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항에 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문을 여는 곳은 병원도, 경비대 본부도 아니었다. 조합 소속 인부들이 쉬는 급식소였다. 그곳에는 소금과 식초로 닦은 긴 나무 탁자가 있었고, 구급 약품과 마른 담요가 늘 준비되어 있었다. 현장 구호소를 설치하는 동안 다친 사람들은 그 탁자에 앉아 상처를 씻었다.
에다르 크룸은 그 급식소의 한쪽에서 기침하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목소리는 거칠게 갈라졌다. 그를 구한 구조대원은 저체온증을 걱정하며 뜨거운 천을 가져왔다. 카렌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진혁에게는 조금 답답한 시간이었다. 에다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빠져나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묻지 않으면 도망갈 텐데요.”
“지금 묻다가 사람이 죽으면, 그때 얻는 답이 무엇이겠어요?”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급식소 밖에서는 구조대원들이 긴 장화를 벗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 때마다 바닷바람이 밀려들었고, 뜨거운 국물이 든 그릇에서 하얀 김이 일었다.
급식소의 작은 창문 너머에는 사고가 남긴 흔적이 보였다. 구조대가 끌어낸 배는 부두 기둥에 임시로 묶여 있었고, 검은 기름이 새는 부분에는 흡수용 모래를 뿌려 놓았다. 한쪽에서는 조사관이 선원들의 이름과 안전 여부를 확인했다. 누군가 아이에게 괜찮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고, 아이는 계속해서 어머니의 소매를 붙잡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됐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소란이었다.
진혁은 창밖을 보며 계산했다. 장비를 수리할 돈, 방류관을 검사할 돈, 배가 움직이지 못하는 동안 손실을 입은 노동자들의 임금. 나쁜 경매 한 번이 수십 사람의 장부에 얼마나 많은 적자를 남길 수 있는지 새삼 실감했다. 화려한 천이 깔린 경매장의 큰돈보다 여기에서 움직인 작은 돈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라일은 옆 의자에 앉아 구겨진 담요를 접었다. 평소라면 이럴 때 비싼 의자라도 훔쳐 팔아야 한다는 농담을 했을 텐데, 그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남자를 구한 뒤 그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자신도 어릴 때 누군가의 손이 없었으면 물속에 남았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르가 그에게 작은 컵을 건넸다. “따뜻할 때 마셔라.”
“아직은 할아버지가 누군지 다 모르는데요.”
“알고 마셔도 되고 모르고 마셔도 된다. 컵은 뜨겁구나.”
라일은 입가에 미소를 얹었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불편한 침묵이었지만 이상하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의사가 상태가 안정됐다고 판단하자 카렌은 에다르에게 자신이 조사하는 사건의 범위를 설명했다. 제9창고 임대 계약, 불법 경매 초청장, 출처를 알 수 없는 수문 조작 부품. 에다르는 사진을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외항에서 낡은 선박을 매입해 수리하는 중개업을 했지만, 최근 몇 달 사이 거래가 줄어 빚이 늘었다고 털어놨다. 금화 스무 닢의 선불금을 받은 날에는 당장 집주인에게 밀린 임대료를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계약서의 작은 글씨 하나 때문에 거대한 음모와 연결됐다는 이야기에 자신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카렌은 에다르가 가진 계약서의 사본을 가져오도록 했다. 하단에는 '공연용 출품 보조'라고 적혀 있었고, 출품물의 실제 권리 확인은 다른 사람에게 맡긴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러나 그 다른 사람의 신원은 빈칸이었다. 누구도 자신의 이름을 넣지 않은 채 책임만 떠넘길 수 있는 구조였다.
“빈칸이 있는데도 서명했네요.” 진혁이 말했다.
“그날은 돈이 급했어요. 이런 작은 글씨까지 볼 정신이 없었다고요.”
그 말은 변명이기도 하고 현실이기도 했다. 진혁은 자신의 예전 모습을 떠올렸다. 루멘에 처음 들어왔을 때라면 월급 몇 닢을 위해 이해하지 못한 계약서에도 서명했을지 몰랐다. 급한 사람에게는 작은 글씨를 읽을 시간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카렌은 계약서를 접으며 말했다. “그 사정도 기록하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수문을 조작한 행위는 별도로 조사해야 해요. 돈이 급했다고 위험한 장치를 시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에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서 조금씩 오만함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자리했다. 그는 자신이 속은 사람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를 속이는 데 협력한 사람이기도 했다.
에다르는 처음에는 입을 다물었지만, 자신이 타고 있던 배의 손상 사진을 보자 말을 꺼냈다.
“나는 경매를 꾸민 적 없어요. 정확히는 무슨 물건이 나오는지 몰랐다고요.”
“창고를 빌린 사람의 이름이 당신이었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출품자가 아니었죠. 수수료를 받기로 한 대리인이었습니다.”
에다르는 젖은 주머니에서 금속 토큰을 꺼냈다. 숫자 998이 새겨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검은 망치 무늬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일곱 날 전 중개인에게 받았다. 중개인은 출품자 대신 손님을 모으는 역할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경매의 물건은 오래된 '이름의 담보권'이며, 신분을 잃은 사람들에게 되팔면 큰돈이 된다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고 했다.
“정말 믿었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처음에는 안 믿었죠. 그런데 선불금을 받았어요. 금화 스무 닢. 내 평생 만져본 돈보다 많았다고요.”
진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금화 스무 닢이면 작은 집의 임대료를 몇 달이나 낼 수 있었다. 외항에서 물건을 나르는 사람에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하지만 그 돈 때문에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름을 지우면 뭐가 생깁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토큰을 대면 종이에 적힌 이름이 흐려지는 걸 보긴 했어요.”
카렌은 그 말을 기록관에게 적게 한 뒤 물었다. “사람의 기억도 지워집니까?”
“그런 얘기는 없었습니다. 문서에서 이름이 흐려지면 옛 계약이 소멸한다고만 했어요.”
모두 조용해졌다. 문서에서 글자가 흐려지는 일과 그 사람의 권리가 사라지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두 일을 일부러 같은 것으로 믿게 만들면, 이름이 지워진 사람에게서 무엇이든 사들일 수 있다고 속일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시작가가 이름 삭제였군요.” 진혁이 말했다. “돈이 아니라 겁을 먼저 받는 거래.”
“당신들이 나를 속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에다르가 중얼거렸다.
“아닙니다.” 카렌이 답했다. “우리가 확인하려는 것은 당신이 누구에게 속았는지예요. 그렇다고 당신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때 급식소 문이 열렸다. 방수 망토를 입은 청년이 안으로 들어와 에다르를 찾았다. 그는 환자 가족이라고 했지만 에다르가 보자마자 몸을 굳혔다. 청년은 금방 돌아서려 했다. 경비대 조사관이 그의 앞을 가로막자 청년은 종이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봉투 안에서 빛나는 작은 가루가 흩날렸다.
“만지지 마!” 진혁이 소리쳤다.
가루는 주변의 먹물 자국 위에 떨어졌고, 글자들이 순식간에 흐려졌다. 기록관의 수첩에서조차 방금 적은 에다르의 이름이 희미해졌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 이름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에다르는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
그의 외침을 들은 기록관은 흐려진 수첩과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먹물은 사라져도 사람이 살아 있었다. 이름의 흔적을 복원하는 일은 어려울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자신을 누구라고 부르는 권리를 빼앗을 수는 없었다. 진혁은 누군가의 이름을 지워 준다는 약속이 왜 그렇게 달콤했는지 이제 이해할 것 같았다. 빚에 눌린 사람은 과거를 없애고 싶어 한다. 그 틈을 노린 자들은 과거만 지우는 것처럼 꾸며 미래까지 가져가려 했다.
“나는 에다르 크룸이오!”
청년은 문으로 달려가려다 경비대에게 붙잡혔다. 카렌은 가루를 흩뜨리지 않도록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기록관은 문서의 훼손 전 사진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보존사는 모든 조사 문서를 이중으로 복사해 별실에 보관했다.
미란이 급식소에 도착해 가루를 살폈다. “마력 먹물에 반응하는 침전 가루예요. 서명이나 날짜를 물리적으로 지우는 데 쓰였을 수 있어요. 일반 종이까지 다 사라지게 하는 마법은 아닙니다.”
바깥에서는 조합의 저녁 종이 울렸다. 일하던 사람들은 서로의 출근표를 확인하고 귀가했다. 에다르가 자신의 이름을 외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도 도시의 일상은 계속 움직였다. 진혁은 그 평범함에서 묘한 위안을 느꼈다. 종이에 찍힌 단 한 줄이 삶을 바꿀 수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기억하는 일 또한 중요할 것이다.
“그럼 우리 이름을 지우겠다는 사람은…….”
“자기 범죄의 증거를 지우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카렌이 말했다.
청년이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는 당장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장갑에는 제9창고에 있던 파란 실과 같은 색의 매듭이 있었다. 라일은 그것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낡은 조합 표식이었지만 매듭의 방향이 반대였다.
“우리는 왼쪽으로 묶었어요. 저건 오른쪽입니다.”
“무슨 뜻이죠?”
“누군가 조합의 옛 표식을 따라 만든 겁니다. 실제 배달인이 아니에요.”
진혁은 에다르가 건넨 토큰을 직접 만지지 않고 유리 상자 너머로 살폈다. 능력은 희미하게 반응했다.
[검은 망치 출입패.]
[사용 기록: 출입 시각 기록, 물건 권리 이동 불가.]
[잔류 기억: '서명이 지워져도 빚은 남는다.']
그 문장을 본 순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누군가는 남의 이름을 없애 주겠다고 속이면서, 실제로는 그 사람의 빚만 남겨 놓는 사기를 치고 있었다.
그는 카렌을 보았다. “원부를 찾아야 해요. 그게 없으면 피해자가 몇 명인지도 알 수 없어요.”
카렌은 창밖에서 멀어져 가는 물결을 바라봤다. “찾죠. 다만 저들이 우리를 끌어들이려는 방식대로는 안 됩니다.”
그때 도르가 급식소로 들어왔다. 노인은 낡은 우산을 벽에 기대고, 손바닥만 한 종이의 앞뒤를 뒤집어 보였다. 앞면에는 검은 망치, 뒷면에는 연필로 쓴 작은 그림이 있었다. 아홉 개의 의자 중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오늘 밤입니다.” 도르가 말했다.
“뭐가요?”
“저들이 진짜 값을 부르는 시간이오. 밀물이 완전히 돌아오기 전에 제9창고 아래에 남아 있는 기록을 빼낼 겁니다.”
진혁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아직 여섯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동안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진 느낌이었다. 상대의 경매에 입찰하는 대신, 상대가 숨기려는 기록을 보호해야 했다.
제9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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