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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79화
PAYLUA ORIGINAL · 제79화

79화. 서명하지 않은 동의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217자

오프라인 책장
낙찰 다음 날 아침, 서진혁은 자신이 작성하지 않은 기록에 서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공동 보관 담당자가 인계서를 확인하려고 상자를 열었을 때, 원판 낙찰 기록 뒤에 얇은 회색 종이 한 장이 추가돼 있었다. 종이에는 제8감정인이 증거물의 소유와 열람을 모두 승인했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서명란에는 누가 봐도 서진혁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획이 이상했다. 진혁은 서류에 서명할 때 마지막 글자의 받침을 빠르게 이어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 종이에는 누군가 정갈하게 흉내 낸 글자가 적혀 있었다. “누가 한 겁니까?” 라일이 물었다. 보관 담당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밤에 인계실에 들어간 사람은 공식 기록상 세 명뿐입니다. 전부 경매원 직원이에요. 서류는 봉인되지 않은 기록 묶음 안에 있어서 누군가 추가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카렌이 손을 뻗어 종이를 펼치려는 라일을 막았다. “일단 더 만지지 마세요. 접촉한 사람과 시간을 남겨야 해요.” 세리아는 곧바로 법무 담당자를 불렀다. 진혁은 차가운 창고 바닥 위에서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그가 여러 경매와 사고를 겪으며 배운 것은 서명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이 만든 계약의 당사자가 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저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하면 곤란합니다.” 진혁이 말했다. “고백이라면 정중히 거절할 텐데.” 카렌의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농담할 때예요?” “안 하면 너무 무서워서요.” 그 말에 카렌은 더 화를 내지 않았다. 진혁이 진짜로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장검을 빼 들지는 않았다. 위조 문서를 검으로 베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공식 조사가 시작되자 문제의 종이에서 다른 이상점이 발견됐다. 서명 아래에는 빈 칸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위에 아주 엷은 자국으로 ‘동의’라는 단어가 압착돼 있었다. 소연에게 가져간 탁본 자료와 마찬가지로, 겉에 보이지 않는 눌림 자국을 읽어야 하는 문서였다. 정유라가 말했다. “이 종이는 오래된 것이 아닙니다. 섬유가 현재 화령 동쪽 제지 공방에서 만드는 것과 같아요.” “그 공방에 가 보면 누가 샀는지 알까요?” 라일이 물었다. “종이 자체는 일반 판매품이에요. 다만 특수 압착 틀을 주문 제작했다면 기록이 있을 수 있겠죠.” 정유라는 수리된 옛 규정집 사본과 새 종이를 비교했다. 여덟 번째 칸에 눌린 윤곽이 두 문서에 거의 같은 각도로 나타났다. 누군가 하나의 틀을 여러 문서에 반복 사용했다는 가능성이 커졌다. 조사가 계속되는 동안 하진은 자신이 직접 확보한 경매 대금 인계 기록을 제공했다. 전날 입찰에서 그는 서른여섯 닢까지 불렀고, 그 시간 동안 출입구 근처에 서 있던 회계 담당자가 사라진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카스텔 상회의 사람이었지만 하진의 지시로 움직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이용해 다른 서류를 옮겼을 가능성도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죠?” 진혁이 물었다. 하진은 대답을 고르듯 잠시 망설였다. “당신이 판을 샀으니 이제 문제가 당신만의 일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내 상회의 기록이 연루돼 있다면 나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거래에서 진짜로 무서운 건 손해를 보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에 돈을 댔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카렌은 그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신중히 살폈다. 그렇지만 유용한 기록을 제공한 사실과 그 기록을 제공한 사람의 의도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하진이 제출한 문서에 접수 시각과 발신지를 남기고 원본은 그의 관리 하에 보전하도록 했다. 그 무렵 진혁은 숙소로 잠깐 돌아가 손바닥을 찬물로 씻었다. 며칠 동안 능력을 억지로 쓰지 않았는데도 봉인함 근처에서는 화상처럼 따끔거림이 계속됐다. 그는 거울 앞에서 손금을 살펴보았다. 글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본질을 본다.' 처음에는 이 문구가 자신을 특별하게 만든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적어도 능력의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졌다. 카렌이 문밖에서 조용히 물었다. “괜찮아요?” “멀쩡합니다. 지금은 조심할 때죠.” 그녀는 들어와 탁자 위에 연고와 깨끗한 붕대를 놓았다. “당신 손을 함부로 쓰지 않는 건 좋은데,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야죠.” 진혁은 그녀가 자신의 손가락을 붙잡고 천천히 붕대를 감는 모습을 바라봤다. 카렌의 손은 검을 오래 쥐었던 사람답게 단단했다. 그러나 붕대 끝을 매듭짓는 움직임은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그는 농담 한마디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무심코 말을 내뱉으면 이 조용한 순간이 사라질 것 같았다. “아버님 일은 언젠가 꼭 확인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카렌은 눈을 들었다. “약속한다고 전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알아요. 그래도 함께 찾아보겠다는 뜻입니다.” 잠시 창밖에서 마차 바퀴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렌은 붕대를 다 감고 손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러면 저도 당신이 혼자서 세상을 떠맡지 않게 옆에 있을게요.” 진혁은 그제야 작게 웃었다. 어느 유물에도 이런 말을 감정할 수 있는 기능은 없었지만, 그에게는 오늘 가장 확실한 약속처럼 들렸다. 그날 오후, 경매원은 공식 입찰이 끝난 물건과 별도로 의심 서류의 위조 여부를 검토하는 공개 설명회를 열었다. 진혁은 그 자리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였다. 누군가 그의 이름을 미끼로 삼는데 많은 사람 앞에 스스로 나서는 것은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회색 문서가 진짜라고 믿는 상인들이 벌써 시장에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 ‘서진혁이 최초 감정서의 소유권을 얻었다.’ ‘그는 제0호의 후계자다.’ ‘그가 앉은 자리가 세계의 모든 가격을 정한다.’ 진혁은 마지막 소문을 읽고 얼굴을 찡그렸다. “제가 세상의 모든 가격을 정할 수 있으면, 이 도시 빵값부터 내리겠습니다.” 세리아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값을 내리면 빵집이 문을 닫겠지.” “그럼 제 월급을 올리는 쪽으로 하겠습니다.” “그건 검증이 더 어렵겠군.” 웃음 뒤에 남은 침묵은 짧지 않았다. 세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정말 공개적으로 말할 생각이야?” 진혁은 한 번 숨을 들이쉬었다. “기록은 조용히 고치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벌써 거짓을 믿고 있다면, 제대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명회는 동관의 작은 경매실에서 열렸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오후 빛 아래 청중이 둘러앉았다. 상인들은 왜 별도의 발표까지 해야 하는지 의아해했고, 몇몇 귀족은 제0호 감정사의 후계자를 볼 수 있다며 들뜬 표정이었다. 기자 역할을 하는 길드 서기들도 앞줄에 자리 잡았다. 윤담은 먼저 표준 계약 양식과 위조가 의심되는 종이를 보여 주었다. 각 문서의 작성 시기, 보관 경로, 서명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차분히 설명했다. 진혁은 그 옆에서 평범한 필기구를 들어 자신이 실제 쓰는 서명을 몇 번 남겼다. 실물 비교를 통해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보여 주려는 목적이었다. “제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해서 제가 이 문서에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진혁이 말했다. “법적 확인 이전에, 저는 사람의 신원이나 능력을 거래 대상으로 삼는 데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산 것은 인쇄 원판의 공동 보관 권리이지, 삼백 년 전 누구의 재산도 아닙니다.” 객석 한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대체 최초 감정서는 무엇입니까? 그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진혁은 잠시 원판 사진을 바라봤다. 종이에 찍힌 글씨는 평범했다. 감정 기준, 사용 흔적, 제작자 이름. 전설처럼 화려한 문구는 없었다. “아직 모릅니다. 그래서 조사합니다. 모른다는 말을 숨기려고 전설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누군가 비웃었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된 사실과 추측을 나누는 태도가 적어도 시장의 소란을 조금 가라앉혔다. 설명회가 거의 끝날 무렵 경매실의 뒤쪽 문이 열렸다. 회색 우의를 입은 사람이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경비원들이 움직였지만 그는 서류와 허가증을 제시하며 자신이 봉인함 출품 대리인의 특별 통지 담당자라고 주장했다. “제8감정인이 동의를 철회한다고 하셨습니까?” 그가 물었다. “처음부터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진혁이 답했다. 남자는 상자에서 얇은 은색 판을 꺼내 보였다. 판에는 몇 줄의 글씨가 거꾸로 새겨져 있었다. 중앙에 작은 홈 여덟 개가 보였다. 그는 그것이 최초 감정서 개봉을 위한 정식 확인 장치라고 말했다. 세리아가 즉시 손을 들었다. “출처부터 확인하겠네. 허가받지 않은 장치를 이곳에서 작동시키면 안 돼.” 하지만 남자는 상자의 덮개를 이미 열어 놓은 상태였다. 은색 판이 공기에 닿자 희미한 금빛이 흘렀다. 객석 한가운데를 향해 얇은 빛줄기가 뻗어 나오더니 벽에 글자가 나타났다. ‘동의하지 않은 이름은 보관된다.’ 순간 진혁의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익숙한 글씨가 아닌 다른 문구가 스쳤다. [대상: 이름을 모사하는 기록판.] [기능: 주변의 구두 발화를 일정 시간 압착 기록.] [경고: 기록된 발화와 법적 동의는 동일하지 않습니다.] 고통이 날카롭게 올라오자 진혁은 반사적으로 손을 움켜쥐었다. 하지만 판이 실제로 사람의 동의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말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동의처럼 꾸미기 위한 장치였다. “말하지 마세요!” 진혁이 외쳤다. “저 판은 대화를 기록합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장치를 끄세요!” 카렌은 경비원에게 객석을 뒤로 물리게 하고, 윤담은 위험 유물 보관용 덮개를 가져오게 했다. 남자가 도망치려 하자 라일이 출입구 앞에 놓인 가벼운 의자를 옮겨 길을 막았다. 허술한 마법이 아니라 잘 준비된 사람들의 움직임이 상황을 멈추게 했다. 은판은 마법 차폐함에 보관됐고, 대리인을 자처한 남자는 정식 확인 절차를 위해 경비실로 인계됐다. 설명회가 끝난 뒤, 진혁은 경매원의 빈 의자에 앉아 식은 물을 마셨다. 손바닥은 얼얼했고, 속이 메스꺼웠다. 카렌이 물컵을 바꿔 주었다. “또 능력을 썼군요.” “제가 쓴 건지 저 물건이 제게 덤빈 건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는 당신부터 보호할 방법을 찾아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문밖에서 윤담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정 원판의 공식 보관함에서 새로운 장치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원판 뒷면에 아주 오래된 홈이 있었고, 그 홈이 오늘 은판의 홈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그 장치를 결합하면 종이에 찍힌 글씨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보고였다. 진혁은 무겁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보낸 물건이, 정작 자신들의 거짓을 드러낼 열쇠가 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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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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