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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7화
PAYLUA ORIGINAL · 제67화

67화. 제32후보는 자신을 경매에 내놓지 않는다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246자

오프라인 책장
백여명은 자기 앞에 차가 놓였는데도 한동안 손을 대지 않았다. 기록 창고의 응접실은 작았다. 창문 두 개가 마당을 향해 나 있었고, 책장에는 낡은 광산 연혁서가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벽에는 산맥을 따라 그려진 채굴권 지도와, 광부들의 작업조가 바뀔 때마다 수정한 연필 메모가 남아 있었다. 바깥에서는 기록보존원 우서희가 문을 닫는 소리가 났다. 여명은 찻잔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내려다봤다. 오른쪽 뺨의 오래된 흉터가 물결처럼 굽어 보였다. “다들 나를 찾는다고 해놓고, 막상 찾으면 먼저 번호부터 묻더군.” 진혁은 장갑을 벗지 않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럼 이름부터 여쭙겠습니다. 백여명 씨가 맞습니까?” 카렌은 면담 시작 시각을 적기 전에 실내의 다른 출입구가 어디인지 살폈다. 복도 쪽 문 외에 작은 뒷문이 하나 있었다. 여명이 원하면 언제든 자리를 떠날 수 있어야 했다. 화령에서 보았던 기억 회상판처럼 한 사람의 이야기를 누군가 강제로 관객 앞에 올릴 수는 없었다. 여명은 그런 세심한 준비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너희는 이상한 손님들이군. 다른 사람들은 제0호라는 말을 듣자마자 부자가 되는 방법부터 묻던데.” “저희도 그건 묻고 싶습니다.” 진혁이 말했다. 카렌이 그를 쳐다봤다. “나중에요. 지금은 순서를 지키겠습니다.” 그의 말에 여명은 처음으로 찻잔을 들었다. 쓴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바깥 복도에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는지 잠시 귀를 기울였다. 오래전에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던 이들이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계가 몸에 배어 있는 듯했다. 진혁은 그런 여명을 보며 그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왜 누군가에게 불편한 진실인지 조금 이해했다. “맞아. 이 광산 보존위원회 명단에도 그렇게 적혀 있지.” “왜 제32후보라는 문구를 가지고 계십니까?” “그 질문은 대답할 수 있어. 하지만 내 이름과 그 문구가 같은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카렌은 여명에게 먼저 면담 목적과 기록 방식에 동의를 구했다. 여명은 자신의 이야기를 메모로 남기는 데는 동의했지만 음성 기록이나 공식 신원 확인서로 쓰는 것은 거절했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의 거래에 악용된 일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명은 오래전 광산에서 장비 품질을 검사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손가락 끝에는 오래된 화상과 가는 베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광산에서는 보석처럼 번쩍이는 광물보다, 기계가 제대로 멈추는지를 확인하는 부품을 더 오래 만졌다고 했다. 검사원에게 가장 먼저 배운 일은 어느 쪽에서 소리가 나는지 듣는 법이었다. “광산에서는 소리가 한 번 멈추면 모두가 좋아하지. 하지만 소리가 너무 갑자기 사라지면 위험해. 바퀴가 돌아가다 걸렸을 수도 있고, 물길이 막혔을 수도 있으니까.” 여명은 젊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큰돈을 벌고 싶어 했는지도 숨기지 않았다. 도시 상인이 광물 한 상자를 맡기며 특별한 능력을 보이면 후한 보상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녀도 다른 검사원들보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몇 달 뒤, 단순히 유물의 숨겨진 가치를 보는 능력과 거래 상대를 속이지 않는 책임이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됐다고 했다. 어느 날 도시에서 가져온 작은 열쇠를 감정한 적이 있었다. 열쇠를 가진 사람의 잔향에서는 빛나는 금고가 보였다. 상인은 그 광경을 근거로 열쇠를 거액에 낙찰하려 했다. 그러나 금고를 사용할 권리는 이미 사고로 숨진 광부들의 유족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그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 상인은 유족의 이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가 무엇을 보여 주는지 생각했어. 내 눈에 나타난 게 진실일 수는 있었지만, 누군가 보이게 하고 싶은 부분만 드러난 걸 수도 있었지.” 진혁은 루멘 경매장 지하 창고에서 보았던 무명의 구리 반지를 떠올렸다. 표면에는 동화 두 닢이라는 값이 붙어 있었고, 자신에게는 수많은 사람의 죽음과 제7봉인의 열쇠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 정보가 경매장의 본질에 다가가는 단서가 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반지를 누가 팔 수 있는지, 세리아의 계약이 적법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러면 그 실험을 통해 얻은 능력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까?” 여명은 자신의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젊었을 때는 가끔 남들이 못 보는 걸 봤어. 지금은 아니다. 몸이 다쳐서인지, 내가 보려 하지 않아서인지 나도 몰라.” 카렌은 그 말을 빠짐없이 적었다. 능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질병이나 의도적인 봉인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여명 스스로도 이유를 모른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제31후보와 제32후보는 앞뒤 번호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그런 줄 아는 사람이 많았지. 하지만 내가 그 표를 받은 날 다른 도시에서도 다른 번호를 썼다는 말을 들었어. 어떤 곳은 시험 차례, 어떤 곳은 장비 번호였어. 누가 나중에 한 권에 모으며 맞춰 놓았는지도 모른다.” 진혁은 웃음이 나왔다. 세계의 비밀을 풀 열쇠라고 생각했던 숫자가 여러 서류의 분류 오류일 수 있다니 우스웠다. 그러나 그 우스움 속에는 여전히 누가 왜 그런 혼동을 이용하고 있는가 하는 위험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여명은 그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실망했나?” “조금요. 전 제 능력에 어울리는 멋진 계보가 있으면 좋겠거든요.” “계보가 없어도 손바닥은 네 것이지.” 그 말에 진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원해서 얻은 능력인지조차 모르면서, 정해진 계보를 찾으면 안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어느 날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특이한 제도를 소개했다. 물건의 값뿐 아니라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책임을 남기는지 확인하는 감정 절차였다. 그들은 그 일의 시험 대상자에게 번호를 붙였고, 여명은 제32후보라는 표를 받았다. “제0호 감정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기록에는 있었어. 하지만 나는 얼굴을 본 적이 없지. 제0호라는 말이 개인을 뜻하는지, 검사의 첫 단계를 뜻하는지도 듣지 못했고.” 그녀는 가방에서 낡은 수첩 한 장을 꺼냈다. 종이에는 세 가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값을 측정한다. 거래 가능한 권리를 확인한다. 거래될 수 없는 권리를 구분한다.’ “도시 사람들은 첫 문장을 좋아했지. 남들이 못 찾는 값비싼 물건을 찾아내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거든. 하지만 나는 둘째 문장부터 물었어. 누가 이 물건을 팔 권리를 가졌느냐고.” 여명은 당시의 실험이 위험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몇몇 감정사에게는 물건에 남은 잔향이 보였지만, 그 잔향이 과거의 전부가 아니었다. 소유권이 이전된 순간만 보이고, 이전을 거절했던 이유는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실험 주최자들은 그 빈틈을 이용해 억지 계약을 정당화하려 했다. “그래서 전 일을 그만뒀지.” “그게 전부입니까?” 라일이 물었다. 여명은 잠시 창밖의 비어 있는 선로를 바라봤다. “그만둔다고 말하자 누군가 내 사망 확인서를 만들었어. 내가 죽었으면 내가 빌려준 등불과 보관한 자료도 주인을 잃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겠지. 나는 살아 있었지만, 그들이 만든 기록에서는 죽은 사람이었어.” 카렌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서류를 가지고 계십니까?” “사본은 있지. 원본은 일곱 번째 방에 봉인돼 있어.” 진혁은 비로소 사건의 모양을 조금 이해했다. 도시에서 그에게 붙인 제31후보 번호와 여명의 제32후보 번호가 언제, 누가, 어떤 기준으로 붙였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사람을 거래하려는 시도가 오래전부터 반복됐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왜 저희에게 봉투를 보내셨습니까?” 여명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희에게 봉투를 보내지 않았어.” 라일이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럼 누가 보냈습니까?” “모르지. 며칠 전 내 옛 수첩의 필사본을 보여 달라는 사람이 있었어. 금속 조각도 물어봤지만 나는 내주지 않았지. 그 뒤로 창고의 여섯 번째 방을 누군가 뒤졌다는 얘길 들었어.” 진혁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그들이 받은 좌표가 유인책일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이제 그 가능성이 더 커졌다. 동시에 그 덕분에 실제 생존자와 만났으니 단순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정말 제32후보라면 제 능력이 뭔지도 아십니까?” 그가 물었다. “네 손바닥에 무슨 글자가 생기는지는 몰라. 하지만 물건이 네게 보여 주는 것만으로 네가 옳다고 생각하면 곧 이용당할 거야.” 여명은 진혁이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덧붙였다. “내가 너를 시험하려는 건 아니야. 나도 그런 시험을 싫어하니까. 대신 등불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내가 왜 죽은 사람으로 처리됐는지 기록해 줘. 네 능력이 거기 도움이 된다면 쓰고, 아니면 쓰지 마.” 그 말은 진혁에게 생각보다 무겁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능력이 그를 특별하게 만든다고 믿었다. 경매장에서 쓸모없는 물건이 보물로 바뀌는 순간마다 세상을 조금 이긴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여명은 그에게 보물을 찾아 달라 하지 않았다. 제대로 반납하고 제대로 기록해 달라고 부탁했다. 라일은 갑자기 질문했다. “혹시 열두 해 전 이곳에 온 아이를 기억하십니까? 배달인 조합에서 데려온 아이요.” 여명은 그를 한참 바라봤다. “몇 명 있었어. 그중 하나가 내 창고에서 빵을 먹고 울었다는 건 기억해.” “그 애 이름은요?” “기록을 보고 확인해야겠지.” 그녀가 똑같이 신중하게 대답하자 라일은 작게 웃었다. “여긴 다들 저한테 이름을 쉽게 안 주는군요.” “잘된 일이야. 네가 이미 가진 이름을 남이 허락 없이 바꾸진 못한다는 뜻이니까.” 해 질 무렵, 여명은 창고로 돌아가기 전에 진혁에게 한 장의 목록을 넘겼다. 거기에는 광산 사고 이전 보관했던 장비 가운데 돌려주지 못한 물품들이 적혀 있었다. 일곱 종, 구리 등불, 방진광 조각, 그리고 검은 나무상자 하나. 마지막 물품에만 금색 점이 찍혀 있었다. “저 상자는 무엇입니까?” “그 안에 든 걸 내가 감정한 적은 없어. 누군가 열라고 했고, 나는 거절했지.” “왜 거절했습니까?” “상자 주인이 내게 부탁했으니까. 자기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절대 열지 말라고.” 진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에서는 닫힌 상자가 열려 있는 금고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여명은 문 앞에서 돌아섰다. “내일 일곱 번째 방이 열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방 안에 있다고 네 물건이 되는 건 아니야.” 그녀가 나간 뒤 라일이 중얼거렸다. “왠지 저분은 사장님보다 무섭네요.” “왜요?” “사장님은 거래를 거절하면 수수료를 아까워하시는데, 저분은 내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안 말해 줄 것 같거든요.” 진혁은 수첩에 새 제목을 적었다. ‘제32후보의 감정 결과: 살아 있는 사람. 거래 대상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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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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