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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81화
PAYLUA ORIGINAL · 제81화

81화. 심실의 두 번째 봉인함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508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온행 야간 열차는 화령의 황금빛 지붕들이 모두 검은 실루엣으로 가라앉은 뒤에야 출발했다. 창문 아래에서는 젖은 침목이 규칙적으로 울렸고, 통로 끝 석탄 난로에서는 덜 마른 장작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객차에는 일을 마치고 귀향하는 상인들, 북쪽으로 떠나는 공방 견습생들, 발치에 소포를 안은 노파가 섞여 있었다. 누구도 세 사람의 가방에 든 것이 얼마나 골치 아픈 서류들인지 알지 못했다. 진혁에게도 그 편이 좋았다. “심실에서 발견된 상자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대요?” 카렌이 물었다. 진혁은 접었다 펼친 전신을 다시 읽었다. ‘북측 점검로 안쪽, 제습관과 출력 제한 밸브 사이. 발견 시각 열여덟 시 십칠 분.’ 몇 줄짜리 보고서에는 발견한 직원의 서명이 없었다. 두 번째 전신에는 미란의 이름과 인장이 찍혀 있었지만, 첫 번째와 도착 시간에 차이가 있었다. “안에 있다고만 하면 되는 걸 위치까지 정확히 적었네요.” 라일이 말했다. “그 위치가 중요하니까요. 심실은 작은 방이 아니에요.” 루멘 경매장의 지하에는 일반 직원들이 아는 층보다 두 단계 더 깊은 공간이 있었다. 처음 그곳을 본 진혁은 거대한 기계실이라고 생각했다. 굵은 관이 바닥을 가로질렀고, 붉은 조절륜마다 손잡이 높이가 달랐다. 그러나 관 사이 벽면이 미세하게 수축하는 모습을 본 뒤 생각을 바꿨다. 루멘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오래전 잠든 존재의 껍질 위에 경매장이 지어졌으며, 모라라고 불리는 의식이 그 안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것이 세리아가 알려 준 사실의 전부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모르는 시설이면 어떤 물건도 몰래 들여놓기 쉽겠죠.” 카렌이 말했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 보려고요.” 진혁이 답했다. “누가 들여놨는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옮기려면 무엇을 지나야 하는지.” 라일이 수첩에 출입구를 그렸다. 일반 운반용 승강기, 오래된 계단, 방벽 설비 정비 통로. 그가 예전에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림이 지나치게 정확하다고 놀랐을 것이다. 카렌은 그가 회색 항로에서 배운 오래된 통로 표식을 보고 선을 하나 지웠다. “여긴 사람이 못 지나갑니다. 미란이 설치한 임시 지지대가 있어요.” “그건 지금 이야기죠. 지난달에는?” 세 사람은 마주 보았다. 물건의 발견 시각과 반입 시각을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됐다. 화령의 봉인함과 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출처라는 뜻도 아니었다. 열차가 산악 구간을 통과할 때 검표원이 객실을 한 바퀴 돌았다. 진혁은 목적지가 적힌 표를 내밀다가 그 아래 찍힌 작은 영수증 번호에 시선을 빼앗겼다. 같은 열차에서도 사람마다 운임이 달랐다. 침대칸 승객이 더 비싼 돈을 냈고, 짐칸의 목재 상자는 무게로 계산됐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탄 여인은 별도 좌석을 사지 않았다.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뭘 그렇게 봐요?” 카렌이 물었다. “가격표라는 게 신기해서요. 같은 열차에 타도 사람한테 매기는 값은 각기 다른데, 그렇다고 사람이 그 값만큼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열차비 생각하다 철학자가 된 거예요?” “화령에서 원판 공동 보관 비용을 계산하다가 머리가 이상해졌나 봅니다.” 카렌은 웃고는 창가 쪽 좌석을 비켜 주었다. 진혁은 통로를 지나던 작은 소년이 좌석 틈에 동전을 떨어뜨리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은 침대 아래를 더듬었지만 찾지 못했다. 라일이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동전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남의 걸 뺏는 손보다 돌려주는 손이 더 빠르군요.” 진혁이 말했다. “둘 다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라일은 동전을 아이에게 건넸다. “다음에는 주머니 바닥을 한 번 꿰매.” 아이가 고개를 숙이며 돌아가자 라일은 잠시 손바닥을 보았다. 정식 수당을 받고 일한 일이 자신에게 어떤 느낌을 줬는지 그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진혁은 말을 보태지 않았다. 그저 창밖을 가리켰다. 멀리 안개에 잠긴 강가에서 낚싯배의 불빛이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도 정했다. 사건 현장에 곧장 뛰어들지 않고 발견 시점의 장비 운전 일지부터 확보할 것, 위험 유물인 경우 외부 감정인의 입회를 받을 것, 어떤 경우에도 화령의 000 봉인함을 마레온으로 옮겨 비교하려 들지 않을 것. 오랜 여정에서 만든 규칙이라기보다 실수를 거듭하면서 배운 상식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상자를 못 여는 건가요?” 라일이 물었다. “열기 전에 해야 하는 일을 끝내야 열 수 있겠죠.” “계속 그러다 상자보다 제가 먼저 늙겠네요.” “그때는 제가 감정해 드릴게요. 보존 상태 양호, 농담의 마모 심각.” 세 사람은 웃었다. 객차 구석에서 졸던 상인이 힐끗 돌아봤지만, 곧 다시 모자를 얼굴 위로 끌어내렸다. 새벽녘 열차가 마레온 외곽에 들어섰다. 낮고 넓은 항만 창고들이 물안개 너머로 이어지고, 어선들이 돌아오는 방파제 끝에서는 갈매기가 소란스럽게 울었다. 화령이 쇠를 두드려 하루를 연다면 마레온은 물고기 상자를 내리는 소리로 깨어났다. 젖은 밧줄 냄새, 끓는 생선 수프 냄새, 염분이 묻은 석벽의 차가운 감촉이 고향처럼 느껴졌다. 루멘 경매장 앞에는 경매일 아침답지 않게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대문 위 동판은 여전히 번쩍였지만, 출입구 옆에는 ‘지하 설비 점검으로 일부 접수 제한’이라고 적힌 팻말이 걸렸다. 벨라가 장부를 품에 안고 달려 나왔다. “살아서 돌아왔군요.” “제 월급이 아직도 살아 있나요?” “그건 확인 중이에요. 먼저 세리아 사장님부터 만나세요.” 진혁은 쓰게 웃었다. 계약과 봉인의 비밀을 쫓아 돌아온 직원에게 가장 가까운 현실은 늘 급여 명세서였다. 세리아는 사무실이 아니라 심실 입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래빛 외투 소매를 걷어 올렸고, 눈 아래에는 밤을 샌 흔적이 선명했다. 곁에는 미란과 안전 담당자 두 명, 경비 책임자가 함께 있었다. 세리아는 인사 대신 커다란 판을 건넸다. 네모난 격자에 시간과 이름이 촘촘하게 적혀 있었다. “발견 당시 기록이야. 그 후 누구도 보관함을 만지지 않았어.” “왜 심실에서 먼저 보고가 올라온 거죠?” “모라의 출력이 잠깐 떨어졌거든. 미란이 제습관을 살피다가 봤어.” 미란이 설명을 이었다. 출력 수치가 떨어지자 설비를 중단하고 예비 순환 계통으로 전환했다. 그 과정에서 북쪽 점검로의 벽 판을 열었는데, 관과 관 사이 좁은 선반에 보관함이 놓여 있었다. 표면에는 석분이 쌓였지만 손잡이 주변만 유난히 깨끗했다. 그녀는 바로 현장을 통제했고, 외부 감정인을 부르기 전까지 함부로 열지 않겠다는 규정을 지켰다. “출력 저하가 상자 때문인가요?” 진혁이 물었다. “아직 모릅니다.” 미란은 단호했다. “그 둘을 단번에 연결하면 엉뚱한 부품을 손대게 돼요.” 경비 책임자는 출입부 봉인과 감시 기록을 보여 주었다. 지난 닷새 동안 심실의 정식 출입은 미란을 포함해 다섯 건이었다. 하지만 북측 구식 보수로의 오래된 문은 장부에서 수년 전에 폐쇄 처리됐을 뿐, 실제 용접 흔적과 폐쇄 시점이 확정되지 않았다. 라일이 바로 그 문을 눈여겨보았다. 심실에 들어갈 때에는 두 겹의 문을 통과해야 했다. 첫 번째 문에서는 신발 밑의 먼지를 털어냈고, 두 번째 문에서는 금속 장신구를 빼야 했다. 성급히 마력을 주입한 장비가 울림을 일으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진혁은 자신의 손바닥에 붕대를 다시 감았다. 일부 유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반응했고, 그때마다 머리 안쪽이 뻐근해졌다. “오늘은 먼저 눈과 자로만 봅니다.” 카렌이 말했다. “그 말을 제게 세 번은 하셨죠.” “네 번째도 하겠습니다.” 북측 점검로는 어른 둘이 겨우 비켜설 너비였다. 관마다 응결된 물방울이 매달렸고, 바닥 쇠창살 아래로 낮은 소리가 울렸다. 규칙적이지 않았다. 파도가 모서리에서 부서질 때처럼 길게 밀려왔다가 가라앉는 소리였다. 그리고 선반 위에 상자가 있었다. 가로 두 뼘 남짓한 회색 상자. 모서리에는 오래된 나뭇결을 닮은 홈이 새겨졌고, 뚜껑 중앙에는 여덟 개의 얕은 점이 원을 이루고 있었다. 화령 칠성 경매원에서 보았던 출품번호 000의 봉인함과 비슷했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본 진혁은 다른 점을 발견했다. 화령 상자에는 후대에 갈아 끼운 나사가 있었지만 이 상자의 모서리는 나사 없이 맞물려 있었다. “복제품인지 원형인지 아직 말하지 마세요.” 정색한 세리아가 말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이 증거 사진의 눈금을 맞추고 미란은 주변 공기의 습도와 관 진동 수치를 기록했다. 라일은 손잡이 옆 먼지 분포를 가리켰다. “여기, 닦인 방향이 이상한데요. 누군가 최근에 손잡이를 잡은 게 아니라, 이쪽에서 천을 빼낸 자국 같아요.” “천이요?” “물건을 보호하던 덮개가 있었던 거죠. 상자는 더 오래 있었을 수 있어요.” 세리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긴 유나가 마지막으로 점검하던 자리야.” 누구도 바로 질문하지 않았다. 세리아에게 유나는 실종자의 이름만이 아니었다. 경매장이 아직 평범한 거래소처럼 움직이던 시절, 장부를 펴고 함께 밤을 지새운 사람이었다. 그녀가 남긴 흔적을 다시 찾는 순간이 얼마나 두려울지 진혁도 조금은 짐작했다. 진혁은 상자 옆의 철제 선반부터 확인했다. 손바닥을 뻗지 않은 채 표면을 비스듬히 바라보았다. 선반에는 작은 홈이 네 줄로 파여 있었고, 홈 사이에 가루가 남았다. 화령 인쇄 원판을 비교할 때 본 기준점과 유사했지만, 치수는 달랐다. 미란이 경고했다. “선반도 함부로 떼지 마세요. 저 뒤로 냉각관이 지나가요.” “떼지 않습니다. 치수만 재죠.” 측정 결과를 기록하는 동안 모라 쪽에서 아주 낮은 울림이 올라왔다. 금속이 아니라 숨을 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어제부터 출력이 흔들렸다는 말이 떠올랐다. 진혁은 모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 작은 불빛이 한 번 켜졌다 꺼졌다. “모라, 들리니?” 대답 대신 점검등 두 개가 번갈아 켜졌다. 미란은 고장 신호라고 설명하려다 멈췄다. 그 조합은 기계 고장표 어디에도 없었다. 진혁은 그것을 말이나 동의로 해석하지 않았다. 다만 불빛이 나타난 시각을 기록했다. 그 순간 상자 바닥 아래로 끼어 있던 종이 모서리가 아주 조금 들렸다. 관에서 불어오는 공기 때문이었다. 라일이 낮게 말했다. “저 종이, 상자 안에 있는 게 아니군요.” 미란은 집게와 얇은 유리판을 가져왔다. 담당자 네 사람이 입회한 가운데 상자를 움직이지 않고 종이 끝만 고정했다. 그곳에는 오래된 직원용 검수 표가 붙어 있었다. ‘입고: 미확인. 개봉: 보류. 최초 기록 대조 대기.’ 그 아래 아주 작은 숫자가 있었다. 998. 화령의 000이 아니라, 마레온에서 오래전부터 추적해 온 바로 그 번호였다. 진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하나의 상자가 두 도시에서 동시에 발견된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오래된 보관 체계의 서로 다른 두 부분을 같은 모습으로 꾸며, 그들을 마주 보게 만들고 있었다. “일단 두 상자는 따로 보전합시다.” 그가 말했다. “그리고 심실의 출력부터 살려야 합니다. 값비싼 비밀 때문에 실제로 여기서 살고 있는 존재를 위험하게 둘 순 없으니까요.” 세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종이 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수 표의 밑줄 하나가 유나의 필체와 지나치게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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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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