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의 공개 재감정 경매가 발표되자, 마레온의 상인들은 불과 반나절 만에 각자의 계산을 끝냈다.
항만의 자재상들은 낡은 장비를 싸게 살 기회라고 여겼고, 골동품 상인들은 몇십 년 동안 창고에 잠들었던 희귀 유물이 나올지 모른다며 기대했다. 반대로 경매장 직원들은 물건을 일일이 찾아내 분류하고 소유권을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쉬었다. 소문은 대개 비싼 보물을 예상하지만, 실제 경매를 준비하는 사람에게 먼저 보이는 것은 쌓인 먼지와 장부였다.
서진혁은 사흘 동안 위탁 창고의 앞뒤를 뛰어다녔다. 두 번째 봉인함을 손대지 않으면서도 심실 구조검사 자금을 마련해야 했다. 그가 직접 감정한 물건은 열여덟 개. 그중 여섯 개는 반품품이었고, 세 개는 다른 사람의 소유권이 남아 판매할 수 없었다. 두 개는 손상돼 보존 가치가 더 컸다. 실제로 경매에 올릴 수 있는 것은 일곱 개였다.
“제일 중요한 건 목록에서 뭘 빼느냐군요.” 카렌이 말했다.
“맞아요. 빼야 할 걸 올리면 팔리지 않아도 사고입니다.”
세리아는 사흘 동안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지하 심실의 안전 상태를 확인하고, 공개 경매 허가를 받아야 했으며, 동시에 화령에서 들어온 제0호 인쇄 원판 공동 보관 협약의 최종 문서를 검토해야 했다. 그녀는 진혁의 탁자에 도장 하나를 내려놓았다.
“출품 심사 담당자로 네 이름을 올려도 되겠어?”
진혁은 망설였다. 감정 보조로 시작한 자신에게 많은 책임이 따르는 자리였다. 세리아는 곧바로 덧붙였다. 최종 승인은 자신과 외부 심사자가 함께 맡고, 진혁은 확인된 물품만 추천하는 임시 역할이었다. 누군가 그를 제8감정인이나 제0호의 후계자로 부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공식 직함도 명확히 적었다.
“그러면 할 수 있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월급은요?”
“경매 끝나고 협상하지.”
“그 말씀은 열 번 들었습니다.”
“그럼 열한 번째에는 계약서까지 써 주지.”
카렌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사장과 직원 사이에 오가는 실랑이가 어쩌면 이 건물을 아직 경매장으로 살아 있게 해 주는 가장 평범한 장면인지도 몰랐다.
경매 당일, 중앙 홀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꽉 찼다. 둥근 천장의 채광창으로 오후 햇빛이 흘렀고, 접객 직원들은 번호표를 나눠 주었다. 출품대에는 넓은 유리 덮개가 설치돼 있었으며, 물건의 상태와 감정 근거를 적은 표가 옆에 놓였다. 소유권 미확정 봉인함이나 모라와 직접 연결된 장치는 어느 목록에도 없었다.
무대 뒤에서 경매 시작을 기다리는 진혁은 손목시계를 세 번이나 확인했다. 예전에는 경매를 구경하는 손님으로서 낙찰 순간만 기다렸다면, 오늘은 준비한 물건이 잘못 설명될까 봐 더 긴장했다. 시험에 실패한 물건도 있었다. 누구에게나 쉽게 들리도록 결함을 설명하는 일이 과장된 칭찬보다 어렵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라일이 곁에 서서 오늘의 출품 목록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황금 검이나 용의 심장 같은 건 없네요.”
“그런 물건은 안전 기금 만들려고 팔 게 아니죠.”
“그래도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을까요?”
“이 경매는 보물을 상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찾는 자리니까요.”
라일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목록 뒤쪽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낡은 종이뭉치가 은화 다섯 닢이나 해요?”
“지금은 폐기 예정 도면입니다. 하지만 구조물 보수를 맡은 공방에는 자료가 될 수 있죠. 재사용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따로 확인했고요.”
세리아가 그들에게 다가와 임시 심사자의 표식을 건넸다. 낡은 황동으로 만든 작은 패였다. 진혁은 그것을 받으며 농담했다.
“드디어 승진한 것 같네요.”
“표식은 빌려 주는 거야.” 세리아가 말했다. “새 직함은 조건부라고 했지?”
“네. 월급 인상도 조건부인 걸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 사고 없이 끝내면 조건 하나는 충족되겠지.”
그 짧은 말을 듣자 진혁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과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꼭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물건은 오래된 마력등 열두 개였다. 대부분 불을 켜려면 비싼 마력석이 필요해 몇 년째 창고에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진혁은 점등 장치의 연결부가 규격화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전력을 덜 쓰는 신형 소켓과 조합할 수 있는지 기술자에게 검토받았다. 즉석에서 성공을 선언할 수는 없었지만, 교체 가능성을 포함한 조건부 감정 결과를 공개했다.
낙찰가는 은화 열여섯 닢. 예상보다 조금 높았다. 한 조명 공방이 재활용 시험을 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마모된 조난 신호 종이었다. 표면은 구겨지고 소리는 탁했지만, 내구성을 확인한 결과 사용 가능한 작은 부품이 남아 있었다. 해상 구조대가 입찰에 참여했다. 진혁은 구조대 측에 가격을 낮춰 주고 싶었지만 경매의 공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대신 세리아와 상의해 수리 비용 일부를 안전 기금에서 별도 지원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공개된 입찰 절차는 그대로 지켜졌다.
세 번째 물건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검은 천 아래에 놓인 은색 균형추 한 쌍이었다. 원래는 고급 거래에서 무게를 증명하던 저울에 사용됐다. 그중 한쪽은 옛날 교정 기록이 남았지만 다른 한쪽은 출처가 끊겨 있었다.
진혁은 두 추가 동일한 세트인지 확정하지 않았고, 감정표에도 그렇게 적었다. 그런데 객석 앞줄에서 젊은 여성이 손을 들었다.
“저건 우리 가문의 소유입니다. 경매를 중단하세요.”
그녀는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틀어 올리고, 짙은 남색 외투에 오래된 문장이 새겨진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이름은 이벨린 코르트. 십여 년 전 루멘에 장부 보관품을 맡겼다는 코르트 가문의 대리인이었다.
“근거를 제출해 주십시오.” 세리아가 말했다.
이벨린은 일곱 장짜리 계약서를 꺼냈다. 오래된 은랍 인장이 찍혀 있고, 계약서에는 저울뿐 아니라 그 저울로 감정한 물품의 기록 일부를 넘겨받을 수 있다는 문구가 있었다. 진혁은 문장을 읽는 순간 화령에서 본 위조 동의 서류를 떠올렸다. 그러나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위조라고 선언할 수 없었다.
카렌은 경매 중단을 요청했다. 경매사는 해당 물품에 관한 입찰만 보류하고 나머지 일정은 이어 갔다. 관객들이 웅성거렸지만, 분쟁이 있는 물품을 팔지 않는 것은 경매장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약속이었다.
이벨린은 진혁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당신이 새로 출품 심사를 맡았다고 들었어요. 그럼 저울뿐 아니라 그것이 감정한 첫 기록도 우리 집에 돌려줘야겠군요.”
“물건 소유권과 타인의 기록 열람권은 별개입니다.” 진혁이 말했다.
“계약에는 함께 적혀 있습니다.”
“그 계약이 효력이 있다면요. 그런데 타인에 관한 기록은 원래 당사자의 권리도 있잖습니까.”
이벨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 원칙이 좋군요.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 보겠습니다.”
이벨린의 항의가 한 차례 가라앉은 뒤 경매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진혁은 객석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물건의 가격만 바라보던 사람들이 이제 출품표의 작은 글씨를 읽기 시작했다. 누구에게서 맡은 물건인지, 이전에는 어느 시설에서 쓰였는지, 어떤 부분을 검증하지 못했는지 확인하는 상인이 늘었다.
네 번째 출품품은 바다 괴수의 껍질 조각을 가공한 방수판이었다. 처음에는 희귀한 재료라는 이유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진혁은 표면이 벗겨진 곳에 염분 결정이 남아 있다는 점을 공개했다. 가공 기술에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수집가 한 사람이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물건에 결함부터 설명하면 누가 사겠나?”
“수리를 할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죠.” 진혁이 말했다. “모르고 비싸게 사는 사람보다 알고 적절한 가격에 사는 사람이 오래 고객이 됩니다.”
실제로 방수판은 수선 전문 공방의 주인에게 낙찰됐다. 그는 결함을 숨기지 않은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고 했다. 재가공 비용을 포함해도 새 재료보다 싸게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진혁은 낙찰가와 수리 견적을 비교해 보았다. 물건의 결함을 밝혀 가격을 낮추는 일이 반드시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는 좋은 예였다.
다섯 번째는 깨진 감응 수정이었다. 예전 경매라면 빛이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시작가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균열을 확인해 안전한 장식품 용도만 제시했다. 마력 주입에 쓰면 깨질 위험이 있다는 설명도 빠지지 않았다. 시장 사람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신기한 보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했지만, 중간중간 웃음과 흥정이 계속됐다.
라일은 객석 뒤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계속 출입표를 살피고 있었다. 그는 최근 루멘에 찾아온 방문객 명단과 얼굴을 대조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괜히 누군가를 붙잡았다가 경매장 운영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경비 책임자에게 자리를 알려 주고 시각과 움직임을 적었다.
그 남자는 곧 문밖으로 사라졌다. 라일은 뒤를 쫓지 않았다. 자신이 없어도 경비원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전달하는 게 더 나은 행동일 때가 있었다.
경매사의 망치 소리가 다시 울렸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에 값표를 들었고, 진혁은 그 가격이 누군가의 권리와 안전을 침범하지 않는지 계속 살폈다. 오늘 그가 얻은 것은 거액의 이익이 아니었다. 그러나 구경꾼들의 신뢰를 조금 되찾은 것은 분명했다.
그날 경매는 예상보다 많은 매출을 올렸지만, 안전 적립금으로 바로 쓸 수 있는 돈은 그보다 적었다. 운송비, 소유자 배분, 세금과 감정 수수료를 빼야 했기 때문이다. 벨라는 진혁이 기대에 찬 눈으로 다가오자 정확한 실수령 예상액부터 보여 주었다.
“이 정도면 외부 구조 검사 계약금은 낼 수 있어요.”
“드디어 성공했군요.”
“나머지는 다음 달 예산에서 조정해야 해요.”
“성공의 단위가 생각보다 작네요.”
밤이 되어 경매장이 조용해지자 카렌은 이벨린의 계약서에 적힌 날짜를 읽어 보았다. 코르트 가문이 저울을 맡겼다는 시기는 유나와 레온이 루멘 안전 시험에 참여하던 때와 겹쳤다. 더 이상한 점은 계약서 마지막의 감정 담당자 칸이었다.
그곳에는 서진혁의 이름이 있었다.
진혁은 마른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제가 정말로 아주 오래 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왜요?” 라일이 물었다.
“그동안 못 받은 월급을 한꺼번에 청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농담 끝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군가 과거 기록에 현재의 그의 이름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문서는 단순한 위조 청구서와 달리, 실물 저울과 원본 장부를 연결하는 번호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 번호의 첫 세 자리는 99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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