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창고 아래에서 물이 빠진다는 이야기는 저녁 여섯 시가 되자 이미 외항의 술집 세 곳에 퍼져 있었다.
부둣가 노동자들은 비밀보다 사고에 민감했다. 열두 해 전 흑조가 닥쳤을 때, 지하 저장고에 갇힌 일꾼들이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위층에서 열쇠를 찾는 동안 구조를 기다렸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축축한 소금기가 골목 담벼락까지 올라오고, 겨울이면 방파제에 쌓인 얼음 때문에 수로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 배의 수당을 받아야 했다. 그들의 불안은 미신이 아니라 경험이었다.
서진혁은 술집 '푸른 닻'의 안쪽 자리에 앉아 조수표를 펼쳤다. 가게 주인 모니카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생선 수프를 내려놓았다.
“먹고 얘기해요. 저번에도 밤샘한다고 빵 두 개로 버티더니 얼굴이 누렇게 떴잖아요.”
“제가 여기서 그렇게 유명했습니까?”
“외항에서 가장 빨리 소문나는 사람은 유명한 장군도, 왕도 아니에요. 밥값을 정확히 계산하는 사람이죠.”
라일이 숟가락을 들고 웃었다. “그럼 이분은 전설이 되겠네요.”
테이블 맞은편 미란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물 높이를 표시한 종이에 빨간 점 세 개를 찍었다. 제9창고 남쪽과 북쪽은 파도 주기에 맞춰 물이 올랐지만, 중앙의 배수구에서는 반대로 압력이 낮아졌다. 오래된 수로를 따라 바닷물이 어딘가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말 지하 통로가 있다면 우리가 내려갈 길도 있다는 거죠?” 카렌이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사람이 들어가도 된다는 건 완전히 달라요.”
미란은 국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 “관이 무너져 있으면 숨 쉴 공기도 없고, 철판이 휘어졌다면 물이 빠진 순간에 오히려 천장이 떨어집니다. 내일은 무인 탐침부터 넣을 거예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큼은 무턱대고 능력으로 답을 얻으려 하지 않기로 했다. 기억의 파편이 아름답든 끔찍하든, 살아 있는 사람을 지키는 데 필요한 것은 손바닥의 빛보다 실제 두께를 재는 도구였다.
다음 날 동이 틀 무렵, 제9창고 주위에는 항만 관리국의 노란 경계끈이 설치됐다. 동쪽 길에는 짐을 싣지 않은 수레가 줄을 섰고, 서쪽 계단에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는 주민들이 모였다. 조사관은 구경꾼들에게 뒤로 물러나 달라고 부탁했다. 젖은 벽돌에서 떨어진 작은 조각 하나가 바닥을 튀겼다. 처음에는 모두 작은 사고라고 생각했지만, 벽에 금이 번지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창고 안팎의 움직임이 늦춰지자 진혁은 바닥에 퍼지는 물빛을 오래 바라봤다. 햇살이 지붕의 깨진 유리를 통과해 하얀 사각형을 만들었고, 그 위로 짐수레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마다 빛의 모양이 달라졌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둑이나 암살자가 튀어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나타난 위험은 대부분 수리되지 않은 설비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계약에서 시작됐다.
카렌은 바깥의 인부들과 이야기하고 돌아왔다. 제9창고에 밤새 사람이 들락거렸다는 증언은 있었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일꾼들에게 창고는 자신의 구역이 아니었고, 밤마다 들어오는 수레를 일일이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인부 하나는 손가락에 감은 헝겊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 근처에선 밤에 본 걸 아침까지 기억하지 않는 게 오래 사는 방법이오.”
진혁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누군가는 여기에 돈을 투자했고, 누군가는 위험한 일임을 짐작했지만, 자신의 다음 끼니 때문에 모른 척했다. 범죄의 구조가 그만큼 복잡하다면 한 명의 범인을 잡는 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다.
미란은 어제 마련한 조수 고정구를 보조 받침에 연결했다. 금속 날개가 조금씩 돌아갈 때마다 수면에 떠 있던 나무 표지가 반원을 그렸다. 그 뒤 얇은 쇠줄 끝에 작은 탐침을 매달아 배수구 속으로 밀어 넣었다. 탐침에는 푸른색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돌아온 쇠줄에서 가루가 닦여 나온 위치를 보면 물속의 좁은 벽과 회전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일곱 번째 측정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똑. 똑똑. 똑.
미란이 손을 들었다. “누가 쇠줄을 건드렸어요?”
“아무도요.”
소리는 물속에서 다시 울렸다. 진혁은 가슴께로 전해지는 규칙적인 진동을 느꼈다. 심실에서 들어 본 모라의 점검등과 닮았지만, 그것이 같은 존재의 메시지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는 소리의 간격을 기록하자고 했다.
라일이 창고 벽을 살폈다. “이쪽 벽돌, 색이 다른데요.”
미란은 벽돌의 색 차이를 오래 살폈다. 눈앞의 벽은 아주 조금 안쪽으로 배가 불러 있었다. 처음에는 습기가 만든 팽창이라고 생각했지만, 줄눈의 배열이 다른 부분과 맞지 않았다. 오래전에 문처럼 열리던 곳을 막으면서 새 벽돌을 덧댄 듯했다.
“이건 누가 일부러 감췄네요.” 라일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안전 때문에 폐쇄했을 수도 있어요.” 미란은 대답했다. “폐쇄 이유를 모르고 뜯으면 그때부터 우리 책임이에요.”
그때 항구 관리국 직원이 오래된 지도 한 장을 들고 나타났다. 지도 모서리는 습기를 먹어 말려 있었고, 잉크가 번져 일부 글자는 읽기 어려웠다. 하지만 제9창고 아래에 '점검 구역'이라고 적힌 네모가 남아 있었다. 직원은 그 지도가 수해 이전 것이라 최신 구조와 같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혁은 예전 같았으면 지도에 손을 대고 능력부터 썼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란에게 지도를 보여 주며 물었다. “이 정도 자료로 출입 허가를 신청해도 됩니까?”
“가능해요. 허가를 받는다는 건 곧바로 문을 연다는 뜻이 아니라, 구조를 확인할 책임자를 정한다는 뜻이니까요.”
진혁은 모처럼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칭찬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벨라에게 전할 메모를 적었다. 임시 점검 비용과 안전 장비 사용료를 별도 장부에 남겨 달라는 부탁이었다. 사건이 끝난 뒤 누가 비용을 떠안았는지 모른 척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기록해야 했다.
벽 하단은 온통 소금에 절었지만, 한 줄만 유난히 새것이었다. 그 뒤에서 금속의 둔탁한 울림이 이어졌다. 기술자가 벽의 두께를 재자 바깥쪽보다 안쪽이 이십 손가락 정도 얇았다. 오래전 배수관 점검구를 벽돌로 막아 둔 모양이었다.
“허가가 떨어지면 열 수 있어요.” 미란이 말했다. “지금 손대는 건 안 됩니다.”
허가를 요청하러 간 조사관이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이 걸렸다. 그 한 시간 동안 진혁은 주변의 작은 물건들을 감정했다. 먼지가 쌓인 등잔, 낡은 물통, 한쪽 손잡이가 부러진 작은 손수레. 대부분 평범한 물건이었다.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해서 세상 모든 고철이 전설의 유물로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철제 등잔의 몸통에서 유난히 짧은 문구가 떠올랐다.
[조난 신호등. 원래 용도: 밀폐된 수로에서 두 방향으로 광신호 전달.]
[손상: 반사판 탈락.]
[잔류 기억: 빨간 수면, 아이의 기침, '위층은 열지 마.'라는 말.]
진혁은 곧바로 눈을 감았다. 달라붙은 기억은 잠깐이었지만 차가운 물 냄새가 코 안에 남는 듯했다. 분명 오래전 누군가 사용한 등잔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라일이라는 근거는 없었다.
“이 등잔은 창고 물건입니까?”
관리인은 창고 폐기 목록을 뒤져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 불가로 분류됐어요. 더는 쓸 수 없는 등잔이죠.”
“반사판만 고치면 수로 쪽에 빛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유자 허락을 받아 시험해도 될까요?”
미란은 등잔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열 때문에 남은 기름이 폭발하지 않는지 먼저 검사해야 해요. 오늘 바로 쓰지는 맙시다.”
“오늘 제 직감이 또 두 번이나 기술 심사를 받네요.”
“직감이 마레온 시민 전원을 책임질 수 있다면 심사를 줄여 드리죠.”
허가가 떨어진 뒤 작은 벽돌을 조심스럽게 빼냈다. 틈 사이에서 종이가 아니라 삭은 마대가 나왔다. 그 속에는 오래된 놋쇠 뚜껑과 손가락 두 개 너비의 기름 먹은 가죽띠가 말려 있었다. 띠에는 세 갈래 매듭과 같은 모양이 반복되어 있었다.
라일이 턱을 굳혔다. “그 표식…….”
“지금은 만지지 마.” 카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진을 먼저 남겨.”
그가 뒤로 물러났다. 예전의 라일이라면 다른 사람이 손을 뻗기 전에 주머니로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날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가 있는 물건 앞에서 남을 기다렸다.
보존사가 가죽띠를 펼치자 작은 숫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997, 998. 그 아래에는 '반환 경로 B'라는 글자가 있었다.
“원부 원본은 없네요.” 진혁이 말했다.
“그래도 경로는 남았어요.”
카렌은 숫자를 가리켰다. “왜 997이 먼저 적혔을까요?”
그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바깥에서 고함이 들렸다. 경계끈 뒤에 서 있던 소년이 손수레 아래로 몸을 숙여 무엇인가를 잡으려 했다. 녹슨 철판 위에 놓인 그의 발이 미끄러졌다. 철판이 내려앉으며 소년의 다리가 틈 사이에 빠졌다.
구조대가 달려갔다. 라일이 먼저 쇠줄을 던졌지만 소년의 어깨에 닿지 않았다. 진혁은 손가락 사이에 남은 기름기를 닦으며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이었지만 물이 곧 차오르는 구멍 아래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철판은 아직 사람 한 명이 접근할 만큼 안정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미란이 지지대의 각도를 알려 주었고 구조대는 받침목을 밀어 넣은 뒤 소년을 끌어냈다.
소년은 발목만 삐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품에 안은 작은 목제 상자는 흠뻑 젖어 있었다.
“이걸 전해 주래요.”
“누가?” 카렌이 물었다.
“시장 골목에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요. 제9창고에 있는 감정사에게 전하라며 은화 한 닢을 줬어요.”
상자에는 아무런 서명이 없었다. 진혁은 소년을 의무실로 보내고 물건을 보존사에게 맡겼다. 밀랍을 벗기지 않아도 표면에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반송 표식: 열면 위험함.]
[주의: 수취인의 이름보다 내용물을 먼저 확인할 것.]
“이름을 지우라는 사람치고는 친절하네요.” 진혁이 말했다.
카렌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 친절이 함정인 경우가 많죠.”
상자를 열자 안에서 젖은 종이와 함께 작고 검은 돌이 굴러나왔다. 돌 한쪽에는 어린아이 손으로 칼질한 듯한 아홉 개의 홈이 새겨져 있었다. 그 밑에 한 줄이 남아 있었다.
‘아홉 번째 자리는 도망간 사람이 아니다.’
잠시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항구에서는 작업을 마친 종이 울렸고, 썰물은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제9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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