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97화
PAYLUA ORIGINAL · 제97화

97화. 세 개의 문과 하나의 빈칸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058자

오프라인 책장
제9창고 수로 입구로 향하는 길은 낮에도 어두웠다. 외항의 창고들이 바다 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어 골목마다 햇빛이 금방 가려졌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건물 사이에 작은 수로를 만들었다.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해는 서쪽 방파제의 등대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왕이면 오늘은 죽지 않는 방향으로 일정을 짰으면 합니다.” 진혁이 말했다. 라일은 자기 장화의 밑창을 확인하며 대꾸했다. “죽는 일정이 먼저 정해져 있으면 다른 약속도 잡지 않았겠죠.” “그럼 일당은 오르겠네요.” “죽으면 누가 받는데요?” 라일이 한숨을 쉬자 카렌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두 분은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버릇이 있군요.” 미란이 현장 도면을 펼쳤다. 외항 수로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방재 시설과 연결되어 있었다. 오래된 설비를 살펴보는 일은 단순히 자물쇠를 따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문을 열면 물이 어디로 흐르는지, 어느 구간의 벽이 이미 손상되었는지, 어떤 지점에서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미란은 한 명씩 임무를 나눴다. 진혁은 유물과 장치의 외형 기록을, 카렌은 출입과 증거 보전 절차를, 라일은 뒤편 복도의 장애물과 퇴로를 확인하기로 했다. “저는 왜 가장 위험한 뒤쪽입니까?” 라일이 물었다. “당신이 뒤쪽 문 구조를 잘 아니까요.” “제 재능을 안전하게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지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구조팀이 보조 기둥을 고정하고 바닥판을 검사하는 동안 창고 위층을 먼저 확인했다. 가죽 장갑이 물에 젖어 뻣뻣해질 무렵, 조사관이 금속 덮개에서 옛 조합 도장을 발견했다. 열두 해 전 만들어진 도장이었다. 도르가 보관한 유리판의 점 세 개와 위치가 일치했다. 진혁은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자신의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비밀의 입구에 선 사람에게는 언제나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찾아왔다. 답을 보고 싶다는 마음과, 답을 보고 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 그는 옆에 선 카렌을 바라봤다. 그녀는 검집을 확인하면서도 무리하게 검을 뽑지 않았다. 철제 문을 열어야 할 사람은 기술자이고, 위험한 사람을 막아야 할 때만 자신이 앞에 서면 된다는 태도였다. 진혁은 그 침착함을 조금 부러워했다. “자, 이제 문을 엽니다.” 미란이 말했다. 작은 금속판이 옆으로 밀리자 아래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올라왔다. 바다의 냄새보다는 오래된 종이와 진흙 냄새에 가까웠다. 깊은 곳에서는 물방울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구조대원이 먼저 탐침을 넣어 산소 농도와 바닥 하중을 확인했다. 계단의 가장자리마다 도료로 경계선을 표시한 뒤에야 네 사람이 뒤따랐다. 입구에서 기술자가 건네준 얇은 천 마스크는 습기를 머금어 금방 무거워졌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위쪽의 바닷바람은 사라지고, 벽 안쪽에서 피어나는 곰팡내가 강해졌다. 석회가 덩어리로 떨어진 곳에서는 오래된 벽돌의 붉은 속살이 드러났다. 천장의 배관마다 물방울이 맺혔는데, 떨어지는 간격이 저마다 달라 마치 누군가 느린 박자로 북을 치는 것처럼 들렸다. 진혁은 손바닥을 코트 주머니 속에서 움켜쥐었다. 이곳에 내려오기 전에는 문을 하나 열면 잃어버린 원부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밑에 삭은 나무와 새로 설치된 철제 받침을 번갈아 보니 그 기대가 지나치게 단순해 보였다. 사람을 속이는 자들은 오래된 시설을 이용했고, 그 시설을 관리할 돈이 없었던 도시가 그들에게 어두운 틈을 내주었다. 비밀의 절반은 마법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방치에서 태어났다. 카렌은 계단마다 작은 숫자를 적었다. “위험한 상황이면 같은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어야 해요.” 라일이 손끝으로 벽돌의 이음새를 만졌다. “배달인들은 이렇게 못 했어요. 숫자를 쓰면 들키니까.” “그래서 길을 잃었나요?” “길을 잃지 않으려고 사람을 믿었죠. 누구를 믿어야 할지 잘못 고르면 그때부터 큰일이 났고요.” 진혁은 그의 말을 듣고 뒤돌아봤다. 라일은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지만 표정이 달랐다. 몇 년 동안 숨겨 온 어린 시절을 지금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할 것이다. 카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좁은 계단은 스물세 칸이었다. 중간부터는 벽돌이 기울어 있었다. 라일은 매번 그 칸을 지날 때마다 몸을 작게 움츠렸다. 그가 어린 시절에 다녔던 작업실과 비슷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여기…… 여기는 누가 발자국을 지우던 곳이었어요.” “기억나는 겁니까?” 카렌이 물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루를 봤어요. 조합 아이들이 길을 잘못 들지 않게 해 준다고 했죠.” 라일이 가리킨 곳에는 검은 자갈 같은 것이 흩어져 있었다. 미란은 그것을 수거한 뒤 통로를 더듬었다. 가루는 특수한 발광 물질이었다. 물을 적시면 반짝였지만, 마르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어린 배달인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데 쓰였던 것 같았다. 문 앞에 이르기 전, 통로 바닥에 새겨진 선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다른 돌과 달리 얇은 은색 가루가 섞인 선이었다. 라일은 그 선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배달 일을 배울 때 들은 경고를 떠올렸다. '손에 든 물건이 무거워지면 멈추고, 빈손인데 발이 무거워지면 돌아가라.' “여기 바닥이 이상해요.” 미란이 계측기를 내려놓았다. 바닥 아래로 작은 스프링이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바닥판이 아주 조금 눌리도록 만든 구조였다. 압력의 변화가 다른 방의 장치로 전달될 수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지나간 사람의 무게나 숫자를 기록하려 했을 수도 있었다. 진혁은 얼굴을 찡그렸다. “입장객 수를 셀 거면 표를 나눠주면 되잖아요.” “그건 계산이 아니라 감시였겠죠.” 카렌이 말했다. 라일은 벽의 작은 틈에서 낡은 나무 쐐기를 찾아냈다. 그것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어떤 물건이 위험한지는 이제 조금씩 구분할 수 있었다. 카렌이 사진을 찍고 미란이 판의 안정성을 확인하는 동안 라일은 물러서서 기다렸다. 몇 달 전 자신이라면 이미 쐐기를 뽑아 들고 신이 났을 텐데, 오늘은 세 사람에게 말하는 편이 훨씬 빨랐다. “도둑질을 안 하니까 손이 남아도네요.” “그럼 기록표 좀 들어 주세요.” 카렌이 말했다. 라일은 싫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수첩을 받아 들었다. 손이 남는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바빠졌다. 복도의 끝에는 작은 문 세 개가 있었다. 가운데는 숫자 998, 왼쪽은 997, 오른쪽은 아무 숫자도 없었다. 잠금장치 앞에는 낡은 시계가 걸려 있었는데 긴바늘만 천천히 움직였다. “세 문 가운데 하나가 원부 보관처겠죠?” 진혁이 말했다. “그런 기대는 버려요.” 미란이 대답했다. “숫자가 적힌 문이 가장 위험한 법이에요.” 진혁은 철제 문에 손을 가까이 댔다. 능력이 발동하며 글자가 떠올랐다. [제998호 검수 통로.] [과거 용도: 물건 반환 증거 전달.] [주의: 이곳을 개방한다고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는다.] 그는 손바닥의 열기를 참으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원본을 넣어 둔 창고라기보다 기록을 확인하기 위한 장소였다. 실제 원부가 있다면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었다. 진혁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벽 너머에는 오래된 철 냄새가 가득했고, 통로 끝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 화려한 금고를 상상하고 들어온 사람이라면 실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낡은 장소에서 오히려 더 많은 사실을 읽었다. 누군가 사람을 속이기 위해 지하의 벽과 수로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그 거짓말에는 돈과 시간이 꽤 들었을 것이고, 그만큼 누군가 얻으려는 것도 컸을 터였다. “원부가 여기 있다는 말은 거짓일지도 몰라요.” “그럼 왜 사람을 여기로 부른 걸까요?” 라일은 빈 오른쪽 문을 가리켰다. “저긴 숫자가 없어요. 도르가 그랬죠. 아홉 번째 자리는 사람이 앉지 않는 자리라고. 그럼 문도 숫자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카렌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시험하려면 먼저 안전 점검부터.” 조사관이 세 문을 모두 열지 않은 채 안쪽 구조를 탐지했다. 오른쪽 문 뒤에서는 둔한 금속의 떨림이 감지됐고, 997번 통로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든 흔적이 없었다. 998번 문에서는 인위적으로 바른 검은 윤활유 냄새가 났다. 누군가 최근에 문을 만졌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위쪽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뒤이어 발소리가 이어졌다. 방범등이 꺼지자 복도는 검은색 천을 덮은 듯 어두워졌다. “퇴로 확보!” 카렌이 외쳤다. 라일이 줄을 당겨 상부 구조대와 연결된 신호를 보냈다. 잠시 뒤 위에서 불빛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 사이 지하 통로의 맨 끝, 998번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열쇠를 돌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물이 빠지는 소리가 났다. 문틈에서 축축한 종이 냄새가 밀려왔다. 진혁은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지금 문을 열면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문이 스스로 열리고 있었다. 누군가 수문 압력을 조절해 문이 열리도록 한 것이다. 미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닫지 마세요. 억지로 막으면 압력이 더 올라갈 수 있어요.” 그들은 뒤로 물러나 지켜봤다. 문 안쪽에 있는 것은 금화도, 무서운 괴수도 아니었다. 사람 키만 한 낡은 인쇄틀과 벽면을 따라 설치된 롤러였다. 바닥에는 작은 바퀴들이 달려 있었고, 천장에는 마른 종이 냄새가 배어 있었다. 고대의 거창한 마법 장치라기보다는 오래된 인쇄 공방처럼 보였다. 진혁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 웃음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 “사람 이름을 지우는 경매라더니…… 종이에 이름을 찍어 내는 공장부터 있었네요.” 벽 한쪽에는 검은 망치가 찍힌 최근 서류 수십 장이 걸려 있었다. 그 중 가장 위쪽 종이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998호 원부 원본 보관처 이전 증명서.’ 그 서류 아래에는 서명 칸이 아홉 개 있었다. 여덟 개는 검은 먹물로 채워져 있었고, 아홉 번째만 텅 비어 있었다. 라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이 누군가를 앉히려던 자리가…… 저 칸인가 봅니다.” 진혁은 가슴께에 묘한 답답함을 느꼈다. 경매장은 물건을 팔기 위해 존재했다. 그런데 이곳은 팔지 않은 물건에 팔았다는 증명을 붙이는 공장이었다. 그것을 멈추지 않으면 기록을 믿는 사람들이 먼저 피해를 입을 것이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97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97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