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창고에 놓였던 아홉 번째 의자는 사라졌지만, 의자의 흔적은 남았다. 벽돌 위에 선명하게 남은 네 개의 자국과 그 사이에 끼어 있던 파란 실밥 한 가닥. 항만 경비대가 그것을 감식실로 가져간 뒤에도 진혁은 몇 번이나 빈자리를 돌아봤다.
“이제 의자에도 가격을 매기는 겁니까?” 라일이 물었다.
“값을 매긴다기보다 분실 신고를 하고 싶군요. 의자를 훔쳐 가다니, 너무 소박한 범인이잖아요.”
“내 과거 직업을 비하하는 말로 들립니다.”
“당신이라면 금고를 털었겠죠.”
라일은 반박하지 않았다. 훔쳐야 했던 시절과 훔치지 않아도 되는 현재 사이에는 아직 낯선 거리가 있었다.
바닷바람이 습한 목소리로 창틀을 훑었다. 바깥에서는 낡은 선박의 구명 장비를 처분하는 작은 공공 경매가 열릴 예정이었다. 진혁은 그 목록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물건을 발견했다. 찢어진 구명환 열두 개가 묶인 잡품 상자였다. 마레온의 항구에서는 선박이 해체될 때 재사용 가능한 장비와 폐품을 나누어 팔았다. 사람들은 작동이 확실한 등불이나 좋은 밧줄을 찾았고, 반쯤 터진 구명환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구명환의 원형 잠금쇠 하나가 사진 속 검은 돌의 홈과 같은 규격이었다.
“이건 제 돈으로 삽니다.” 진혁이 말했다.
“지난번에도 폐품을 샀잖아요.” 카렌이 물었다.
“그러니까 소액 경매는 제게 적합한 직장 복지입니다.”
해체장은 작은 도시처럼 움직였다. 나무로 만든 간이 사무소에서 장부를 쓰는 사람, 톱날에 기름을 바르는 사람, 녹슨 못을 골라 자루에 담는 아이들이 서로의 길을 피해 다녔다. 폐선의 옆구리를 절단할 때마다 부두 끝에서 둔탁한 메아리가 돌아왔다. 낡은 갑판 위에서는 선원 둘이 마지막으로 남은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배의 이름판을 떼어 가슴에 안았다. 수십 년 함께 다닌 배가 고철이 되는 순간에 이름만이라도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진혁은 그 장면을 보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자신은 늘 가격이 낮은 물건 속에서 높은 가격을 찾아내는 데 흥분했다. 그러나 여기 있는 물건의 가치가 언제나 금화로 계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해체장 주인은 고철값을 받아야 생계를 잇고, 선원은 이름판 하나만 있어도 추억을 지킬 수 있었다. 좋은 거래는 모두를 웃게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함부로 짓밟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해체장 주인의 아내가 장부를 보여 주었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구명 장비를 재사용 금지로 분류한 기록이 있었다. 손잡이가 멀쩡해 보여도 내부 부품이 손상된 것은 사람을 살리는 용도로 팔 수 없었다. 진혁은 그 규정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고장 난 구명환을 사는 이유는 물에 띄우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의 철제 잠금쇠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그 점을 명확히 설명하고, 경매사에게 물건의 용도를 바꾸지 않겠다고 말했다.
카렌은 그런 그를 조금 의외라는 듯 바라봤다. “이제는 매번 설명까지 하네요.”
“한 번 설명 안 하고 넘어갔다가 골치 아픈 일이 얼마나 생기는지 배웠으니까요.”
“제가 당신에게 잔소리한 보람이 있군요.”
“잔소리가 직장 교육으로 인정된다면 교육 수당도 나오나요?”
카렌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외항 동편 선박 해체장을 찾았다. 바닥에는 톱밥을 뿌려 미끄러지지 않게 했고, 낙찰자의 이름을 적는 책상 앞에는 검은 먹물이 묻은 자루가 쌓여 있었다. 작은 종 아래에서 경매사 도나가 목을 가다듬었다.
“구명 장비 일괄 폐품, 시작가 동화 두 닢. 단, 사람을 살릴 장비로 다시 쓰실 수는 없습니다. 금속 부품 회수용입니다.”
진혁은 손을 들었다. “세 닢.”
그 순간 옆에서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남자가 말했다. “열 닢.”
진혁이 그를 돌아봤다. 남자는 둥근 안경에 매끈한 가죽 장갑을 끼고 있었다. 신발에 소금기가 묻지 않은 것을 보면 하루 종일 부두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었다.
“폐품에 열 닢이요?”
진혁은 상대의 눈동자를 살폈다. 남자는 경매사의 설명보다 바닥에 놓인 구명환의 부품만 주시하고 있었다. 돈을 걸어 놓고도 물건 전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 사실을 기록해 두기로 했다. 무엇을 사느냐보다 무엇만 필요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단서였다.
“취미입니다.”
“좋은 취미시네요. 하지만 금속만 떼 가실 거면 묶음이 이렇게 커야 할 이유가 없는데요.”
남자는 웃지 않았다. 진혁이 열두 닢을 부르자 남자는 스무 닢을 불렀다. 작은 경매장의 사람들이 하나둘 돌아봤다. 폐품이 뜻밖의 인기를 끌자 경매사 도나까지 눈썹을 들었다.
그때 진혁은 뜻밖의 선택을 했다. 손을 내렸다.
“포기합니다.”
라일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라일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에서 누군가 가진 돈을 부풀려 보이려는 경우는 흔했지만, 반대로 손에 쥔 기회를 내려놓는 것은 드물었다. 진혁은 자기 주머니를 두드렸다. 묵직해야 할 동전이 겨우 몇 개밖에 없어 가벼운 소리만 났다. 그는 그 사실에 조금 웃었다. 손바닥의 능력이 아무리 강해도 돈주머니는 여전히 현실의 규칙을 따른다. 돈을 잃으면 다음 입찰이 불가능해진다. 중요한 일을 알아봤다는 이유로 모든 돈을 거는 것은 감정사의 재능이 아니라 도박꾼의 습관이었다.
“물건을 못 사면 정보를 사면 되죠.” 진혁이 말했다.
“말은 참 그럴듯하게 하네요.”
“오늘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저거 중요하다면서요.”
“중요하니까 포기해야죠. 상대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까.”
진혁이 입찰을 포기하자 경매장의 작은 소란이 잦아들었다. 그런데 손을 내린 그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다른 손님들은 매번 마지막 한 닢을 더 부르려 애쓰다 후회하곤 했다. 오늘은 그 반대였다. 상대가 반드시 사려는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자신의 돈을 다 쏟아부을 이유가 없었다.
도나 경매사는 작은 종을 치며 다음 물건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오래된 선박의 나침반이었다. 유리 안쪽의 바늘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정상적인 항해 장비로 쓸 수 없었다. 시작가는 동화 여섯 닢. 다른 손님 둘이 고개를 저었다.
진혁은 그 나침반을 살폈다. 뚜껑 안쪽에는 바닷물의 소금이 굳어 있었고, 바늘 끝에는 아주 작은 검은 점이 남아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대자 단편적인 글이 떠올랐다.
[구형 수로 측위계.]
[원래 용도: 수문 안쪽의 고정 자기표식을 추적.]
[파손: 축 고정핀 이탈.]
진혁은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이건 평범한 항해 나침반이 아니라 외항 지하 설비와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일 수 있었다. 그는 곧장 손을 번쩍 들지 않았다. 카렌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것도 확인할 가치가 있어요. 다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고장 난 나침반으로 보이겠죠.”
카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권리관계는요?”
“경매사 설명에는 선박 소유자가 인도했다고 적혀 있네요. 출품 서류를 다시 확인하죠.”
정식 서류 확인 뒤 진혁은 동화 여덟 닢에 나침반을 낙찰받았다. 다른 손님은 끝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란에게 가져갔더니 핀만 교체해 낮은 출력으로 시험해 볼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낡은 바늘은 창고 밑 수로 방향을 가리키며 반응했지만, 실측 전에는 단순한 간섭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진혁은 수첩에 총비용을 적었다. 낙찰가 여덟 닢, 수리 예상비 동화 다섯 닢, 보관 수수료 한 닢. 놀랍게도 그 숫자를 다 합쳐도 한참 비싼 새 측위계를 빌리는 것보다는 저렴했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제 재능이란 결국 고철 더미에서 월급을 찾는 능력인가 봅니다.”
경매는 남자의 스무 닢 낙찰로 끝났다. 남자는 짐을 받아 가려 했지만, 공공 경매 규정에 따라 구명 장비는 회수 신고와 금속 재활용 번호를 남겨야 했다. 그는 서류에 이름을 썼다. '에다르 크룸'. 제9창고를 빌린 사람의 이름과 같았다.
카렌은 그 자리에서 그를 붙잡지 않았다. 같은 이름을 쓴다고 해서 본인이라는 증거도 아니었고, 아무리 수상해도 합법적으로 폐품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체포할 수는 없었다. 대신 그녀는 신고 번호를 기록하고 경매장 밖에서 남자의 동선을 살폈다.
“이젠 미행도 허가받고 하나요?” 라일이 물었다.
“공공장소에서 어디로 가는지 보는 겁니다. 선을 넘으면 돌아옵니다.”
에다르 크룸은 폐품 상자를 수레에 싣고 창고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제9창고 남쪽의 수리선 통로로 향했다. 갑판 밑에서는 회색 연기가 오르고, 작은 배 한 척이 시험 운항 준비를 하고 있었다. 파란 망토를 걸친 사내가 에다르를 기다리다 상자를 받았다.
그때 진혁은 길 건너편의 창가에서 자기 모습을 비추는 유리조각을 발견했다. 누군가 안쪽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발견했다는 사실보다 그 뒤에 보이는 재봉틀이 더 의아했다. 마레온 외항에서 밤마다 불을 밝히는 수선방, 그리고 제9창고 의자 아래에서 발견된 파란 실밥.
“저 수선방, 누구 겁니까?”
“배달인 조합에서 몇 년 전까지 쓰던 낡은 작업실이래요.” 라일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곳은 기억납니다. 문앞에 물이 고였고, 겨울에는 손이 얼어서 실을 끊을 수 없었어요.”
그의 시선이 건물의 작은 창문에 고정됐다. 한 번 떠오른 기억은 그를 어린 시절의 추위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했다. 카렌은 무심코 그의 팔꿈치에 손을 얹었다.
“지금 들어가지는 않아요. 먼저 사람을 확인하죠.”
하지만 그들을 기다려 준 사람은 없었다. 에다르가 탄 배가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배의 굴뚝에서 뿜어진 연기가 다리 아래를 덮은 순간, 라일은 수선방 문이 열리는 것을 봤다. 회색 머리의 노인이 파란 실타래를 손에 들고 나왔다.
노인은 짧게 손을 들더니 거리에서 사라졌다.
라일이 그를 따라 한 발 내디뎠다. 그러나 그 전에 진혁이 말했다.
“저 사람을 찾는 건 중요해요. 하지만 지금 저 배부터 봐야겠습니다.”
그가 가리킨 수리선 선미에 이상한 것이 있었다. 구명환 하나가 이미 부착되어 있었는데, 그 둥근 쇠고리의 홈이 아홉 개였다. 경매 전에 같은 물건이 한 개 따로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저들은 구명환을 사서 사람을 살리려는 게 아니었다. 수로 어딘가에 있는 아홉 번째 잠금쇠를 돌리려 하고 있었다.
진혁이 경비대 연락원에게 소리쳤다.
“저 배 운항 허가부터 확인해 주세요!”
그 순간 수리선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수문 쪽 수면이 평소와 반대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제94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