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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8화
PAYLUA ORIGINAL · 제8화

8화. 오늘의 경매품은 내 수명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375자

오프라인 책장
마레온의 법은 물건을 구분하는 데 지나치게 열심이었다. 돌, 목재, 가축, 마정석, 유물, 선박, 그리고 사람의 노동. 사람 자체는 팔 수 없었지만 일정 기간의 노동을 계약으로 양도할 수 있었다. 그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은 유물 거래가 커진 뒤였다. 마법으로 뽑아낸 기억이나 감정은 물건일까. 아직 살아 보지 않은 내일의 운명을 계약으로 넘길 수 있을까. 시의회는 그런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은 인장 상회는 그 빈틈에 들어와 있었다. 진혁은 기록관 선반 뒤에 몸을 낮춘 채 두 남자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오며 서류와 인장에 관해 말했다. 위에서 명령한 사람은 한 명을 반드시 살아서 데려오라고 했고, 필요하면 동료의 신원까지 담보로 확보하라고 했다. 돈 대신 사람의 존재 자체를 결제 수단으로 취급하는 말투였다. 카렌이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진혁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기록관의 좁은 통로에서 정면으로 싸우면 서가가 무너지고, 불이라도 붙으면 도시의 수십 년 기록이 사라질 수 있었다. 더구나 검은 갑옷의 남자들은 소리 없이 움직이는 훈련을 받은 듯했다. “정면은 안 돼요.” 그가 입 모양으로 말했다. 라일이 옆 선반의 작은 표찰을 가리켰다. 종이로 적힌 글씨는 ‘화재 대비 소화 마석함’이었다. 진혁은 마석함에 손끝을 댔다. [비상 소화 장치.] [기능: 화염과 연기를 감지하면 습한 안개를 방출.] [정상 작동.] [수동 개방 가능.] “저걸 열면 시야가 가려집니다.” 진혁이 속삭였다. 라일은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갑옷 남자들이 선반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석함의 손잡이를 당겼다. 하얀 수증기가 바닥부터 솟구쳤다. 누군가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카렌은 진혁의 손목을 잡고 반대편 통로로 이끌었다. “도망간다!” 뒤에서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세 사람은 좁은 계단을 뛰어올라 기록관 뒷문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갑게 얼굴을 때렸다. 기록관 앞 광장에는 순찰 경비가 몇 명 지나가고 있었다. 진혁은 그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기록관에 불법 침입자가 있습니다! 시청 서류를 훔치려고 합니다!” 순찰병들이 놀라 달려왔다. 검은 인장 상회 사람들이 도망갈 길을 찾느라 한순간 멈춘 사이, 라일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카렌은 경비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혀 기록관 출입과 사건을 설명했다. 진혁은 손에 쥔 서류를 젖지 않게 품속에 넣었다. “당신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카렌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왜요?” “사람들이 쫓아오는데 경비를 부르다니.” “도둑 잡는 건 원래 경비 일 아닙니까.” “보통은 자기부터 살 궁리를 하죠.” “저는 경비 월급까지 받지 않습니다.” 카렌이 웃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웃음 끝이 조금 떨렸다. 잠시 뒤 세리아가 보낸 마차가 광장으로 도착했다. 헥터가 직접 마부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상황을 듣고 얼굴을 굳혔다. “검은 인장 상회가 공적 기록까지 손댔다면 시의회 일부와 결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만히 두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어요.” 진혁은 봉투에 든 문서를 보여 주었다. 검은 인장 상회는 사망 기록과 직원 계약을 이용해 대금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목적은 단순히 루멘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깨어난 루멘의 소유권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일이었다. “서명한 사람이 없다면 거래가 성립하지 않죠.” “맞네.” 헥터가 대답했다. “그럼 위조를 증명하면 끝나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면 좋겠지만요.” 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경매실에서 위조를 적발해 997번 경매를 멈췄지만, 그 전에 맺어진 수많은 계약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상품 000, 루멘의 소유권은 여전히 분쟁 중이었다. 마차 안은 좁았다. 네 사람이 마주 앉으면 무릎이 닿을 정도였다. 비가 오지 않았지만 창밖에는 바닷안개가 짙게 끼어 있었다. 말발굽 소리가 젖은 돌길에 규칙적으로 울렸다. 멀리 항구의 부두에서는 밤샘 하역이 계속되고 있었다. 커다란 자루를 어깨에 멘 일꾼들이 줄을 지어 창고로 들어갔고, 작은 등불이 그들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진혁은 그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내일도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루를 마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거래 가능한 물건으로 기록해 놓았다. “사람이 자기 미래를 담보로 잡는 계약이 얼마나 흔합니까?” 그가 물었다. 헥터가 말고삐를 고쳐 쥐며 대답했다.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흔하지. 항구 노동자들은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줄어. 돈을 빌릴 때 내년 노동을 담보로 잡기도 해.” 카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계약은 명목상 자유 의사라지만 선택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강요나 마찬가지예요. 동생 치료비 때문에 저는 이해할 수 있어요.” 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위험한 경비 일을 마다하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빚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빚이 사람의 자유와 미래까지 끌어당기는 그물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그럼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요?” “계약 자체를 없애자는 말은 아니에요.” 카렌이 말했다. “다만 상대방이 뭘 내놓는지 정확히 알고 선택할 수 있어야죠. 그리고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누가 대신 서명할 순 없어야 하고.” 라일이 뒤편 좌석에서 웃었다. “검사님이 법률가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검사라고 해서 검만 휘두르는 건 아니거든요.” “아, 검 말고도 사람을 벨 수 있는 말솜씨가 있으시군.” “원하면 보여드릴까요?” 라일은 얌전히 입을 닫았다. 진혁은 잠시 웃었다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계약서를 만들거나 돈을 빌려 주는 사람들이 모두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항구의 작은 상인들은 물건을 보내기 전에 계약서가 있어야 안심했고, 가난한 사람들도 최소한의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이 필요했다. 그러나 동의와 이해가 없는 계약은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다른 이름의 약탈이었다. 그는 앞으로 루멘에서 일하게 된다면 감정서의 가장 작은 글씨까지 사람들에게 읽어 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그런 일을 하려면 월급을 더 받아야 할 것이다. 감정사에게 꼼꼼함을 요구하는 세상이라면 꼼꼼한 직원에게 제대로 돈을 주는 것도 당연했다. 마차가 경매장 언덕을 오르는 동안 진혁은 기록관에서 나온 서류를 읽었다. 같은 문구가 여러 장에 반복됐다. ‘미납액이 확정되지 않을 경우, 채무자의 잔여 생명력을 대체 대금으로 산정한다.’ 누군가는 사람의 미래까지 숫자로 바꿔 적어 두었다. “이걸 팔 수 있다는 겁니까?” “법률상 가능하지 않아야 해.” 세리아가 경매장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진혁의 질문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루멘의 오래된 계약 규칙에는 빈틈이 있어. 이곳의 봉인 장치는 현실의 법률보다 먼저 만들어졌거든.” 그녀는 세 사람을 작은 검사실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푸른 불꽃이 떠 있는 검증대가 있었고, 정면 벽에는 경매장과 시청의 공동 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에서 작성된 감정 기록은 시청에서도 증거로 받아들였다. 진혁은 서류의 맨 아래를 가리켰다. “상품이 아니라 채무자를 감정해야겠습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야.” 카렌이 말했다. “바로 그걸 증명하려는 겁니다.” 그가 손을 검증대에 얹자 장치에 불빛이 켜졌다. [감정 대상 확인.] [거래 물품: 서진혁의 잔여 생명력.] [상태: 확정되지 않은 미래.] [이전 가능성: 계약 유효 시에만 발생.] [출품 근거: 직원 계약 부속 조항.] 진혁은 숨을 고르고 말했다. “미래의 수명은 아직 발생하지 않은 겁니다. 발생하지 않은 것을 이미 가진 것처럼 팔면 거래 물품의 상태가 허위로 기재된 셈이죠.” 세리아가 눈썹을 올렸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같은 사람이 같은 날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음을 증명해야죠. 그런데 그건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측은 가능해도 소유는 불가능하니까요.” 카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헥터는 잠시 생각하더니 기록관에서 가져온 사망 증명서를 들었다. “이것도 같은 문제 아닌가? 사람이 죽기도 전에 사망했다고 기록했으니.” “그렇습니다.” 진혁은 두 서류를 나란히 올렸다. 하나는 존재하지 않은 죽음을 기록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삶을 대금으로 삼았다. 둘 다 확정되지 않은 미래를 이미 거래 가능한 물건으로 분류했다. 검증대의 푸른 불꽃이 크게 흔들렸다. [상품 상태 불일치.] [출품 가능성 재심사 요구.] [검은 인장 상회 채권 대체 계약: 효력 정지.] 진혁은 두 손을 주먹 쥐었다. 한숨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됐다.” 그러나 다음 문장이 나타났다. [효력 정지는 소유권 분쟁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상품 000의 판단 기한은 유지됩니다.] “역시 한 번에 해결되진 않네요.” 그가 중얼거리자 세리아가 차분히 말했다. “큰 거래의 문제는 원래 한 줄 서류로 끝나지 않아. 하지만 출품하려던 채무는 막았어. 오늘 밤 자네를 데려가도 상회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없겠지.” 카렌은 검증대에 놓인 계약서의 맨 끝장을 넘겼다. 수많은 조항 사이에 낯선 단어가 보였다. ‘권리 양수는 원권리자의 확인을 거친다.’ “이건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거죠?” 그녀가 물었다. 세리아는 글자를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절차여서 오히려 감춘 것 같아. 루멘에서 어떤 물건을 빼앗으려면 원래 소유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하거든.” “하지만 이 건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르잖습니까.” 진혁이 말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해.” 세리아는 등록대의 일곱 고리를 가리켰다. 오래된 동화책에서 보던 문양과 비슷한 표식이었다. 그 가운데 여섯 고리는 흐린 빛으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일곱 번째만 따로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인장 상회는 빈자리를 노린 거야. 원래 소유자를 찾아내기 전에 서류로 자신들이 소유권을 승계했다고 주장하려는 거지.” “그럼 누가 처음 이곳을 만들었습니까?” “일곱 명의 기록자와 그들을 도운 아흔일곱 사람이야. 그들 중 누가 아직 살아 있는지, 어떤 권리를 남겼는지는 나도 전부 알지 못해.” 진혁은 손종의 표시와 카렌의 검을 떠올렸다. 모두 아흔일곱 명의 오래된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에 흩어진 물건들이 우연히 루멘으로 모인 게 아닐지도 몰랐다. 누군가 오랜 시간 동안 증거를 하나씩 회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소유자부터 찾는 거군요.”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거야. 분쟁 마감 전에 다 찾을 수 있을지는….” 세리아는 말끝을 흐렸다. 진혁은 문서의 다른 쪽을 보았다. 모든 권리 이전에는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들은 경매장을 물건으로만 바라봤다. 정말 모든 것이 물건이라면 문제없지만, 그 안에 누군가 살아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유자를 찾기 전에 감정 분류가 맞는지부터 확인해야겠습니다.” “어떻게?” “지하로 다시 내려가야죠. 이번에는 ‘괴수’라고만 보고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세리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 사라졌다.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손가락의 구리 반지를 돌렸다. 진혁은 피곤한 눈을 비볐다. 손목 안쪽의 문장이 조금 흐려져 있었다. 능력을 오래 쓰면 시야 가장자리가 뿌옇게 변했다. 그는 무심코 자신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바라봤다. 지금까지는 물건의 기억을 들여다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어떤 거래가 왜 잘못됐는지 스스로 판단해야 했다. “사장님.” “응?” “왜 처음부터 진실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위험한 일에 제가 들어올 줄 아셨을 거 아닙니까.” 세리아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에서는 경매장의 첨탑 시계가 열두 번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지막 종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처음에 네가 무서웠어.” 진혁은 뜻밖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이요?” “네가 보는 것을 나도 한때는 볼 수 있었거든.”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 능력으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가, 반대로 잃었어.” 세리아는 손가락의 낡은 구리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장갑 위에서 보잘것없는 반지가 조금 빛났다. “그래서 다시는 누군가를 열쇠로 삼지 않으려고 했지.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 갔어.” 그녀는 진혁에게 반지를 건넸다. 진혁이 멈칫하자 세리아가 말했다. “이제는 자네가 알아야 해. 그 아이가 왜 잠들었는지.” “그 아이라니요?” 대답 대신 반지의 표면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제7봉인의 열쇠.] [최초 거래 대상: 이름 없는 아이.] [소유권 이전 조건: 보호자의 동의.] [현재 보호자: 기록 없음.] 진혁은 등 뒤로 소름이 번지는 것을 느꼈다. 어젯밤 그는 루멘을 잠든 괴수의 껍질이라고 읽었다. 하지만 그 껍질 안에 있는 존재를 왜 괴수라고 불렀는지는,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설마… 경매장 안에 있는 건.” 그때 바닥 아래에서 아주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심장의 박동 사이에, 아이가 흐느끼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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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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