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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화
PAYLUA ORIGINAL · 제6화

6화. 검은 실로 묶은 유언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6,160자

오프라인 책장
카렌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던 날 검에 새로운 매듭을 지었다. 그녀는 그 사실을 열두 해 동안 후회했다. 그날 아버지는 단순한 순찰을 다녀오겠다며 현관에서 장화를 신었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고,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끓이던 콩 수프 냄새가 났다. 어린 카렌은 아버지의 검집에 검은 실이 감겨 있는 것을 보고 왜 그 실을 풀지 않느냐고 물었다. ‘풀면 안 되는 매듭도 있는 법이지.’ 아버지는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 마레온 성문 앞에 실려 온 것은 아버지의 외투와 피 묻은 장갑뿐이었다. 검은 사라졌다. 장례식에는 누가 왜 그를 죽였는지 설명할 사람이 없었고, 경비대는 도둑을 추격하다 변을 당했다고만 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족에게는 보상금보다 빚이 더 많이 남았다. 검을 내놓으면 모든 채무를 없애 주겠다는 수상한 채권자가 나타났을 때 카렌은 그 말도 믿지 않았다. 검이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잃어버린 검 앞에 서 있었다. 지하 삼층의 봉인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벽마다 진주처럼 작은 수정이 박혀 있어 발밑에 희미한 길만 만들었다. 중앙 제단 위에는 검 한 자루가 가로놓여 있었다. 검집에 감긴 검은 실은 오래됐지만 풀리지 않았다. 제단 주변에는 일곱 줄의 구리 홈이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여기 있었네요.” 카렌이 속삭였다. 진혁은 그녀의 옆에 섰다. 오후 경매장에서 997번 거래 서류를 찾아낸 뒤 두 사람은 곧장 이곳으로 내려왔다. 진혁은 카렌의 검이 봉인 장치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용법도, 대가도 모른 채 검을 건드리게 할 수는 없었다. “카렌 씨. 집을 나서기 전에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왜요?” “이 물건은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단서가 될지도 몰라요.” 카렌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풀면 안 되는 매듭도 있다고 했어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단으로 다가가 검집의 검은 실 끝을 바라봤다. 매듭은 일부러 두 번 돌아 묶여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이 서로 반대 방향에서 잡아당겨야 하는 것처럼. 검에 손끝을 대자 익숙한 통증과 함께 장면이 밀려왔다. 비 내리는 항구. 깃발 없는 작은 배 한 척이 방파제에 묶여 있었다. 카렌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검집을 품에 안은 채 몇 사람과 말다툼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비닐처럼 매끈한 검은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명만 하면 된다. 이름 하나면 도시가 산다.’ 가면의 남자가 말했다. ‘사람의 이름은 물건이 아니다.’ 카렌의 아버지가 대답했다. 가면의 남자는 비웃었다. ‘경매장에서는 모든 것이 물건이 될 수 있어.’ 칼빛이 번쩍였고 장면이 끊겼다. 진혁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무릎이 휘청였지만 이번에는 미리 제단을 붙잡았다. 카렌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보였어요?” “네.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진혁은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지키려던 말을 전했다. 카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은 실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녀가 울고 있는 줄 알았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얼굴 전체가 아주 조용히 굳어 있었다. “아버지는 도둑을 쫓다 죽은 게 아니군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럼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은 거죠?” “그 질문에 답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진혁은 검집 아래쪽을 들어 올렸다. 그곳에 또 하나의 표시가 있었다. [명칭: 문지기의 검.] [기능: 거래 당사자의 진정한 동의를 증명한다.] [발동 조건: 마지막 혈족의 피가 아닌, 마지막 혈족의 증언.] [오염된 감정 기록 때문에 조건이 왜곡되어 보였음.] 진혁은 숨을 멈췄다. 어젯밤에는 분명 ‘마지막 혈족의 피’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은 다른 문구가 보였다. 능력이 거짓말을 한 것일까. 그는 다시 검집을 만졌다. 이번에는 더 아래쪽에 작은 글씨가 나타났다. [경고: 기억의 주인이 믿었던 사실과 실제 사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진혁은 비로소 깨달았다. 눈앞에 뜨는 정보가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었다. 물건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이 틀렸다면 감정 결과도 틀릴 수 있었다. 전날 카렌의 아버지는 검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누군가는 그것을 발동 조건으로 기억했고, 그 오해가 검에 남은 것이다. 더 깊이 살펴야만 구분할 수 있었다. “피가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요?” “카렌 씨가 자기 의지로 거래의 부당함을 증언하면 됩니다.” 카렌은 검집을 바라봤다. “왜 하필 저죠?” “이 검을 끝까지 지킨 분이 아버님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그분의 약속을 이어받을 수 있는 사람이 카렌 씨인 겁니다.” 그녀는 검에 손을 얹었다. 검집이 조용히 빛났다. 검은 실 매듭이 흔들렸지만 풀리지는 않았다. 검을 훔쳐서 쓸 수 없도록 걸어 둔 마지막 안전장치 같았다. “그럼 이걸로 997번 경매를 막을 수 있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가능성?” “제가 이제 알아낸 게 있습니다. 제 눈앞의 문장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요.” 카렌은 그를 잠시 보더니 아주 작게 웃었다. “그건 의외로 믿음직한 말이네요.” 카렌은 검을 들기 전에 매듭을 다시 살폈다. 어린 날의 기억이 천천히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검에 검은 실을 묶던 밤, 그녀는 식탁에 앉아 망가진 장난감의 끈을 고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매듭을 짓는 법을 가르쳐 주며 말했다. ‘급히 풀 수 있어야 한다고 대충 묶으면 안 돼. 누군가 그 매듭을 믿고 있다면 말이야.’ 지금 제단 위 검의 매듭은 어릴 때 배운 방식과 정확히 같았다. 두 번 감은 뒤 마지막 고리를 안쪽으로 돌렸다. 아무렇게나 당기면 더 조여지지만 순서를 지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매듭이었다. “저 알아요.” 카렌이 갑자기 말했다.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뭘요?” “이 매듭을요.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요.”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그러나 처음으로 떨림 속에 두려움 대신 확신이 있었다. 카렌은 검집을 왼손에 안고 오른손으로 첫 고리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어 반대편 실을 살짝 밀자 조여 있던 매듭이 서서히 풀렸다. 검집 안에서 낡은 종이 냄새가 났다. 카렌은 즉시 칼을 뽑지 않았다. 실을 두 손바닥 사이에 올려놓고 한참 내려다봤다. “아버지가 저에게 남기신 건 검을 휘두르는 법만이 아니었네요.” 그녀가 말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과, 제가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을 구분하라고 하셨어요. 어릴 땐 그 차이를 몰랐는데….” 진혁은 그녀 곁에서 기다렸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의 유품을 되찾았을 때 재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그 물건이 가족의 마지막 기억과 오래된 누명을 동시에 품고 있다면 더욱 그랬다. 카렌은 천천히 검을 반쯤 뽑았다. 날은 오래된 은빛이었다. 흠집이 군데군데 남았고 날끝은 유난히 닳아 있었다. 적을 베는 데만 쓴 칼이라기보다 수많은 문의 빗장을 막아 세우는 데 사용한 도구 같았다. 검신 안쪽에는 글씨가 하나 새겨져 있었다. ‘지키는 자에게 힘을.’ 진혁은 그 글자를 보고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다. 아버지의 약속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명령이 아니라, 들어오려는 위험을 막겠다는 다짐이었다. “카렌 씨. 이 검을 회수했다는 보관증을 남겨야 합니다.” “지금요?” “원래 소유주를 증명해야 경매장 안에서 몰래 가져갔다고 오해받지 않죠.” 카렌은 피식 웃었다. “당신은 정말 이런 상황에서도 서류 생각밖에 안 나요?” “도둑이 훔친 것과 주인이 되찾은 것은 다르게 기록돼야 하니까요.” 진혁은 봉인실 관리대에서 물건 이동 장부를 꺼냈다. 먼지가 쌓인 표면을 손바닥으로 쓸자 옛 감정사의 도장이 나타났다. 그는 ‘회수자: 카렌 하르트, 유품 권리 확인 중. 수석 감정사 대행 서진혁 입회’라고 적었다. 카렌은 자신의 이름 옆에 잠깐 멈춰 있다가 서명했다. 서명을 마친 순간 검신에 푸른 실금이 퍼졌다. 진혁의 시야에서 작은 알림이 나타났다. [소지권 확인.] [증언 기능: 활성화 대기.] [경고: 소지와 소유는 다릅니다.] 진혁은 마지막 문구를 두 번 읽었다. 오늘 하루 동안 경매장의 모든 사건이 이 차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신원을 담보로 잡은 상회가 바로 그 선을 넘었다. “이제 가죠.” 카렌이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검을 허리춤에 찼다. 검집의 무게가 익숙한 자리로 돌아오자 자세가 조금 달라졌다. 아침까지는 빚을 갚으려고 위험한 일을 맡은 경호원이었다면, 이제는 무엇을 위해 싸울지 스스로 정한 사람처럼 보였다. 두 사람이 검을 들고 계단을 올라왔을 때는 일몰까지 서른 분 남아 있었다. 경매장 서쪽 창에는 노을이 붉게 걸려 있었다. 대리석 바닥에 길게 뻗은 그림자 사이로 경비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헥터가 달려와 보고했다. “비공개 경매가 곧 시작됩니다. 검은 인장 상회 측 대리인이 이미 지하 소경매실에 들어왔습니다.” 소경매실은 대경매장과 달리 원형으로 작았다. 귀중한 물건이나 비밀 거래를 할 때 쓰는 곳이었다. 벽면 전체에 푸른 감정 문양이 새겨져 있고 중앙에는 원탁 하나가 있었다. 손님들은 서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칸막이 뒤에 앉았다. 계약은 봉인된 종이 위에 작성되며, 한 번 낙찰되면 경매장조차 결제를 취소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혁이 문을 열자 입찰이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상품 997. 첫 번째 비밀.” 희미한 조명 아래 경매사의 목소리가 울렸다. “시작가는 금화 오백 닢입니다.” 진혁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칸막이 뒤에서 누군가 혀를 찼다. “또 저 말단인가.” 그 소리에는 낯익은 비웃음이 묻어 있었다. 진혁은 무심코 숨을 삼켰다. 상대는 로델일까, 아니면 검은 인장 상회의 대리인일까. 이곳은 얼굴이 아니라 번호로 사람을 구분하는 경매장이었다. “이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경매사가 망설였다. 낮의 소란이 기억났는지 이번에는 망치를 내려놓았다. “상품을 출품한 사람이 본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철회하시려는 겁니까?” “저는 출품한 적이 없습니다.” “계약서에 분명 서명이….” “그 서명이 제 동의였는지 검증해 주십시오.” 칸막이 뒤에서 한 사람이 웃었다. “직원 계약서에 서명한 순간 이미 동의한 거지. 그런 기초도 모르는 사람이 감정사라고?” 진혁은 그 목소리를 기억해 뒀다. 낮은 남자 목소리, 끝을 끌어 올리는 억양.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귀로 확인한 단서였다. 카렌이 검집을 들어 원탁에 올렸다. 검은 실이 푸른 문양과 맞닿자 조용한 금속 소리가 났다. “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증언합니다.” 카렌의 목소리가 소경매실에 울렸다. “아무도 타인의 비밀을 물건처럼 팔 권리가 없습니다. 당사자의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이 경매는 무효입니다.” 순간 원탁의 문양이 붉게 변했다. 계약서에 적힌 진혁의 서명이 먹물처럼 일그러지더니 다른 문장이 드러났다. 그것은 진혁이 쓰는 필체가 아니었다. 이름의 끝 획이 날카롭게 휘어져 있었고, 서명 밑에는 검은 인장 상회의 표식이 겹쳐 있었다. [동의 증명 실패.] [상품 997 결제 절차 중단.] [위조 출품 건으로 분류.] 칸막이 뒤의 의자가 넘어졌다.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비상구로 달려갔다. 카렌이 곧장 뒤쫓았지만 복도 바닥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났다. 진혁은 외쳤다. “붙잡으려 하지 마세요! 도망가는 길을 기억해 두세요!” 카렌은 그를 한번 돌아봤다. 그러고는 연기를 뚫으려 하지 않고 문 옆으로 물러났다. 연기 속에서는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몇 번 들렸지만, 이내 조용해졌다. 무모하게 쫓았다면 함정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소경매실 안에는 찢어진 계약서만 남았다. 진혁이 종이를 들자 또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위조 거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상품 000 소유권 분쟁: 추가 증거 제출 가능.] [처리 유예: 기존 기한 내.] “그래도 마지막 기한은 그대로군요.” 진혁이 중얼거리자 카렌이 물었다. “아직 시간이 얼마나 남았어요?” “내일 밤까지요.” 그녀는 제 검집을 꼭 쥐었다. “그럼 찾아봅시다. 아버지가 남긴 게 검 한 자루뿐은 아닐 거예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몰의 붉은 빛이 복도 끝까지 밀려들고 있었다. 그때 검집에서 검은 실 한 가닥이 저절로 풀렸다. 천으로 감춘 안쪽에서 접힌 작은 종잇조각이 떨어졌다. 거기에는 카렌의 아버지가 남긴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내 죽음을 증명하는 서류를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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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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