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박이 응답한 것은 밤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이었다.
진도경은 수차 관리소의 등불에 새 전선을 연결하고, 멀리 수문실 창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을 설치했다. 마을 사람들은 학교 건물로 피했고, 한쪽에서는 구조 장비를 실은 수레가 천천히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위험 구역에는 구조 기술자와 마을 관리인만 출입했다. 진혁과 카렌, 라일은 관리소 바깥의 안전한 마당에 머물렀다.
일곱 번 울린 낯선 종소리가 사라진 뒤 산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빗소리는 낮보다 약해졌지만 바람은 거칠었다. 산 아래 마을에는 희미한 불빛들이 띄엄띄엄 떠 있었다. 불빛 하나마다 사람의 집이 있었다. 진혁은 그 사실이 대형 경매장의 금빛 샹들리에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도경이 등불의 가림판을 세 번 움직였다. 짧게, 길게, 짧게. 이곳 구조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위치 확인 신호였다. 십여 분 동안 반응이 없었다. 라일은 추위에 어깨를 움츠린 채 대기했고, 카렌은 구조소에서 전해 온 지도를 도경의 지도와 맞췄다.
그러다 먼 산자락에서 작은 불빛이 한 번 반짝였다.
“봤습니까?” 진혁이 숨을 삼켰다.
“한 번 더 확인합시다.” 도경은 서두르지 않았다.
두 번째 신호 뒤에 두 번의 짧은 반짝임이 돌아왔다. 최박이 자신의 기름 램프로 응답한 것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으나 수문실 출입구가 물에 막혀 있다고 했다. 신호 규칙에 따라 해독한 내용은 매우 짧았다. ‘생존. 다리 다침. 물 상승.’
라일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뛰어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뛰어가면 구조할 사람을 늘리는 꼴이에요.” 카렌이 답했다.
도경은 마을 구조대와 외부 지원대에 즉시 전신을 보냈다. 신호 확인 시각, 수문실 높이, 예상 수위, 확보된 대피 경로가 같이 전달됐다. 오래된 등불 한 개가 위치를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구할 수는 없었다. 구조팀이 도착할 때까지 신호를 유지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진혁은 등불의 금속 몸통을 찬찬히 살폈다. 부품 사이에 얇은 광물이 끼워져 있었다. 표면은 숯처럼 검었는데 빛을 비스듬히 비추면 깊은 청색을 띠었다. 도경은 옛 광산에서 산출되던 방진광의 한 종류라고 했다. 미세한 진동을 흡수해 광산 통신 장비의 잡음을 줄였던 재료였다.
“방진광이면 흔한 것 아닙니까?” 진혁이 물었다.
“품질에 따라 다르죠. 순도 높은 건 건물의 진동을 잡는 데 좋지만, 채굴도 어려웠어요. 흙과 쉽게 섞이고, 물을 오래 먹으면 쉽게 부스러집니다.”
“지금 저 물건은 마른 상태군요.”
“등불 내부에서 계속 보호됐겠죠. 그렇다고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험해야죠.”
진혁은 허가받은 여분의 조각 하나를 손대지 않고 확대경 아래로 옮겼다. 광물에는 작은 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그는 마레온 방벽 펌프에서 미란이 보내온 진동 측정 자료를 떠올렸다. 펌프는 강한 수압을 견뎌야 했고, 불규칙한 회전 진동 때문에 부품이 빨리 닳았다. 만약 광물이 보조 고정대의 진동을 줄일 수 있다면 장인들이 만드는 대체 펌프에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다만 그 가능성은 구조와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수첩 한쪽에 ‘공동 시험용 소량 샘플 요청’이라고만 적었다.
구조팀은 밤이 깊어 도착했다.
그동안 진혁은 등불을 지키는 일을 계속했다. 밑바닥에는 금속을 붙인 오래된 흔적이 있었고, 가림판을 일정한 각도로 움직일 때마다 전선이 짧게 떨렸다. 그는 등불을 만지지 않고도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거울을 이용했다. 빛이 약해지면 교체할 부품을 준비하고, 손잡이의 온도가 올라가면 도경에게 즉시 알렸다. 라일은 그의 뒤에서 시간을 기록했다.
“수면 위에서 물고기 잡는 것보다 지루하군요.”
“생각보다 물고기도 기다려야 잡힙니다.” 진혁이 말했다.
“제가 도둑이 된 건 기다리는 게 싫어서였는데.”
카렌이 웃음을 참다가 그들의 기록표를 가리켰다. “이상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저기 교대 시간을 맞춰 주세요.”
최박의 신호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그에게 남은 램프의 기름이 얼마나 되는지 몰랐고, 물이 차오르며 작은 창문을 가리면 더 이상 연락할 수 없었다. 도경은 신호 간격을 늘려 연료를 아끼도록 지시했다.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기다리는 몇 분이 몇 시간처럼 길었다.
라일은 자신이 멀리 있는 창까지 뛰어갈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는 실제로 비탈길을 오르는 데 자신이 있었고, 숨어 있는 길을 찾아내는 데에도 능했다. 그러나 도경은 지금 필요한 사람이 구조 대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라일은 반박하려다가 망설였고, 결국 다시 신호표를 받아 들었다.
“도망치는 길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요.”
“이번에는 돌아오는 길을 지키는 쪽을 해 주세요.” 카렌이 말했다.
라일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웃었다. “좋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직업을 바꿔야죠.”
진혁은 작은 등불이 보여 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생각했다. 이 물건의 가치는 화려한 마법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의 사람과 아주 짧게 연락할 수 있다는 사실. 등불을 처음 만들었던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지금 그 기능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분명 존재했다.
도경은 수문실의 단면도를 그려 왔다. 물이 빠져나가는 낮은 관과 사람이 오를 수 있는 통로를 구분하고, 절대 지지대를 손대지 말라고 표시했다. 구조팀이 도착하면 이 도면을 최박의 응답과 비교하기로 했다. 그는 진혁의 손바닥 상태를 보고 억지로 물건을 감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광산에는 특별한 감각을 가진 사람도 왔습니다. 다들 자기가 무너지는 돌을 미리 알아볼 수 있다고 했죠. 하지만 천장의 보강목은 아무도 대신 버텨 주지 못했습니다.”
진혁은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말에 흔들리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을 지키는 일이 더 어려웠다.
멀리 수문실 창이 다시 반짝였다. 신호가 약해졌지만 확실히 두 번 돌아왔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버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버텨야 해요.” 그들은 수문실로 이어지는 외부 통로의 바위를 고정하고, 물을 안전한 우회 배수로로 돌리는 작업을 시작했다. 광산 내부를 무턱대고 뚫지 않았다. 한 명이 수위 표를 읽고, 다른 한 명이 바위 틈에 생긴 움직임을 기록했다. 남은 사람들은 진혁이 붙들고 있는 등불 신호를 이용해 최박과 짧게 연락했다.
두 시간 뒤 최박이 나왔다. 흙탕물에 젖은 청년은 오른쪽 다리에 부목을 댄 채 들것에 실려 왔다. 그는 추위에 떨면서도 마을로 내려가자마자 도경에게 먼저 사과했다.
“보고 시각을 잘못 적었습니다.”
“지금은 사과할 때가 아니야.” 도경이 외투를 덮어 주었다. “다친 다리부터 치료받아.”
최박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누가 수문을 미리 열라고 지시했습니다. 서류가 있었어요. 제가 서명한 적 없는 제 이름도 적혀 있었고요.”
카렌은 그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 질문을 멈췄다. 위험을 벗어난 직후 상세 진술을 강요하면 기억이 섞일 수 있었다. 그녀는 치료가 우선이라는 점과 문서의 존재만 기록했다. 최박을 실은 마차가 멀어지자, 도경은 말없이 흙 묻은 장갑을 벗었다.
다음 날 오전, 폐광 일대는 일시 폐쇄됐다. 수문 작동 원인을 조사하는 동안 사람을 들일 수 없었다. 진혁 일행이 살펴볼 수 있는 곳은 지상 기록 창고뿐이었다. 그는 아직 발견하지 못한 ‘제32후보’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다친 최박의 이름을 먼저 수첩에 적었다.
최박의 들것이 지나간 뒤에도 학교 교실에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주민들이 남아 있었다. 도경은 현장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소문을 퍼뜨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누가 수문을 열었다는 말을 너무 빨리 확정하면 부상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게 될 수 있었다. 진혁은 따뜻한 물을 나르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확신에 찬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태문은 급식소에서 뜨거운 감자 수프를 내왔다. 광부들이 일을 하던 때에는 긴 교대근무 때문에 밤새 수프가 끓었다고 했다. 지금은 냄비가 작아졌지만,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여전히 이곳에 모였다. 진혁은 따뜻한 그릇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오래전 이 마을이 얼마나 많은 광물을 화령으로 보냈을지 상상했다.
“돈을 많이 벌었겠네요.”
“회사들은 그랬겠지.” 태문이 대답했다. “마을은 그 돈으로 기차역 하나와 학교 지붕을 얻었어. 나머지는 산 안에 남았지.”
“광물은 누가 소유합니까?”
“남은 설비는 공제조합, 광구의 채굴권은 광무청, 사람의 개인 소지품은 가족. 한 가지만 묻는 사람은 대개 셋을 혼동하더군.”
태문의 설명을 들은 진혁은 등불에 관해 제안했다. 광물 조각을 몰래 빼내지 않고 정식 절차로 시험할 수 있는지,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공제조합에는 소액 자산 처분 규정이 있었고, 오래된 시설물 일부를 교육·시험용으로 대여하는 제도도 있었다.
“얼마나 냅니까?” 태문이 물었다.
“시료 한 개를 임시로 빌리는 대여료 동화 열두 닢을 생각했습니다. 파손 위험에 대한 보증금은 따로 예치하고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 치고는 소박하네.”
“저는 원래 작은 돈을 모으는 데 재능이 있습니다. 큰돈은 아직 모아 본 적이 없고요.”
라일이 옆에서 헛기침했다. “큰 빚은 잘 모으죠.”
그날 마을 공제조합 대표는 등불의 원상 보존을 조건으로 광물의 탈착 가능한 손상 조각만 임시 시험하도록 허락했다. 조합 명의의 서류에는 시료의 크기와 반환 기한, 실험 시 파괴 금지 범위까지 적었다. 진혁은 그것을 고가의 유물로 감정하지 않았다. 지금 시료는 확인되지 않은 잠재력을 가진 재료일 뿐이었다.
밤이 되어 모두 잠든 뒤, 그는 여관의 책상에 앉아 작은 물건이 빛의 떨림을 줄이던 순간을 기록했다. 손바닥의 통증이 잠시 가라앉자, 조심스럽게 확대경 옆에 손을 놓았다. 가늘고 흐린 글자가 스쳤다.
[잔향: 물을 가둔 일곱 번째 밤.]
[소유 기록: 미확인.]
[작용: 잡음 감소. 대가: 균열 누적.]
진혁은 눈을 감았다. 손바닥이 화끈거렸고 숨이 갑자기 가빠졌다. 그는 즉시 손을 거뒀다. 평소보다 몇 초도 길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알게 된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많았다.
그때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서진혁 씨.” 낯선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 광물의 값을 알고 싶으시다면 내일 아침 장부를 보세요. 다만 누구의 장부인지부터 확인하시고.”
문을 열었을 때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계단 아래, 오래된 목제 바닥에는 젖은 장갑 한 짝만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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