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 경매장의 아침 종이 세 번 울리기 전에, 서진혁은 벌써 세 번째 장부에서 길을 잃었다.
지하 점검로의 두 번째 상자가 998번 검수 표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는 상자가 아니라 그 주변에 남은 거래 기록부터 살폈다. 그런데 루멘의 창고 장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 권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위탁품에는 위탁 장부가, 보관품에는 보관 장부가, 설비 부품에는 유지보수 장부가 따로 있었다. 오래전에 세리아가 바꾸려다 실패한 분류 규칙도 있었다. 직원마다 제 방식으로 약어를 쓰는 바람에 물품 하나가 세 종류의 이름으로 나타나곤 했다.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있는데 왜 제 월급은 잘못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죠?” 진혁이 묻자 회계 담당 벨라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당신 월급은 제가 직접 검증하니까요.”
“감사합니다. 하나만 더 검증해 주실래요? 지난달 야근 수당이 빠졌습니다.”
“정산서부터 내요.”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문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면서도 자기 수당 증빙은 미뤄 두었던 것이다.
루멘의 장부방에는 높은 창문이 없었다. 반쯤 지상으로 튀어나온 환기구로 오전 빛이 길게 들어왔고, 바닥에는 오래된 종이의 냄새가 스며 있었다. 벨라는 진혁 일행을 작은 열람대에 앉힌 뒤, 심실 북측 관의 보수 내역이 적힌 보관함 네 개를 꺼냈다. 오래된 나무 상자에는 해마다 달라진 봉랍 색이 남아 있었다.
세리아는 즉시 상부 기록 열람을 허락했지만, 오래된 직원 정보와 실종자 이름이 포함된 부분은 별도 복사 금지를 지시했다. 진혁은 그 조치가 번거롭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사건들이 바로 남의 이름을 마음대로 소유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시작되지 않았던가.
카렌은 날짜순으로 사고 기록을 펼쳤고, 라일은 운송 물품의 무게와 포장 치수를 비교했다. 진혁이 맡은 것은 가격과 분류였다. 반나절쯤 지난 뒤, 그가 서로 다른 장부에서 같은 금액을 발견했다.
‘동화 일곱 닢. 유리 심지 여섯 개.’
심실 설비에 쓰이는 고가의 마력 심지는 보통 은화 단위로 정산된다. 동화 일곱 닢은 터무니없이 싼 가격이었다. 같은 금액이 십이 년 전 기록에도, 닷새 전 기록에도 있었다. 그것도 동일한 운송 담당자의 이름으로.
“이건 사람 이름인가요? 아니면 업체 이름인가요?”
벨라가 종이를 보았다. “마르코 운송. 당시에는 소규모 인부 조합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없어요.”
“그런데 지난주에 같은 이름으로 입고됐네요.”
“위탁 계정이 남아 있으면 자동으로 이름을 불러오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이 직접 들여온 걸 뜻하진 않죠.”
이 설명은 진혁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오래된 계정이 재사용됐다면 실제 공급자를 찾을 다른 단서가 있을 터였다. 벨라가 지난주 영수증을 가져왔을 때 진혁은 그 종이의 날짜를 먼저 보았다. 발행일이 입고일보다 하루 늦었다. 정상적인 사후 정산에서도 가능한 일이었지만, 유리 심지 수량이 하나 부족하다는 점은 그냥 넘기기 어려웠다.
이상한 지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벨라는 우선 같은 날 작성된 다른 영수증을 세 장 펼쳐 놓았다. 종이의 두께가 다르고, 영수증마다 별도 누름 인장이 찍혀 있었다. 그녀는 진혁에게 종이 모서리를 보게 했다. 날짜를 적는 잉크 색이 다른 것은 평범한 일이었다. 보급품을 실어 온 인부와 계산을 마친 회계원이 다른 펜을 쓸 수도 있으니까. 진짜 이상한 것은 수량을 정정한 기록이었다.
“여긴 여섯이라고 적혔다가 다섯으로 바뀌었네요.” 벨라가 말했다.
“하나가 빠졌겠죠?”
“그게 가장 단순한 설명이지만, 예전 재고 계산법으로는 내구품과 포장관을 한 항목에 합산하는 실수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실물을 확인하는 겁니다.”
창고 담당 올란을 불러 물으니 그는 오래전 부품을 분류하던 방법을 기억했다. 장부를 정리하던 직원은 깨지기 쉬운 유리관을 두 개씩 짝지어 나무틀에 끼웠다. 입고 도중 파손된 관은 운반 조합이 회수했고, 별도 서명 없이 수리 공방에 보냈다. 지금은 그런 절차를 금지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물건값을 아끼느라 흔했다.
“그럼 누군가 훔친 게 아니라 수리하러 갔을 가능성도 있겠네요.” 카렌이 말했다.
“그렇죠.” 벨라가 답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게 조사의 시작이고요.”
진혁은 실종 사건과 이름 없는 장부를 오래 따라다닌 나머지 평범한 실수가 더 낯설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의심이 깊어질수록 모든 서류가 음모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실을 찾으려면 설명하기 쉬운 사고와 설명하기 어려운 흔적을 분리해야 했다.
장부방 맞은편 식당에서는 아직 점심 준비가 한창이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는 직원의 칼 소리가 들렸고, 식탁 위에는 전날 남은 빵이 놓였다. 진혁은 빵 조각을 집으려다 벨라의 매서운 눈을 만났다.
“장부방에서 먹지 말라고 몇 번 말했죠?”
“먹으려던 게 아니라 보존 상태를 감정하려던 겁니다.”
“빵은 밖에서 감정하세요.”
그들은 기록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책상 위를 정리하고, 관의 치수를 적은 메모를 가지고 창고로 옮겼다. 실제로 손에 잡히는 물건 하나를 찾는 편이 여기서 계속 종이만 바라보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었다.
그는 곧장 심실에 내려가지 않았다. 대신 정오 경매가 열리는 남관으로 향했다. 진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폐품 상자에 섞여 있는 낡은 유리관들이었다. 수리 공방이 대량으로 넘긴 실패작이라고 했다. 감정 가격은 상자째 동화 열 닢. 표면이 흐리고 일부에는 금이 있었다.
“이걸 살 생각이에요?” 카렌이 물었다.
“누가 실수한 물건인지 확인해 보려고요.”
“그 말은 지출을 뜻하는 건가요?”
“제 월급이 살아 있으면요.”
라일이 낮게 웃었다. “이제 사장님보다 무서운 분이 생겼네요. 당신 지갑 감시하는 분.”
남관은 지하의 답답한 기록방과 전혀 달랐다. 낮은 좌석 사이로 점심 햇살이 들어왔고, 단골 상인들은 머그잔을 쥔 채 가격을 흥정했다. 오전 경매는 보통 희귀한 보물보다 창고 정리품과 공방 반품이 많아 소란스러웠다. 진혁은 그곳이 좋았다. 이름만 거창한 유물보다 실제로 수리할 수 있는 물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공개된 감정표를 읽고, 균열 위치와 치수를 비교한 뒤 경매사에게 시험 절차를 문의했다. 지정된 빈 관 하나를 전문 기술자가 저압 공기 시험기에 연결했고, 다른 관은 결함이 있어 시험에서 제외됐다. 진혁은 여섯 개 중 두 개가 원래 유리 심지가 아니라 심지의 온도를 확인하는 보호관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투명한 관 벽에 아주 작은 기준선이 남아 있었다.
문득 손바닥이 따끔거렸다. 그는 붕대를 풀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여 한 가지 기억만 스치듯 보았다. 비에 젖은 손, 조명 아래 놓인 물감, 그리고 조그만 손으로 유리관 위에 선을 긋던 누군가의 모습. 그 정도가 끝이었다. 이름도, 연대도 보이지 않았다.
진혁은 자신이 본 광경을 증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감정표에는 ‘구조상 보호관 가능성, 제조 표식 확인 필요’라고 썼다. 한쪽 구석에서 듣던 공방 노인이 손을 들었다.
“옛날 마르코 인부들이 그거 썼지. 저건 심지가 아니라 심지를 보호하는 껍질이야. 열이 높아지면 흰 선이 드러나지.”
진혁은 노인의 이름과 당시 직업을 물었다. 노인은 열두 해 전 항만 유리 공방에서 일했다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지는 보존된 상품 도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경매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진혁은 상자째 동화 열세 닢에 낙찰받았다. 높은 가격은 아니었지만, 쓸모를 확정하기 전부터 대박을 외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물건을 두 사람 앞에 놓고 분류해 보였다. 깨진 두 개는 안전하게 폐기해야 했고, 나머지 넷 중 한 개만 심실의 구식 온도 확인 장치와 치수가 비슷했다.
“산 물건 중 하나만 쓸 수 있으면 실패 아닌가요?” 라일이 말했다.
“네. 그런데 나머지를 소형 실험용으로 팔 수 있다면 달라지죠.”
진혁은 공방에 시험 가능한 세 개의 보호관을 시세보다 낮은 은화 몇 닢에 넘기는 조건부 견적을 받았다. 단, 검사를 통과한 것에 대해서만 대금이 지급되는 계약이었다. 깨진 두 개의 처리 비용을 감안해도 소액의 이익이 예상됐다. 라일은 낙찰받은 물건을 다시 팔아 돈이 남는다는 사실보다, 진혁이 그 계산을 종이에 두 번 적는 모습이 더 신기하다고 했다.
오후 늦게 보호관을 들고 미란을 찾아가자 그녀의 표정이 달라졌다.
“이것도 설비에 바로 달려는 건 아니죠?”
“물론이죠. 시험실에서만 봐 주세요.”
미란은 치수를 재고 오래된 정비도를 펼쳤다. 한참 뒤 그녀는 지도의 한 지점을 톡 짚었다. 북측 점검로 옆, 오늘 발견된 상자와 불과 세 걸음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 온도 확인창이 없어졌어요. 서류에는 십이 년 전 폐기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장치 고정대가 그대로 있죠.”
“그럼 상자와 관계가 있나요?”
“아직 몰라요. 그런데 온도 보호관이 있어야 했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있겠네요.”
현장을 다시 조사하자 선반 아래에 빈 구멍이 있었다. 구멍의 지름이 오늘 산 보호관과 거의 일치했다. 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일정 간격으로 구멍 속으로 스며들었다. 오래전 누군가 온도 확인 장치를 떼어내면서 그 공간에 상자를 보관했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카렌이 마지막 영수증을 들어 보였다. 사후 정산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날짜 차이였지만, 배송 주소 줄 아래에 작게 새겨진 글씨는 아직 해석되지 않았다.
‘인수인: 유나. 단, 반환 확인은 본인이 아닌 제삼자.’
세리아는 오랫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 기대와 분노가 동시에 스쳤다.
“유나가 남긴 건지, 누군가 유나의 이름을 빌린 건지부터 알아야겠어.”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벌어들인 돈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동화 열세 닢에 낙찰받은 폐품 상자가, 십이 년 동안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빈 구멍 하나를 찾게 해 주었다. 감정사로서는 제법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장터에서 돌아오는 길에 진혁은 유리 공방 앞에 잠시 멈췄다. 한때 마르코 조합이 사용하던 표식이 문틀 위에 흐리게 남아 있었다. 지금은 젊은 장인이 가게를 맡아 작은 유리병을 불고 있었다. 진혁은 오래된 보호관의 제조 방식을 물었다. 장인은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은 아니지만, 오래전 제자들이 남긴 도면 상자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다음 날 감독자 입회 아래 도면을 열람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내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는 손님은 오랜만이네요.” 장인이 웃었다.
진혁도 웃었다. “저도 요즘 들어서야 그 말을 배웠습니다.”
손에서 떨어진 작은 유리 구슬이 바닥에서 또르르 굴렀다. 반짝이는 것을 향해 아이가 뛰어오자 장인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뜨거우니 만지지 마!” 눈에 보기 좋은 물건이 곧 안전한 물건은 아니라는 말이 그 순간에는 어떤 감정서보다 분명하게 들렸다.
그날 밤 벨라가 더 오래된 반품 대장을 찾아냈다. 십이 년 전 유나가 직접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 행 하나가 있었다. 그 옆에는 누군가 붉은 잉크로 덧쓴 짧은 지시가 남아 있었다.
‘심실에 있는 것을 꺼내지 마라. 심실에 없는 것을 먼저 찾아라.’
제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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