스텔도 같은 생각이었다.
“먼저 여행이 어땠는지 물어봐야죠.” 도현이 말했다.
그들은 식당의 가운데 탁자를 깨끗이 닦았다. 브론은 손님용 식기와 직원용 식기를 구분하다가 다시 섞어 놓았다. 아이가 처음 보는 왕도의 식당에서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좋은 손님에게 좋은 식기를 드리는 게 맞죠?” 그가 물었다.
“그냥 깨끗한 식기면 돼요.”
“그게 제일 어렵군요. 우리 가게 그릇은 가끔 저절로 깨지니까.”
도현은 오래된 그릇을 몇 개 치우고 새 접시를 올렸다. 이날 메뉴는 부드러운 계란찜과 따뜻한 보리밥이었다. 아이가 아직 왕도의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 간은 약하게 했다. 대신 찍어 먹을 소스를 따로 준비했다.
하나는 오전 햇빛이 식당의 창턱을 넘을 무렵 도착했다. 짙은 갈색 망토 끝에는 길의 먼지가 묻어 있었고, 새 신발은 뒤꿈치가 조금 쓸려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웃고 있었다.
“도현 아저씨, 왕도에는 나무보다 사람이 많아.”
“그러네. 길은 괜찮았어?”
“아침마다 다른 냄새가 났어. 그리고 오늘은 내가 스스로 일어났어. 누가 시계를 멈춰 놓지 않았거든.”
도현은 아이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하나는 의자에 앉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기도 먹으면 내일 값을 내야 해?”
“아니. 이건 내가 초대한 식사야. 다른 사람이 대신 내는 돈도 없고.”
하나는 보리밥을 한 숟가락 맛봤다. 오래 생각하더니 계란찜을 한 입 먹었다.
“이건 꽃 냄새가 안 나서 좋아.”
브론이 신나게 대답했다. “저도 그래요! 꽃을 먹는 음식은 별로거든요.”
“당신은 꽃도 잘 먹잖아요.” 도현이 말했다.
“배고프면 먹죠. 그래도 계란찜이 더 좋아요.”
분위기가 누그러진 뒤 도현은 자신들이 발견한 표식에 대해 설명했다. 제0식탁이라는 곳이 있고, 그 밑에 하나의 매듭과 닮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고 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걸 보면 내가 엄마를 찾을 수 있어?”
“도움이 될 수 있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그리고 네가 보고 싶지 않으면 안 봐도 돼.”
하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백 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구나.”
에스텔은 손가락을 꼭 쥐었다. “그렇지 않아. 네가 안 먹겠다고 한 말을 다른 사람들이 잘못 기록했어.”
하나는 조금 화난 얼굴이 되었다. “그럼 그 말 고친 사람은 누구야?”
“그걸 찾고 있어.”
“어른들은 왜 남의 말을 자꾸 바꿔?”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말했다. “자기한테 편한 결론을 먼저 정하고 싶어서 그런 경우가 있어. 그래서 우리는 네가 직접 한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말을 따로 두려고 해.”
하나는 그 대답을 듣고도 쉽게 웃지 않았다. 아이에게 누군가의 실수는 그냥 옛날 일이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백 년이었다.
점심이 끝날 무렵 아일린이 식당을 방문했다. 그녀는 공식 의전 없이 들어왔고 하나를 먼저 공주에게 인사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이름을 밝혔다.
“나는 아일린이야. 네가 괜찮다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나는 공주의 손등을 바라봤다. 장갑 틈에서 검은 왕관 무늬가 보였다. 아이는 손을 뻗지 않았다.
“그 검은 거, 아파?”
“가끔.”
“나도 내가 왜 여기 있었는지 생각하면 가끔 아파.”
아일린은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자신은 왕궁 안에서 저주를 물려받았고, 하나는 왕국의 바깥에서 자신의 시간을 빼앗겼다. 둘의 고통을 같은 것으로 묶을 수는 없었지만 왕실의 문장이 둘에게 붙어 있다는 사실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날 오후 하나와 리벨은 왕도 시장을 조금 걸었다. 도현과 브론이 뒤에서 멀찍이 따라갔다. 아이가 혼자 가게를 들여다보고 물건값을 물을 수 있도록 지켜보되, 먼저 나서서 대신 사 주지는 않기로 했다.
시장에는 가을의 냄새가 가득했다. 바구니에는 작은 붉은 사과가 쌓였고, 옆 가게에서는 누런 치즈를 잘라 팔았다.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상인이 가격을 외치는 소리가 겹쳐졌다. 하나는 모든 것이 신기한 얼굴이었다.
“저 사과는 내년에 또 나오나요?”
리벨이 대답했다. “아마. 나무가 겨울을 잘 나면 다시 꽃이 피고 열매가 열겠지.”
“꽃이 지면 다 없어지는 게 아니구나.”
“그렇지.”
하나는 사과 한 개를 사려고 자기 주머니를 뒤졌다. 동부 온실에서 노동자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준 동전 몇 닢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보고 멈췄다. 주머니에 있는 돈으로는 가장 작은 사과도 살 수 없었다. 아이는 얼굴을 붉혔다.
도현이 대신 돈을 꺼내려 하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나도 내가 가진 걸로 사고 싶어.”
그녀는 리벨과 함께 조금 더 걸었다. 오래된 빵을 할인해 파는 가게가 있었지만, 도현은 그 빵의 보관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괜찮은 빵 몇 조각을 골라 가격을 묻자 아이의 동전으로도 살 수 있었다.
“사과보다 이게 좋아?” 도현이 물었다.
“응. 내가 산 거니까.”
하나는 자기 돈을 내고 받은 작은 빵 봉지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백 년 동안 다른 사람이 정해 준 그릇 앞에 앉아 있던 아이에게, 무엇을 살지 스스로 고르는 경험은 특별했다. 그 경험을 장부의 승낙으로 바꿀 사람은 없었다.
돌아오는 길, 하나는 길가의 오래된 왕실 안내석을 발견했다. 왕궁으로 가는 방향이 화살표로 새겨져 있었고, 그 밑에는 '왕의 축복으로 오늘의 식량을 나눈다'는 문장이 있었다. 아이는 그 말을 천천히 읽었다.
“왕이 우리한테 다 준 거야?”
도현은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렇게 적혀 있네. 하지만 실제로는 농부들이 키우고 요리사들이 만들었겠지. 누가 무슨 몫을 했는지는 알아봐야 해.”
“엄마도?”
“그럴 수도 있어. 아직은 모른다고 적어 두자.”
하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이 한차례 불어 나뭇잎이 돌길에 흩어졌다. 아이는 떨어진 잎을 한 장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도 같은 잎을 볼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날 저녁 하나는 자신이 산 빵을 식당 주방에 가져와 반으로 나누었다. 한쪽은 자신이 먹고, 다른 한쪽은 리벨에게 주었다. 누구에게도 가상의 값이 생기지 않았다. 도현은 그런 평범한 장면을 보고서야 아이가 왕도로 온 진짜 이유를 조금 이해했다. 엄마의 이름을 찾는 일만큼, 오늘 자신이 산 빵을 누군가와 나눠 먹는 일도 중요했다.
하나는 제0식탁에서 발견했다는 그림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도현은 원본이 아닌, 손으로 베껴 온 그림을 보여 주었다. 아이는 세 번째 매듭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봤다.
“내가 만드는 건 이렇게 돌아가.” 하나는 끈을 꺼내 직접 매듭을 보여 주었다. “이건 엄마가 만들어 준 거고, 저건 내가 흉내 낸 거야.”
“그럼 돌판에 있는 건 엄마가 만든 거니?” 에스텔이 물었다.
“아니.” 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저건 엄마가 나한테 손이 다쳤을 때 가르쳐 준 방향이야. 매듭을 못 매는 사람이 해도 풀리지 않게.”
도현은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애썼다. 세 매듭은 특정한 사람의 서명일 수도, 여러 사람이 쓸 수 있는 생존의 기술일 수도 있었다. 하나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록했다.
하나는 어깨를 펴며 덧붙였다. “제0식탁에 갈 수는 있어. 그런데 아무것도 먹으라고 하면 안 돼. 엄마가 만들었다는 걸 보여 줘도 내가 모르면 모른다고 할 거야.”
“그게 맞아.” 도현이 말했다.
그들은 안전 확인과 일행의 보호 조건을 정한 뒤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계단을 걸을 때 하나의 발걸음이 느려지면 멈추기로 했다. 돌아가겠다고 말하면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고 올라오기로 했다.
하나는 그 약속을 세 번 확인했다. 그리고 오후 늦게 지하실 계단 앞에 섰다.
“나 여기에 왔던 적 있어.”
그녀가 말했다.
도현은 묻고 싶었던 질문을 꾹 참았다. 하나는 계단의 셋째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엄마가 나를 안았어. 그런데 다음 칸부터는 기억이 안 나.”
에스텔은 눈물을 참으며 벽을 짚었다. 그러나 하나가 다시 말할 때까지 누구도 아이를 내려다보며 재촉하지 않았다.
그날 제0식탁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오래된 돌계단에서, 서로의 기억을 정확히 구분하려는 사람들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봤을 뿐이었다.
제10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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