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기록실의 문은 아침 아홉 시에 열리지 않았다.
광무청 담당자는 산길이 막혀 늦는다고 전신을 보냈고, 유족 대표는 전날의 수문 사고 조사 결과를 먼저 요구했다. 마을 보존위원회 역시 출입 신청서의 목적이 모호하다며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진혁은 초조했지만 누구도 재촉할 수 없었다. 이 방은 오래전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처리한 기록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방을 단지 도시에서 왔다는 이유로 열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었다.
기록 창고의 복도는 평소보다 붐볐다. 광부 유족 두 명과 공제조합 대표, 지방 감찰관, 보존원 우서희, 백여명이 나란히 기다렸다. 카렌은 외지 검사로서 조사권을 주장하지 않고 자료의 훼손을 막는 참관인 역할만 요청했다. 라일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의자를 나르고 물을 끓였다. 여전히 도둑처럼 가벼운 걸음이었지만, 이제 그 손에 들린 것은 열쇠가 아니라 쟁반이었다.
“출세하셨네요.” 진혁이 속삭였다.
“전에는 은식기를 들고 도망갔는데 지금은 반납하러 오잖아요.”
그들이 웃는 사이 문밖에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을 대륙 자산복구 조합의 위임 대리인 나일 벡이라고 소개했다. 낯선 명함에는 황금사자 문양 대신 흰색 원형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는 여명의 사망 등록 기록을 근거로 오래된 등불과 광산 연구품을 조합에 귀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여명은 웃지도 않았다.
“내가 여기 살아 있는데 무슨 사망 등록이냐고?”
벡은 공손한 말투를 유지했다. “행정상 정정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법적 권리 관계는 따로 검토해야 합니다.”
“그 검토를 위해 내가 죽어 있어야 하는 거군.”
카렌은 그가 제시한 위임장을 꼼꼼히 확인했다. 문서에는 조합의 이름과 날짜가 있지만, 물품 목록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조합이 어떤 자산의 원래 권리자인지를 증명하는 서류가 빠져 있었다. 카렌은 위임장 자체가 가짜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다만 그 문서만으로 모든 광산 물품을 가져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늘은 열람 절차입니다. 압류나 소유권 이전 절차가 아닙니다.”
벡은 진혁을 바라봤다. “당신이 제31후보라면 감정해서 증명해 줄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감정할 수 있는 건 일부 잔향뿐입니다. 법원도 아니고 광무청도 아닙니다.”
“물건의 진실을 본다면서요.”
진혁은 잠깐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능력이 나타난 뒤 그에게 가장 자주 들려온 말이었다. 다른 사람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으니, 법과 절차를 생략해도 된다는 유혹. 처음에는 그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누군가의 권리를 훔치는 칼처럼 느껴졌다.
“진실을 조금 볼 수 있다고 해서 진실의 주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광무청 담당자가 도착한 것은 정오 직전이었다. 봉인 상태와 세 개의 열쇠를 각각 확인하고, 출입 인원을 제한했다. 카렌과 진혁은 참관석에 남았고, 여명과 유족 대표, 공무원, 보존원만 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에 선 사람들은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예상보다 작았다. 쇠 자물쇠가 삐걱이는 대신 오래된 나무가 살짝 벌어지는 소리였다.
안쪽의 방은 습기를 막기 위해 낮은 돌받침 위에 서류함을 올려놓은 구조였다. 한쪽 벽에는 사고 당시 사용했던 수위 기록기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무너진 작업조의 출입표가 보관되어 있었다. 여명의 사망 등록 서류가 들어 있다는 상자도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감찰관은 그 내용을 복도에 있는 모두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피해자 개인의 신원과 가족 정보가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뒤 여명이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공식 열람 확인서만 들려 있었다.
“사망 처리됐던 시점의 기록이 남아 있어. 내가 그때도 현장에서 일했다는 별도 장부도 발견됐지. 하지만 어느 쪽이 왜 만들어졌는지 조사해야 해.”
“그럼 지금은?” 진혁이 물었다.
“정정 신청을 다시 할 수 있겠지. 원본이 사라졌다고 거절당하던 일이 반복되진 않을 테고.”
그녀는 피로한 얼굴로 벽에 기대었다. 진혁은 자신이 대단한 사건을 해결한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한 사람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 년이 걸렸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사실 앞에서 경매장의 낙찰가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였다.
벡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벡이 일어나기 전, 마을 대표들은 잠시 다른 문제를 놓고 다퉜다. 방진광을 시험용으로 빌려주더라도 사용료를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광산을 운영했던 회사는 사라졌지만, 폐시설 유지비를 매년 냈던 공제조합과 공공 수로를 관리한 지방청의 비용이 서로 달랐다. 어떤 주민은 이 돈을 아이들의 학교 지붕을 고치는 데 쓰자고 했고, 다른 주민은 먼저 체불된 광부의 의료비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또 싸우다가 아무것도 못 팔겠어.” 한 노인이 말했다.
태문이 조용히 대답했다. “싸운다고 나쁜 건 아니오. 예전에는 우리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팔았으니까.”
진혁은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경매장에서는 망치가 내려오는 순간 모두가 결과에 복종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어떤 물건은 망치가 내려오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질문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합 회계사는 회의를 정리해 처분 가능한 재산을 세 구역으로 나눴다. 개인 물품, 보존 지정 자료, 조합이 관리하는 설비. 세 구역을 한 번에 묶어 파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돈이 모자라는데도요?” 마을 대표가 물었다.
“돈이 모자라서일수록요.” 진혁이 답했다. “한 번 실수하면 다시 살 수 없는 것이 들어 있으니까요.”
카렌은 말을 보탰다. “법적 소유와 물리적 점유는 다릅니다. 창고 열쇠를 가진 사람이 모든 서류의 소유자는 아니에요. 오늘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은 결정을 미룬다고 명확히 기록하세요.”
회의록이 그렇게 작성됐다. 누구는 답답하다고 했고, 누구는 안심했다고 했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목소리가 적어도 한 번은 기록에 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뒤 벡이 발표대로 새로운 매입 제안을 꺼냈다. 깔끔한 서류와 큰 숫자 뒤에 어떤 항목이 숨어 있는지 진혁은 이제 조금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마을 공제조합 측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광산이 보유한 방진광 광석과 폐장비를 일괄 인수해 부채를 정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금액은 마을 사람들이 예상한 것보다 컸다. 만약 계약이 성립되면 시설 유지비와 부상자의 치료비를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었다.
공제조합 대표의 표정이 흔들렸다.
“폐광 때문에 마을 살림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치료비가 더 나오면…”
벡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정리하셔야 합니다. 사람들의 추억만으로 시설을 지킬 수는 없으니까요.”
진혁은 제안서의 작은 글씨를 읽다가 이상한 항목을 발견했다. ‘일괄 양도 대상: 광산 시설에 잔존한 권리 일체, 잔여 미확인 물품, 광물 생산 당시의 기술 성과 및 기록.’ 단순한 고철 매입이 아니었다. 기록까지 묶어서 사겠다는 뜻이었다.
“이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일곱 번째 기록실 자료도 넘어갈 수 있습니까?”
벡이 미소 지었다. “법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요.”
“그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서류에 없군요.”
카렌은 제안서를 받아 들고 여러 조항에 표시했다. 실물 설비의 처분 권한과 기록 보존 의무는 별개였고, 사고 자료의 열람 제한 역시 일반 상업 계약으로 바뀔 수 없었다. 마을 대표는 그 설명을 듣고 즉시 서명하지 않기로 했다. 조건을 다시 검토할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벡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진혁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당신이 낡은 물건의 가치를 본다더니, 매번 경매를 망치는군요.”
“아닙니다.” 진혁이 답했다. “잘못된 물건 목록을 고치는 중입니다.”
그날 저녁, 진혁은 태문과 함께 오래된 광물 시세표를 보았다.
그때 우서희가 봉인실에서 나온 기록의 처리 상태를 알려 주었다. 사망 서류와 근무 명부 사이에 날짜가 다른 문서가 존재한다는 점은 확인됐다. 그러나 작성자의 자필을 감정하는 전문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법적 정정과 당시의 책임 소재는 미정이었다. 백여명도 그 소식을 듣고 당장 승리 선언을 하지 않았다.
“죽었다고 써 놓은 종이 때문에 오래 못 나왔어. 이제 한 장 나왔다고 모든 일이 끝날 리 없지.”
그녀의 말은 조용했지만 무거웠다. 최박의 구조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마을에서 환호가 터졌던 것과 달랐다. 어떤 억울함은 누군가 살아 돌아온 순간에도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진혁은 여명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다. 그녀는 정식 기술자 신분이 막힌 동안 다른 마을의 농기구를 고치며 살았다고 했다. 이름을 바꿔 산 적은 없었지만, 서류에 여명이 죽었다고 적혀 있다는 이유로 많은 거래가 막혔다. 집을 빌릴 때에도 보증인을 구해야 했고, 물건을 맡기면 돌려받기 어려웠다.
“그들이 빼앗으려던 건 내 유물만이 아니었어. 내가 거래할 권리 자체였지.”
진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람의 신원을 담보로 잡는 일이 얼마나 잔인한지 여기 와서야 또 다른 얼굴로 보았다. 그는 여명이 자기 이야기를 공개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여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네.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제일 어려울 거야. 사람들은 비밀을 알게 되면 언제든 값으로 바꾸고 싶어 하거든.”
여명이 돌아간 뒤 진혁은 손바닥을 펼쳤다. ‘본질을 본다’는 문장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 문장이 누군가를 구하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팔기 쉬운 유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게 됐다. 하지만 두려워한다고 능력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능력을 언제 사용하지 않을지 선택하는 것도 그의 책임이었다. 광산의 방진광은 대부분 고철보다 조금 비싼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도경이 보여 준 등불 속 시료처럼 진동을 안정시키는 높은 품질의 광물은 드물었다. 적절히 시험하면 폐기 비용만 들던 광석 일부를 합법적으로 재평가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태문은 시세표를 덮으며 말했다. “그런데 자네가 값을 올려 놓으면 또 사려는 놈들이 달려오겠지.”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들이기 전에 사람들이 얼마만큼의 권리를 가졌는지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창밖에서 작은 기차의 경적이 들렸다. 폐선 끝에 남아 있던 수리용 기관차였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원했다. 다만 그 길이 또 누군가의 이름을 지우는 거래로 시작되지는 않기를 바랐다.
그날 밤, 벡이 묵는 방에 검은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상자를 열어 본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편지를 썼다.
‘일괄 매입 지연. 제31후보 예상보다 비협조적. 대체 절차 시행 요청.’
편지의 수신인은 이름 대신 숫자 하나로만 적혀 있었다.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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