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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98화
PAYLUA ORIGINAL · 제98화

98화. 검은 망치의 입찰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052자

오프라인 책장
인쇄틀이 있는 지하실은 오래된 목판 공방처럼 보였지만, 안쪽으로 갈수록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맑은 잉크와 기름 냄새 사이에 화학 약품의 날카로운 향이 섞여 있었다. 벽에는 수십 장의 서류가 매달려 있었고, 일부는 글자가 사라진 채 붉은 도장만 남아 있었다. 카렌은 한 장을 보존사에게 건넸다. “이거 위조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아요.” “같은 서체와 잉크를 사용해 원본처럼 보이게 만들었군요.” 보존사는 확대경으로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종이의 가장자리에 수십 년 전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인공적으로 눌러 만든 자국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된 종이에서 나타나는 섬유의 닳음이 균일하지 않았다. 누군가 장비로 오래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 흔적이었다. 진혁은 의자 하나를 끌어와 앉으려다가 먼지를 털고 도로 세웠다. “이런 데서까지 가구가 사람을 놀리네요.” “가만히 계세요.” 카렌이 말했다. “앉는 자리마다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니.” 검은 망치 인쇄틀의 아래쪽에는 자동 구동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된 수문 압력이 올라가면 굴러가는 바퀴가 인쇄틀을 한 번씩 눌렀다. 원부의 원본 보관처를 증명하는 것처럼 꾸민 종이들은 바닷물이 밀려올 때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누군가 사람이 없는 시간에도 기록을 생산하도록 설계해 놓은 것이다. “출품자는 유령이었군요.” 진혁이 말했다. “아니에요. 기계가 스스로 서명을 만들어 내도 기계를 설치한 사람은 있어요.” 미란이 말했다. 인쇄틀 아래에는 작업 일지가 놓여 있었다. 한 줄마다 날짜와 발행한 문서의 수가 적혀 있었고, 마지막에는 이상한 표기가 반복되어 있었다. '반환', '보류', '거부'. 진혁은 그 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 장부에 거래가 성립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외부로 보내는 증명서에는 그 칸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아홉 번째 칸이 빠진 이유가 보이네요.” 진혁이 말했다. 카렌이 일지를 들여다봤다. “동의가 없으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반대 기록을 숨겼군요. 이 서류만으로 전부 입증되진 않지만, 위조의 방향은 분명해졌어요.” “문서가 실제로 어디에 쓰였는지도 찾아야겠죠.” “예. 저 종이들이 여러 도시로 퍼졌다면 피해자가 많을 거예요.” 진혁은 인쇄틀의 굵은 손잡이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낡은 기술을 이용한 기발한 사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이 납득할 때까지 같은 거짓말을 반복해서 찍어 내는 장치라는 사실을 깨달으니 소름이 돋았다. 고철을 감정하는 자신과 정반대의 일이었다. 진혁은 가치가 없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려 했지만, 이곳 사람들은 없는 권리를 만들어 비싸게 팔았다. 미란이 인쇄틀의 오른쪽 축을 검사하며 말했다. “한 번 회전할 때마다 한 장씩 찍힙니다. 수문 압력이 완전히 올라가면 시간당 수십 장이 나올 수 있어요. 아직 남은 종이가 많습니다.” “그렇게 많이 찍어서 누가 사요?” 라일이 물었다. “속는 사람이 한 명이면 충분할 때도 있죠.” 카렌이 대답했다. “빚을 갚았다고 믿고 도장을 찍는 순간, 다른 재산을 가져가는 계약이 끼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진혁은 자신이 구했던 백여명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까지 수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그 이름을 또다시 찍어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은 대체 언제 안전해지는 것일까. 그 말이 끝나자 지하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경비대 조사관 두 명이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검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얇은 베일에 가려져 있었고 손에는 작은 은색 망치가 들려 있었다.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여자는 침착하게 말했다. 말투는 상인의 그것이었다. 물건의 값과 상대의 표정을 동시에 살피는 사람처럼 눈길이 부드럽고도 빠르게 움직였다. “당신은 누구죠?” 카렌이 물었다. “저를 아는 분들은 '입찰 대리인'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이 꼭 필요한가요?” 진혁은 웃지 않았다. “이름이 필요하지 않다면 왜 남의 이름으로 장부를 만들었습니까?” 여자는 잠시 입을 다물더니 망치를 들어 올렸다. “우리가 거래하는 것은 종이에 적힌 권리뿐입니다. 종이에 적히지 않은 고통은 우리 책임이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 책임이 줄어듭니까?” “세상은 거래로 돌아갑니다. 잘못된 채무를 가진 사람에게 새로운 출발을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카렌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동의 없는 이름 삭제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기록 조작이에요.” 여자는 눈썹을 들었다. “가장 비싼 경매품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손에 쥔 은색 망치를 한 번 돌렸다. 그 표면은 너무 말끔해서 실제 작업장 도구라기보다 공연용 소품에 가까웠다. 바닥의 톱니가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일행의 얼굴을 차례로 살폈다. 그중 가장 오래 머문 곳은 라일의 얼굴이었다. “당신은 여기에 와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여자가 물었다. 라일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더군요. 그런데 누가 누굴 봤는지는 서로 증명해야죠.” “어릴 때는 눈빛이 더 사나웠는데.” 진혁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사람의 과거를 들먹이는 게 이곳 경매 절차입니까?” 여자는 가볍게 웃었다. “감정사님, 모든 물건에는 과거가 있지요. 특히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물건으로 취급합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진혁이 대답하는 동안 벽 한쪽의 검은 손잡이를 조금 밀었다. 카렌이 그 움직임을 알아채고 조사관에게 신호했다. 그녀가 시간을 끌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진혁은 상대가 심리전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주머니에 넣고 더 이상 감정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저 손잡이에 무엇이 연결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일이었다. 그녀는 은색 망치로 테이블을 세 번 두드렸다. 뒤쪽 기계에서 거친 소리가 나더니 작은 서류 한 장이 내려왔다. 종이에는 '서진혁'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옆에는 알 수 없는 계약 번호가 붙어 있었다. 진혁이 처음 본 번호였다. [서진혁. 임시 제8감정인. 모든 미신고 권리 검수 책임자.] “이번에도 내 이름이네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제가 아주 인기 있는 모양입니다.” 그는 서류를 만지지 않았다. 문구가 새겨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의 법적 책임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누군가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다. “대체 누구에게 팔려고 합니까?” 바닥에 떨어진 동전은 너무도 가벼운 소리를 냈다. 진혁은 그 작은 원형 금속이 어떤 사람에게는 굶주린 가족을 먹일 돈이 되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남의 선택을 시험하는 장난감이 되는 것이 불편했다. 경매장의 망치가 물건에 값을 붙이는 소리는 익숙했다. 그러나 그 망치가 사람에게까지 값을 매기려 할 때는 누군가 손을 들어 멈춰야 했다. 그 역할이 자신일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보다 책임감이 앞섰다. 여자는 대답 대신 진혁에게 작은 은화를 던졌다. 동전은 그의 신발 앞에서 두 번 튀었다. 동전의 한쪽 면에는 검은 망치, 다른 면에는 숫자 998이 있었다. “입찰하십시오. 당신이 팔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세요.” 진혁은 동전을 내려다봤다. 늘 하던 일이라면 이상한 물건을 주워 그 가치를 확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그 말을 꺼내고 나서 진혁은 예상과 달리 안도감을 느꼈다.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상대가 만든 경매의 규칙 안에 들어가는 순간, 이미 잘못된 전제를 인정하는 셈이었다. 때로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 가장 값비싼 선택이었다. “입찰 안 합니다.” 여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당신의 이름이 경매에 나왔는데도요?” “이름은 출품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적법한 소유권도 없잖아요.” “그런 소리는 다들 합니다. 그러다 서류가 완성되면 후회하죠.” 진혁은 카렌을 쳐다봤다. 그녀는 자신의 옆에 선 경비대에게 조용히 신호를 보냈다. 조사관들이 한 발씩 앞으로 나왔다. 여자는 미소 지은 채 은색 망치를 또 한 번 내리쳤다. 바닥 밑에서 쇳소리가 들렸다. “이미 시작됐어요.” 인쇄틀이 움직였다. 줄지어 걸린 종이들이 바람에 흔들렸고, 아래쪽 수로에서 물이 갑자기 밀려들었다. 누군가 수문과 인쇄장치를 연동해 놓은 것이다. 침입자가 발견되면 원본처럼 꾸민 서류를 물에 담가 없애거나, 반대로 대량으로 밖에 내보내도록 만든 장치였다. 미란이 비상 지지대를 밀어 넣었다. “인쇄틀은 멈출 수 있어요. 그런데 수로를 막으면 사람이 갇힙니다!” 라일은 도망로를 확인했다. “왼쪽 계단은 살았고, 오른쪽은 물이 찹니다!” 카렌은 망치를 든 여자를 붙잡으려 했지만, 여자는 바닥에 깔린 기름을 밟고 뒤쪽으로 미끄러지듯 달아났다. 경비대원들이 그녀를 추격했다. 진혁은 그녀를 뒤쫓는 대신 인쇄틀을 바라봤다. 기계는 서류를 또 한 장 밀어 내고 있었다. 종이 위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백여명. 제32후보. 양도 확인.' 진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북쪽 폐광에서 자신들이 지키려 했던 사람의 신원이 이곳에서도 거래되고 있었다. 누구의 이름이든 종이에 찍어 넣기만 하면 모두가 믿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그들을 막는 것은 전설의 검보다 남아 있는 증거 한 장이었다. 그는 인쇄틀 뒤에 달린 작은 톱니를 살폈다. 낡은 기계의 하단에는 손바닥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그 안으로 물이 한 줄기 흘렀다. 장치가 힘을 얻는 경로였다. 진혁은 미란에게 위치를 가리켰다. “저걸 끊으면 인쇄는 멈추겠죠?” “할 수 있어요. 다만 물을 받을 다른 길이 있어야 합니다!” 라일은 아까 본 번호 없는 문을 떠올렸다. “오른쪽 빈 통로요. 방류관이라고 했죠?” “그쪽의 벽이 버틸지 모르겠어요.” 모두의 시선이 도르에게 쏠렸다. 노인은 침착하게 등잔 밑의 유리판을 꺼냈다. 그는 아홉 개의 붉은 점 가운데 마지막 점을 가리켰다. “여기는 장부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문이오. 마지막 칸은 언제나 막혀 있어야 하는 게 아니에요.” 진혁은 그 말을 곱씹었다. 경매의 시작가는 누군가를 사들이는 돈이 아니라, 잘못된 거래에 멈추라고 말할 용기일지 몰랐다. “그러면 이번에는 우리가 정하죠.” 그는 장치 앞에 섰다. “사람의 이름을 팔 수 없다는 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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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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