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의 중앙 기록 창고는 마을에서 가장 비싼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처럼 보이지 않았다.
역사 뒤편의 좁은 자갈길을 따라 이십 분쯤 걸으면 오래된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절반은 붉은 벽돌, 절반은 검은 판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한때 광석 품질 검사소였다고 했다. 높은 굴뚝은 이미 연기를 내지 않았고, 창틀마다 쇠막대가 달려 있었다. 입구 옆의 석판에는 광부들의 이름이 줄지어 새겨져 있었다. 광산이 문을 닫는 날, 사고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이름을 마을 사람들이 새긴 것이었다.
라일은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그중 몇몇 이름은 마모되어 읽기 어려웠다.
“이름이 사라지면 안 될 텐데.”
“그래서 매년 다시 새긴대요.” 안내인 도경이 말했다. “이건 누구의 소유물이라기보다, 마을 전체가 지키는 기록입니다.”
진혁은 문 옆에 꽃다발 두 개가 놓여 있는 것을 봤다. 새 꽃도, 오래된 꽃도 있었다. 광부의 가족들이 아직 오간다는 뜻이었다. 어떤 유물보다 값비싼 기록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는 잠시 웃음을 거뒀다.
입장을 허락한 사람은 기록보존원 우서희였다. 그는 마을에서 태어나 광산 자료를 정리한 지 이십여 년이 된 여자였다. 머리는 짧게 묶었고, 손톱 끝에는 종이 먼지 때문에 생긴 갈색 얼룩이 남아 있었다. 서희는 일행의 신청서와 신분증을 확인한 뒤, 기록물을 만지는 규칙부터 설명했다.
“여기 보관된 장부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촬영이나 탁본도 제한돼요. 기록을 찾으면 신청서 번호로 열람 요청을 내고, 필요한 경우 보존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사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 감정 능력을 써서 물건을—”
“그런 설명은 외부에서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능력보다 손의 습기가 문제예요. 장갑을 쓰세요.”
라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여기 계신 분이 진짜 감정사 같네요.”
서희는 듣고도 못 들은 척했다. 좁은 복도 끝에는 철제 문 일곱 개가 줄지어 있었고, 각 문 위에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급여 장부, 둘째에는 장비 수리 기록, 셋째에는 사고 보고서가 보관됐다. 넷째와 다섯째는 폐쇄 후 새로 생긴 공동체 보존 자료실이었다. 여섯 번째 문에는 자물쇠가 없었다. 대신 문 위쪽에 낡은 놋쇠판 하나가 달려 있었다.
‘반환되지 않은 물건의 기록.’
“열쇠가 없네요.” 진혁이 말했다.
“원래는 안에서 여는 문입니다.” 서희가 답했다. “옛날 광산 운영사가 직원들의 개인 물건을 함께 보관해서 문제가 많았거든요. 보존원이 허락한 물건만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안쪽에 잠금 장치를 뒀습니다.”
일곱 번째 문에는 반대로 자물쇠가 세 개나 달려 있었다. 그 아래에는 ‘대출 중지’라는 붉은 표지가 붙었다. 관리소 쪽에서 온 회색 봉투의 좌표가 가리키는 곳과 이 건물은 다르지만, ‘일곱 번째 기록실’이라는 표현 때문에 찾게 된 또 하나의 장소였다.
카렌은 기록 목록을 읽었다. 세 개의 자물쇠는 각각 광무청, 마을 보존위원회, 생존 유족 대표의 권한으로 관리됐다고 했다. 어느 하나의 열쇠만으로는 출입할 수 없었다.
“이제 보니 다른 곳보다 훨씬 까다롭군요.” 진혁이 말했다.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서희가 말했다. “한 사람이 기록 전체를 팔아 버릴 수 없거든요.”
그날 일행이 열람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섯 번째 방의 공개 목록뿐이었다.
문서실의 온도는 바깥보다 훨씬 낮았다. 높게 난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먼지 띠를 만들었고, 서희는 습도계를 확인하느라 손님들보다 먼저 움직였다. 기록지마다 크기가 달랐다. 질긴 섬유로 만든 광산 초기 장부는 구석이 휘어 있었고, 후기에 쓰인 값싼 종이는 가장자리가 노랗게 부스러졌다. 일부에는 물이 흘렀던 선이 남아 있었다.
“전쟁터 같습니다.” 진혁이 조용히 말했다.
“서류를 지키는 전쟁이죠.” 서희가 대답했다. “비싸고 화려한 책보다 여기서 하루의 품삯을 적은 장부가 더 잘 없어집니다. 누군가 굳이 없애서가 아니라 관리 비용이 먼저 끊기거든요.”
그녀는 보존된 장부의 한쪽을 펼쳤다. 광산이 번성하던 해에는 비상 조명 장비를 일주일마다 검사했다는 기록이 있었다. 폐쇄 직전에는 세 달에 한 번, 마지막에는 확인자 이름만 남고 검사 결과는 공란이었다. 서희는 그 사실을 기계가 실제로 고장 났다는 증거로 쓰지 말라고 했다. 기록이 없다는 것과 검사가 없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카렌은 날짜의 공백을 따로 옮겨 적었다. 사고와 관련된 조사에서는 공백이 가장 큰 유혹이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모르는 부분을 자신이 믿는 이야기로 채우기 쉬웠다. 그녀는 아버지 레온의 검을 처음 조사하던 때를 떠올렸다. 검에서 나타나는 잔향이 얼마나 진실 같았든, 그 장면만으로 아버지가 마지막에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혁은 그녀의 펜이 잠시 멈춘 것을 알아차렸다. “무슨 생각 합니까?”
“아버지요. 그분의 기록도 언젠가 이런 방에서 읽게 될까 봐요.”
“그때 같이 오겠습니다.”
카렌이 눈을 들었다. 진혁은 괜히 서류 더미를 정리했다. “저는 글씨를 빨리 읽는 편이라서요. 초과 근무 수당은 따로 받겠습니다.”
“당신은 꼭 마지막에 돈 이야기를 하는군요.”
“안 그러면 부끄러우니까요.”
두 사람은 잠시 웃었다. 카렌의 웃음은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전보다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로의 사정을 모두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옆에 서 있을 이유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서희는 문서를 열람할 때마다 종이 받침대의 기울기를 조정했다. 오래된 장부는 완전히 펼치면 등 부분이 찢어질 수 있어서였다. 라일은 그 모습을 흥미롭게 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보물을 열려면 자물쇠를 풀 줄만 알았는데, 열지 않는 법부터 알아야겠네요.”
“잘 배우셨습니다.” 서희는 드물게 미소 지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가져가는 기술보다 남기는 기술이 더 중요하니까요.” 서희는 외부 방문객들에게 두꺼운 장부를 가져왔다. 수령되지 않은 물품의 종류와 대략적인 발견 장소, 소유자를 찾기 위한 공고 시각이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이름이나 가족 관계는 개인 정보로 분리되어 있었다.
진혁은 목록 한 줄에서 멈췄다.
‘광산 관리소 등불 한 점, 동화 열두 닢 평가. 수리 후 보관. 최종 수취 거부.’
그의 손끝이 흔들렸다. 자신이 전날 소량 시료 대여료로 제시했던 동화 열두 닢과 같은 금액이었다. 우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기록에 등장하는 등불이 그들이 발견한 등불인지 검증할 단서가 필요했다.
“누가 수취를 거부했습니까?”
“공개 목록에는 안 나와 있어요.” 서희가 대답했다. “해당 물품과 소유권을 대조하는 정식 신청을 하세요.”
카렌은 목록의 시간과 최근 관리소 점검 내역을 비교했다. 등불이 그 자리에 있던 기간에 여러 차례 보수 공사가 있었고, 일부 시설물은 폐기 대상 목록에 오른 적도 있었다. 따라서 등불이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서희는 그들의 신중한 태도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덧붙였다. “여섯 번째 방을 누구든 열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실제로는 돌려줄 권리를 확인해야만 들어갈 수 있죠.”
“그럼 일곱 번째 방은 왜 닫았습니까?” 라일이 물었다.
서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열두 해 전 붕괴 사고 후 증거 기록 일부가 봉인됐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사망자로 바꾸었다는 의혹이 있었거든요.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족들이 합의할 때까지 자료를 지우거나 옮기지 못하게 했어요.”
진혁은 화령의 종탑을 떠올렸다. 거기서도 누군가 기록 한 줄을 바꿔 사람의 기억을 담보로 넘기려 했다. 여기는 더 오래되고 더 깊은 흉터를 남긴 장소였다. 그는 입을 다문 채 창틀의 먼지를 바라봤다.
그 전에 작은 소동이 있었다. 광산에 살다 떠난 한 가족이 오래전 임금 장부를 돌려달라며 창고를 찾은 것이다. 그 가족은 체불 임금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버지의 작업 시간 기록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희는 원본을 내줄 수 없다면서도 열람 신청을 도와 사본 발급 절차를 설명했다. 그 가족은 처음에는 원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아버지 이름이 적힌 종이인데 왜 우리가 못 가져갑니까?”
“그 종이에 다른 스물세 명의 임금도 적혀 있으니까요. 원본을 가져가면 그분들의 가족도 확인할 방법을 잃습니다.”
카렌은 옆에서 조용히 자료 제출 동의서를 설명했다. 기록을 지키는 일이 때로는 당장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한 사람을 위해 원본을 넘기면 다른 사람의 권리가 사라질 수 있었다.
가족 중 가장 어린 여자가 말했다. “그럼 필요한 부분을 증명된 사본으로 받겠습니다. 아버지의 글씨가 그대로 보이면 좋겠어요.”
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범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원본이 찢어지지 않게 촬영한 보존 사본을 검토할 수 있어요.”
진혁은 그 대화를 듣고 여섯 번째 방의 명칭을 다시 생각했다. 반환되지 않은 물건이란 단지 남의 물건을 돌려주지 않았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자료를 온전히 남겨서 돌려받을 권리를 지키는 일도 포함하고 있었다.
가족이 나간 뒤 서희는 차가 식은 줄도 모르고 한 모금 마셨다. 밖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감정은 단지 가격을 적는 기술이 아니었다. 때로는 아직 만나지도 못한 다음 세대의 질문을 위해 종이를 남겨 두는 일이었다.
점심 무렵, 창고 마당에 낯선 여자가 나타났다. 검은 작업복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중년 여자였다. 다른 손에는 오래된 광산용 마스크가 들려 있었다. 서희는 그녀를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군요.”
“또 도시 사람들이 내 등불을 값으로 재러 왔다고?” 여자가 물었다.
진혁이 돌아봤다. 여자 얼굴에는 광산 노동자로 오래 살았다는 흔적이 있었다. 오른쪽 뺨에 희미한 흉터가 있었고, 손가락 마디는 굵었다. 그녀는 세 사람을 훑어보더니 마지막으로 진혁의 장갑 낀 오른손을 살폈다.
“당신이 서진혁인가?”
“그렇습니다.”
“제31후보라고?”
진혁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부릅니다. 제가 동의한 호칭은 아니고요.”
여자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 번 두드리며 웃었다.
“그 말은 마음에 드는군. 내게도 누군가 번호를 붙였거든.”
카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오래전에 이 광산 물건을 감정했던 사람. 이름은 백여명이라고 하지.”
여자는 어깨에 걸친 작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에는 세로로 찍힌 낡은 도장이 보였다.
‘제32후보 — 생존 확인에 동의하지 않음.’
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과,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남의 허가로 증명하게 하는 것은 달랐다.
여자는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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